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25 금요 즉문즉설, 천일준비위 회의, 전국 법사단 회의
“돈 씀씀이가 헤픈 남편과 시댁 때문에 힘들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서울 일정을 마치고 오늘부터 두북 수련원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네요. 곳곳에 봄꽃이 피고 있습니다. 두북 수련원이 자리한 폐교 교정 앞뜰에는 목련이 활짝 피었습니다.

3주 전부터 매화와 산수유가 피더니, 이제 동네 앞산에는 벌써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8시부터 정토회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화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약 2시간 동안 임기 중 소임자의 병가와 파견 규정, 2차 만일결사부터 교육원 신설 여부, 2-1차 천일결사 사업방향과 10대 목표, 실천활동가 양성 방안, 국제지부 조직 개편 및 운영 방안, 세계전법위원회 신설 여부 등 다양한 안건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들은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주간반과 해외 시청자들을 위해 마련된 즉문즉설 시간입니다. 3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겨울로 되돌아가고 있는 세상

“봄은 점점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오히려 겨울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도시가 봉쇄되어 주민들이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족한 생필품으로 인해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서 우크라이나 밖으로 탈출하고 있습니다.

JTS에서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답사팀을 파견하여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여 답사를 마쳤습니다. 답사 중에 현장에서 필요한 구호 물품을 조금이나마 지원해가면서 현황을 파악했습니다.

어디든지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 결정을 하면서 입으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결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결정들이 국민의 삶을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JTS 구호단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답사한 영상을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스님은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를 함께 염원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하루속히 멈추기를 바랍니다. 지금 전쟁으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의 사람들은 부상과 공포와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곳에 접근할 수가 없다 보니 아무런 방책도 세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반도에 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하는지 극명하게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산업시설이 파괴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인명피해도 많이 생길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수많은 피난민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침몰하는 불행을 겪게 될 것입니다.

첫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 지도자들이 서로 협의해서 평화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도 어리석은 지도자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굴하고 두려워서가 아니에요. 전쟁의 막대한 손실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전쟁이 이 땅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났다면 반드시 막아야 하고 이겨야 하는 과제가 발생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평화에 대한 마음을 우리 모두가 굳건히 새겨야 합니다.

한반도는 2017년에 거의 전쟁이 벌어질 정도의 위기 국면에 처했다가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로 전쟁의 수위를 많이 낮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멈추었고, 최근에 와서는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국민 모두가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 함께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12시가 넘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3시부터 내일모레 개강하는 정토불교대학 실무준비 회의를 했습니다. 실무준비팀은 교재 발송, 수업 진행 시 고려사항, 강의 모니터링 방안 등 여러 가지 준비사항을 함께 점검하고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전국 법사단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법사단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1만인 전법은 정말 달성하기 어려운 일인데,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성취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신청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진행자를 더 이상 확보하기 어렵다고 해서 더 신청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모집이 문제가 아니고 훌륭한 진행자를 얼마나 많이 양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 것 같아요. 그동안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반을 여러 개 맡아야 해서 여러분도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상반기에는 다른 일정을 다 취소하더라도 정토불교대학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지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정토회 운영 또는 법사 역할을 함에 있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자유롭게 스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시간 동안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준비된 안건에 대한 의결까지 하고 나서 전국 법사단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오전에 이어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4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JTS 구호단의 우크라이나 답사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준 후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돈 씀씀이가 헤픈 남편과 시어머니 때문에 결혼 생활이 힘들다며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돈 씀씀이가 헤픈 남편과 시댁 때문에 힘듭니다. 어떡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저축을 잘했고, 선택과 결정도 스스로 하는 20대와 30대를 보냈습니다. 밤낮으로 직장생활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도 하였습니다. 직장에서 사내 커플로 만난 남편과 교제 중에 시어머니께서 돈을 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시댁의 가계 상황을 알게 된 후 결혼을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남편의 적극적인 설득에 결혼이 성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는 남편의 카드를 사용했고 결혼 전부터 돈에 대해 예민했던 저는 갈수록 불만이 커져 남편과 싸움이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첫아이 돌 무렵 외도까지 하여 저는 상처가 켜켜이 더 쌓이게 되어 그 불만을 말과 행동으로 표출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고민은 20분 거리에 사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여전히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고 돈 씀씀이가 헤퍼서 아이들한테까지 전달되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 가정에서 엄마가 문제화시키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스님 말씀을 되새기지만,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 어려서부터 목돈이 모이면 꼭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결혼해서도 여전히 그런 상황이 이어지는 것 같아 힘이 듭니다. 아이 셋을 키우며 결혼생활 1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3년 전부터는 월급을 못 주고 있는 남편 얼굴만 봐도 이젠 두통이 와서 따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서로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을 겪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바라봄에 있어 제가 더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깨우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혼할 때는 좋아서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네요. 두 남녀가 성인 대 성인의 관계니까 같이 살아보고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됩니다. 그러나 애들이 셋이나 있기 때문에 먼저 애들과 상의를 해야 합니다.

‘아빠와 할머니가 나쁜 건 아닌데 돈 씀씀이가 엄마와 맞지 않아서 살기가 어렵구나. 엄마와 아빠가 헤어져도 너희들은 괜찮겠니?’

이렇게 물었을 때 아이들이 ‘엄마 좋아! 헤어져도 가끔 아빠한테 놀러 가고 할 테니 그렇게 해도 돼’ 이렇게 대답하면 헤어져도 돼요.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가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아빠하고 같이 우리 가족이 함께 사는 게 우리는 좋아!’ 이렇게 대답하면 아이들이 스무 살 때까지는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해요.”

“스무 살 때까지요?”

“네.”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가 정리 정돈을 잘 못 하는데 스스로 고쳐야겠다 생각은 하는데 잘 안 됩니다. 고칠 방법이 있을까요?”

“그냥 어질러놓고 사세요. 굳이 정리 정돈을 안 해도 됩니다.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대신에 이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정리 정돈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습관이 있듯이 남편과 시어머니도 살아온 습관이 그렇게 형성된 것이구나’

남편도 안 그러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옆에서 아내가 자꾸 억지로 고치려고 하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만약 정리 정돈이 안 되는 문제를 놓고 남편이 계속 질문자를 압박하고 그래서 질문자는 약속해놓고 못 지키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질문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것처럼 딱 한두 번 얘기해보고 안되면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 이 사람은 습관이 이렇구나! 나쁜 사람이 아니고 습관이 나하고 다르구나.’

한국 사람이 좀 깔끔하다고 해도 일본 사람과 비교해보면 평균적으로 정돈이 안 되는 편에 속해요. 그렇다고 한국 사람이 정리 정돈을 전혀 안 하고 사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국 사람과 비교해보면 훨씬 더 깨끗한 편이거든요. 이처럼 판단은 상대적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떻게 살았느냐에 해당하는 문화적인 습관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면 남편한테 양해를 구해야죠.

‘여보, 내가 어릴 때부터 정리 정돈하는 습관이 안 돼서 고치기가 쉽지 않아.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할 테니 좀 기다려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만약 이혼해서 혼자 산다면 정리정돈을 안 하고 살아도 돼요. 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야 정리 정돈을 할 필요가 있지 혼자 사는데 굳이 정리정돈을 잘할 필요는 없죠.

만약 저처럼 절에서 여럿이 산다면 정리정돈을 굉장히 잘해야 합니다. 여러 명이 같이 사니까 걸레든 빗자루든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다른 사람이 쓸 때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 살면 자기만 편리하면 되지 정리 정돈을 잘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같이 살 때 습관이 서로 다르면 갈등의 원인이 되니까 아내는 남편한테 맞추기 위해서 정리 정돈을 조금 신경 써야 하는 거예요. 반대로 남편은 자기 습관과는 다르지만, 아내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아내가 어질러놓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자기 습관에 집착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아끼고 저축하며 살았다고 했잖아요. 남편과는 습관이 다르게 형성된 겁니다. 시댁에서 돈을 활용하는 방식이 질문자와 서로 다른 거예요.

미국과 독일을 한 번 비교해 보세요. 두 나라 모두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두 나라 사람들의 소비방식을 비교해보면 미국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보다 3배에서 5배쯤 많이 써요. 한겨울에 독일인들의 집에 가보면 난방을 안 해요. 추워서 못 살 정도로 엄청나게 아낍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집에 가보면 겨울에도 더워서 옷을 다 벗고 있어야 할 정도로 난방을 막 틀어요. 미국은 가난하든 부자든 구분 없이 물자도 음식도 막 사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독일은 대부분이 아껴 쓰는 문화를 갖고 있어요. 비록 GDP가 높아도 국민들의 생활 수준은 굉장히 근검절약해서 사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는 절약하는 편이지만 미국 문화가 많이 들어와서 씀씀이가 좀 헤픈 축에 들어가요. 일본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은데도 소비 수준은 한국이 더 많이 씁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서 집과 음식을 보면 너무 쫀쫀해 보일 거예요. 사실 중국 사람들도 경제적으로 부족해서 못 쓰는 것이지 잘 사는 사람들은 음식이나 돈 씀씀이가 한국 사람보다 더 헤픕니다. 이게 다 서로 다른 문화를 반영하는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의 남편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죽어서 돈을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쓸 만큼 쓰고 살지 왜 저렇게 궁색하게 살지? 없으면 빌려 쓰면 되지.’

그와 달리 죽어서도 돈을 가져갈 듯이 몇 푼 쥐고 달달 떠는 질문자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부터 너무 근검절약해도 구두쇠라고 해서 욕을 얻어먹고, 너무 헤프게 써도 낭비한다고 욕을 얻어먹었던 겁니다.

질문자와 남편은 서로 다른 거예요. 서로 다르니까 이해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아껴 쓰고, 남편이 헤프게 쓰는 것은 내버려 두면 돼요. 남편은 자기가 번 돈을 자기가 쓰는 거잖아요. 질문자의 돈을 가져가지 않는 이상은 간섭할 일이 아니에요. 질문자의 돈까지 가져가서 쓴다면 같이 못 산다고 결론을 낼 수 있는데, 질문자의 돈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편이 자기가 번 돈을 헤프게 쓰는 건데 그걸 왜 시비를 해요?

질문자한테 지금 특별히 손해가 없잖아요. 질문자는 남편이 3년 동안 생활비를 보태지 않는 것을 갖고 문제를 삼고 있는데, 설령 이혼을 해도 질문자와 애들 셋의 생활비는 어차피 질문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잖아요.

이혼할 때와 안 할 때 이익과 손실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계산해 보세요. 이혼해서 이익이 되는 게 없잖아요. 당장 남편이 생활비를 안 보탠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이혼을 한다고 해서 실익은 없어요. 이혼을 하지 않고 그냥 함께 사는 게 훨씬 나아요.

그래도 남편이 애들과 놀아주기라도 하잖아요. 질문자도 밖에 나가면 남편 있다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잖아요.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이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이혼해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혼하면 질문자한테 돈을 팍팍 줄 수 있는 남자를 하나 구해놨어요?”

“이혼은 하지 않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17년 알아갔으면 됐지 어떻게 더 알아가요? 17년 살아도 모르면 100년 살아도 몰라요. 이제 알만큼 다 아는 거예요. 그 이상 더 알 수가 없어요. 씀씀이가 나보다 큰 지는 하루만 살아보면 알 수 있잖아요.

'당신이 번 돈으로 당신이 쓰는 것까지 내가 어떻게 간섭하냐. 내 것만 안 가져가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내버려 두세요. 애들이 남편을 따라 배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가 그 문제를 시비해서 남편과 싸우면 애들에게 부작용이 생깁니다.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고, 나중에 돈 벌면 반작용으로 아빠처럼 돈을 쓰는 습관도 생겨요. 엄마가 문제 안 삼으면 돼요. 애들은 보통 엄마랑 더 가깝기 때문에 엄마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나한테 직접 손해가 안 되면 문제 삼지 말고 그냥 놔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뭘 알겠다는 거예요? 남편이 헤프게 쓴다는 것도 질문자 기준에서 본 거예요. 반대로 남편이 보기에 질문자는 근검절약하는 수준이 아니라 구두쇠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일 거예요. 평가는 서로 상대적인 겁니다.

'다 큰 어른을 내가 어떻게 뜯어고치겠냐? 나에게 손해만 안 끼치면 괜찮다. 내 것까지 가져가서 쓰겠다 하면 그땐 내가 가만있지 않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놔둬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잖아요. 만약 남편이 질문자 돈까지 가져간다고 하면 그때 애들하고 상의하세요.

‘얘들아, 어지간하면 엄마가 아빠랑 같이 살려고 했는데 아빠가 본인이 번 돈을 본인이 다 쓰고 내가 번 돈까지 가져가서 너희 학비랑 생활비가 없다. 어떻게 할래? 그래도 아빠가 있는 게 낫겠니, 아빠하고 헤어지고 엄마하고 살면서 너희는 아빠를 가끔 보는 게 낫겠니?’

이렇게 애들한테 물어보고 엄마 좋을 대로 하라고 하면, 그때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얘기하면 돼요.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한 건데 같이 살든 헤어지든 그게 뭐 그리 특별한 문제겠어요? 결혼이라는 계약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이 계약을 해지했을 때 별로 이득이 될 게 없어요. 남자가 좋아 보여서 덜컥 결혼했지만 별 이득이 없었잖아요. 지금 덜컥 이혼한다고 해도 이득이 될 게 별로 없어요. 아이들만 힘들겠죠. 당분간은 그냥 사는 게 더 나아요.

대신 남편을 문제 삼지 말고 인정해주세요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계속 싸우는 거예요. 자기가 잘못했더라도 상대가 좀 봐주면 '아, 내가 잘못했구나.' 반성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못한 것보다 상대가 더 심하게 구박하면 저항감이 생겨요. 그래서 더 엉뚱한 짓을 하는 게 인간 심리예요. 엄마가 아이를 혼낼 때도 아이가 반성할 만한 수준으로 야단쳐야 합니다. 아이가 보기에 자기가 잘못한 것보다 더 심하게 야단맞으면 억울한 마음만 듭니다. 그러면 교육 효과는 없고 엄마가 성질부리는 것 밖에 안 돼요. 질문자가 남편을 지나치게 문제 삼으니까 남편도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반발심리가 더 세진 겁니다.

그래서 다름을 인정해야 해요. 질문자에게 이런 얘기해서 될지 모르겠지만, '행복학교'를 좀 다녀보면 좋겠어요. 행복학교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연습을 합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끼리 같이 살려면 서로 믿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사상과 이념이 다른 사람, 습관이 다른 사람, 음식 취향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살려면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국집에 밥 먹으러 가도 짬뽕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짜장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중국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한식을 좋아하고요. 서로 다른 사람끼리 친구를 하려면 세 가지 길이 있어요. 예를 들어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고 친구는 한식을 좋아한다고 해봅시다. 첫째, 내가 짜장면 먹고 싶더라도 친구가 좋아하는 한식을 먹어주는 겁니다. 둘째, 상대가 한식을 좋아하는 걸 알지만 내 비위를 맞춰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셋째, 둘 다 양보가 안 될 때는 싸우지 말고 친구는 한식을 먹고 나는 짜장면을 먹고 커피숍에서 만나는 겁니다. 밥을 따로 먹고 만나면 되죠.

이혼이나 별거를 해서 혼자 살게 되면 어차피 본인 돈만 본인이 써야 하잖아요. 남편이 질문자가 번 돈은 안 가져가고 자기 돈 자기가 쓰는 건 이혼하든 별거하든 똑같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득도 없는 이혼을 하려고 해요? 질문자는 지금 기분이 나빠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거예요. 물론 감정적으로 살아도 돼요. 자기 성질대로 살아도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특별히 같이 살아서 더 손해가 안 난다면 애들을 위해서 아이 아빠를 존중해 주고 사는 길이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낫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잘했어요, 못했어요?”

“별로 잘 못했습니다.”

“계산을 잘 못하네요. 수학을 왜 배울까요?

'아, 계산해보니 이혼하거나 별거한다고 해서 이득 될 게 없네.'

이렇게 계산을 잘하라고 배우는 거예요. 결혼할 때도 계산을 잘 못해서 덜컥해놓고 이번에도 계산 잘못하려고 그래요? 지금 손해 나는 게 없으면 그냥 사는 게 나아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 잘하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것이 진정으로 나에게 이익인지 따져보는 거지요. 또 눈앞의 현실만 보지 말고 먼 미래까지 봤을 때 어떤 것이 나에게 이익일지 따져보세요. 이게 지혜롭고 영리하게 사는 거예요.

질문자가 저에게 질문했는데 제가 질문자를 위해서 말해주지, 무엇 때문에 질문자 남편을 위해서 말해주겠어요? 부처님은 '나에게 이익되는 것이 상대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나빠지면 '나한테 이익이 없더라도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미워하는 심보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안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관점을 바꾸면 우선 나한테 좋습니다. '그래, 나한테 같이 사는 게 손해 안 되니까 이혼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동거하자' 이런 관점을 딱 가지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안 하면 남편도 좋아하죠. 동거하다가 다시 좋아지면 연애하면 되는 거예요. 형식적인 절차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마음속에서 이혼을 해버리면 돼요. 그러나 남편은 남편이기도 하지만 애들 아빠니까 외면하는 건 아니죠. 관점을 그렇게 가지면 나에게 손해를 안 끼치니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진짜 '수행'은, 손해가 나도 아이를 위해서 손실을 감수하고 애들 아빠를 봐주는 거예요. 지금은 손해를 안 끼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네, 알겠습니다.”

“행복학교는 스님 혼자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걸 여러분이 듣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과제가 주어집니다. 쉽게 말해 '상대편 알기', '상대편 연구하기' 이런 과제들이 주어져요. 남편이 왜 저런지 모르면 내 가슴이 답답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이 과제를 삼아서 남편에 대해 연구를 해보면 어느 순간에 '아, 저래서 저렇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남편을 이해하면 내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도 여러분은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서 내가 괴로운 것이라고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 몽상’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돈을 헤프게 쓴다는 핑계로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우울하고 괴로운 거예요. 꽃을 보고 '꽃이 참 예쁘네' 하면 내가 기분이 좋지 꽃이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에요.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의 좋은 점을 찾아서 인정하면 내가 좋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도 아빠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좋은 점을 찾는 연습을 자꾸 해나가야 해요. 그러니 질문자는 행복학교에 꼭 입학해서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이가 서울 안에 있는 대학과 지방대학 중 지방대학을 선택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제가 자꾸 자책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더 큰 꿈에 도전하도록 못 키운 내 잘못인 것 같아 무거운 마음입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 저는 결정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기 전까지 일상생활에서 오로지 그 물건만 생각하게 되고 무엇 하나 집중하지 못합니다. 도와주세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 보았습니다. 남편의 돈 씀씀이 때문에 힘들어하던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시작할 때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는 영상을 보면서 제 고민은 고민 따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남과 다른 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저 스스로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복학교 입학을 적극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님이 다시 한번 질문자를 위해 관점을 잡아 주었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

“남과 다른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내야죠. 죽어도 또 '자기'만 생각하네요. (웃음)

‘나와 다른 남편을 인정하겠습니다. 나와 다른 시어머니를 인정하겠습니다. 나와 다른 아이들을 인정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가져보세요. 자꾸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한테도 ‘옛날에 엄마가 학교 다닐 때는 책도 없었다. 연필도 부족해서 몽당연필 썼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자란 환경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애들은 엄마가 오토바이 사주는데 왜 난 안 사줘요?’ 이렇게 문제를 삼을 정도로 질문자와는 기준이 전혀 달라요. 그러니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두 가지만 할 수 있으면 세상사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첫째, '상대는 나와 다르구나'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데 왜 사람이 못 살겠어요? 토끼가 풀이 제대로 자랐니 안 자랐니, 봄이 일찍 오니 안 오니, 나무가 높니 안 높니, 바위가 많니 적니 하면서 시비하고 싸우는 모습을 봤습니까.

주어진 대로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토끼보다도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토끼만큼이라도 살라는 겁니다. 그래도 사람이 토끼보다는 잘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우선 토끼만큼 살아지면 그다음에는 토끼보다 나은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용성조사 열반 기념일입니다.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용성조사 열반일 기념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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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점순

직장생활 40년 벌어 난 생활비를 냈고 남편은 모아자식주고 나 퇴직후도 내연금으로만 살아 부족했고 큰 병원비도 안주어 노예같은 생활이었죠 공동명의의 집 한푼도 못쓰게 해서 이혼하고 재산분활해 혼자 살고 있습니다.~ 내가 뼈빠지게 벌었는데 남편이 실권을 갖고 안주고 구박하고 무시하대요.~ 경제적독립 꼭 필요. 도둑 강도보다 더 무서운게 남편이대요.

2022-04-06 21:51:49

임효신

감사합니다.

2022-03-31 05:57:30

윤선우

봄은 언제나 따스함을 줍니다. 오지 않을것 같은 시간도 참고 견디고 하니 봄 처럼 오는것 같습니다. 오늘도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면서 스님의 높은 법문 마음 깊이 새기면서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 아무곳도 오지 않는 지금은 내가 나와 가까운 시간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2022-03-31 08: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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