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13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 수행법회
“쉴 틈 없는 육아와 가사가 너무 힘듭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늘도 스님은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저수지와 논 주위에 풀을 베기로 했습니다. 앞치마를 하고, 안면보호구를 착용하고, 예초기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왱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끝에서 풀을 베기 시작해 오른쪽 끝에 도착했습니다.



오른쪽 끝에는 큰 밤나무가 있습니다. 스님은 밤나무 아래에 경사면까지 깨끗하게 풀을 베었습니다.



풀이 베어지고 땅이 드러나자 경사면 곳곳에 떨어진 알밤이 보였습니다.

“어제도 여기서 알밤을 많이 주웠는데, 풀을 베니까 또 알밤이 보이네요.”


풀에 가려져 있어서 발견하지 못한 알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고 해요. 풀도 베고 밤도 줍고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익을 보잖아요.”

눈에 보이는 알밤을 집게로 집어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순식간에 제법 많은 양의 알밤을 주웠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9시 넘었습니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어요? 얼른 내려갑시다.”

방금 주운 알밤을 물에 담가 놓은 후 정토대전 회의를 시작하기로 한 10시 정각에 가까스로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연수원에서 새벽에 출발한 법사님들도 아침 일찍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농사 울력을 한 후 제시간에 자리했습니다.

오늘 함께 공부할 주제는 사성제입니다. 사성제에 대해 사전적 해설, 경전 인용구, 스님의 하루에서 발췌한 스님의 법문, 철학적 이론, 구체적인 사례를 각각 준비해 와서 발표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법사님들은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하던 중 스님은 경전을 해석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경전을 해석하는 올바른 방법

“인천 사람이 부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동쪽으로 가라.’

그걸 본 강릉 사람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저는 동쪽으로 가도 서울이 안 나옵니다.’
‘동쪽으로 가면 안 된다.’
‘왜 동쪽으로 가면 안 됩니까? 저 사람에게는 동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잖아요.’

경전 해석에 대한 논쟁은 마치 이런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런 표현을 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어떠했는가

왜 부처님은 동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을까요? ‘출발 지점이 강릉이다’ 하는 전제조건이 없으면 이 표현을 해석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 강릉 사람이 물었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말이 나왔구나.’

이렇게 해석해야 올바른 해석입니다. 용어라는 게 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됩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 역시 당시 인도 사회에서 있었던 철학적 논쟁이 무엇이었는지 시대적 배경을 다 분석해봐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학문하는 사람은 이런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글자만 해석해서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내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경전을 해석할 때는 그 표현이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본인이 수행 정진하면서 겪는 문제를 비롯해서 경전의 내용을 내가 지금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견주어 보아야 해요. 직접 체험하지 않고 교리만 연구하는 사람은 논리가 성립하기만 하면 돼요.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교리가 머리에서만 나온 논리인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경험되지 않는 철학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국에 가는 얘기 같은 건 현실에서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얘기잖아요. 전생 얘기 역시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얘기예요. 우리가 경전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얘기를 내내 읽고 있으니까 경전 공부가 본인의 삶과는 관계가 없어지는 겁니다.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아야 제대로 그 뜻을 안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화엄경의 내용이든 성경의 내용이든 본인이 경험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

전생이니 내생이니, 천국 가느니 못 가느니, 돈을 버느니 못 버느니, 이런 건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아니에요. 불교의 핵심 주제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내가 괴롭지 않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지금 내가 괴로워하는 것은 반드시 괴로워할 일이 있어서 괴로운 게 아니라는 거예요. 뭔가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했고, 거기서 벗어나면 누구든지 괴롭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걸 중심으로 하고, 그런 뒤에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붙어야 해요. 중심을 우선 세운 뒤에 다른 걸 겸해야 풍부해지지, 중심을 놓쳐버리면 헷갈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설악산으로 등산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정산에 오른다는 목표를 갖고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등산하는 도중 산비탈에 핀 예쁜 꽃을 발견해서 꺾으려고 하다가 미끄러졌어요. 그래서 손을 씻으려고 계곡으로 내려갔는데, 물이 적어서 웅덩이를 만들려고 도랑을 치게 됐습니다. 도랑을 치다가 가재를 많이 잡았는데, 가재를 잡고 보니 이를 들고 산을 오를 수 없어서 가지고 하산을 했어요. 그때 마침 서울 가는 차가 있어 얼른 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모두 웃음)

이 사람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 거예요.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는 거꾸로 되는 게 지금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늘 그 시점에서는 더 나은 길을 선택했지만, 원래 출발할 때 원칙을 놓쳐버리면 결국은 반대로 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방대한 양의 경전을 읽을 때도 늘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어요.”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스님의 즉석 제안으로 두 시간 동안 밤 까기 울력을 했습니다. 어젯밤 깎는 기계를 이용하여 세 포대에 해당하는 밤의 껍질을 모두 깎았습니다.

“밤 껍질이 잘 깎아졌는데, 자세히 보면 벌레 먹은 부위가 있어요. 그 부분만 칼로 떼어내는 작업만 좀 해주세요.”

스님이 시범을 보여주자 법사님들이 따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스님과 두 명이 붙어서 밤 깎기 작업을 시작했는데, 점점 붙는 사람이 늘어나서 법사님들 모두가 밤을 깎았습니다.

벌레 먹은 부위를 모두 도려낸 후 오후 2시에 밤 깎기 울력을 마쳤습니다. 잘 다듬은 밤은 바짝 마를 수 있게 방 안에 널어놓았습니다.

“밥 할 때마다 한 움큼씩 넣으면 맛있는 밤밥을 먹을 수 있어요.” (웃음)

다시 정토대전 회의를 재개하고, 오후에도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오후 3시 50분에 정토대전 회의를 마친 후 10분 휴식을 하고 곧바로 4시부터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했습니다.

법사님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준비된 안건에 대해 토론과 의결을 진행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안건 토론을 한 후 오후 6시에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 40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유튜브로 생중계가 되는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먼저 각자 자신의 방에서 법회를 듣고 있는 회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수행법회에 임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머리 깎고 승복 입은 사람이 수행자가 아니고, 마음이 청정한 자가 수행자입니다. 기와집이 절이 아니고, 마음이 청정한 수행자가 머무르면 어디든 그곳이 절입니다. 그것이 불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처럼 비록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세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청정하면 다 수행자입니다. 어떤 제도에 의해서 양성된 승려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이렇게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은 여러분이 수행자입니다. 여러분이 법문을 듣고 있는 곳이 곧 법당입니다.

오늘 두 시간은 내가 스님이고, 내 방이 법당이다

지금처럼 청정하고 순수한 마음을 내어 법담을 하고 있으면, 지금 이 순간은 여러분이 스님이고 수행자예요. 여러분은 하루 종일 스님을 하는 게 아니라 오늘 두 시간 동안 스님을 하는 사람들인 셈입니다. 한시적 스님이라고 볼 수 있어요. (웃음)

여러분의 마음이 청정한 한은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앉아 있는 곳이 곧 법당입니다. 그러니 ‘내 방에서 법문을 듣는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이 시간은 내 방이 바로 법당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방은 법당이기 때문에 법문 듣기 전에 주변을 지저분하게 해놓지 말고 딱 정리를 해두어야 합니다. ‘오늘 두 시간은 이 방을 법당으로 쓰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법문을 들어야 해요. ‘오늘 두 시간은 출가한 스님처럼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이런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법회나 기도가 있는 날은 항상 방을 정비하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방석을 준비해 놓고 ‘이 시간만큼은 내가 수행자이고 이곳이 법당이다’ 이런 마음으로 임하면 그 순간 나는 수행자가 되고, 내 방은 법당이 됩니다. 그런 자세로 수행법회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기 셋을 키우고 있는 엄마인데, 쉴 틈 없는 육아와 가사 일이 너무 힘들다며 어떻게 하면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울먹이며 질문했습니다.

쉴 틈 없는 육아와 가사가 너무 힘이 듭니다

“저는 24개월 된 첫째와 4개월 된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돌보기가 많이 힘듭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기 셋을 충분히 돌봐주기 어려우니까 제 부족함이 답답하고, 밤새 아이들이 번갈아 잠에서 깨면 저는 잠을 깊게 잘 수 없는 데다 낮에도 아기들을 돌보느라 체력이 부칩니다. 힘들면 짜증도 많이 나는데, 저의 이런 상태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걱정됩니다. 어떻게 해야 힘을 내서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쌍둥이 중 한 아이는 신생아 때 뇌수막염을 앓아서 그 후유증으로 뇌손상이 심합니다. 아픈 아기를 보면 속상하고, 좀 더 잘 살피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듭니다. 어렵게 살아난 강한 아이이고 감사한 생명인데도 엄마가 이렇게 나약해서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지 지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같이 아이를 한 명도 안 낳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셋이나 낳아서 키운다고 수고하십니다. 이 분을 위해서 다들 격려의 박수 한 번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질문자가 힘든 것이 맞아요. 그런데 부모님 세대가 아기 셋을 키우는 게 힘들다고 우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요? 부모님 세대가 보면 ‘아이고, 고생이 많다’ 이렇게 말할까요?”

“그래도 편하게 키우는 것이라고 하겠죠.”

“맞아요. 부모님 세대가 볼 때는 편하게 키운다고 말할 거예요. 더욱이 할머니 세대가 보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나무 때서 밥 해 먹는 것도 아니고, 호롱불 켜놓고 사는 것도 아니고, 태산 같은 빨래 더미를 이고 냇가에 가서 빠는 것도 아닌데, 애 셋 키운다고 왜 이리 유난이냐. 콩밭 매는 것도 아니고, 보리타작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고생이라고 하느냐.’

그런데 왜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 하나나 둘 키우는 것도 힘들다고 할까요? 젊은 세대들이 예전 세대에 비해 편하게 사니까 그런 걸까요? 물론 그런 요소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옛날 어머니들은 집에서 일을 했지, 직장을 다닌 건 아니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가운데 아기를 키우려면 한둘도 키우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또 질문자처럼 집에서 애만 키운다고 하더라도 셋을 한꺼번에 키우기는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해 요즘은 아이들에 대해 신경 쓸 게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해요. 요즘은 아이가 하나나 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아이들에 대해서 부모가 신경 쓰는 내용이 옛날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해서 신경 쓰는 내용에 비해 10배는 더 많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일곱 명씩 낳아도 그냥 밥 먹이고 기본적인 것만 해주면 형제끼리 서로 돌봐주면서 자랐어요. 일일이 다 부모가 챙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 돌보는 일을 일일이 부모 손으로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뜻이에요. 밥 해야지, 빨래해야지, 길쌈해야지, 밭 매야지,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개를 한번 보세요. 개는 사람보다 못한 존재라고 하지만, 그래도 네댓 마리씩 새끼를 낳아서 잘 키웁니다. 그런데 사람처럼 일일이 새끼를 돌봐주지는 않아요. 새끼가 와서 젖을 찾으면 젖을 주고, 새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보호를 해주긴 합니다. 그 외에는 일일이 다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것처럼 질문자는 아이가 셋이기 때문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경우와는 관점을 다르게 가져야 합니다. 일일이 다 돌보려고 하지 말고, 기본적인 것만 우선 돌본다고 생각하세요. 밥 먹여주고, 빨래해주고,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좀 막아주고, 나머지는 적당하게 놔두고 사세요. 관점을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아이들을 좀 덜 돌보면서 엄마의 마음이 편안한 것과 아이들을 잘 돌보면서 엄마가 짜증내고 성질내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아이들한테 해로울까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짜증내고 성질내는 것이 100배는 더 해롭습니다. 힘에 부치면 그냥 놔두면 되지, 잘해준다며 화내고 짜증 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니 우선 마음을 편안히 하고 힘닿는 대로 키우세요.

그리고 장애가 있는 아이는 내가 돌보는 것보다 전문가가 돌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훈련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프겠지만, 그런 경우라면 상담을 해서 전문가한테 맡기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봐야 해요. 나는 부모이지 전문가가 아니니까 지금 아이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를 잘 모르잖아요. 부모다운 부모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내가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를 돌봐야 해요. 그러나 내가 돌보는 것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돌보는 게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된다면 내가 아이와 떨어지는 어떤 아픔이 있더라도 아이를 전문 교육기관에 맡겨야 해요. 이게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직 아이에게 내 돌봄이 필요하다면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돌보고, 아이에게 내가 도움이 안 된다면 내 가슴이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를 떠나 줘야 해요. 그래야 진짜 부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픈 아이가 4개월 된 아이예요, 두 살짜리 아이예요?”

“4개월 된 아기예요. 병원에서 재활치료는 시작했고, 지금 데리고 다니긴 하는데 아이가 여럿이다 보니까 손이 덜 가서 고민입니다.”

“그러면 두 살 짜리는 자기가 알아서 똥 누고 오줌 누고 하도록 좀 놔두고, 4개월 된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봐주세요. 4개월 된 아이들도 나중에 크면 그중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더 돌봐야 하고요. 장애가 있는 아이가 그렇게 해서 치료가 되면 괜찮은데, 치료가 조금 어려워서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어릴 때부터 전문가들이 거기에 맞게끔 교육하고 키워야 아이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4개월밖에 안 됐으니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다만 미리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관점을 그렇게 가지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그리고 행정복지센터에 신청을 해서 이런 경우에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알아보세요. 재정적 도움이든 돕는 이 파견이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조건이라면 내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주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받아야 해요.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 수가 많다고 해서 불행해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아픈 아이가 있거나 아이가 여럿인 부모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몸이 조금 힘든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럴 때도 너무 과로하지 않도록 질문자가 조절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양을 좀 줄여야 해요. 힘들다고 팽개치면 안 되고, 버려도 안 돼요. 그러나 아이가 하나일 때처럼 셋을 다 돌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을 돌보는 정도를 조금 줄여서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하다가 엄마가 지쳐서 앓아누워버리면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큰 불행입니다. 그러니 본인의 체력을 조절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해요.

또 엄마가 정신적으로 우울하거나 힘들다고 해서 스스로를 한탄하면 안 돼요. 그러면 엄마의 마음 상태와 얼굴 표정이 아이들의 심리에 그대로 전이됩니다. 나아가 아이들의 자아 형성에도 영향을 줍니다. 엄마의 심리 상태가 아이들의 자아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습처럼 질문자가 울면서 아이를 돌보면 아이는 체질적으로 슬픔을 마음의 밑바닥에 깔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힘들어도 항상 웃고, 아이들을 밝게 대하고, 특히 짜증을 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정 힘들면 짜증 내는 것보다 아이가 아무 데나 똥오줌을 누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옷을 덜 빨고 방 청소를 덜 하는 건 아이들에게 별로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아요. 그러나 엄마가 화내고 짜증내고 슬퍼하면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줍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항상 밝고 가볍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관점을 그렇게 가지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알고는 있어도 현실에서는 잘 안 되더라고요.”

“잘 안 되면 엄마 자격이 없는 거죠. 그건 ‘잘 안 된다’라고 표현하면 안 돼요. 독수리가 날아와도 병아리를 갖고 있는 어미 닭은 못 잡아먹습니다. 병아리를 품은 어미 닭은 독수리한테도 대들어서 병아리를 지켜요. 겁을 안 내고 죽기 살기로 덤비기 때문에 독수리가 못 건드립니다. 그것처럼 아기 엄마는 용감해야 해요. 아기한테 나쁜 영향을 주는데도 ‘잘 안 된다’ 이렇게 마음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돼요.

‘내가 화내고 짜증 내는 순간 우리 아이에게 신체장애보다 훨씬 더 큰 정신적 장애를 주게 된다.’

이렇게 딱 알아야 해요. 알았죠?”

“알겠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해요. 질문자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위로해주는 것과 질문자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 주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엄마가 그렇게 하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 전문가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질문자가 물러나 줘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네. 감사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방청객에게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지난주부터 쌍방향 소통 방식으로 즉문즉설 프로그램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스님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들에게 적극적인 발언을 요청했습니다.

“질문자가 참 힘든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언해주시거나, 사회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정보를 아시거나, 위로해주실 분이 있으면 얘기를 해주세요.”

방청객들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아이를 다 키워 본 경험이 있는 분이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아이 셋 키우느라 너무 수고 많으세요. 저는 연년생인 둘을 키울 때도 너무 힘들었는데, 아이가 셋이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또 아픈 아이까지 키우느라고 너무너무 수고 많으세요. 저도 힘들어서 애한테 화내고 그랬는데 스님 말씀 듣고 마음을 돌이켰어요. 스님께서 ‘어머니는 여신이 돼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엄마가 웃어야 해요. 아이를 셋이나 키우니까 애국자예요. ‘나는 애국자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여기고, 씩씩하게 매일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세요.”

복지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은 질문자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일단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재정 상태 진단을 받아보세요. 조건에 해당하면 돌봄을 신청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형과 가형이 있는데, 나형이면 돈을 조금 더 내고, 가형이면 돈을 좀 덜 내는 차이입니다. 직접 찾아가서 상담해보면 조금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아이를 직접 키워 본 남성 분의 조언도 이어졌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큰 애들은 나중에 직업을 찾아갈 때 자신감도 있고 자존감도 높아서 적응을 잘하는 편이에요. 반면 시설에 너무 의지한 아이들은 자립심이 좀 부족한 성향이 있더라고요.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면 아이가 자존감도 생기고 사회에 적응하기도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조언에 대해서는 더 고려해야 할 점을 스님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랑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아이의 나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사랑을 많이 줘야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뒤에도 너무 집에만 붙들고 있으면 의지심이 생기기 쉽습니다. 어떤 분은 부모가 아이를 너무 집에만 데리고 있으면서 모든 걸 다 해주니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서 훈련을 받으니까 집에서 부모의 돌봄을 받을 때보다 오히려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요. 이처럼 양면이 있으니까 어릴 때는 따뜻한 사랑을 주되, 크면 전문적인 훈련은 역시 전문가가 하는 게 더 낫다는 점도 함께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받든, 아빠의 사랑을 받든, 사랑을 듬뿍 받는 건 좋은데, 일단 세 살까지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도록 해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셋이어서 엄마가 한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기가 어려우면, 첫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게 좋아요.

‘엄마는 널 사랑해. 그러나 지금은 동생들을 돌봐야 하니까 잠깐 아빠하고 놀려무나.’

아빠의 사랑을 받는 것도 아이가 알아서 찾아가게 하지 말고, 이렇게 엄마가 얘기해서 보내주는 쪽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아이에게 상처가 남지 않습니다. 아이가 알아서 자기 살 길을 찾아가게 되면 나중에 아빠와는 사이가 좋을지 몰라도 엄마에 대해서는 가슴에 섭섭함이 남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도 좀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덧붙이는 이야기가 끝나자 한 분이 또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질문자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제가 연락처 남길 테니까 힘들 때 꼭 연락해주세요. 힘들면 제가 가서 아이 돌보는 것을 좀 도와줄게요.” (울먹임)

이 분은 질문자의 힘듦에 감정 이입이 되었는지 본인도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운다고 본인도 저렇게 따라 우는 걸 전염병이라고 해요. 웃으면서 격려해줘야지, 따라서 같이 울면 상대가 더 슬프잖아요. 무슨 큰일 났다고 그렇게 같이 울어요? 지금 질문자가 잘 못살고 있다는 얘기예요? 질문자는 지금 잘 살고 있어요. 애를 셋이나 낳아서 잘 키우고 있잖아요. 그러니 관점을 좀 똑바로 가지고 위로를 하세요.” (웃음)

스님과 질문자, 방청객까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더욱 풍성한 대화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블로그에 제가 사용한 것이 아닌데 사용한 것처럼 홍보글을 올려주면 건당 만원씩 준다는 알바를 하려고 계약서를 썼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마음이 걸려 안 하겠다고 하니 계약 위반이라고 합니다. 분쟁조정위에 신고를 한 상태인데 제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 배회성 치매가 있는 어머님을 집에 모신 적이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데 자꾸 집에 오고 싶어 하십니다. 어머님을 어떤 마음으로 모셔야 할까요?
  • 명상할 때 호흡 알아차리기가 안 되는 이유가 평소 tv 보면서 마늘을 깐다던지, 밭을 매면서 공상을 한다던지 하는 그런 습관이 있어서일까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하고 나니 벌써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저수지 주변에 예초기로 풀을 베는 작업을 한 후 수확한 채소와 호박, 땅콩을 차에 싣고 은사 스님인 불심 도문 큰스님을 찾아뵙고 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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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요즘 괴로워하고 우울했었는데 엄마는 항상 웃고 아이를 밝게 대하고 짜증내지말라는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10-27 05:47:08

ㅎㅎ

정말 힘들겠군..

2021-10-26 18:08:57

김진석

몸이 아파요
정신 몸 모돈것이요

2021-10-19 18:5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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