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12 공동체 법사단 수련 2일째,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사상 11강
“말과 행동 이전에 마음을 다스리는 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자마자 다 함께 농사일을 하며 공동체 법사단 2일째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산아랫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작년 가을에 심은 마늘이 땅 속에서 추운 겨울을 이기고 드디어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땅속의 마늘이 더 굵어지고 튼실해지려면 마늘종을 다 뽑아주어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늘종에게 영양분을 다 빼앗기게 되거든요.”

마늘종은 아침 일찍 뽑아야 끊어지지 않고 끝까지 뽑을 수 있습니다. 밤새 내린 이슬을 머금은 마늘종을 수직으로 잡아당기자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쭈욱 빠져나왔습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작업을 하니 금방 마늘종을 다 뽑을 수 있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자, 산밑밭으로 갑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산밑밭에는 며칠 전에 두둑을 만들어서 고추 모종, 토마토 모종, 호박 모종, 가지 모종, 목화 모종을 심었습니다. 오늘은 다 함께 지주대를 설치하고, 고랑에 잡초 매트를 깔기로 했습니다.

농사 팀장의 설명을 듣고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유수 스님과 무변심 법사님은 타격봉을 하나씩 들고 지주대를 박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지주대가 덜 박혀서 흔들리면 여기저기서 법사님들이 유수 스님을 찾았습니다.

“유수 스님이 인기가 정말 많네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유수 스님이 인기가 많은 게 아니라 타격봉이 인기가 많은 거예요.” (웃음)

지주대를 세우는 법사님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쳤습니다. 뒤이어 묘수 법사님과 향광명 법사님이 지주대가 엑스자로 서 있을 수 있게 줄을 묶으며 따라갔습니다.

법사님들이 지주대를 설치하는 동안 스님은 고랑에 잡초 매트를 깔 수 있게 레이크로 땅을 평평하게 고르었습니다.

“가지는 잘 키우면 한 나무에서 가지를 200개가량 수확할 수 있다고 해요.”

스님이 고랑을 평평하게 만들고 나면 나머지 법사님들이 고랑에 잡초 매트를 깔았습니다. 잡초 매트를 펼쳐서 고랑이 다 덮이면 곳곳에 철심을 박아 고정했습니다.


손발을 척척 맞춰서 한 줄을 끝내고, 다음 줄로 넘어가고, 다시 다음 줄로 넘어갔습니다. 밭의 가장자리에도 빙 둘러서 잡초 매트를 깔았습니다.

두 시간을 작업한 끝에 아주 정갈한 밭이 완성되었습니다.

법사님들은 산앞밭에 잡초 매트를 깔기 위해 이동하고, 스님은 밭에 남아서 물통에 호스를 연결하여 모종에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계속 주다 보니 물통에서 더 이상 물이 안 나왔습니다. 물통을 땅에 눕히자 고인 물을 물뿌리개에 계속 담을 수 있었습니다.


“됐어요. 이 정도면 충분히 물을 준 것 같아요. 이제 내려갑시다.”

물 주기를 마친 스님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마침 법사님들도 산앞밭에 잡초 매트를 깔고 한랭사를 씌우는 일을 다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발우공양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서둘러 작업 도구들을 정리한 후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9시부터는 두북 공동체 대중과 공동체 법사단이 한 자리에 모여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아차세발수 여천감로미 시여아귀중 개령득포만”

소심경의 절수게를 함께 외우고 해탈주를 독송한 후 식사를 마쳤습니다.

설거지와 청소 소임을 한 후 10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백운산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까지 공동체 법사단은 스님과 함께 산행을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해가 지자 날이 쌀쌀해졌습니다.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강의 준비를 하다가 8시 정각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실천적 불교사상 11강을 하는 날입니다. 지난 수업 시간에 오계와 팔계에 대해 자세히 배웠습니다. 오늘은 ‘선정과 지혜’를 주제로 욕망과 감정의 작용에 대한 스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지난 수업까지 세 번에 걸쳐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어떻게 바르게 할 것인가’ 하는 지계(持戒)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과 행동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에 화가 있으면 욕설을 하거나 큰소리를 치게 되죠. 마음에 욕망이 있으면 성추행을 하거나 훔치는 일을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말과 행동을 단정히 하려면 먼저 마음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이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고 고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 관리법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보다 더 근원적인 주제인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를 어떻게 증득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말과 행동 이전에 마음을 다스리는 법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수행자가 되려면 먼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닦아야 합니다. 계정혜 삼학이란 지계(持戒),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말합니다. 이전 계율에 대한 수업에서, 수행자라면 적어도 다섯 가지는 삼가야 되고, 더 나아가서 세 가지는 유의해서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은 심성이 착하고 남에게 해를 안 끼칩니다. 그런데 착하긴 한데 마음이 늘 들떠있거나 우울한 경우가 있습니다. 착한 사람 중에 이런 경우가 오히려 많아요. 이런 사람하고 있으면 좀 답답하죠. 그래서 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마음이 고요해야 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흥분된 마음은 억제한다고 해서 가라앉혀지지 않습니다. 잠시 억누를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는 못해요. 사람들이 욕설, 폭력, 성추행, 도둑질을 하거나 술 먹고 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등 계율을 어길 때는 다 마음이 들떠 있을 때입니다. 옛날부터 ‘욕심에 눈이 어두웠다’,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 ‘성질이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다’ 이런 표현을 많이 하죠. 이것은 다 ‘무지(無知)’로 인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마음이 사로잡힌 그 순간에는 제대로 알고 행동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이 저절로 나와 버립니다. 아무리 말과 행동을 절제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과 행동을 해버리니까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무지에 의한 말과 행동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이 확 올라올 때, ‘아, 화가 나는구나’ 이렇게 딱 알아차려야 해요. 그러면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거나, 욕설을 하거나, 술주정을 하는데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행동이 일어나는 한 단계 이전으로 가서 어리석은 행동을 일으키는 마음을 먼저 정화시키는 겁니다.

마음을 고요히 한 상태에서 뚜렷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을 불교 용어로 ‘선정(禪定)에 들었다’, ‘선정을 닦는다’, ‘정(定)에 든다’ 이렇게 말합니다. ‘선정’을 줄여서 ‘정’이라고 합니다. 또 선종에서는 ‘참선한다’ 이렇게 말하고, 일반적으로는 ‘명상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선정을 닦을 때는 일단 긴장을 풀어야 해요. 우리는 세상일을 할 때 늘 ‘해야지!’ 하고 의도하고 긴장하고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금방 지쳐서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세상일을 욕심으로 하듯이 수행도 욕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상을 잘해야지!’, ‘선정을 잘 닦아야지!’ 이런 식으로 긴장하고 각오하고 결심합니다. 그러다 안 되니까 ‘나는 명상이 안 된다’, ‘명상이 너무 힘들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치 일을 하다가 힘들어하는 것처럼 명상을 하다가 힘들어해요. 그러나 명상은 일이 아니라 ‘쉼’이고 ‘휴식’입니다. 쉰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할 일이 있더라도 멈추는 거예요. 육체적, 정신적 모든 노력을 멈추고 쉬는 겁니다. 그래서 명상은 첫째, 편안한 자세로 임해야 됩니다. 편안하려고 애를 쓰는 편안함이 아니라 ‘아무 할 일이 없다’ 하는 관점에 서야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은 아무 할 일이 없다’
‘저녁에 일을 다 마쳤으니까 아무 할 일이 없다’

아무 할 일이 없으니까 노력할 것도, 애쓸 것도, 긴장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 할 일이 없는 그런 한가한 마음으로 명상을 해야 합니다. ‘뭘 해야지!’, ‘잘 해야지!’ 하는 의도를 갖고 하면 참고 이겨내는 극기 훈련이 됩니다. 참고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명상이 아니고 갈고닦는 수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수행은 그렇게 각오하고 결심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수행’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폭포 밑에 가서 옷을 벗고 단련해서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힘을 얻는 그런 것을 상상할지도 모르겠어요. 수행은 그런 무사들의 군대식 훈련 같은 것이 아닙니다.

명상은 휴식입니다. 모든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아무 할 일이 없어야 해요. 첫째, 동작을 멈춥니다. 둘째, 생각도 멈춥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꾸 생각으로 뭘 하려고 합니다. 명상할 때는 아무 할 일이 없으니까 생각도 딱 멈춰야 됩니다. 가야 될 일도 없고, 와야 될 일도 없고, 가만히 있어야 될 일도 없습니다. ‘뭘 해야지’, ‘어떻게 해야지’ 이런 생각을 다 내려놓아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명상을 하면 지칠 일이 없습니다. ‘해야지!’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실패도 없어요. ‘잘 됐다’, ‘안 됐다’ 하고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명상을 일처럼 각오하고 결심해서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명상이 잘 됐습니다’, ‘저번에는 명상이 안 됐습니다’, ‘요즘 명상이 안 됩니다’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애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애쓰지 않는 가운데 뚜렷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됩니다. 명상할 때 뚜렷이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첫째, 몸과 호흡입니다. 둘째, 감각과 느낌입니다. 셋째, 자신의 마음입니다. 넷째, 법과 이치입니다. 이 네 가지를 알아차려서 언행(言行)의 뿌리인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 강의의 요점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치유법

마음이 흥분되거나 가라앉을 때 나는 마음의 지배를 받고 감정에 휘둘립니다.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고, 욕망에 눈이 어두워서, 성질이 나면 나도 모르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욕망, 감정, 시비가 일어났다가도 곧 사라지게 됩니다. 참는 게 아니에요.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켜보는 겁니다. 그래서 선정을 닦는 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치유입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놓치면 어리석은 행위가 나옵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면 어리석은 행위가 안 일어나고, 마음을 놓치면 어리석은 행위가 일어나 버려요. 어리석은 행위까지 일어나 버렸다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일어나는 원리에 따라서 내 상태와 일어난 상황에 맞게 달리 대응해 나가야 해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확연히 본다면 쾌, 불쾌의 느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확연히 본다면 느낌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감각이 일어나면 느낌이 일어나고, 감각과 느낌이 일어나면 그에 따라 감정이 일어나고, 감정이 일어나면 행위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꾸 놓치게 되죠. 놓쳤다면 다음 단계에서 막고, 또 놓쳤다면 그다음 단계에서 막아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계정혜 삼학을 닦는다’라고 표현해요.

마음을 딱 가지런히 정제해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감정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이 없으면 거의 자동 반응으로 감정에 휘말리게 됩니다. 감각이나 느낌,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지금 보고 경험한 것만 갖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선입견이 되어 늘 같이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뱀을 보고 지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면, 지금 뱀을 보고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경험했던 것이 작용하는 거예요. 남편이 큰 목소리를 내서 화가 났다면, 남편의 큰 목소리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그전에 남편이 화를 자주 냈던 내 선입견이 작용해서 큰 목소리를 듣자마자 ‘또 시작이다’ 하면서 감정이 격화되는 겁니다.

지계, 언행을 스스로 제어하기

우리는 아직 지혜도 없고, 선정이 깊어서 마음을 고요히 하는 수준도 안 되기 때문에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나한테 유리하고 불리한지 알아서 남에게 해가 안 되는 언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율입니다. 먹고 싶더라도 배탈이 날 것 같으면 안 먹고, 먹고 싶더라도 비만이라면 안 먹고, 감정이 욱 하고 올라오더라도 화를 내었을 때 많은 비난이 따를 것 같으면 멈추는 거예요.

선정, 마음작용을 알아차리기

그런데 행위는 이미 마음이 다 일어난 뒤의 얘기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해서 들뜬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행위를 하고 말고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들뜬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알아차림을 통해서 들뜬 감정이 일어났다가 저절로 사라지도록 하면 참을 필요가 없어요. 예를 들어 담배를 끊고자 하는 사람이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안 피워야지!’ 하고 결심한 후 또 피워버리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구나’ 하고 그냥 알아차리는 겁니다.

‘어, 지금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구나.’

이렇게 다만 알아차리는 거예요. ‘안 피워야지!’라고 각오하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 피워야지!’라고 하지도 않고, 그냥 ‘피우고 싶어 하구나’ 이렇게 알아차립니다. 명상할 때 다리에 통증이 있으면 ‘다리를 펴야지!’라고 하지도 않고, ‘참아야지!’라고 하지도 않고, 다만 ‘통증이 있네. 그렇구나’ 이렇게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혜, 사물의 전모를 파악하기

선정을 닦아서 과거의 습관이나 선입견이 싹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는 사물을 다만 볼뿐이고, 들을 뿐이고, 냄새 맡을 뿐이고, 맛 볼뿐이고, 감촉할 뿐이지, 거기에 부정적 감정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입관을 갖지 않고 항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통찰력이에요. 어떤 편견이나 하나의 특징만 보고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통찰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어떤 한 부분이나 순간만 보고 단정해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조금씩 변해갑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실험을 해보세요. 오늘 법문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오늘은 남편을 위해 저녁 밥상을 차려서 대화를 좀 해야지’ 하고 시도한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대부분은 ‘이게 미쳤나?’, ‘뭐가 필요한가?’, ‘뭐가 잘못됐나?’ 이렇게 반응해요. 왜냐하면 상대에게는 나에 대한 평가나 선입견이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려워요. 어제까지는 그런 사람이었어도 오늘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인데, 편견을 버리고 그렇게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알려면 최소한 100일은 자기를 딱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나에게 변화가 오려면 1,000일은 연습해야 합니다. 3년쯤 걸리는 이유는 나만 변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뢰가 쌓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저 사람 요즘 화가 좀 적어졌네’, ‘저 사람 요즘 주장이 좀 덜 세네’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이 여러 번 경험해서 그들의 인식에 변화가 왔을 때 내가 좀 변했다는 게 검증이 되는 겁니다.

개인에게 변화가 오려면 1,000일은 연습해야 되고, 세상을 바꾸려면 10,000일은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작용의 이치를 알아도 금방 변화되는 것이 아니에요. 나에게도 관성이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에도 관성이 있어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옛날에 각자 자기가 본 그림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아이들이나 남편, 아내, 회사 동료 등 사람을 대할 때 ‘지금 저분이 무슨 말을 하나’, ‘무슨 행동을 하나’ 이렇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슬쩍 지나가면서 늘 하던 대로 생각합니다. ‘저 인간이 또 화를 내네’, ‘저 인간이 또 뭐라 그러네’, ‘쟤 또 저렇구나’ 이렇게 거의 관성적으로 사물을 보고 듣고 평가합니다.

오늘은 계정혜 중에 선정을 닦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수행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합니다. 이 중 선정을 닦는 원리는 12 연기에 자세히 나옵니다. 12 연기(十二緣起)는 사람이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교리적으로 분석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12가지 고리를 12 연기라고 해요. 애(愛)와 취(取) 사이에서 멈추는 것을 계(戒)라고 하고, 수(受)와 애(愛) 사이에서 멈추는 것을 정(定)이라고 하고, 무명(無明)을 타파하는 것을 지혜(慧)라고 합니다. 이런 원리에 의해서 선정을 닦는 거예요.

좀 어렵죠?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교리적으로 원리를 안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직접 연습을 해야 합니다. 특히 명상수련을 직접 해 봄으로 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해요. 이걸 지식으로 아는 것이 핵심은 아니에요. 불교대학 다닐 때는 그냥 ‘이런 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만 알고, 앞으로 여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연습해 나가려면 명상수련에 꾸준히 참가해야 합니다.

계율을 지켜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했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법사단 수련 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 농사일과 발우공양을 하고, 오후에는 회의를 한 후 공동체 법사단 수련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을 생방송합니다.

전체댓글 49

0/200

김교태

불가에 관심이 많았는데, 교리 공부를 어찌 해야할까요?

2022-07-24 13:46:17

김은혜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몸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법륜스님

2022-05-22 07:54:38

아침햇살

할일이 없는가운데 알아차림을 명심하겠습니다

2022-05-20 06: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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