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26. 천일결사 기도, 용성조사 열반 기념법회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남긴 유훈“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밤새 폭우가 쏟아지고 강풍이 불었습니다.

두북 수련원의 교정에는 진달래, 목련, 살구꽃, 동백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잎이 빗방울을 머금고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새벽 4시 30분, 생방송이 시작되자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경전을 독송한 후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의 노력으로 이룬 기적

"지난 107일 동안 여러분의 전법 발원에 힘입어 정토회 역사상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정토회는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했습니다. 비원 앞에 열 평 남짓한 법당을 하나 얻어서 전법을 시작했고, 용두리에 비닐하우스를 하나 얻어서 수련과 행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정토회에 지난 30년 동안 한 분 한 분이 모여 자원봉사를 하고 전법을 해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법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보시와 봉사가 모여서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와 지바카 병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는 원주민과 무슬림 등 소외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JTS 센터와 많은 학교가 지어졌습니다. 또한 우리의 보시와 봉사활동이 모여 전국 시군구마다 법당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들여 만든 전국의 법당을 폐쇄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노력으로 올봄에 1만 명에게 불교대학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정토회가 세상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데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또 여러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가족의 배려도 있었습니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전법하고 온라인 활동을 하니까 여러분의 아내, 남편, 부모, 자식들은 마치 여러분을 정토회에 빼앗긴 것처럼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원망을 하기도 했을 겁니다. 때로는 저에게 '활동가에게 주어지는 활동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라는 항의가 들어올 정도로 가족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활동을 하는 데는 여러분의 노고와 더불어, 설령 반대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가족들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모두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기쁨

오늘 우리가 읽은 경전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깨달은 모습이 나오는데요. 깨달음을 얻은 그들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인도는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하층민으로 태어나면, 비록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많은 차별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또 당시 여성들은 성차별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층민으로 태어난 여성들은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동시에 겪어야 했기 때문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계급 차별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즉, 주인을 섬기는 노예생활을 한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노동력은 주인에게 착취당했죠.

그 당시 인도 여성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자를 주인으로 섬겨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인을 바꾸어가며 섬겨야 했어요. 즉, 어려서는 아버지가 주인이고, 결혼을 하면 남편이 주인이고, 남편이 죽고 나면 아들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계급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노동은 자신을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었습니다. 성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성은 자신의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쾌락을 만족시켜야 하는 도구였습니다. 특히 신분이 낮은 여성들은 노동 착취와 성적 착취를 같이 겪었어요. 그러한 여성들이 부처님 법을 만나 계급 차별과 성차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착취당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살지 않고, 바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찾았을 때 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계급 차별이나 성차별이 없는 환경에서 살다 보니 이런 부처님 법의 위대함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하층민과 여성들은 설령 불법을 깨치기 전이라도 출가를 하면 이런 계급 차별과 성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을 섬기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뻐했어요.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처님 당시 사회와 비교하면 사회적 조건이 많이 개선된 편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습관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고, 자기 판단과 생각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깥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처럼 스스로 묶여서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자기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기 성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마치 부처님 당시 계급의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성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들 이상으로 기쁘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현대 사회는 외부적 얽매임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부적인 얽매임은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불을 섬기던 사람들이 가르침을 청하자 '너희들은 이제 법을 깨닫고 바깥에 있는 불은 껐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貪瞋痴)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니, 앞으로 수행 정진하여 마음속 불까지 끄도록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처럼 계급 차별, 성 차별을 비롯하여 각종 외부의 차별은 과거에 비해 개선했지만, 아직 마음속에 있는 욕망, 성질, 판단, 생각의 얽매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탐진치 삼독(三毒)의 얽매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탐진치 삼독의 얽매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 불교대학, 깨달음의 장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부 갈등 속에 잠 못 이루는 삶을 살다가 자유로워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자유로워졌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모의 간섭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괴로워하다가 자유로워졌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요즘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그 좋은 환경 속에서 살면서 무슨 걱정이 있느냐'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옛날 사람들 기준에서 보면 요즘 사람들은 먹는 걱정도, 입는 걱정도, 자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는 수준입니다. 옛날에 비하면 부족한 것 없이 먹고, 입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잡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는 우리대로 수많은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경제를 발전시키거나 사회적 조건을 개선해도 없어지지 않는 이 괴로움을 해결하는 길이 부처님 가르침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좋은 법을 이웃들에게 널리 전해서 그들도 괴로움에서 해방되도록 우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보람이고 기쁨이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수행 정진을 하고, 나아가 우리 이웃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전법을 합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에게 알맞게 전법을 하는 겁니다. 불법을 접하는 데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불교대학으로 이 길을 전하고, 불교라는 형식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행복학교를 통해 이 길을 전합니다. 언제나 그들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법을 전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전법의 해로 마음을 내고 전법 활동에 다 같이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다시 비쳤습니다. 빗방울을 머금은 꽃잎이 영롱하게 빛을 발했습니다.


오늘은 용성조사님의 열반 82주기 기념일입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기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법문을 하고, 내외빈은 죽림정사에서 참가하고, 이원 생중계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고, 용성조사의 행장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서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죽림정사 주지인 스님이 기념법문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용성조사님이 평생 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소개하면서 오늘날 우리들이 그 뜻을 어떻게 계승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음력 2월 24일,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시고 3.1 독립운동의 막후 기둥이셨던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 용성진종조사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8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용성조사님께서는 한편으로는 승려로서 변화된 시대에 맞게 새로운 불교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나라의 독립운동을 묵묵히 행하셨습니다.

보이지 않게 해야 했던 많은 활동들

3.1운동에 참여한 것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게 되셨고, 출소를 해서 대각사에 돌아오니 그 사이 제자들 일부가 조선총독부와 결탁하여 대각교당을 팔아먹은 걸 알게 되셨습니다. 그 후 대각사를 다시 건립하여 활동을 하셨지만 그마저도 1936년에 일제가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이때 평생 활동을 해오신 것이 모두 소실되는 아픔을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용성조사님께서는 그에 굴하지 않으시고 수행과 독립운동을 이어나가셨습니다.

1937년에는 일본 군대가 중국 대륙을 공식적으로 침범했습니다. 일본 군대는 1910년 한반도를 침략하고,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땅에 자신의 위성국가인 만주국을 세워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1937년 노구교(盧溝橋) 사건을 계기로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2차 국공합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인 1938년 용성조사님께서는 노구를 이끌고 중국으로 직접 가셔서 조중연합군을 만들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조선과 중국이 힘을 합해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윤봉길 의사 같은 대한의사군을 중국으로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독립군 모집을 책임진 사람의 배신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남긴 유훈

결국 북간도의 명월촌과 봉녕촌에 있던 선농당도 모두 불질러지고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용성조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지금 이처럼 큰 고통을 겪는 것은 과거에 지어놓은 복이 없기 때문이다. 애국적인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민이 서로 분열되어 모함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같은 민족을 탄압하고 분열시키기 때문에 나라에 어려움이 닥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복을 지어서 앞으로 60년 후에는 대한민국이 빛날 수 있도록 하자.’

이런 뜻을 담아 유훈 10가지를 남기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은 원래 1940년 2월 15일에 열반에 들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열반에 들기 위해 계(戒)를 받은 인연이 있는 해인사와 조실로 계셨던 범어사에 방을 하나 얻어 돌아가시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뜻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당시 스님의 상좌인 동헌완규조사님께서 직접 각 사찰에 들러 이러한 용성조사님의 뜻을 전했지만,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감시가 극심하여 사찰에서는 용성조사님께서 오시는 걸 꺼렸다고 합니다. 결국 2월 15일이 지나 2월 21일에서야 대각사에 돌아와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2월 24일 관음재일에 맞춰 열반에 드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저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결국 1940년 음력 2월 24일, 위대한 성자인 용성진종조사님께서는 본인이 세우신 종로 홍익동 대각사에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을 맞이하자 김구 선생께서 귀국하셨습니다. 김구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의 모든 요원들을 대동하여 용성조사님이 모셔져 있는 대각사를 방문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의 요원들과 용성조사님의 영전에 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보내주신 모든 자금이 독립운동에 쓰여져서 오늘의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의 뜻을 길이 이어가겠습니다.'

영전을 참배한 후 당시 대각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용성조사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활동하던 당시에만 보이지 않게 활동하셨던 것이 아니라 열반에 드신 이후로도 용성조사님의 노고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불교의 주도권을 독립운동을 한 스님들이 아닌 친일한 스님들이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용성조사님의 새로운 불교 운동을 비롯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행적들이 불교 내에서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성진종조사님의 법을 계승한 동헌완규조사님과 그 법을 계승한 불심도문조사님께서 용성조사님의 공로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불철주야로 애쓰셨습니다.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

용성조사님은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 이렇게 세 가지를 주창하셨습니다. 정토회는 이것을 계승하여 불교의 지성화는 바른 불교로, 불교의 대중화는 쉬운 불교로, 불교의 생활화는 생활 불교로 구체화해서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승속을 불문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나아가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운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이 법의 가피를 입어야 한다는 뜻으로 외국인 전법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성진종조사님의 생활 불교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날 우리가 처한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환경 운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살만한 나라가 되었지만 제3세계 국가들을 가보면 아직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토회는 그들을 돕는 자비행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났고, 한반도에도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평화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 정말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민주화가 이루어지도록 활동해왔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유훈 중에는 '종속된 나라가 아니라 주인다운 나라가 돼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게 하여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 있지만 그 속에서 자주성을 잃지 않고 자주국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활동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불조혜명(佛祖慧命)을 이어가는 길

이런 활동들이 바로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계승하는 길입니다. 지금 정토회가 하는 활동들은 작게 보면 정토회에서 하는 일이지만, 넓게 역사적으로 보면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계승하는 일입니다. 더 길게 보면 부처님의 자비광명(慈悲光明)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즉, 불조혜명(佛祖慧命)을 이어가는 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활동을 해나가시길 당부드립니다.

오늘 용성조사님의 열반일을 맞아 용성조사님이 남기신 유훈, 정신, 실천을 우리가 계속 이어나갈 것을 다짐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이 없는 평화의 나라가 되고,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이루고, 주변 나라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 공생공영 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큰 포부를 가졌으면 합니다. ᅠᅠ

특히 정토회에서는 올해 지난 30년 동안 진행해 온 만일결사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만 기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이 좋은 법과 인연을 맺어서 기쁜 삶을 살도록 하자는 뜻으로 만인에게 법을 전하는 ‘만인 전법’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모든 정토회 회원들의 노력으로 만 명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용성조사님이 그 암울한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섰던 것에 비하면 우리들이 한 일은 쉬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모두가 전법에 원(願)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홍서원으로 기념식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내일 있을 정토불교대학 입학식과 앞으로의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인 ‘청춘톡톡’을 생방송하고,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7

0/200

Ginny경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음지에서 활동하신건 미루어 짐작할 뿐인데, 용성스님의 큰 희생 또한 저는 지금 알았습니다.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보이지않는 수많은 영웅들의 은혜에 힘입어 우리가 안전한 오늘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알뜰히 잘 보내겠습니다. 소중한 역사적 기록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4-03 21:03:52

굴뚝연기

아‥용성스님!
뒤에서 보이지않게 숨어서,목숨거시며 수많은 방법으로 독립운동지원하신 그 흔적조차 남겨서는 안되기에 다 숨겨사라져버리고ㅠ김구선생님께서도 용성스님 사후,스님의 독립자금지원에 대해 인사하러 대각사 방문하신 사진이 남아있구요ㅠㅠ
법륜스님과 정토회에서 용성스님의 그 맥을! 그 법맥을 이어오고 계심조차,세상 다수는 모르고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ㅠ

2022-04-04 01:42:01

김하경

스님, 내인생의 주인이 되란 말씀 중 시비를 멈추고..에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맘속에 있는 욕망 성질 판단 생각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4-01 00:28:09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