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4.1.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
“참지 말고 알아차리기”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정토대전 사상팀과 회의를 하고,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결사행자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문경수련원의 새벽 하늘에는 둥근달이 떠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문경수련원에는 곳곳에 복사꽃과 벚꽃이 꽃망울을 하나씩 터뜨리고 있습니다.




오전 8시 30분에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오온(五蘊)과 삼법인에 대해서 공부해 온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먼저 향광명 법사님이 오온이 의미하는 바를 조사한 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오온설에서는 일체가 오온이라고 설명합니다. ‘나’는 다섯 가지 쌓임에 불과할 뿐 ‘나’라고 할 어떤 것이 없고, 다만 그때 보는 작용이 있고, 느끼는 작용이 있고, 생각하는 작용이 있고, 의지의 작용이 있고, 분별의 작용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용들이 모아져 “나”가 있다는 것이 오온설입니다...” (중략)

이어서 여광 법사님이 삼법인이 의미하는 바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경전에 전형적으로 나오는 삼법인은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입니다. 이것은 모두 한문으로 아(我)로 번역했지만 삼법인에 있는 무아(anatta, 무아)의 ‘아’는 다른 개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문으로는 ‘아’로 번역하기 때문에 혼동이 되지만 팔리어 원문은 분명히 다르다는 겁니다. 이것은 불교경전 번역사 최대 오역이라는 주장인데요. 삼법인의 아(我)는 신의 분신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힌두 철학과 불교 철학의 차이가 분명해져서 불교의 정체성이 선명해진다는 거죠....”

오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각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토론의 끝 무렵 스님은 오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마음을 기준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원리

“경전에서는 ‘나’라는 것이 다섯 가지 쌓임, 즉 오온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온에 대한 집착을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색온(色蘊)은 그냥 바깥에 있는 나무가 아니라, 내가 지금 나무를 보았을 때 뇌에 그림으로 찍힌 나무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체를 봤을 때 우리의 뇌에 찍히는 첫 번째 사진이 색온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방금 전에 본 나무를 다시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온(想蘊)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이것은 책이다’, ‘저 사람은 누구다’ 하고 바깥 물체를 인지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깥 세계를 인지하는 것 자체가 색온입니다. 이때 우리는 바깥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주관을 떠난 객관은 사실 존재할 수가 없어요. 소리나 냄새, 맛, 접촉으로 인지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인지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객관은 아닙니다. 꿈속에서도 물건을 만져서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만진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바깥 물체가 나에게 인식되는 것 자체가 색온입니다.

색온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수온(受蘊), 즉 느낌이 일어납니다. 지금 기분 좋은 느낌이 일어나는 것이 수온(受蘊)이라면, 방금 전에 기분이 좋았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상온(想蘊)입니다. 지금 나무를 보고 인지하는 것이 색온(色蘊)이라면, 방금 전에 본 나무를 기억하는 것은 상온(想蘊)입니다. 지금 어떤 것을 의도하는 것이 행온(行蘊)이라면, 어제 내가 어떤 것을 의도했었다고 하는 것은 상온(想蘊)입니다.

경험에 기초해서 살펴보기

항상 지금 일어나는 자기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오온에서는 어떻게 분류가 되는지 경험적으로 비교하면서 오온이 뜻하는 바를 살펴봐야 해요. 즉, 한문이나 빨리어로 된 전통적인 교리와 현재 우리의 마음이 일어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봐야 합니다.

현재에만 초점을 맞추면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관찰하고 정의를 내리면 되지 전통적인 교리를 공부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나 정토대전에는 전통적인 불교와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서 지금의 현실과 전통적인 불교를 연결해서 교리를 정리해야 합니다. 만약 현실이 전통적인 분류와 너무 안 맞는다면, 정토대전에는 현실적인 분류를 중심에 놓고 전통적인 것을 설명하면 됩니다. 전통적인 분류가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면, 정토대전에는 전통적인 분류를 중심에 놓고 약간의 예외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겠죠.

넘어지면 넘어진 줄 아는 것이 진실입니다

부처님께서 오온을 설하신 이유가 사람들이 나(我)의 영원성에 몰두해 있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였다면, 즉 나는 신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면,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세세하게 그 용어를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공을 설명할 때도 ‘모든 존재의 본성이 공(空)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공이 텅 비었다 이렇게 설명되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空)이란 용어는 ‘이것이다’ 하는 단정을 깨트리기 위해서 나온 용어예요.

‘네 견해는 네가 볼 때 그런 것이고, 관점을 달리 보면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즉, 이것이라 단정할 수도 없고, 저것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인연에 따라 이것이 되기도 하고 저것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가 공(空)입니다. 공을 이렇게 설명하면, 공을 더 이상 절대화시켜서 공 자체를 개념적인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넘어졌으면 넘어졌다고 아는 것이 진실이지, 안 넘어지는 것이 진실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넘어진 줄 아는 것이 진실이고, 넘어졌는데 자기가 넘어진 줄 모르는 것이 거짓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실이 따로 또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점이 철학자들과 소통할 때 제일 어려운 점이에요. 따로 진실이 없다고 얘기하면 진실을 찾아 공부하거나 절대성을 추구하던 사람은 허무해지거든요. ‘별 거 아니네’ 이렇게 결론이 나니까요. 그런데 원래 인생이 별 거 아니에요.”

스님의 설명에 이어서 법사님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오온 십이처 십팔계가 나오게 된 이유도 결국 ‘아(我)’가 영원하고 실체가 있다고 믿던 당시 사람들에게 부처님께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것이 왜 사실이 아닌지 조목조목 밝히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스님도 웃으며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글자로 쓰여지면 더 그렇죠. 부처님이 오죽했으면 ‘여래의 손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진리는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겠어요. 항상 사람들이 뭔가 비법을 찾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거거든요.” (웃음)

다시 법사님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에게 고뇌를 일으키는 제일 큰 오류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네 발밑을 봐라’, ‘지금 네 존재를 봐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저희는 계속 절대화된 진리를 찾으니까요. 스님께서 설명해 주신대로, 넘어지면 넘어진 줄 알고 일어나서 계속 가면 되고, 고장 난 줄 알았으면 고치든지 버리든지 하면 될 일을 저희는 무익한 논쟁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가, 행복한가?’ 이것이 중요한데도 사고의 오류에 빠져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스님은 인연이 무엇을 뜻하는지 강조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옥상에서 간판이 떨어져서 머리에 맞았으면 ‘왜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맞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스님에게 물으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 이렇게 되잖아요. 그러나 과학적으로 인연을 살펴보면, 바람이 불고 간판이 흔들리다가 그 인연으로 간판이 떨어졌고, 내가 그 시간에 그 밑을 지나가다가 맞은 것뿐이거든요. 그게 인연이라는 겁니다. 어떤 다른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이에요.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이 안 다치게 간판을 고치든지, 환경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배우고 깨달아 나가야 하는데, 간판은 고치지 않고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러니 보시를 해야 이런 일이 안 생긴다’ 이런 얘기만 하잖아요.”

“그러면 계속 같은 곳에서 간판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계속 다치겠네요.” (웃음)

“그러면 결국 누가 돈을 벌게 될까요?” (웃음)

스님의 질문에 법사님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의 얘기를 듣다 보니 붓다의 가르침은 정말 위대하구나 싶습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명확한 가르침인데, 저희들은 완전히 생각 속에 빠져 사니까요. ‘어떻게 하면 현실을 딱 직시해서 항상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이 질문자를 딱 깨우치듯이요.”

다음은 상(相)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상(相)이 뜻하는 바를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주관을 객관화하는 것을 상(相)이라고 표현합니다. 오취온에서 취(取)는 집착을 뜻하거든요. 집착 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왜 집착할까요? 객관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집착합니다. 주관이라는 것을 알면 집착하지 않을 텐데, 객관이라고 믿기 때문에 집착하는 거예요. 집착하고 싶어서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이라고 믿기 때문에 주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집착을 버리는 방법

경전에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더러운 것이 없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더러운 것이 있는데 왜 없다고 하냐?’라고 반문합니다. ‘더러운 것이 있는데, 있는 것을 없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느냐?’라고 문제 제기도 합니다. 옳고 그른 것이 없다고 하면 ‘옳은데 왜 틀렸다고 하냐?’, ‘옳은 것도 옳지 않다고 해야 되냐?’, ‘수행이 거짓말하는 것이냐?’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법문을 들을 때는 집착을 놓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현실에서 집착이 안 놓아지는 겁니다. 그 이유는 주관이 이미 객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이 주관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본질을 꿰뚫어 알 수 있습니다.

돌멩이에 금을 칠해서 ‘이것이 금이다’라고 하면서 ‘수행자는 금이 필요 없으니 버려라’ 이렇게 말하고 땅에 묻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30년이 지난 뒤에도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합니다.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금을 칼로 딱 그어보고 도금한 것인 줄 알아 금이 아닌 줄 알아버리면, 땅에 묻어 놓고 아무리 기억하려고 노력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립니다. 어디에 묻었다고 적어놓은 것을 봐야 어디에 묻었는지 알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본질을 꿰뚫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아(無我), 무상(無常), 공(空) 이런 원리도 핵심은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서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질을 꿰뚫는 거예요. ‘뭘 먹고 싶다’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먹고 싶을 때 ‘꼭 먹어야 된다’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먹고 싶어도 집착하지 않으면, 먹고 싶을 뿐이지 괴로움은 안 생깁니다. 먹고 싶다는 욕구에 집착하기 때문에 못 먹게 되면 괴로움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것을 취온(取蘊)이라고 합니다. 12연기에도 취(取)가 나옵니다. 왜 집착을 할까요? 금강경에서는 ‘상(相)’을 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相)이라고 표현할 때는 객관화시켰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객관화시켰기 때문에 자동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객관화시켰다는 것은 진실이라는 얘기거든요.

참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아차릴 뿐

맛있는 냄새가 나면 먹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저 음식이 진짜 맛있는 음식이다’, ‘좋은 냄새다’ 이렇게 객관화시켰기 때문에 먹고 싶은 거예요. ‘저 꽃이 아름답다’, ‘ 저 사람이 예쁘다’ 하는 생각을 객관화시키기 때문에 자기 욕구대로 취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런 생각은 사실 그 대상과 아무 관계가 없고 단지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면 꼭 그 대상을 취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반응이니까 반응만 보고 있으면 됩니다.

‘이 냄새는 나한테 좋게 반응하는구나’

‘저 사람은 이 냄새가 좋다는데 나는 안 좋게 반응하는구나. 업식이 달라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차리는 것은 참는 것과 성격이 다릅니다. 참는 것은 먹고 싶은데 안 먹으려고 노력하는 애씀이고, 알아차림은 다만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내가 주시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후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제안으로 점심을 먹기 전에 30분 간 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명상원 맞은편에 살구골을 좀 정비하면 좋겠어요. 어제 오후 내내 울력을 했는데 아직 마무리를 못했어요. 법사님들이 좀 도와주세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살구골에 모였습니다. 잡목이 무성했는데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오늘은 잡목을 크기 별로 분류해서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두는 일을 했습니다.

베어 놓은 나뭇가지를 개미떼처럼 줄을 지어 계속 날랐습니다. 어느새 한쪽 편에 잡목들이 가지런히 쌓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나머지는 내일 경전팀 법사님들과 같이 울력을 해야겠어요.”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후에는 사회사상팀에서 준비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 파견된 향훈 법사님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인종 차별과 이에 대한 불교의 해법’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인종차별의 원인과 그 역사, 불교의 평등관, 차별을 부정하는 경전 속 부처님의 말씀 등에 대해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에 대해 의견을 덧붙인 후 오후 3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열리는 전국대의원회의를 앞두고, 온라인 전환에 맞춰 전국법사단은 어떻게 조직 개편을 하고, 인사 배치를 할지에 대해 2시간 동안 회의를 했습니다. 서울, 인도, 필리핀 등 각자 머무는 처소에서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여기서 의논한 내용을 오늘 저녁에 결사행자회의에 다시 보고하고 의견을 수렴합시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결사행자회의를 했습니다. 60여 명의 결사행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삼귀의 수행문을 읽은 후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임시 전국대의원회의를 앞두고 만일준비위원회가 보고할 문서를 다 함께 점검했습니다. 총 10개의 안건에 대해 만준위 위원장이 발표하고, 법사단장의 진행으로 각각 찬반 표결을 진행했습니다.

“이 안건을 전국대의원회의에 상정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찬성하시는 분은 손들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이의가 있는 사람은 질문을 하고, 중간중간에 스님도 질문도 하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안건으로 올라온 서류 뭉치만 10cm가 넘게 쌓였습니다. 그만큼 온라인 조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들이 필요했습니다.

3시간 동안의 회의 결과 준비한 모든 안건을 전국대의원회의에 상정하기로 했습니다. 4월 10일에 온라인 선거가 시행되면 9월까지 온라인정토회 임시 운영 기간이 시작됩니다. 이제 전국대의원회의만 남겨두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결사행자회의를 끝마쳤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정토대전 경전팀과 회의를 한 후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1

0/200

박미진

감사합니다.

2021-05-04 02:32:08

김명진

🙏🕯🕯🕯🕯

2021-04-27 15:04:19

청정화

감사합니다

2021-04-07 20:55:06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