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0 성도재일 기념 법회, 정토불교대학 개편 회의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날을 기념하는 성도재일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한 후 오전 10시 정각에 성도재일 기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우리도 부처님처럼 정진해 보는 철야정진을 했다면, 오늘은 부처님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 과정과 내용에 대해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는 법사단이 방청객으로 참여했고, 전법활동가들은 모두 유튜브 생방송으로 법문을 시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부처님이 태어나서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후 숨이 멎을 때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 생애를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경전에는 깨달음이 마치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처럼 묘사가 되어 있지만 부처님께서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음에 이르게 됐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부처님은 출가 후에 스승을 찾아서 배움을 청했으나 본인이 가졌던 의문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탐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스승에게 배우는 시간은 습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스승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울 스승도 없고 자기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부처님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는 동안 피골이 상접하도록 용맹 정진을 했다는 점은 존경할 만합니다. 그러나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시행착오를 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 과정에서 부처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쾌락도 수행의 장애가 되지만 고행도 수행의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쾌락을 통해서 해탈을 얻을 수 없듯이 고행을 통해서도 해탈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쾌락을 좇으면 과보가 끊임없이 따르기에 윤회를 할 수밖에 없었고,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긴장이 되어 편안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 어려웠습니다. 부처님은 이 두 가지 모순을 발견하고 쾌락도 고행도 모두 버렸습니다. 즉 두 가지를 다 뛰어넘으셨어요.

부처님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브라만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신에게 빌어서 얻으려고 하는 ‘쾌락주의’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반면 출가 사문들은 쾌락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며 욕망을 부정하는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고행주의’를 추구했어요. 부처님은 젊을 때는 브라만교의 가르침을, 출가 후에는 고행의 길을 갔지만, 완전히 해탈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을 떠나 제3의 길인 중도를 발견하셨습니다. 중도란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욕망을 억제하지도 않고, 다만 욕망이 욕망인 줄 알아차리는 거예요. 해탈을 얻은 뒤에만 편안한 것이 아니라 해탈을 얻는 과정도 편안한 것을 말해요. 결과만 좋은 것이 아니라 과정 또한 좋은 것을 말합니다. 욕망을 따르는 쾌락주의를 추구한 것도 아니고, 욕망을 참고 인내하는 고행주의를 따른 것도 아니고, 욕망이 욕망인 줄 알아차리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셨습니다. 욕망과 싸우지도 않고, 욕망에 노예가 되지도 않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제3의 길인 ‘중도’를 발견한 것입니다.

중도를 발견한 후 부처님은 극심한 고행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네이란자라 강에서 가볍게 목욕을 하고, 수자타가 준 유미죽을 먹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아주 편안한 자세로 길상초를 깔고 앉아 선정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49일 동안 선정을 닦는 동안 부처님에게 세 가지 유혹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마왕의 세 딸이 유혹을 했어요. 이는 욕망의 뿌리가 남아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욕망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곧 괴로움임을 꿰뚫어 알고 그 욕망과 싸우지 않고 자유로워졌습니다. 둘째, 마왕의 군대가 나타나 부처님을 공격했어요. 부처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자비심을 일으켜서 성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셋째, 마왕이 직접 나타나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자재천왕의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나는 바라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며 마왕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부처님이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음을 의미해요.

이렇게 자기 내면의 욕망과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후 새벽별을 보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모든 번뇌와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마치 봉사가 눈을 뜨듯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게 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천하 만물은 다 서로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자, 발에 밟히는 모래, 눈에 보이는 나뭇잎, 피부를 스치는 바람, 손에 닿는 차가운 물, 그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나와 연관되어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라고 특정할 것도 없고, 천하 만물 중에 나 아닌 것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나와 자연의 합일 속에서 안온함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7일 동안 법열을 누렸습니다. 마음이 들뜨는 즐거움이 아니라 고요 적정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음을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구나. 이것이 생겨나니 저것도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지는구나!’

12연기의 여러 관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지 않고도 알게 되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지 않고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작용도 알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면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어떤 원인을 지었기에 저런 과보를 받는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인도에서는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다 보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괴로움을 짓고 받으며 아우성치는 것을 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습니다. 이 바른 법을 그들도 알게 된다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이 좋은 법을 고통받는 중생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이어서 오늘날 우리들은 성도재일을 맞아 이런 부처님의 삶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계승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성도재일을 맞아서 불법의 요지인 연기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 봤으면 합니다. 성도 이후에 부처님께서 이 법을 전하며 사셨던 모습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정말 죽을 고생을 하지만, 부자가 된 후에는 큰 집을 짓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러 가지 유희를 즐기지 않습니까? 정치인도 지위를 얻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하지만 이룬 뒤에는 복락을 누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을 하셨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그분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각국 왕들의 스승이었고,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고, 수많은 부자들이 부처님을 지원했는 데도, 그분의 일상은 늘 분소의를 입고 나무 밑에서 잠을 자며 매일 아침 길거리에 가서 남이 먹다가 버리는 음식을 걸식해서 먹었습니다. 이런 생활은 45년 동안 숨이 멎을 때까지 한결같이 계속되었습니다.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와 같이 살았습니다. 재가 수행자들은 비록 세속에 살면서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더라도 부처님과 승가가 사는 모습을 보며 늘 검소하게 살았어요. 기본적인 생활만 유지하고 남은 것은 아낌없이 승단과 이웃을 위해 베풀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점점 더 존경하게 되었고, 불법에 귀의하는 불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한 사람에서 시작한 불교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200년도 지나지 않아 인도 사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고대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은 인도 남쪽 일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을 통일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왕입니다. 아소카왕은 제국을 평화롭게 다스리기 위해서 불교도를 격려하고 그들이 제시한 방향대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왕이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불교를 믿고 받들었으며 인도 대륙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전법사를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던 수행자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자 무사안일에 빠져 타락의 길로 가기도 했지만, 붓다가 개척한 삶의 원형은 불멸 후 200년까지는 비교적 잘 보존되고 지켜졌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가

오늘날 우리 정토행자들은 우리가 정한 원칙을 200년은 고사하고 한 세대, 또는 우리 세대 동안만이라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을까요? 정토회가 처음 출발할 때는 가정집과 사무실, 식당에서 한두 명만 모여도 정성스럽게 법회를 열었습니다. 정토회도 세월이 흐르면서 대중이 늘어나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졌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불사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처음 출발할 때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천막을 치고 신앙대회를 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촛불을 켜고 깨달음의장을 진행하던 그 근본정신을 상황이 바뀌더라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요?

물론 정토행자들이 나이가 들고 기력이 떨어지면 그에 맞게 시설도 변경하고 삶의 방식도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붓다의 근본정신을 따르겠다고 한 우리가 스스로 붓다의 삶을 닮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것을 한다고 해도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그저 30년이나 60년 반짝하다 사라져 버린 수많은 신흥세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바른 길을 개척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법사님들과 전법활동가 여러분이 더 겸손한 자세로 수행 정진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야 해요. 정토회 회원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도부와 중심세력이 신심이 깊지 않고 가치관이 분명하지 않고 실천력이 없다면, 정토회도 그저 수많은 신흥세력 중 하나에 불과해지고 말 거예요. 우리가 이 좋은 부처님의 법을 전 세계로 전파하고, 먼 미래까지 지켜나가려면 지금부터 굉장히 정교하고 알찬 씨앗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부처님의 성도일을 맞아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수행력과 전법의 관점을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배려를 한다는 명분으로 자꾸 편리나 안일함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세상과 다름없는 길로 가게 돼요. 기성 불교처럼 갈 바에야 무엇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간다고 하면서 그 난리를 피웠겠습니까? 이미 있는 절의 스님 밑에 가서 공부하고 봉사하면 되지 무엇을 위해서 새삼스럽게 정토회를 만들었느냐는 거예요.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도 늘 다른 종교, 다른 불교, 다른 절과 비교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거예요. 부처님의 제자들이 ‘브라만이 어떻더라’, ‘육사외도가 어떻더라’ 하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고집불통으로 세상과 동떨어지게 살아서도 안 돼요. 세상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정화하겠다고 발원해 놓고 점점 세상에 물들어간다면 그런 발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젊은 세대도 그에 맞게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만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세대나 외국인들이 자란 환경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해요. 그러나 수용을 한다고 해서 욕망을 수용하거나 성냄까지 수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수행공동체로서의 정토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요. 그것은 수용이 아니라 세속화의 길이고 타락의 길입니다. 유연한 태도로 많은 대중에게 전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세속에 동화되어 버릴 위험이 있어요. 부처님은 당시에 엄격한 계급 사회 속에서도 깨달음을 통해 분명한 관점을 얻었습니다.

‘사람에게 귀천이 없다. 계급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남녀에 따라 귀천이 있을 수 없다. 어떻게 성별에 의해서 귀천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관점이 분명했기 때문에 세상의 저항을 뚫고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런 분명한 관점을 갖지 못하면 세상에 휘둘리게 됩니다. 정토행자라고 하는 사람이 굶어 죽는 사람을 돕자는 데 이념을 따지고, 전쟁을 막자고 하는데 이념을 따진다면, 부처님 당시에 계급제도와 성차별을 합리화하고 왕정을 합리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수행자라면 세상의 관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다면 무엇 때문에 수행자라고 합니까? 세상 사람은 원수의 아들이 망하면 기뻐합니다. 수행자는 원수의 아들이라도 그가 배고프다면 먹을 것을 줘야 하고, 그가 헐벗고 있다면 입을 것을 줘야 하고, 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학교에 보내 줘야 해요. 이것이 수행자의 길,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전법활동가라는 이름만 가질 게 아니라 무엇보다 수행자의 관점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부화뇌동하거나 휩쓸리지 말아야 해요. 이런 점을 성도일을 맞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시간 동안의 기념 법문을 마친 후 스님은 성도재일을 맞아 다 함께 30분 동안 정진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예전에 수행자들이 모여 법담이라도 나누고 있으면 스승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말할 여가가 있으면 정진이나 더 해라!’

잡담은 말할 것도 없고 법담이라 하더라도 정진보다는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도일에는 법회 끝에 30분 동안 명상을 하겠습니다.”

자리를 정돈하고 1분 후에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정토불교대학과 행복학교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좋은 가르침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발원하면서 전법활동가 모두가 전법에 더욱더 힘을 쏟아줄 것을 당부한 후 성도재일 기념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하며 성도재일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만일결사 회향 기념으로 3월부터 시작하는 정토불교대학 준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공동체 법사단에서는 교과 과정을 어떻게 개편하면 좋을지 수정안을 마련해 와서 발표했고, 실무준비팀에서는 교과 운영안을 마련함에 있어 쟁점이 되는 사항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제 거의 다 확정이 되어 가네요. 내일과 모레까지 연속해서 회의를 해봅시다. 내일은 법사단과 회의를 한 번 더 해서 교과 과정 개편에 대해 결론을 짓고, 모레는 실무준비팀을 비롯한 전체가 다 모여서 결론을 내리면 좋겠어요.”

오후 3시에 회의를 마친 후 공동체 법사단은 스님이 제안한 내용을 토대로 계속해서 회의를 이어나갔고,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두북 공동체 성원들과 올해 농사 계획과 불사 계획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부터는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3월부터 8월까지 진행되는 정토불교대학 강의 계획에 대한 초안을 잡느라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내일은 해가 뜨자마자 아침 일찍 처마 밑에 걸어 둔 시래기를 걷고, 오후에는 정토불교대학 교과 개편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2022년 온라인 설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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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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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배려라는 핑계로 욕구나 성냄까지
수용하면 세속과 다를 바 없음을
새기겠습니다.
소통하면서도 원칙을 분명하게
잡고 가겠습니다.

2022-03-16 08:09:12

ㅎㅎ

정토회가 영원하길 발원합니다

2022-01-18 11:57:35

이관용

세계 일화
온세상 모든 생명,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날들을 위하여 !

2022-01-15 1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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