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5 운문사 초청 강의, 수행 법회
“출가를 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출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하고 수행 법회를 한 후 운문사 초청 강의에 다녀왔습니다. 저녁에는 안거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스님은 기도를 마치자마자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행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스님은 가지 두 박스를 다 따놓았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호박 옆에 역시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아주고 스님은 깻잎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깻잎이 얼굴만 하네!”

스님은 톡톡톡 빠르게 깻잎을 땄습니다.




금세 깻잎 한 아름을 땄습니다.


깻잎을 다 따고 행자들이 예초기를 돌리고 있는 저수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저수지에 가보겠습니다.”

밭에 남아있는 행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윗밭을 나오는데 문 옆으로 수북이 자란 풀이 눈에 띄었습니다.

“본 김에 해야겠다.”

스님은 어느새 연장 가방을 놓고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덩굴을 낫으로 쓱쓱 베고 있었습니다.


오르막길을 따라 낫질을 하니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풀을 다 베고 스님은 허리를 폈습니다.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오늘은 좀 쉬운 일을 하려고 했더니... 덩굴이랑 원수를 졌나 봐요.”

스님은 웃으며 울타리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발밑이 훤했습니다.

산 윗밭을 내려오다가 대나무 숲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마당 청소를 하기 어렵다고 대빗자루가 필요하다는 행자가 있었는데...”

스님은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대나무 가지를 잎이 달린 채 한 뭉치 꺾어왔습니다.


“대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어줘야겠어요.”

대나무 가지 한 뭉치를 어깨에 메고 와 일단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 널어두었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전 10시부터 수행법회를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8월 들어서 첫 번째로 맞는 수행 법회 날입니다.”

지난주에는 두북특별위원회에서 정토회의 미래 방향에 대해 연구한 여덟 가지 주제에 대해 간략하게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 후 모둠별로 토론 시간을 가진 결과 많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오늘 수행 법회는 전국에서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수십 개의 질문이 올라왔지만, 그중에서 7명이 선정되어 스님과 화상으로 연결하여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 개원 기념 100일 법문 프로그램 참석 방법, 특히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참석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불교 의식이 점점 간소화된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불교의 정체성이 훼손될까 걱정스럽습니다.
  • 내 방을 법당으로 만들고 나니 마음이 더 느슨해집니다. 옷차림, 준비물,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 60세 이상인 분들은 컴퓨터 사용이 서툴고 어려운데, 온라인으로 모든 사업이 이루어지면 더더욱 활동에 제약이 많을 것 같아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 수행이 온라인으로 가능한지, 정서적인 부분에 대해서 온라인 방식은 약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요?
  • 정회원은 불교대학과 경전반의 조장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하니까 부담이 많이 됩니다.
  • 요즘 투기에 가까운 부동산 갭투자에 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 되는 것 같은 마음도 듭니다. 스님은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고 나니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법회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아침에 딴 가지와 깻잎을 싣고 운문사로 출발했습니다.

일주일 전에 운문사에서 특강을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강의를 마치며 스님은 ‘다음번에 시간을 다시 내겠다’라고 했는데, 바로 일주일 후에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운문사에 도착해 먼저 가지와 깻잎, 고춧가루를 전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저희도 드릴 게 있어요.”

운문사 스님들도 직접 농사지은 단호박, 상추, 아욱 등을 주었습니다.

“우리 학인들이 농사를 잘 짓나 정토회 행자들이 농사를 잘 짓나 봐야겠네요.”

“고마워요. 선물을 가져왔더니 물물교환을 해 가네요.”

법회를 시작하기 전까지 운문사 종무소에 들러 주지스님과 잠깐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 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학인들이 방학하기 전에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주에 시간이 빠듯해서 이번 주는 강의 시간을 30분 앞당겨 1시에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1시가 가까워지자 법회를 알리는 목탁이 세 번 울렸습니다. 스님도 강연 장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난주에 의자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더니 조는 학인들이 있어서 이번에는 좌식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강연 장소에 들어서니 학인 스님들이 빼곡하게 앉아있었습니다. 학인 스님들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저희 운문사 대중이 이번 여름에 운수대통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봬도 큰 경행으로 알고 있는 큰스님을 벌써 두 번째 모시게 되었습니다. 법륜스님,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큰 박수와 함께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질문지를 두 장 받았는데요. 제가 시간 조절을 못해서 다 소화를 못했습니다. 주지 스님과 율주 스님은 그 날 밤새도록 다 해주고 가라고 했는데 제가 그 뒤에 바로 일정이 있어서 코로나 이후 사회변화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도 바쁘실 텐데 곧 방학이라고 해서 오늘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학인 스님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점심 먹고 바로 앉아서 강의를 들으니까 졸릴 거예요. 학인의 특징은 원래 두 가지입니다. 앉으면 졸고, 밥을 많이 먹어요. 정토회에서도 행자교육을 해보면 늘 머슴밥을 먹고 앉기만 하면 졸고 그래요. 졸린다는 건 잠이 부족하거나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야기예요. 절대 흉이 아니니까 졸리면 조세요.” (모두 웃음)

학인 스님들은 졸아도 괜찮다는 스님의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웃음과 함께 졸음도 날아간 듯했습니다. 2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강의 내내 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 주제는 ‘수행’이었습니다. 학인 스님들은 강원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궁금했던 점을 솔직하게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출가를 했지만 마음은 아직 출가하지 못했다’라며 질문을 했습니다.

출가를 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출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질문에 앞서서, 지난주에 가져다주신 가지를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또 가져왔어요. 오늘 아침 6시에 밭에 나가 깻잎도 한 소쿠리 따오고 가지도 따왔으니까 먹고 힘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이어서 질문하겠습니다. 몸은 출가했으나 마음은 아직 출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 행동, 마음자세, 근본 바탕 자체가 세속적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직 부처님의 법에 진심으로 귀의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 미혹함과 무지에서 한 발짝 벗어나 부처님의 법에 귀의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부처가 다 된 줄 아나 봐요. (모두 웃음)

우리가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한은 어쩔 수 없어요. 부처님도 음식을 잘못 드시고 편찮으셨던 것처럼, 우리는 몸뚱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피곤하면 졸리기도 하고, 병이 나면 아프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욕망도 있어요.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습관이 일으키는 반응이에요. ‘까르마(karma)’라는 말을 들어봤죠? 그걸 우리말로 번역하면 뭘까요?”

“업이요.”

“업식(業識)이라고 해요. 그냥 ‘업’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식’ 자가 붙어야 해요. 한 마디로 종자, 즉 씨앗이라는 뜻입니다. 업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인도에서는 업식이 안 바뀐다고 보았어요. 바뀔 것 같다가도 나중에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똑같은 것을 보고 ‘아, 업식은 이 사람이 전생으로부터 받아서 온 것이다’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인도에서 쓰는 ‘까르마’와 불교에서 쓰는 ‘까르마’는 뜻이 달라요. 인도에서 까르마는 운명 또는 숙명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는 이걸 ‘천성’이라고 해요. 태어날 때 사주팔자처럼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해서 천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도든 한국이든 표현이야 어떻든 모두 정해져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전생에 정해졌든, 하느님이 정해주었든, 생년월일로 정해졌든, 정해져 있는 거예요. 즉 변화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옛날 사람이 바보라서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에요. 현실을 관찰해보면 진짜 잘 안 변하잖아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다’ 이런 말이 생긴 것도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까르마가 안 변하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의 위대함은 이걸 계속 탐구를 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탐구한 끝에 ‘까르마’의 개념을 바꾸신 거예요. 인도 사람이 쓰는 ‘까르마’는 운명 혹은 숙명이라는 개념이라면, 부처님은 같은 용어를 써도 뜻이 완전히 달랐어요. ‘이것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소멸될 수 있는 겁니다. 거기서 나온 말이 ‘제행은 무상하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까르마는 변화하는 것이다.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소멸될 수도 있다’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정진의 핵심은 꾸준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노력하면 까르마가 쉽게 소멸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얼마나 안 변하면 천성이라는 이름을 붙였겠어요?

까르마는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은 변화시킬 수 없다고 봤기에 운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처님은 변화할 수 있다고 알려 주셨어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거예요. 가능성이 열렸어요. 그러나 그 변화가 쉽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변화의 가능성은 있지만, 쉬운 것은 결코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꾸준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진을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거예요. 까르마를 변화시키려면 꾸준히 지속적으로 정진해야 변화가 일어나지, 잠깐 동안 노력한다고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이것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는 말입니다. 낙숫물이 떨어지는 자리에 괴어놓은 돌을 죽을 때까지 지켜본다고 해도 돌이 뚫어질까요, 안 뚫어질까요?”

“안 뚫어져요.” (모두 웃음)

“안 뚫어지죠? 그러면 ‘에이, 물 갖고 어떻게 바위를 뚫어. 불가능해!’ 이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계곡에 가보면 물이 돌을 뚫어놓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진해서 까르마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낙숫물이 떨어져서 바위를 뚫는 것만큼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낙숫물이 바위를 뚫을 수 있을 만큼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진의 핵심은 꾸준함입니다. 그런데 꾸준히 정진하기가 쉽지 않죠. 대부분 욕심으로 정진을 합니다. 잠깐 노력하고선 결과가 좋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명상을 할 때도 계속 받게 되는 질문이 이런 내용입니다.

‘명상을 오래 했는데도 왜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요?’

그러면 저는 ‘그건 욕심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업식을 쌓을 때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놓고, 업식을 없앨 때는 단박에 없애려고 해요. 그래서 선(禪)에서 말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개념은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꿈을 탁 깨면 된다고 말할 때는 이 말이 아주 좋은 말이지만, 꾸준히 해야 하는 정진을 게을리하게 만드는 요소도 있습니다. ‘탁 깨쳐버리면 끝난다’ 이렇게 잘못된 수행관을 배우게 되면, 배운 내용과 현실이 서로 맞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 꾸준히 정진하셨습니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마지막 제자인 수바드라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수바드라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장황한 질문을 하니까 ‘나는 출가한 지 51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왔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부처님은 출가한 이래 51년 동안 한결같이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좌절을 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정진하는 사람은 ‘몇 년 만에 확 깨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선방에서도 스님들이 욕심으로 수행을 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방에서 20년간 정진했는데도 못 깨치면 다리 뻗고 울어요.

‘아, 내가 20년 정진해서 깨치지도 못했구나. 이럴 바에 여기 있을 이유가 뭐 있나? 그냥 나가서 살면 되지.’

이렇게 후회를 하게 되는 이유는 잘못된 수행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이런 얘기와 똑같습니다.

‘내가 20년이나 장사를 했는데 아직도 돈을 못 벌었다.’
‘내가 20년이나 정치를 했는데 아직도 국회의원을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깨침이나 수행이라는 것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거예요. 돈 대신 ‘ㄴ’ 자 하나만 뗀 도를 구하기 때문에 뜻대로 안 되면 좌절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욕심이나 욕망을 내려놓는 게 수행이에요.

지금 여러분은 수행을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지치거나 힘들고, 잘 안 되면 좌절하고, 좀 된다 싶으면 막 기고만장해서 교만해집니다. ‘내가 승려다!’ 이런 상이 생기는 이유도 욕심으로 수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해요. 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꾸준히 해야 해요.

‘변하기 어려운 것은 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극복하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고 꾸준히 해나가면 괜찮습니다. 안 되면 또 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돼요. 놓치면 다시 잡으면 됩니다. ‘화두가 안 잡혀서 힘들어’ 이런 말이 왜 필요해요?

꾸준히 연습을 해나가면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지난 뒤에 돌아보면 출발할 때보다는 많이 와 있어요. 그러나 아직도 목표 지점까지는 한참 멀었어요. 그러니 수행자는 목표를 자각하고 안주하지 말아야 해요. ‘이만하면 됐지!’ 이런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목표에 비해서는 항상 부족하니까요. 그러나 수행자는 ‘나는 안 돼!’ 이런 소리도 하면 안 돼요. 항상 출발점을 돌아보면 그보다는 한참 와 있잖아요. ‘그래도 제법 왔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머리를 깎았다고 욕심이 없어질까요?

질문자는 머리를 확 깎고 출가를 확 해버리면 욕심이 다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꿈도 야무지십니다. 그런데 머리털을 깎았다고 우리의 까르마가 없어질까요? 그러면 이발소만 다녀오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또 옷을 이렇게 승복으로 갈아입었다고 까르마가 없어질까요? 아니에요. 이름을 스님이라고 붙였다고 까르마가 없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욕심으로 일을 합니다. 어떤 욕심이 생기면 그 욕심을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괴로움에 빠집니다. 반면에 출가한 승려는 일단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머리도 깎아보고 옷도 갈아입어본 거예요. 욕심은 내려놓을 대상이라는 사실을 일단은 알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기에 그만큼 유리합니다. 욕망을 합리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거죠. 욕망은 내려놓아야 할 대상으로 보니까요. 다만 정말로 욕망이 내려놓아지느냐 하는 것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옷 갈아입고 머리 깎는다고 욕망이 내려놓아지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항상 자기를 살펴봐야 해요. 세속적 욕심이 일어나면 그걸 합리화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자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 나는 아직 출가할 자격이 없어. 출가해도 이런 욕심이 계속 일어나는데 내가 승려라고 할 수 있나?’

이렇게 자책을 하게 되는 이유는 질문자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심이 일어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앉으면 졸리는 게 당연하고, 학인 시절에는 밥을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파요. 신기하게도 단체 생활을 하면 대부분이 그래요. (모두 웃음)

이것을 합리화해서도 안 되고, 이것을 부정시해도 안 돼요. 이것을 부정시하면 금욕주의자가 돼서 늘 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합리화하면 세속에 물들어버립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현실을 인정하되 합리화하지도 마세요.

‘내가 아직 부족하니까 이런 것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극복의 대상이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졸리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졸릴 때는 ‘아, 졸리는구나’ 하고 졸리는 것을 그대로 알아차리세요. 그러나 졸린다고 해서 자 버리면 안 됩니다. 화두를 놓치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화두를 참구 하고, 또 놓치면 다시 참구 해야죠. 호흡관을 할 때도 호흡을 놓치면 다시 호흡을 알아차리고, 놓치면 또 알아차리고, 이렇게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한 시간 내내 잘 안 됐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욕심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에이, 이럴 바에야 드러누워서 자 버리자’ 하는 건 포기예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공이 들어가도 던지고, 공이 안 들어가도 던지듯이

농구 선수가 골 넣는 연습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혼자서 타닥거리며 공을 치다가 탁 던집니다. 공이 들어가면 ‘아, 들어갔다!’ 하고 연습을 그만두지 않고 다시 던지잖아요. 반대로, 공을 던졌는데 안 들어가면, 포기합니까, 다시 던집니까?”

“다시 던져요.” (모두 웃음)

“그래요. 다시 던지잖아요. 공이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공이 안 들어가도 다시 던지는 것이 연습입니다. 그런 것처럼 화두가 들려도 계속 들고, 화두를 놓쳐도 또 드는 거예요. 수행자는 ‘화두가 들렸다’, ‘화두를 놓쳤다’, ‘호흡을 알아차렸다’, ‘호흡을 놓쳤다’ 이런 것 갖고 논하면 안 돼요. 목표는 공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이 잘 안 들어가는 게 현실이에요. 그러나 꾸준히 연습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전에는 열 번 던져서 한 번도 안 들어갔는데, 이제는 열 번 던지면 한 번은 들어가고, 거기서 조금 더 연습하면 열 번 던져서 두 번은 들어가요. 그러나 10년을 연습했다 해도 열 번 던지면 열 번 다 들어가진 않습니다. 한 번은 안 들어가요. 그럴 때 ‘10년이나 연습했는데 아직도 다 안 들어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열 번 중에 아홉 번 들어갈 정도로 많이 진척되었구나.’

관점을 이렇게 잡고 공부를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벌써부터 자신의 수준을 그렇게 높게 잡으면 안 돼요. (모두 웃음)

자꾸 욕심을 내게 되면 결국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 보다’ 하고 자기한테 실망하게 됩니다. 질문이 더 있으면 하세요.”

“네, 충분한 답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부처님은 세계가 모두 한 꽃이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고 가르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보다 나의 괴로움이 더 우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럴 때 크게 마음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걸림 없이 살기 위해서 경계가 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 봉사는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하는 것인지,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계속 내려고 노력하면서 행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강원 생활을 하면서 좋고 싫은 사람과 부딪힐 때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조복 받을 수 있을까요?
  • 스님께서는 많은 활동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곤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하시나요?
  • 어떤 사안에 대해 다수와 소수의 의견으로 나뉠 때 스님께서는 어떻게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시나요?
  • 수행할 때 스스로에게 칼날을 세우려다 보면 자칫 그 칼날이 밖으로 향하기 쉽고, 밖으로 부드럽게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무뎌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바로 세우면서 밖으로는 향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 경전공부나 기도시간뿐 아니라 일상이 모두 공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토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어떻게 마음공부의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나요?

학인 스님들은 진지하게 묻고 스님은 모든 지식과 경험을 탈탈 털어서 공부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내어놓았습니다. 스님은 이해를 돕기 위해 불교교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스님이 했던 온갖 실천과 실험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조는 사람 하나 없이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더 많았지만, 강의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강의를 마치며 학인 스님들이 절을 하려고 하자 스님이 손사래를 쳤습니다.

“반배로 합시다.”

법회를 마치고 운문사에서 키운 감자로 요기를 한 후 바로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5시가 되기 5분 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해 5시부터 공청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공청회는 지난 8일 동안 연이어 진행된 공청회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총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사료편찬위원회에서는 정토회와 법륜스님을 소개하는 자료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을 꼭 담으면 좋을지 의견을 수렴하였고, 다음으로는 온라인 사업의 가능성에 대해 담당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공동체 대중이 이야기한 여러 가지 제안을 경청한 후 이에 대해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특히 공청회를 마칠 무렵에는 정토회를 처음 시작할 때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환기시켜 주었습니다.

다시 출발할 때의 마음으로

“정토회 30년 역사 중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대중 활동가들이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방을 법당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정토회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시도했던 일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스님이다. 그곳이 절이다. 그것이 불교다.’

이런 원칙을 갖고 사실은 정토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내 방을 법당으로 만드는 운동은 정토회가 출발할 때 세운 원칙으로 지금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이제 대중 활동가들이 법당에 와서 활동을 하기보다는 지역사회를 위한 실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정토회가 출발할 때 가졌던 문제의식입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정토회가 처음 가졌던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추어진 것 같아요. 물론 정토회 회원 중에는 ‘법당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불교의식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하게 되면, 새로운 유입이 많이 늘어나는 반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일부 떨어지는 건 감수할 수밖에 없어요.”

1차 만일결사의 끝자락에서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묘하게 들렸습니다.

공동체 수행 대중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한 후 공청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명상수련과 함께 안거를 시작한 지 벌써 18일이 지났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만 한 후 잠시 쉬어갈 겸 다 함께 소풍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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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

귀한 법문을 읽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꾸준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2020-10-18 20:00:34

김현숙여래심

나의 부족함을 알아 조급해 하지 않고 꾸준히 수행정진합니다

2020-08-24 22:05:43

최승재

저도 강연장에있는 학인스님 분들처럼 출가를 해보고싶은데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되는건가요?

2020-08-22 17: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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