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2.11. 천일결사 기도, 행복학교 특강, 불교대학 즉문즉설, 서원행자 신청자 즉문즉설
"화 내는 남편을 받아주기가 힘들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하고,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두북 공동체 대중과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는 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들은 지난 9월에 입학해서 부처님의 일생까지 수업을 마치고 근본불교 강의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

불교대학 학생 2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공부 잘하고 계세요? ‘할만하다, 유익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웃음) 어려우셨던 분들은 오늘 질문을 충분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으로서 부처님의 삶

지금까지 여러분은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했습니다. 종교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을 한없는 자비로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이 원하면 뭐든지 도와주는 신과 같은 추상적인 존재로 묘사합니다. 아니면 부처님을 인간이라고 보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부처님은 믿음의 대상이지 내가 닮아가야 할 삶의 모델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토불교대학에서는 인간으로서 부처님의 일생을 배웁니다. 부처님은 나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와 같은 삶을 살다가 괴로움이 왜 일어날까를 연구하셔서 그 괴로움 없이 사는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 길을 걸으셨고 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길을 안내해주셨습니다. 인간으로서 부처님의 삶이 분명하게 다가오면 ‘아,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겠다’라는 원을 세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배우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강조한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다섯 명의 질문을 받은 후 현장에서 세 명의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자등명’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어리석은 나를 등불로 삼아 수행할 수 있나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설하며, ‘남이 아닌 나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며 수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법에 의지하라’는 법등명은 이해가 되지만, 자등명에서 자(自)가 무엇인지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고집이 세고 어리석은 나(自)를 등불로 삼아 수행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등명 법등명’에서 자(自)가 무엇인지, 법(法)이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면 오히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쉽게 받아들이셔야 해요. 사실 자등명의 핵심은 ‘나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뜻이라기보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법등명에서도 ‘법에 의지하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법(法)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도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만 우리가 번역을 할 때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옮깁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하지만 이 말씀의 핵심은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등불로 삼으라’는 표현도 한자로 번역되면서 나온 표현입니다. 원래 인도어로 된 구절을 보면 등불 대신 ‘섬으로 삼는다’라고 표현합니다.

‘남을 섬으로 삼지 말고,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
법 아닌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법을 섬으로 삼으라.’

여기서 섬이란 강과 강 사이에 있는 섬을 뜻합니다. 인도 갠지스강을 건너려고 하면 강폭이 너무 넓어서 한 번에 건너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강 중간에 있는 섬에 먼저 당도한 다음, 다시 강 맞은편으로 건너갑니다. 강 사이에 있는 섬에 의지해서 강을 건너는 셈이죠. 따라서 ‘섬으로 삼으라’는 구절에서 ‘섬’은 ‘의지처’라는 의미입니다.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의지처가 ‘등불’이 되겠죠. 그래서 ‘섬으로 삼으라’는 표현을 ‘등불로 삼으라’는 표현으로 옮겼다고 볼 수 있어요.

살다 보면 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고,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에게 의지해서 살고, 늙으면 자식에게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돈을 의지처로 삼아서 살아가고, 사회적 지위에 의지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개 재물에 의지해서 살거나, 남편, 아내 또는 자식에게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으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아내가 갑자기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자식이 갑자기 죽어도 ‘나는 어떻게 살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하루아침에 재물을 잃어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하고 걱정을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거나 직장이 사라지는 경우에도 ‘이제 어떻게 살지?’하고 태산 같이 걱정을 합니다. 이렇게 걱정을 한다는 건 그만큼 거기에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걸 보여줍니다.

담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주머니에 담배가 없으면 걱정을 태산 같이 합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담배가 있으나 없으나 하등 걱정거리가 안 됩니다.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술이 없으면 걱정거리인데,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은 술이 있으나 없으나 하등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커피에 의지하는 사람은 아침에 마실 커피가 없으면 ‘커피를 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데’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이건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집에 의지해서 사니까 집이 없어지면 걱정이지만,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은 집이 없어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어느 마을에 홍수가 나서 논밭이 떠내려가고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밭이 떠내려간다며 전부 울고불고 난리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 거지 아들이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우리는 걱정할 게 없네요’라고 말했어요. 거지는 가진 게 없으니까 홍수가 나도 걱정할 게 없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거지 아버지가 ‘그게 다 네 애비 덕분인 줄 알아라’라고 했다고 해요. (웃음)

우리에게 지혜의 가르침을 주는 부처님은 그 거지 아버지와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도 살아생전 걱정하실 게 없었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늘 혼자 사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고, 출가하기 전에 재물을 모두 버렸기 때문에 재물에게도 의지하지 않았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집에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보면 부처님은 자기 자신 외에 다른 그 무엇에도 의지하는 게 없으셨기 때문에 그것이 있으나 없으나 걱정할 게 없었습니다. 있어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있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없다고 해도 걱정거리도 되지 않았습니다.

‘남을 섬으로 삼지 말고,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고 할 때 자신이 어떤 자아를 말하는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의 핵심은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게 의지해서 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적하신 거예요. 보통 어릴 때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결혼하면 남편이나 아내에게 의지하고, 늙으면 자식에게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박사 학위를 받았다며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은 지식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상실하게 된다면 박사 학위를 하며 쌓은 지식을 모두 잃게 됩니다. 돈이 많다며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은 재물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업이 부도가 나면 재물을 모두 잃게 됩니다. 지식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지식이 있으면 그걸 활용할 수 있어서 좋고, 없다고 해서 불편하지 않습니다. 재물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재물이 있으면 나눠 쓸 수 있어서 좋고, 없다고 해서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걸 의지처로 삼지 않기 때문에 없어도 문제 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등명(自燈明)’의 핵심 의미입니다.

법등명(法燈明)에서의 법(法)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항상 실재의 모습에 깨어 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실재가 아닌 환영에 사로잡히고, 사실이 아닌 것에 의지하며 살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실재의 모습을 알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하셨고, 불교 경전에도 ‘제법이 공(空)한 도리를 알면 괴로울 일이 없다’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진리’는 실재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사실에 깨어 있지 않고 환영에 사로잡히면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에 의지하면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법 아닌 것, 진리가 아닌 것, 사실이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허황된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진실에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두려운 이유는 지금 남에게 의지하고 있거나, 진리가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진리가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이 가르침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나 아닌 것, 진리가 아닌 것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기둥들 중 무언가 하나만 빠져도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자등명, 법등명’에 다른 의미가 있는 줄 알고 어렵게 생각했는데,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진리가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진실에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을 잘 새겨 생활에 열중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가족이 있으셨는데 출가를 하셨습니다. 중생을 구하고자 출가를 하셨는데 가족도 중생인데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하기에는 모순이 아닐까요?
  • 재가 수행자와 출가 수행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켜야 하는 규율이나 행동에 차이가 있나요?
  •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밧지족이 화합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일곱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 명상과 사색은 어떻게 다른가요?
  • 분별심은 어떻게 없애나요?
  • 지난주 수업에서 연기법을 배우고 수행 과제로 ‘감사하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연기법에 비추어 무엇을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 화를 없애는 수행을 하다 보니 제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동에도 무뎌지는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까요?

대화를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연말이라서 수업을 빼먹기 쉽습니다. 크리스마스다, 송년이다 하며 들뜨겠지만 수업에 착실히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입니다. 먼저 내가 괴롭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나를 괴롭히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길을 우리가 함께 가보면 좋겠습니다. 그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길입니다. 정진 부지런히 하시기 바랍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니 12시가 넘었습니다.

행복학교 특강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는 행복학교 참가자들을 위한 온라인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관계 편과 심화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하는 자리입니다. 오늘은 행복학교 참가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시청할 수 있도록 유튜브로 공개방송을 했습니다. 3천 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화를 내는 남편과 어떻게 괴로움 없이 지낼 수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화 내는 남편을 받아주기 힘들어요

“제 남편은 5년 동안 학교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교수 지원을 했는데 계속 임용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떨어질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저한테 토로하며 죽고 싶다거나, 학교에 불을 지르겠다거나, 다 때려치우고 막노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그저 자기가 원하는 일이 안 되었다고 저한테 화풀이와 한풀이를 하는데 받아주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어떻게 마음을 내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남편의 좋은 점은 뭐가 있어요?”

“남편은 성실해요.”

“또 좋은 점이 뭐가 있어요?”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잘 돌봐줘요.”

“남편은 자기 밥벌이는 해요, 자기 밥벌이도 못해요?”

“자기 밥벌이는 해요.”

“질문자도 화내고 짜증 낼 때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짜증을 내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요?”

“가까이 있는 사람이요.”

“평범한 사람은 연구원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데, 남편은 지금 연구원이 된 것만 해도 훌륭해요. 연구원인 사람은 교수가 못 되었다고 실망하고,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은 연구원이 못 되었다고 실망하고,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실망합니다. 그런데 대학에 못 간 사람이 보면 대학에 다니는 것만 해도 부럽고, 연구원이 못 된 사람이 보면 연구원이 된 것만 해도 부럽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늘 이렇습니다. 유학을 간 사람은 유학 가서 학위를 마치지 못하면 크게 실망을 하는데, 유학을 못 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유학이라도 가본 것만 해도 부러움의 대상이에요. 남편이 연구원으로 있다는 건 그래도 박사 학위를 마쳤다는 거잖아요?”

“네.”

“박사 학위를 마친 것만 해도 어디예요. 지금 교수가 못 되었다고 실망하는데, 이건 평범한 사람이 보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본인은 본인이 원하는 게 안 되었다고 불만이고, 그러다 보면 화도 나고 짜증도 나겠죠.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면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냅니다.”

“네, 주로 저한테 화를 내고 짜증을 내요.”

“그러면 질문자가 남편한테 가깝다는 거예요, 멀다는 거예요?”

“가깝다는 거예요.”

“남편과 가깝다는 건 좋은 거잖아요?”

“밖에 나가서 화내고 짜증을 내지는 않으니까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는 해요.” (웃음)

“남편이 나를 제일 가깝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믿음직스러워요?”

질문자는 스님의 질문을 받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밖에 다른 여자가 있으면 그 사람한테 가서 화를 내겠죠. 엄마가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면 엄마한테 가서 화를 낼 텐데, 그래도 나한테 와서 화를 낸다는 건 내가 제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 나한테 화를 낼 때 ‘그래, 내가 제일 가깝구나. 가까운 나한테 실컷 화를 내고 밖에 가서는 내지 마라’ 이런 자세로 받아들이는 건 어떻겠어요?”

“아…”

“바보 도 트는 소리가 나오네요." (웃음)

“(웃음) 그런데 제가 남편이 화내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에 영향을 안 받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화를 내면 저도 기분이 안 좋아지거든요.”

“그러면 남편과 거리를 조금 두고, 다른 여자를 한 명 붙여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한테 화를 낼 거예요.”

“(질문자 크게 웃음)”

“나보다 가까운 여자를 한 명 붙여주는 게 낫겠어요, 그래도 내가 가까이에 있고 나한테 화를 내는 게 낫겠어요?”

“제가 가까이에 있고 저한테 화를 내는 게 나아요.”

“지금 이미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거예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요. 만약 나한테 화를 안 내면 좋겠다 싶으면 남편한테 나보다 더 가까운 여자를 하나 두면 돼요. 그러면 나보다 더 가까운 그 사람한테 화를 낼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 자리를 양보하기는 싫은 거잖아요?”

“네, 그렇죠.”

“그러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죠. 남편한테 나보다 가까운 여자를 하나 둬서 나 대신 그 사람한테 화를 내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제일 가까운 곳에 있어서 내가 화를 받아낼 것인지 선택해야 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남편이 화를 안 내는 거지만, 그건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네, 그건 안 되는 것 같아요.”

“남편 성질머리에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하겠어요. 그걸 원하면 질문자가 성질머리가 그렇지 않은 남편을 구해야 해요. 남편의 성질머리가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는 또 있을 테니까 그 사람한테 남편을 줘버리고 질문자가 새 남자를 구하는 선택지도 있어요. 그렇지 않고 지금 남편을 데리고 살려면, 내가 남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려면 이 사람의 성질을 내가 받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의 장점을 취하려면 남편의 단점도 같이 받아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남편이 화를 낼 때 속으로 ‘그래도 내가 제일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렇게 나한테 화를 내는구나’ 이렇게 바라보는 거예요. 남편이 화를 낼 때마다 내가 남편과 가장 가깝다는 증거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한테 화를 많이 내고 다른 사람한테는 내지 마라’ 이렇게 바라보면, 이제 다른 사람한테 화내는 걸 오히려 질투해야 합니다. (웃음)”

“(질문자 크게 웃음)”

“관점을 그렇게 가져 보세요. 그리고 남편이 화를 낼 때 내 기분도 따라서 나빠지지 말고 지금처럼 웃어보세요. ‘아이고 여보, 화 많이 내라. 그만큼 내가 제일 가깝다는 거지?’ 이렇게 마음을 내면서 ‘화를 낸다는 게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뜻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웃으면 남편도 자기 모습을 알고 웃게 될 거예요.”

“진짜로 그런 것 같아요. 몇 번은 제가 너무 기가 막혀서 웃으니까 그때는 남편도 웃더라고요. (웃음)”

“좋아요. 앞으로는 기가 막혀서 웃지 말고 좋아서 웃어야 해요. 내가 제일 가깝다는 뜻이구나 라고 알고 좋아서 웃는 거예요. ‘왜 나한테 화를 내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가 제일 가깝다고 확인시켜 주는 거구나’ 이렇게 마음을 내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남편이 화내는 게 너무 싫으면 남편을 버리든지, 안 버리고 같이 살려면 이렇게 받아들여야 해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네.”

“막상 버리려니까 아깝고, 그렇다고 같이 살자니 화내는 걸 받아내기가 힘들죠. 그래서 제가 처음에 남편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어본 거예요. 여러 가지 장점을 말하는 걸 보니까 아직은 버리기가 아까워요. 그러니 마음을 이렇게 내서 조금 더 데리고 살아 보세요.”

“네.”

“자기 밥벌이를 하는지 물어봤는데, 자기 밥벌이를 한다는 건 그래도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아이를 잘 돌보는 것만 해도 어디예요. 손해 끼치지 않고 아이를 잘 돌보는 것만 해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남편도 자기 성질머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도 다른 데 가서 화 안 내고 나한테 와서 화를 낸다는 건 나를 제일 가깝게 생각하고 좋아한다는 이야기니까 아직은 괜찮아요. 길 가는 사람한테 갑자기 죽겠다고 화를 내면 길 가는 사람은 ‘그래, 죽어라’ 이러는데, 그래도 질문자한테 와서 죽겠다고 하면 질문자가 죽으라는 소리는 안 하잖아요. 남편도 사람 봐 가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저한테 죽겠다고 해봐야 저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네 알아서 해라’라고 하겠죠. 그러니 저한테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하는 거예요. (웃음)”

“(질문자 크게 웃음) 네, 말씀 감사합니다.”

질문자들과 대화를 마치고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화내는 남편과의 관계를 질문했던 질문자도 밝은 얼굴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하신 말씀 중 그 사람의 장점을 취하려면 그 사람의 단점도 받아내야 한다는 말씀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저한테 화를 내는 게 그만큼 저를 가깝게 생각한다는 의미라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스님께서 알려주셔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편 성격상 남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못하는데, 나한테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한편으로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한테 화를 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내야겠다 싶었습니다.”

“남편이 바뀌면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질문자가 남편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같이 살려면 달리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처럼 인생은 늘 선택입니다. 남편의 단점이 싫으면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고, 남편을 못 버리고 같이 살고자 하면 계속 괴로워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그래, 내가 좋다는 의미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게 결국 내가 편해지는 길입니다. 모두 나에게 좋도록 관점을 갖는 거예요. 그래야 나부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문자들의 소감을 듣고 시청자들의 소감도 들어보았습니다. 한 남성 분이 손을 들고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화내는 남편 때문에 불편한 아내의 사연을 들으면서 저는 거꾸로 남편 입장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질문하신 아내분이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럽기까지 했는데요. 저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풀 때가 있었는데 제 아내가 그걸 잘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냥 그렇구나 이해하며 살긴 했는데 그러면서도 화를 풀 수 있는 해방구를 찾고 싶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풀기보다 아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어요. 그리고 굳이 아내에게 받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동성의 술친구를 찾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화나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청자의 소감을 듣고 스님은 반대로 남편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짚어주었습니다.

“오늘 법문 듣고 가서 아내한테 ‘내가 화를 내는 건 당신이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니까 화를 내는 거래. 남편 말을 잘 들어주라고 하더라. 내 말 좀 들어줘’ 이런 소리 하면 아내에게 뺨 맞습니다.”

“네.”(웃음)

“부처님의 말씀은 항상 나에게 적용해야지 남에게 적용하면 안 됩니다. 남편의 입장이라면, 오늘 법문을 듣고 ‘남편은 스트레스받았다고 짜증을 내지만 그걸 듣는 아내는 정말 힘들구나. 나도 가끔 화를 냈는데 화를 안 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남성의 소감을 들어보면 아내가 안 받아주니까 숫제 동성인 친구랑 술 먹으면서 푸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잖아요. 집에서 안 받아주니까 밖에서 풀고 오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내의 입장에서 듣는 분들은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밖에서 술 먹고 스트레스를 풀고 오니까 그나마 집에서 덜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술 먹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하면 ‘놔두세요. 술 안 먹으면 스트레스받아서 죽을지 모르는데 다행이에요. 풀 데는 없고 아내는 안 받아 주니까 술이라도 마시는 거예요.’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 사람은 다 자기 할 말이 있습니다. 물론 짜증도 안 내고 술도 안 마시면 제일 좋죠. 그러나 세상은 내가 바라는 좋은 상태만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남편이 수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면 제일 좋죠. 그런데 내 남편이 보통사람이지 성인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아내는 ‘남편이 숫제 나한테 스트레스를 푸는 게 좋은 거구나. 내가 받아줄게’ 이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습니다. 남편은 ‘아내나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풀면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구나’를 알아서 화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해요.

오늘 질문자와 시청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눠주신 분들께 감사 박수 부탁드립니다. 솔직하게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이가 어렸을 때 육아문제로 시어머니와 쌓인 감정이 10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됩니다. 시어머니께서 지금은 병상에 계십니다. 이 감정을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 아기가 태어나 3번의 큰 수술을 받은 후 퇴원하여 지금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끔 아기가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떠올라 죄책감이 듭니다. - 늘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 생각에 사로 잡힙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어떻게 정진을 하면 될까요?

스님은 관계편, 심화과정에서 마음공부를 이어가 행복하고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를 당부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서원행자 신청자 교육 즉문즉설

잠시 휴식한 후 5시부터는 서원행자 신청자 교육을 받고 있는 70여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서원행자를 신청한 여러분, 반갑습니다. 교육받으면서 어떠셨는지요? 오늘은 교육이 끝나기 전에 여러분이 서원행자로서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데 의문이 남아있거나 미진한 게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입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의 질문을 받고, 이어서 즉석에서 손을 들고 다섯 명의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서원행자 신청자들은 교육을 받으며, 수행을 하며, 활동을 하며 든 다양한 의문을 풀 수 있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수행자가 건의를 하는 태도를 짚어주며 법회를 마쳤습니다.

“승가에서 환속(還俗)한 다음 다시 출가하는 건 일곱 번까지 가능합니다. 승려로 있다가 계율을 어기고 파문을 당하게 되면 다시 출가하기 어렵지만, 내 의지로 스승님께 가사를 반납하고 속세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출가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일곱 번까지 허락해줍니다. 다만, 본인이 승복을 입은 채 계율을 어기거나,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야반도주를 한 경우에는 다시 출가하고자 할 때 장애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기의 뜻으로 서원행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고, 계속할 형편이 못 되면 편하게 못하겠다고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어떠한 사항이라도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건의를 하고, 시정할 사항이 있으면 시정 요청을 하면 됩니다. 불만이 생기거나 화가 나서 욱하는 건 본인의 수행 부족입니다. 그런데 불합리한 내용이 있으면 화가 나지 않은 상태로, 욱하지 않은 상태로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차분한 상태로 ‘이 부분은 불합리해 보입니다’라고 제안을 하고 답변을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면 정토회에서 그 부분을 의제로 채택하여 검토를 한 다음 답변을 드릴 겁니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라도 누군가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재검토 요청을 하면, 안건으로 채택이 되어 다시 토론 과정을 거칩니다. 다만 기존의 규칙을 없애려고 하거나 기존에 없던 규칙을 새로 만들고자 할 때는 3분의 2 이상 대중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정한 과정을 통해 기존에 있던 내용을 폐기하기도 하고, 기존에 없던 내용을 신설하기도 하고, 기존의 내용을 개정할 수 있어요.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늘 검토를 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즉, 지속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만을 갖거나 화를 내는 건 개인의 수행 부족입니다. 시정할 내용이 있으면 시정 요청을 하면 되고, 건의할 내용이 있으면 건의를 하면 되지, 화를 내거나 불만을 가질 일은 아닌 겁니다. 이 관점을 늘 유지하고 자기를 돌아보면서 활동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서원행자로 신청하셔서 정토회의 주요한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으로 네 번의 법회를 마치고 나니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달이 떠올랐습니다.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서울로 이동하여 연극, 영화, 방송, 문화 예술인들이 봉사하는 수행모임 길벗 회원들과 구룡마을에 연탄 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두북으로 돌아와 일요 명상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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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희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

2022-01-01 10:30:05

ㅎㅎ

요청하고 건의하면되지 화내고 불만을 할일은 아니군.. 감사합니다

2021-12-19 12:10:06

안헌순

스님의 법문은 늘 명쾌하십니다. 세상 에디가서 이런 말씀을 들을까요. 깊이 새겨 말씀처럼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12-19 11: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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