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2 정토대전 회의, 금요 정기법회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면 화가 불같이 올라와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틈틈이 울력을 하며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을 위한 회의를 한 후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해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생방송했습니다.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명상원 맞은 편 살구골에 빈터를 정비하는 일을 마저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 스님이 홀로 울력을 하고 있는데 어제 울력을 같이 했던 행자들이 와서 도왔습니다. 개울에도 잡목이 무성해서 낫으로 모두 베어 크기별로 가지런하게 쌓았습니다.

곧 회의에 참석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서 스님은 더욱더 집중해서 일을 했습니다. 햇살이 뜨겁지 않은 아침인데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땀이 콩죽처럼 흐르네요.”

땀을 닦고 샤워를 한 후 겨우 회의 시간에 늦지 않게 참석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정토대전 편찬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경전 모음집을 만드는 법사님들이 각자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주도 부처님 당시에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전 속에서 발췌해 왔습니다.

먼저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 중 ‘아들을 살리려고 겨자씨를 구하러 다닌 끼사고따미’, ‘깨달은 아난다’의 내용을 보완해 온 원고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보완할 점을 점검하고 새로운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서 묘덕법사님, 무안 미륵사에서 향덕법사님이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해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재주와 신통력이 뛰어났지만 승단을 분열시키고 부처님을 해치려고까지 한 제자 데바닷타에 대한 경전을 함께 독송했습니다. 데바닷타는 승단을 분열시키기 위해 부처님께 다섯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승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숲 속에 거주해야 합니다. 마을에 들어가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탁발을 해야 합니다. 초대에 응한다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분소의를 착용하여야 합니다. 재가자가 제공하는 옷을 착용한다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무 밑에서 지내야 합니다. 지붕 밑으로 간다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물고기나 육고기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물고기나 육고기를 먹는다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이러한 다섯 가지 사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다섯 가지 사항을 사람들에게 알립시다. 우리는 이 다섯 가지 사항으로 수행자의 모임인 상가를 분열시키고, 그 조화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벗들이여, 사람들은 고행을 신뢰할 것입니다.”

데바닷타의 이야기를 읽고 성전 편찬을 함께 하고 있는 실무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 중도를 지켜나가는 방법

“데바닷다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공동체에서 강경론자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공동체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하기 위해 기온이 0도로 내려가도 난방을 안 했습니다. 저는 그런 면이 좋아서 공동체에 입방하기로 했거든요. 요즘은 조금 땀날 정도로 따뜻해도 보일러를 낮추자고 하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온도를 낮추자고 제안하기가 어렵습니다. 데바닷다를 보니 제 모습이 반성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원칙 없이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어떻게 중도를 지켜나가야 할까요?”

“중도를 지키려면 먼저 원칙을 정확히 지켜야 합니다. 계율에 따른 원칙을 지키되, 단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 수 있음을 헤아려야 해요. 체질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추위를 특별히 더 타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원칙만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한 끼 먹는 것이 좋지만 환자나 성장하는 아이는 두 끼를 먹을 수도 있는 것과 같아요. 개인적인 사정을 무시하고 그냥 '한 끼 먹자', '두 끼 먹자' 이렇게만 주장하는 것은 중도가 아닙니다. 온도 설정이든 식사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발우공양할 때 1식 3찬을 기준으로 먹지만 환자가 특별식을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의논해서 더 먹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 원칙이 없이 살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나에게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되 남에게는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12시가 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점심을 후다닥 먹고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12시 30분부터 다시 울력을 했습니다. 점심에는 행자님 다섯 명이 함께 울력을 했습니다. 윗단 정비를 마치고, 아랫단으로 내려와 빈터를 깨끗이 정비했습니다.

“여기는 문경 수련원에서 가장 양지바른 곳이에요. 비닐하우스를 지으면 농사도 잘 될 겁니다.”

딱 한 시간만 울력을 하고 1시 반부터 다시 회의를 하기로 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울력을 하던 스님은 법사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2시가 넘어서 일을 마치고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오후에는 베사카 부인, 분쟁을 했던 코삼비 비구들, 박칼리 비구, 병든 비구, 눈먼 비구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스님으로부터 편집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님은 한결같이 수행적 관점을 강조한 후 기복적인 내용은 가능하면 싣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준비해온 자료를 다 발표하지 못했지만 4시가 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짐을 싸서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잘 났습니다. 이제 농사를 시작하는 봄이 되었고, 두북 수련원에도 방송 시설이 완전히 갖추어져서 내일부터는 주로 두북 수련원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어제와 오늘은 틈틈이 울력을 했더니 몸이 좀 힘드네요.”

차를 탄 스님은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두 시간이 지나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운동장에는 벚꽃이 만개해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 (웃음)

두북 공동체 성원들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는 창고뿐만 아니라 강당과 복도에도 온갖 짐들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법당을 철거할 때 나온 짐들이 종류별로 구분 되어 재활용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새로 마련한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처음으로 생방송을 했습니다. 오늘은 900여 명의 저녁반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죠?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쌀쌀했습니다만, 어제는 작업을 하는데 여름처럼 너무 더웠어요. 이렇게 날씨가 덥다 보니 문경은 추운 곳인데도 벚꽃이 완전히 활짝 폈습니다.

두북 수련원 새로운 방송실에서 하는 첫 번째 법회

저는 지금 경주 근교에 있는 두북 수련원에 와 있습니다. 방송실을 꾸미고 나서 처음으로 하는 생방송입니다. 조명이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교실 한 칸에 카메라 한 대만 세워 놓고 하니까 조명도 어둡고 잡음도 심한 문제가 있었는데, 몇몇 분들이 보시를 해주시고 재활용품을 이용해서 방송실을 완전히 새로 꾸몄습니다. 오늘이 첫 개시를 하는 날입니다.” (웃음)

이어서 봄소식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울주군 작천정과 두북 수련원 인근 산에서 찍은 꽃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주에 보여준 꽃 사진보다 꽃이 더욱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날마다 깊어가는 봄소식을 나눈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화상으로 연결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 중 한 분은 70대 남자분이었는데, 은퇴를 하게 되면 아내와의 갈등이 고민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스님은 은퇴하고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면 화가 불같이 올라와요

“저는 올해 나이가 70세입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개근으로 졸업하고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화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은퇴하면 아내와 갈등이 심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아내 목소리가 커지면 화가 불같이 올라와요. 화를 내고 나면 몇 날 며칠 동안 괴롭습니다.”

“이제 은퇴하시려나 봐요. 옛날에는 남자를 집 밖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바깥양반’이라고 부르고, 여자는 집 안에 있다고 해서 ‘아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역에는 동네 이름이 ‘아내’와 ‘바대’라는 마을이 있어요. ‘아내’는 산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바대’는 산 바깥쪽에 있다고 ‘밖에’라는 발음이 변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순우리말을 다 한문으로 바꾸면서 지금은 아내 마을은 ‘내와’, 바대 마을은 ‘외와’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말 이름이 훨씬 좋죠.

이처럼 예전에 남자는 농사짓고 바깥일을 주로 했습니다. 여자는 주로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를 키우는 집안일을 도맡아 했어요.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남편을 위해 식사 준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남편은 떡 하니 앉아서 대접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요.

시대가 변하면서 여자들도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관습이 남아서 여자들은 안팎으로 일을 해야 하고, 남자들은 바깥일만 하려고 하니까, 결국 여성들이 힘들어지는 거예요. 50대 이상의 남성들의 경우 어릴 때 가부장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안일이 익숙하지 않죠. 이 상황에서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일까지 해야 하니까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보, 오늘부터 내가 앞치마를 두를게요

그러나 20대와 30대 젊은이들은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갈등이 적습니다. 그에 비해 40대, 50대, 60대는 갈등이 심해요. 그래서 황혼 이혼이 많아지는 겁니다. 남편이 직장을 다닐 때는 아내가 온갖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기분은 나쁘지만 남편이 해달라는 대로 수발을 다 들어준 거죠. 그런데 퇴직을 했는데도 온갖 집안일을 시키니까 아내로서는 목소리가 커지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퇴직하는 날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여보, 그동안 살림하느라 힘들었죠? 사실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직장 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도와주지 못해서 늘 미안했어요. 이제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오늘부터 내가 앞치마 두르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할게요. 내가 커피도 맛있게 끓여 줄게요. 30년을 얻어먹었으니 3년은 내가 전적으로 할게요.’

남편이 이런 마음을 내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완전히 신혼생활처럼 새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던 아내라도 섭섭했던 과거는 지워지고 ‘이 남자와 결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습관대로 소파에 떡 앉아서 아내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남편이 직장 다닐 때는 봐줬지만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그러면 아내가 속으로 ‘너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럽니다. 그러다가 결국 ‘네가 해서 먹어!’ 하고 큰 소리가 나는 거예요. 남편은 퇴직하고 나서 안 그래도 의기소침해 있는데 아내가 화를 내니까 ‘내가 직장 안 다닌다고 마누라까지 나를 무시하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갈등이 깊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황혼 이혼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남자들은 퇴직하는 날에 앞치마를 딱 두르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집안일은 내가 할게. 당신은 쉬어’

이런 자세라면 화날 일도 없고 갈등이 생길 일도 없습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아내를 탓하지 말고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딱 엎드려 절하세요. 딱 3년만 아침에 절하면서 내 잘못을 참회하면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참으면서 하면 안 됩니다.

‘여보! 정말 고생이 많았소, 당신이 30년 동안 수발을 들어줬으니 내가 그 10분의 1만이라도 은혜를 갚을게’

이렇게 마음을 내야 해요. 그러면 살면서도 행복하고, 죽을 때도 후회가 없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표정이 안 밝아지네요. 제 말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요. 괜히 물었다 싶어요?”

“아닙니다. 제가 아내에게 ‘퇴직하면 배낭 메고 봉사하러 다니겠다’라고 말했더니 아내는 ‘그럴 거면 차라리 직장을 1년 더 다녀라’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네, 그러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으로 아껴서 삽시다. 내가 집안일을 다 할게요.’

질문자가 집안일을 딱 맡으면 아내가 돈 벌어오라는 소리도 안 하고, 법문 듣는다고 잔소리도 안 할 거예요. 그러니 봉사를 하러 가더라도 3년 동안은 집안일을 먼저 한 다음에 봉사를 하러 가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밝아진 할아버지의 얼굴 표정에 방청객도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온라인 법회로 바뀌고 법당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지니 법회에 잘 집중이 안 됩니다. 어떻게 온라인에서도 수행자의 자세를 지킬 수 있을까요?
  • 제가 SNS에 찬불가를 올리는 등 제 종교가 불교라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불편해하는 분이 있습니다. 타 종교인들도 적극적으로 자기 종교를 드러내던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8년 전 이혼하고 남편이 당시 3살 된 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들을 주말에만 만나왔는데 최근 남편이 저에게 아내의 역할을 원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친인척도 없고 언니 한 명이 있는데 연락을 안 하고 지냅니다.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고 외로워요.
  • 5년가량 몸이 여기저기 아파 대학병원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보왕삼매론 중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은퇴 후 아내와의 갈등을 질문한 거사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겠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면 몇 년간 아내한테 점수를 좀 따놓은 다음에 정토회를 찾아가서 봉사도 하겠습니다. 저는 농사도 잘할 줄 압니다.”

스님은 아내에게 빚을 갚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네, 수도권에 살고 계시니까 정토사회문화회관에 와서 봉사하셔도 됩니다. 앞으로 여주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그리로 오셔도 되고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퇴직하면 앞치마부터 두른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네. 아내에게 점수부터 먼저 따놓고 가겠습니다.”

“점수 따려는 마음으로 하면 안 돼요. 빚 갚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빚 갚는 마음이어야 내가 앞치마 두르고 일할 때 아내가 욕을 하더라도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와요. 점수 따려는 마음으로 하면 아내가 욕을 했을 때 기분이 나빠서 앞치마를 내던지게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몸이 아프다고 이야기한 마지막 질문자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건강이 안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서 긍정적으로 잘 살아가겠습니다.”

스님은 덤으로 산다는 마음을 가져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비실비실 했지만 아직도 살고 있어요. 저는 단명할 것이라고 해서 40세 전에 죽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항상 ‘덤으로 산다’ 이렇게 생각하면 겁날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루하루가 덤이라고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방청객들의 소감도 들으려고 했으나 법회를 마칠 시간이 다 되어서 다음 주를 기약하며 방송을 마쳤습니다.

모레 열리는 전국대의원회의를 끝으로 대의원 소임을 마치게 되는 대의원들에게 ‘니와노 평화상 수상 기념 자료집’을 선물로 주기로 했습니다. 자료집에 스님이 직접 사인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행복시민캠프에 온라인 생방송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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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경

감명깊게 잘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1-04-08 22:58:50

이수정

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4-08 06:24:06

머루랑

뭔가를 할 때... 해주고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빚갚으며 숙이는 마음이라야 하는군요. 관점을 바꿀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2021-04-07 21: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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