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5.13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 평화재단 활동가 회의
“어머니가 그냥 싫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도 스님은 서울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과 미팅을 하거나 온라인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서울 공동체 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아침 일찍 외부에서 사회 인사와 조찬을 한 후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는 정토대전 사상팀을 맡고 있는 법사님들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법사님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각자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사회사상팀에서 발표 내용을 준비해 왔습니다. 불교는 평화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평화를 실천한 경전 속 이야기, 꼬삼비 비구 승단의 분열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한 명씩 발표한 후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세 가지 질문이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는 중도와 화쟁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쟁 사상이 사회적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화쟁(和諍) 사상 부분이 정토대전 안에서 좀 더 잘 정립되어 기록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갈등이 생겼을 때 화쟁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화쟁 사상의 핵심은 중도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 단체들이 댐 건설 저지 운동을 해서 댐 건설이 백지화되었다고 합시다. 중도적으로 볼 때는 이때 환경운동 단체들이 승리했다고 자축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는 댐을 만들어야 우리가 먹는 수돗물도 나오고, 농수도 나오고, 수력 발전도 나오잖아요. 댐을 만들자는 사람들도 어떤 필요에 의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립을 조장하는 길 vs 타협을 이끌어내는 길

댐 건설 반대 운동을 해서 정부가 계획을 철회했다면, 화쟁 사상이나 중도적 입장에서는 ‘정부가 철회했으니 승리했다’ 이렇게 자축할 게 아니라 ‘정부가 고심해서 댐 건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철회해줘서 고맙다’ 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환경운동 단체들이 물 절약 국민운동을 펼쳐서 댐 하나 수준의 물을 절약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는 댐 하나에서 나오는 수력발전의 양만큼 환경운동 단체들이 전기를 절약하는 운동을 하겠다고 말해야 해요. 그리고 상대를 초대해서 서로 격려하는 자리를 가져야 중도의 정신에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만 보기 때문에, 졌다고 낙담하고, 이겼다고 자축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은 화쟁사상도 아니고, 중도도 아니고, 평화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늘 대립과 갈등이 조장됩니다.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180석을 얻었습니다. 의석수는 야당에 비해 40%나 많지만 사실 투표율은 7% 밖에 더 많지 않았어요. 승자 독식 구조의 선거법 때문에 생긴 거품 의석이라고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덤으로 주어진 의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당 측에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150석도 못 얻으리라고 예측했는데 180석을 얻었으면,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이 예상외로 지지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오히려 야당에게 기존의 상임위원회를 그대로 배분해야 됩니다. 패배한 상대를 포용하는 것이 화합입니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원회는 여당 단독으로 구성되었죠. 이런 방식은 평화로 가는 협치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민생 법안을 10개 만들려고 하는데 야당이 반대를 한다고 합시다. 이럴 때 야당이 반대한다고 아예 안 해버리면 책임 정치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당이 반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10개를 다 밀어붙이면 독재를 하는 것이 됩니다. 상대가 끝까지 반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서 3개 정도는 미루고 7개만 합의를 봐서 통과시키는 방식이 평화로 가는 협치입니다.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한 9.19 합의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북한에 평화적 핵 이용권을 줄 거냐 말 거냐 하는 것 사이에서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첨예했습니다. 당시 북핵 대사였던 디트러니 대사에게 양쪽의 입장을 모두 수용하는 제3의 안을 제안해서 타결을 가져왔었죠,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경수로의 ‘경’ 자도 얘기하지 말라는 입장이고, 북한은 자주 국가로서 핵의 평화적 이용권이 있다는 입장에서 양측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조언한 내용은 ‘북한은 핵의 평화적 이용권이 있다. 다만 당분간 그 권리를 유보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권리는 인정해 체면을 세워주되 지금은 그 권리를 중지시킴으로써,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경수로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부산에서 한진중공업의 한 노동자가 1년 동안 크레인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하고 내려올 때 법이 정한 대로 그 사람을 처벌할 거냐 말 거냐 막판에 쟁점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했던 것도 중도적 방법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강정 마을 문제가 생겼을 때는 대안을 내고 문제를 풀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갔는데, 결국 타협안을 합의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정권 교체기라 정부의 추진력이 약했고, 결국 정권이 교체되면서 원래대로 강행이 되었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이렇게 사회적 분쟁이 일어났을 때는 중도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가 대량살상 무기 확산 방지인데, 결과적으로는 핵이 확산되어 핵무기 개발까지 됐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해소시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북한 주민의 고통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 정책은 실패한 정책입니다. 정책의 목표가 북한 주민 괴롭히기라면 성공한 거예요. 그런데 북한 주민 괴롭히기가 우리의 목표는 아니잖아요.

지난 30년의 과정을 보면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어떤 정부도, 한국의 어떤 정부도, 미국이나 한국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봐야 해요. 북한 역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는 안 된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이 원하는 것은 북한의 핵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100% 달성하는 것은 북한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핵 동결이나 확산을 방지하는 것까지는 달성이 가능합니다. 없애는 것은 안 되더라도 확산은 막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북한 주민들을 잘 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는 고통은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이 가능해요. 목표를 좀 낮게 잡으면 해결이 가능합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는 대신에 경제 제재도 동결하는 겁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제재를 풀어주는 것이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제재를 동결하는 것과 제재를 풀어주는 것의 차이는, 제재를 풀어줘 버리면 다시 제재를 하기 위해 유엔 결의를 거쳐야 되는 것이고, 제재를 동결하면 제재를 일시적으로 멈췄다가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키면 바로 제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그렇게 핵 동결을 하고 경제 제재도 동결시켜 놓으면, 북한 주민의 생활도 개선이 되고, 핵 위험 방지도 됩니다. 이런 길이 있지만 미국 대통령 누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정치에 도움이 안 됩니다. 북한 핵을 없애겠다고 주장해야 선거에 도움이 되죠.

이런 합리적인 제안에 반대하는 세력은 북핵 동결이 결국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결국 경제 제재를 안 풀지 않았느냐고 거부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겁니다. 이 속에서 타협안을 내는 것이 중도이고 화쟁입니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의 적절한 조절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것이 죽고 사는 문제이지만, 미국에게는 그냥 많은 문제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강자에게 죽고 사는 일이라면 해결이 빨리 될 텐데, 강자에게는 약간 귀찮은 일이니까 시끄러우면 조금 하는 척하다가 잠잠해지면 관두는 거예요. 그래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약자는 대부분 굴복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북한은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굴복은 싫다’ 이렇게 나오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미국은 이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하면 늘 해결이 됐는데 북한은 안 되는 거예요. 죽어도 그렇게 하기는 싫다고 도전하는 나라가 북한과 중동 무슬림 국가들입니다. 민족주의적 이념이나 종교적인 믿음을 갖고 대응하니까 일반적인 논리로는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인생의 문제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중도적으로 바라보면 해결책이 나오죠. 늘 수행의 원칙을 지키되 실행에 있어서는 약간의 융통성이 있어야 돼요. 원칙이 분명해야 융통성이 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융통성이 없는 이유는 원칙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흔들리는 거예요. 원칙을 강조하면 자꾸 경직되게 말하고, 약간 융통성을 주라고 하면 원칙에서 벗어나고, 둘 다 원칙이 분명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조정해나가는 것이 중도입니다. 100% 완벽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거기에 근접하는 길, 즉 근사치를 추구하는 겁니다. 중도는 손실을 따져서 손실을 줄일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바뀔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완급 조절이 필요한 겁니다.

고지식한 관점에서 보면 중도가 자기 마음대로 적용하는 것 같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편리한 대로 내로남불처럼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방식을 적용할 때 조금 밀고 갔다가 약간 늦췄다가, 오른쪽으로 기울다가 왼쪽으로 기울다가 하는 것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끊임없는 조정의 과정입니다.”

12시 30분에 정토대전 회의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손님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눈 후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평화재단 회의실에는 평화재단 활동가들이 한 달 만에 서울에 올라온 스님과 회의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에 살지 않고 출퇴근하는 활동가는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평화재단의 활동 방향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를 간략히 이야기한 후 활동가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활동가가 ‘현재 한국 사회가 갈등이 너무 심한데 국민통합을 위한 협치로 나아가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중도의 길을 말했습니다.

“국내만 보면 한국 사회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사회처럼 보이지만, 국외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나름대로 괜찮은 사회에 속합니다. 아직도 성장 동력이 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어요. 성장 동력이 많이 소진된 것은 맞는데, 아직도 성장 동력이 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관리를 잘하면 저성장 국면이라 하더라도 향후 30년 안에 일류 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서 여기서 멈추기에는 좀 아깝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갖기 위해 지금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요?

첫째,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몰락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위험 부담을 안고 있어요. 세계 어느 나라도 갑자기 전쟁이 나서 사회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6.25 전쟁 이후에는 전쟁이 한 번도 안 일어났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지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런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그래서 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남북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둘째, 경제가 굉장히 발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로 인한 소득 양극화가 너무 심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여기에 기름을 부어준 격입니다. 내년에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수그러지면 빈부 격차 문제가 엄청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을 생각하면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해야 합니다.

셋째, 이런 문제들을 풀려면 정치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협의 여지는 점점 없어지고, 패거리 정치 행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협치에 기반해야 남북문제도 풀 수 있고, 경제적 양극화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보적 위험, 경제적 위험, 정치적 위험들을 제거할 수 있는 골격을 세우는 것이 지금 평화재단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한다면 지속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교육과 과학기술 문제에 대한 설계도 세워야 합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청년 문제, 주택 문제, 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필요하겠죠.

대한민국이 좀 더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어떤 부분들이 개혁되어야 하는지 국가적인 설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 합니다. 사회 원로분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는 이런 대강의 국가 설계조차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거든요. 인기만 좀 있으면 대통령 하겠다는 생각만 하지 국가적인 비전을 갖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이 외에도 앞으로 평화재단의 활동 방향, 그리고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개선할 점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업을 해나갈지 조금 더 논의해서 결정해 나갑시다.”

오후 5시가 넘어서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외부에서 사회 인사 분이 찾아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원래 밤 늦게라도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운전하는 행자님이 졸음이 많이 올 것 같아서 내일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 새벽 3시이든 4시이든 운전하는 행자님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출발합시다.” (웃음)

내일은 새벽에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한 후 오전에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온라인으로 진행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경전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이 생방송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4월 30일 청춘 톡톡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어머니가 그냥 싫어요, 어떡하죠?

“저는 아버지가 전화하시면 가볍게 받는데, 어머니에게 연락이 오면 거부감이 듭니다. 희한하게 어머니가 그냥 싫어요. 의식적으로 ‘어머니다’라고 생각 하지만 이상하게 약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소년기에 어머니한테 지나치게 간섭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10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형과 아버지와 함께 살았어요. 그게 마음에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어머니가 질문자를 두고 떠난 것에 대해 섭섭함이나 미움이 있었습니까?”

“어릴 때는 잘 몰랐었는데, 아버지께서 어머니 흉을 많이 보셨고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주입시켰어요. 그래서 어머니만 딱 보면 싫은 감정이 드나봐요. 형은 일찍 결혼해서 독립했고, 저는 군대 제대하고 어머니하고 같이 살았어요. 그때도 잘 살다가 중간중간 어머니가 싫은 감정이 올라와서 집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우연히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는데 스님께서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해야 된다고 하셔서, 지금은 혼자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각별히 연락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고, 어머니에게 연락이 오면 받기 싫은 마음이 듭니다.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에서 부모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으면 자긍심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저도 좀 더 자신 있고 당차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데 어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질문자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지속해서 들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어머니라고 생각하지만, 무의식 세계에서는 어머니에게 트라우마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부모와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

질문자는 성인이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거부반응이 있다면 연락을 안 하고 살아도 괜찮습니다. 불효가 아니에요.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는 자식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고, 자식은 최종 결정권이 부모한테 있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으면 부모와 자식은 각각 독립된 인격체예요. 독립된 인격끼리 관계를 맺는 겁니다. 결혼도 독립된 인격이 만나 계약을 맺듯이 부모 자식도 새로운 관계로 설정이 되는 거예요. 자식이 스무 살 이전에는 생물학적 관계였다면 스무 살이 넘으면 성인과 성인이 맺는 사회적 계약관계가 되는 겁니다.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이 부모님을 돌봐드리는 것은 자식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에요. 부모가 스무 살 넘은 자식을 더 돌봐주는 것도 자식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가 좋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의무라고 생각하니까 자식은 부모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누르고, 부모는 나이 든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부담을 감수하며 삽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에 자꾸 갈등이 생기고 원한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는 어머니에 대해 아무런 부담을 안 가져도 돼요. 지금 질문자는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어머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해보기

어머니에게 전화가 오면 안 받아도 되고 받아도 돼요. 안 받는 게 편하면 안 받으면 되고, 받는 게 편하면 받으면 됩니다. 안 받았는데, 자꾸 전화가 와서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받는 게 좋아요. 그때는 어머니를 위해서 받는 게 아니라 내가 불편하기 때문에 받는 거예요. 남의 전화도 받는데 어머니 전화잖아요. ‘네, 어머니 잘 계셨어요?’라고 안부 좀 묻다가 전화를 끊으면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게 잘 안 되면 어머니에게 질문자의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머니, 제가 좀 부족해서 어머니 전화를 받으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늘 전화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이런 저를 좀 이해해주시고 배려해주세요. 제가 앞으로 수행해서 치유해 나가겠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처럼 지금 질문자가 어머니를 미워하거나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서로 불편한 걸 드러내고 지낼 수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과거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감사하기

어릴 적 나의 입장에서는 나를 버리고 간 어머니에게 섭섭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질문자도 결혼해보면 부부관계에서는 얼마든지 갈등이 있을 수 있고 같이 못 살 만한 이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두고 집을 나갈 때는 그만큼 정신적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성인이 된 질문자가 이해를 해야 해요. 어릴 때는 이해를 못 해서 섭섭하거나 미워질 수 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어머니가 한 여인으로서 아버지와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만약 기도를 한다면 어머니가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열 살까지 키워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하면 좋아요.

‘어머니, 그래도 그 어려운 가운데 저를 10살 때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두 가지 자세

정리하면 질문자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어머니한테 솔직하게 싫은 마음을 표현해 봅니다. 둘째,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열 살까지 키워주신 어머니에 대해 감사하는 겁니다. 제가 없는 얘길 만들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열 살까지 키워주신 건 감사한 일이잖아요. 그러나 내가 원하는 만큼 어머니가 못 해줬기 때문에 섭섭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니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을 때 내가 부담스러우면 사실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어머니 전화를 받으면 사실 제가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관계를 너무 깊이 맺지 말고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떨까요?’

상대를 탓하지 않고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겁니다. 인생에서 나타나는 어떤 문제든지 내가 풀어나가야 합니다. 내 인생이니까요.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져야 결혼생활을 해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의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거예요. 결혼을 했는데 만약 아내의 어떤 말이나 행동에서 어머니가 연상되면 굉장히 격하게 반응이 올라옵니다.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치유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예요.”

“감사합니다.”

이혼하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결혼해서 살아보면 참 같이 못 살 이유도 많죠?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왜 싸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게 인생이에요. 아이는 어른들의 세계를 모르니까 이해가 안 되죠. 자기 원하는 대로 ‘엄마, 아빠가 다 같이 살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인도 커서 결혼을 해 보면 부부가 같이 살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터득하게 됩니다. 부부가 갈등이 있어도 처음엔 아이를 위해서라도 참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못 살겠어서 이혼하더라도 부모의 감정을 아이들에게 전이시켜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이혼을 해도 상대는 아이 아빠고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혼하고 아빠가 아이와 살면서 자꾸 엄마를 비난하면 아이들에게 장기적으로 큰 상처를 주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들이 엄마 욕을 하면 오히려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아이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엄마가 너희 낳고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반대로 엄마하고 살면서 아이가 아빠에 대해 섭섭한 소리를 하면 이렇게 대응하면 어떨까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래도 너희 아빠다. 내가 아빠하고 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살았지 너희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해야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안 주는 거예요. 부모는 어른이니까 성질이 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질이 나면 애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자기가 아이를 보고 싶으면 아이를 서로 가져가려고 싸우고, 자기 살기 바쁘면 서로 아이를 안 가져가려고 난리 피우는 건 부모가 아니에요. 부모라면 정말 아이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보살펴야 해요. 상대가 보살피는 게 아이에게 더 좋다면 내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아이를 위해서 억제를 해야 합니다. 이게 부모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예요. 이혼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아이가 있다면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깊은 상처가 남는다는 것을 어른들이 조금이나마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댓글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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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홍

중도의 길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1-05-23 04:14:21

박서영

말씀한마디 한마디 깊이 세겨듣습니다.

2021-05-22 13:04:30

무위성

남편만 보면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스님 말씀 새기며 내마음 잘 살펴 보겠습니다.

2021-05-21 07: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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