스님의하루

2022.6.12 농사, 결사행자 자자, 일요명상
“어떻게 하면 일을 이치에 맞게 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산윗밭 과수원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전정가위와 쪽가위, 낫을 챙겨 향존법사님과 함께 밭으로 갔습니다.

“자, 산책 갑시다.”

스님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출발했지만 오르막길에서는 종종 멈춰 서서 쉬어야 했습니다.

과수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1단, 2단 밭을 지났습니다. 지난주에 법사님들과 김을 맨 밭에 풀이 또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풀을 뽑고 3단 과수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떻게 가지치기를 잘할 수 있을까.”

가지를 치는 목적은 햇볕이 골고루 들어갈 수 있도록 빽빽한 가지를 잘라주어서 결실 부위를 고르게 분포시켜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나무를 요리조리 살펴본 후 신중하게 가지를 잘라주었습니다. 기울어진 나무는 주변에 있는 나무 막대기를 주워와 세워주었습니다.




복숭아가 빽빽이 달린 곳에는 사이에 복숭아를 따주었습니다.


3단 가지치기를 마치고 4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뻗어 나온 덩굴을 걷고 길을 정비하며 올라갔습니다.

4단, 5단에 올라가서도 나무 가지를 쳐주고 나무 주변에 자란 풀을 벴습니다.



직접 심은 나무뿐만 아니라 야생 나무도 덩굴이 뒤덮여 있으면 덩굴을 걷어내 주었습니다.

3,4,5단 과수원을 다 둘러보고 다시 1,2단 밭으로 내려와 밭 사면도 둘러보았습니다.

사면에도 어느새 칡덩굴이 엄나무를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낫으로 덩굴 아래쪽을 다 베놓았습니다.


밭을 다 둘러보고 내려왔습니다. 길을 정비하면서 내려오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한편 수성, 경주, 울산지회에서 거사님 3분이 오셔서 비닐하우스 주변과 논둑에서 예초기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예초기를 둘러메고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길가에 풀이 무성한 곳부터 예초를 하고 산아랫밭으로 갔습니다.

밭으로 가는 길 중앙에도 풀이 자라 다니기가 불편해서 예초기로 풀을 베었습니다.

“이야, 고속도로가 생겼네요.”(웃음)


그런데 오래된 예초기가 자꾸 말썽이었습니다. 줄이 너무 길게 빠져나왔습니다.


줄을 다시 갈아 끼우고 산아랫밭으로 올라가는 길을 예초했습니다. 줄이 계속 길게 빠져나왔습니다. 스님은 어쩔 수없이 줄이 긴 대로 예초기를 돌렸습니다.

산아랫밭 안으로 가서도 예초기를 돌렸습니다. 비가 온 뒤로 생강밭 주변에 풀도 무성히 자랐습니다.


밭 안쪽까지 말끔히 풀을 베고 예초기 시동을 껐습니다.

“그래도 제가 계획한 곳은 다 했어요.”

12시가 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원고 교정을 보고 오후에는 다음 주 주말에 열리는 나비 장터에서 JTS 모금을 하기 위한 꽃모종을 만들었습니다. 나비 장터는 재활용 유통팀에서 물건을 재활용하고 교환하기 위한 행사입니다. 스님은 꽃모종을 만들어서 JTS 모금에 참여해준 정토회 회원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텃밭 주변에서 틈새마다 자라고 있는 국화, 봉선화, 맨드라미를 모종삽으로 뿌리째 뽑았습니다.

“이 정도 크기면 모종이 잘 자랄 것 같아요.”

뿌리에 흙이 묻은 채로 조심스럽게 화분에 담은 후 흙을 부었습니다. 화분을 몇 개나 만들지 궁금해서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화분을 몇 개 정도 만들려고요?”

“되는 대로 만들 거예요. 겨울에 인도 성지순례 가면 천민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잔치를 열어주려고요. 한 300개 정도만 만들어서 모금을 하면, 마을 사람들 전체를 초대해서 식사 한 끼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아무 노력 없이 모금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노력해서 모금하는 게 낫잖아요. 30년 전에 인도에 학교를 처음 세울 때는 아이들 사탕이라도 더 사주려고 두 시간씩 흥정하면서 시멘트 가격을 깎았거든요.” (웃음)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고 스님 옆으로 화분이 가지런히 늘어갔습니다. 스님의 입에서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왔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아름답다” (웃음)


화분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날 것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꽃모종을 80개가량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또 꽃모종을 만듭시다.”

마지막으로 꽃모종마다 물을 듬뿍 준 후 오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저녁 6시부터는 결사행자 자자 수련 회향식에 참석해 법문을 했습니다. 결사행자들은 오늘 오후 내내 ‘자자’ 수련을 했습니다. ‘자자’는 도반들에게 나의 허물에 대해 지적해 달라고 요청한 후 도반들의 지적을 경청하는 자리입니다. ‘자자’ 수련을 잘 마친 결사행자들은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수행공동체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했습니다.

“결사행자 여러분, 경전에 보면 ‘승가는 청정하고 화합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청정하다는 것은 계율을 잘 지킨다는 뜻입니다. 화합한다는 것은 우리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조율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조율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주 모여서 의논을 해야 합니다.

청정과 화합, 이 두 가지가 수행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겁니다. 회의는 화합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고, 자자는 청정을 위해서 열리는 것입니다, 청정과 화합이 승가의 가장 중요한 규정이기 때문에 설령 병가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회의와 자자에는 참석해야 합니다. 이러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여러분들이 자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자자를 하면서 들었던 의문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은 이치에 맞게 계획을 세워서 한다’는 계율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이치에 맞게 할 수 있나요?

“계율 중에 ‘일은 이치에 맞게 계획을 세워서 한다’는 계율이 있는데요. 이 계율이 항상 저한테는 어렵게 다가와요. 저는 일을 할 때 머릿속에서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쓱 생각하고 바로 진행을 합니다. 계획적으로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어떻게 일을 하는 것이 이치에 맞게 일을 하는 것이고, 계획적으로 일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수행 정진을 하는 데 있어서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의 욕망에 끄달리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둘째, 자기의 성질에 끄달리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셋째,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입니다.

이 중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욕망이고, 그다음에 자기 성질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어리석음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욕망이나 성질이라는 것도 다 어리석음에 바탕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나빠지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자기 성질대로 해서 순간적으로는 좋지만 결과가 나빠지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합해서 말한다면 모두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일머리가 없다고 말하잖아요. 먼저 해야 될 일을 나중에 하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해야 될 일을 안 하고, 안 해야 될 일은 하고, 이런 건 다 사물의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모종을 심을 때는 땅속에 물을 먼저 주고, 그다음에 모종을 심고, 그 위에 물을 더 주는 것이 이치에 맞게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종을 먼저 심어 놓고 그 위에 물을 주는 사람이 있어요. 흙의 성격이라는 게 모래흙이 아닌 이상 물이 옆으로 흐르지 스며들어가는 게 약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흙의 표면은 번드레하게 물이 젖어있지만 뿌리에는 실제로 물이 닿지 않습니다. 이치를 살펴보면 뿌리에 물이 필요하지 흙의 표면에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흙의 표면만 보이지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를 ‘어리석다’, ‘이치를 잘 모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곡식을 심을 때 깊이 심어야 될 것을 얇게 심는다든지, 얕게 심어야 될 것을 깊이 심는 것도 모두 어리석음입니다. 걸레를 빨아서 청소할 때도 물기를 세게 짜서 방을 닦아야 합니다. 물을 대충 짜고 닦으면 바닥에 물 칠이 되어 있으니까 잘 닦은 것 같은데, 물기가 마르면 얼룩이 그대로 남게 되죠. 반대로 밥상에 뭐가 떨어져서 말라 있는데 행주로 쓱 닦고 지나가서는 안 닦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인은 닦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 바로 이치를 잘 모르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일을 맵시 있게 잘 못하는 것도 모두 이치를 잘 모르는 것에 해당합니다.

화가 났는데 화가 난 줄 모르는 것도 어리석음에 들어가죠. 사람에 대해서든 사물에 대해서든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를 잘 모르는 것도 어리석음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원리를 잘 모르면 애는 많이 쓰고 결과는 안 좋죠. 욕망을 충족하면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안 좋고, 성질내면 순간적으로는 좋은 것 같지만 나중에 안 좋듯이, 어리석음이란 노력은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안 좋은 것을 말합니다.

첫째, 몰라서 어리석은 경우라면 배우면 됩니다. 둘째, 모르는 줄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습관대로 대충 살아서 그렇다면, 그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꼭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몰라서 잘못했다 하더라도 한 번 하고 두 번 해보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원리를 터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치에 맞게 일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요. 속도를 빨리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깔끔하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 될 수도 되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속도가 조금 느리더라도 안전을 중요시해야 될 때가 있어요. 모종을 이럴게 심으나 저렇게 심으나 크게 문제가 없다면, 너무 꼼꼼하게 심으면 효율이 떨어지고요.

어떤 일을 하든 이치를 파악해가면서 일을 하면 똑같은 일을 백 번 해도 단순 반복이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원리가 조금씩 터득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효율이 높아지도록 하는 것을 이치에 맞게 일한다고 합니다. 이치에 맞게 일을 하면 힘이 덜 듭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성질 더러운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일머리 없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에 속합니다. 정리 정돈을 제대로 안 하고 함부로 물건을 어지럽히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도 같이 사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계율이 생겨난 겁니다.

수행자는 항상 이치에 맞게끔 일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행자 생활 입재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비질을 어떻게 하고, 걸레질은 어떻게 하고, 빨래는 어떻게 하고, 옷은 어떻게 널고, 이런 것들을 교육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이치에 맞게 일하는 것과 관계된 교육입니다. 청소를 하든, 무엇을 하든, 모든 일에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런 이치를 늘 살피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어떤 일을 다급하게 허둥지둥하지 말고 가능하면 계획을 세워서 이치에 맞게 해야 합니다. 언제 그 일을 할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서 일을 하면 효율적입니다. 물론 당면해서 긴급하게 해야 될 일도 있지만, 일상적인 일은 항상 순서를 정해서 준비를 해서 하는 게 힘이 덜 들고 효율적입니다.

수행자는, 첫째, 마음에서 욕심을 안 내고 성질을 안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여러 면에서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본받을 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법이 가능합니다. 계율을 잘 지킨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이 안정되어 있고, 허둥대지 않고, 습관대로 살지 않고, 자기에게 깨어있다는 하나의 반증입니다.

수행자는 늘 깨어있는 상태로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물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면 시행착오를 덜 할 수 있고, 잘못해도 잘못을 빨리 발견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계율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정도 즉문즉설을 한 후 결사행자 자자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 자자 수련을 잘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의혹이 있거나 잘못이 있을 때는 이런 자리를 빌어서 서로 탁마해 가도록 합시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114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몸도 피곤하고 정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휴일이 있고, 휴일에는 육체도 정신도 휴식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휴식이라는 게 쉬는 시간이 아니라 열심히 노는 시간이죠. 주말에 열심히 놀다가 월요일이 되면 오히려 더 피곤해합니다. ‘월요병’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몸과 마음이 정말 휴식하려면 모든 것을 멈춰야 합니다.

일요명상은 한 주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완전히 멈추어야 참된 휴식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지난 일주일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니까, 오늘 1시간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1시간 동안은 ‘아무 할 일이 없다, 할 일을 다 마쳤다,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쉬어도 되는 충분한 권리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푹 쉬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갖습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멈춥니다. 동작을 멈추고 생각도 멈춥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둡니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갈 뿐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움직이지 않고 멈춰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오더라도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생각도 멈춰봅니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몸의 에너지를 최소로 써봅니다. 체온을 유지하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일에도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 시간에는 아무리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다 휴식을 방해하는 망상일 뿐입니다. 다만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만 알아차립니다. 알아차리는 것도 알아차려지는 것이지 알아차리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긴장을 풀고 편안한 가운데 애쓰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40분 간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스님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을 직접 읽어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휴식해서 채운 에너지로 이번 한 주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일상도 가능하면 이렇게 편안하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농사일을 하고, 오전과 저녁에는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인도 성지순례 회의와 공동체 지부 공청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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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jts꽃이 참 예쁩니다.

2022-06-21 17:08:53

무검

스님, 수행자의 목표와 명상법에 대한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어리석음을 회피하기 위해 늘 깨어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06-19 11:50:41

박세영

스님 감사합니다 🙏

2022-06-19 08: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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