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8.1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농사일, 안거 공청회
“욕구에 흔들릴 때 대응하는 방법 세 가지”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농사일을 하고 손님들과 천룡사를 방문한 후 저녁에는 안거 공청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을 했습니다.

4시 45분이 되어 예불을 드리고 5시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하는 기도지만, 오늘은 생방송으로 정토행자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법문을 하는 날입니다.


1차에 이어 2차 백일기도 기간에 읽고 있는 경전은 부처님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대반열반경’입니다. 오늘은 25년 동안 부처님을 시봉을 했던 아난존자를 칭찬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기도를 마치고 스님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아침 기도 잘하셨습니까?"

스님은 이제 백일기도가 절반 고개를 넘고 있다고 말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의 삶이 묻어나는 열반경

“오늘은 10차 천일결사 2차 백일기도가 시작되고 7주가 지난 시점입니다. 오늘 48일째가 되니 이제 절반 가까이 온 셈입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한 지 3일이 지나서 고비를 못 넘기고, 그 후로 절반 고개를 못 넘기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오늘 아침 기도를 함께 하신 여러분들은 이 절반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천일결사 입재를 한 사람의 수가 8천여 명인데, 오늘 아침에 함께 기도한 사람 수가 4천여 명인 것을 보면 나머지 4천 명은 따로 기도를 하는지 아니면 기도를 빠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웃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경전은 열반경입니다. 열반경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의 마지막 행로 1년을 자세하게 기록한 내용입니다. 거의 매일매일 일기식으로 기록이 되어있는데, 그만큼 부처님의 인격과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경전입니다. 우리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읽으면 사상적인 배움을 많이 얻지만 부처님의 실제 삶이나 인격이 많이 묻어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열반경에는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처님께 여쭤보는 왕도 나오고, 부처님이 병이 나서 죽음의 위기를 겪는 모습도 나오고, 음식을 잘못 드셔서 고통을 겪는 모습도 나오고, 목이 말라서 물을 달라고 하는 이야기, 목욕을 하시는 이야기 등 일상적인 모습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경전입니다. 이렇게 열반경에는 만약 부처님이 지금 이 세상에 오신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실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욕구에 흔들릴 때 대응하는 방법 세 가지

지난 일주일 동안 읽은 경전 내용 중에는 남자인 비구 수행자들이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경전에는 여성에 대한 내용으로 나오지만 이 가르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본다면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음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만나지 말라.

이 말은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음식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음식을 가까이 두지 말고, 담배로 고민하는 사람은 담배를 가까이 두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술로 고민하는 사람은 술을 곁에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는 말은 눈을 감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가까이 두지 말고 되도록 접촉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없을 때는 생각을 안 하다가도 눈에 보이면 내부에 있는 까르마가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접촉이 아예 없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상황이 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접촉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번째 말씀에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 말하지 말라.

여기에서 ‘말하지 말라’는 의미는 만약 담배를 보게 되고, 술을 보게 되고, 음식을 보게 되는 경우에도 관심을 두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소가 닭 보듯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쩌다 보니 말을 하게 되거나 관심을 갖게 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 번째 말씀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셋째, 평정심을 유지하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명상 중에 호흡을 관찰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온갖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호흡에 집중해서 평정심을 유지해 나가듯이 어쩌다가 말을 하게 되더라도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방법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입니다. 음식에 대한 욕구나 성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욕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욕구에 이끌릴 때마다 이 세 가지 관점을 다시 한번 새겨보면 됩니다. 첫 번째 방법이 무너지면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고, 두 번째 방법이 무너지면 세 번째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늘 평정심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25년 동안 시봉 했던 아난존자

그 다음 내용에는 부처님을 25년 동안 시봉한 아난존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35살에 성도 하시고 세상의 스승이 되셨습니다. 그 후로 20년 동안 많은 제자들이 생겼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부처님께서 혼자 계시는 것에 대해 제자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이교도들이 부처님을 해치기 위해 몇 차례 시도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늘 ‘여래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하시며 누가 옆에서 시봉을 하거나 도와주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55세가 되자 노쇠해지고 제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요즘 기준으로는 55세가 아직 한창이라고 하지만, 2600년 전 당시 기준으로 보면 55세는 이미 노인에 속하는 나이입니다. 게다가 각국의 왕들도 찾아와서 의논을 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찾아와서 의논을 하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제자들까지 부처님께 의논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삶은 정진하는 수행자의 삶을 넘어서서 공무가 너무 많아진 상황이었습니다. 혼자서 감당하시기가 어려우니 시봉 하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는 사람들의 순서와 일정을 정하고, 만남이 어려워진 사람들에게는 따로 연락을 취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봉이 필요하다고 세 번이나 건의를 하자 마침내 부처님께서 침묵으로 승낙하셨습니다. 이때가 성도 후 20년째 되는 해였는데 이미 따르는 제자들의 수도 아주 많았을 때입니다.

부처님께 승낙은 얻었지만 누구를 시봉으로 삼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는 자기가 시봉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두 분은 모두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부처님보다 나이가 적은 제자 중에 누군가가 시봉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고, 그중 아난존자가 추천되었습니다.

우선 아난존자는 부처님보다 나이가 20살 정도 젊고, 부처님과 같은 석가족 출신이어서 부처님의 언어와 식성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잘 잊지 않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부처님 옆에서 시봉을 하는 사람이 명석하지 않거나 성격이 모가 나고 교만하면 오히려 부처님께 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난존자가 천거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난존자가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대중이 모여서 다시 의논을 했고, 또다시 아난존자가 천거되었습니다. 아난존자는 이번에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다시 모여 의논을 했는데, 세 번째 의논을 해도 아난존자만큼 시봉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난존자의 세 가지 조건

세 번째로 천거가 되자 아난존자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세 가지 조건을 내걸며 수락을 했습니다.

첫째, 부처님이 드시는 음식을 나에게 권해서는 안 된다.
둘째, 부처님이 입는 옷을 나에게 권해서는 안 된다.
셋째, 지난 20년 동안 부처님이 하신 설법을 모두 나에게 다시 들려주셔야 한다.

부처님은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집착이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분입니다. 부처님은 말먹이를 먹을 때도 임금의 상을 먹을 때도 아무런 집착 없이 그저 인연 따라 생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난존자는 아직 자기가 그 정도로 수행이 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면, 때로는 좋은 음식을 공양받기도 하고 때론 좋은 옷을 보시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우는 수행자인 아난존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칫 대중의 오해를 사서 대중의 시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옆에서 시봉을 든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받으면 공동체의 화합에 장애가 될 수 있고, 비난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두 조건은 비록 부처님 옆에서 시봉을 들더라도 먹는 음식과 입는 옷은 나에게 맞게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자기 수행을 위해서 기도 하지만 설령 부처님과 같은 음식과 옷을 받게 되거나 거절을 하더라도 그걸로 대중이 문제 삼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 보입니다. 부처님과 같이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부처님께만 공양을 올리지 않고 옆에 있는 아난존자에게도 같이 올리고, 또 옷을 보시해도 부처님께만 보시하는 게 아니라 아난존자에게도 보시를 하게 되잖아요. 그럴 때 거절을 하더라도 문제를 삼지 말아 달라는 의미입니다. 공동체 대중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시봉을 하겠다는 의미죠. 그러자 대중이 의논을 해서 아난존자의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처음 두 가지 조건은 대중에게 수락을 받아야 하는 내용이지만, 세 번째 조건은 부처님이 수락하셔야 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이 세 번째 조건이 훗날 경전을 결집할 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모신 25년 동안의 설법은 모두 옆에서 직접 들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전 20년 동안의 설법은 잘 몰랐어요. 부처님이 세 번째 조건을 받아들여주셔서 아난존자는 설법의 내용만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어느 날 누구를 만나서 어떠한 설법을 했는지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훗날 아난존자를 통해 이런 내용이 자세히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난존자는 왜 세 번째 조건을 제시했을까요? 지난 20년 동안 부처님께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를 들어야 그동안 어떤 사람을 만났고 또 어떤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어떤 때 혼자 계셨고 어떤 때 사람을 만났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부처님께서 어떤 결정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그런 상황이 생겼을 때 부처님을 찾아가서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 부처님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조건을 요청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난존자가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아난존자는 마치 입안의 혀처럼 시봉을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입안의 혀’라는 건 마치 내가 하듯이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격이 온순해서 사람들이 적절한 때가 아닐 때 부처님을 뵈러 와도 아주 부드럽게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난존자가 시봉을 하는 것으로 인해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불교의 역사 속에서 아난존자에게 허물을 하나 씌웁니다. 이는 여성의 출가와 관계가 있어요. 부처님께서 여성의 출가를 세 번 거절하시자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부인이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아난존자가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부처님께 여성의 출가를 건의를 해서 허락을 받습니다. 여성의 출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부처님께서는 거절하셨는데 아난존자가 사정사정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비구니 출가제도의 책임을 차마 부처님께 지울 수는 없으니 아난존자에게 덮어씌워서 결국 비구니 출가제도를 폐지까지 했습니다. 또 아난존자의 성격이 부드럽고 좋았지만 원칙적이지 못했다고 비판을 합니다. 이는 아무래도 비구니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비구니 제도를 폐지하면서 아난존자에게 허물을 씌운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 외에는 아난존자가 부처님을 25년 동안 시봉 하면서 잘못으로 기록된 부분은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언젠가는 헤어지나니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여래는 오늘 열반에 들 것이다’고 하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슬픔에 잠기고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경전에는 숲 속에 들어가서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어 울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부처님께서 대중을 통해 아난존자의 소식을 듣고 아난존자를 데려오게 합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늘 세상을 무상한 것이라고 설법한 내용을 다시 알려주십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친한 사이라도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왕이든 부자든 깨달은 이든, 이 세상 그 누구도 이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이것을 확연히 인식하고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든 슬픔이나 근심, 걱정에서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아난존자가 법의 관점을 놓치고 있음을 알려주시고, 집착에서 벗어나서 항상 알아차림을 유지하도록 설법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여래에게는 아난존자와 같은 훌륭한 시자가 있었다. 이는 과거의 부처님에게도 그랬고, 미래의 부처님도 그럴 것이다’하며 아난존자를 칭찬하십니다.

수행을 많이 해도 순간적으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순간 법의 알아차림을 놓치고 감정에 치우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열반경은 아난존자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난존자의 수행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순간적인 사로잡힘에 빠지면 감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설령 감정에 빠지더라도 ‘수행이 안 되었구나’하고 생각할 게 아니라 바로 알아차리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전의 내용을 통해 이런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내용들도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금쪽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바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비닐하우스로 나갔습니다. 먼저 오늘 손님들과 점심식사를 할 때 필요한 반찬거리를 수확했습니다. 열무와 배추를 뽑고 고추를 땄습니다.



반찬거리를 마련해두고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가지를 따려고 갔는데 이미 행자들이 가지를 다 따두었습니다.

스님은 밭 주변에 풀을 매고 윗단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도라지꽃이 피었네!”


행자들이 농사를 짓기 어렵다고 반대한 땅에서 꿋꿋이 자라 피어난 도라지꽃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스님은 도라지 사이사이에 자란 풀을 뽑아주었습니다. 곧 터질 듯한 꽃봉오리도 많이 보였습니다.


가장자리에 풀을 베고 심어둔 깻잎은 아직 많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바로 옆 두둑에 거름을 주고 심은 깻잎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거름이 참 중요해요. 거름을 안 준 땅에 깻잎 좀 보세요.”


다시 아랫단으로 내려가서 수박밭을 살펴보았습니다.


머리통만큼 자란 수박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다 익은 옥수수도 몇 개 땄습니다.


행자들은 반찬으로 먹을 깻잎과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고구마 줄기를 함께 옮기고 다듬었습니다. 줄기에 달린 잎은 떼내고 껍질을 벗겼습니다.


“여린 잎은 따로 모아주세요. 여린 잎도 한번 먹어봐야겠어요.”


울력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고구마 잎만 떼내고 껍질은 수련원에 가지고 가서 벗기기로 했습니다.

“별로 한 것 없이 땀이 많이 나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흘렀습니다.

농사일을 마친 후 10시에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문화재와 관련해 일하고 있는 분들이 내려와서 함께 천룡사지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천룡사에 대한 역사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옵니다. 삼국유사에는 671년에 중국 사신 악붕귀가 와서 이 절을 보고 말하기를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절이 망하고 신라가 망했습니다. 고려가 건국되자 최치원의 고손자인 최제안 공이 다시 이 절을 복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순조 때 유생들이 불을 질러서 1819년에는 완전히 소실된 절입니다.

지난 6월에는 문화재청장님이 직접 방문해서 발굴 현장을 보고 갔는데, 오늘은 관련 실무자 분들이 내려와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손님들을 맞이한 후 새갓골로 함께 올라가서 천룡사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임시로 지어져 있는 법당에 들어가 왜 이 절이 복원되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용성 조사님이 돌아가시면서 ‘나라가 독립이 되면 반드시 이 절을 복원해라’ 하고 유훈을 남기셨어요. 용성 조사님의 유훈에는 새로운 나라를 ‘대한 정국’이라고 표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나제려 제국’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절이 불타고 이곳이 폐허가 되자 마을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라와서 농사짓고 살다 보니 대부분이 민간인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불심 도문 큰스님이 1970년대에 이 일대의 부지 6만 평을 틈나는 대로 계속 구입하셨어요. 동네의 절반 정도와 산을 모두 구입했지만, 일부는 아직도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50년이 흘러온 겁니다.

문화재 발굴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이 들어서게 하려면 이제 이 절이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남북의 평화가 도래하고 통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믿음이 곧 원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게 사실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이뤄져야 국운이 융창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무슨 개인 사찰을 지으려는 게 아니라 이런 원을 갖고 천룡사를 복원하려고 하는 거예요.”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눈 후 빈 터로 남아 있는 천룡사 터를 한 바퀴 둘러보며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임시로 지어진 법당 앞에는 넓은 터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희 정토회에서는 이곳 앞마당에 대형 텐트를 치고 통일 발원기도를 자주 했었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걷기만 하는 데도 온몸에 땀이 가득 배었습니다.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따라 틈수골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손님들과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감은사지와 대왕암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모두 휴가를 내어서 먼 길을 달려온 분들이라 여행을 겸하게 해주려는 스님의 배려였습니다.


바다 바람을 쐬며 기분 전환을 한 후 손님들을 신경주역까지 배웅하였습니다.

"오늘 뜻깊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가게 돼서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손님들을 떠나보내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차로 바쁘게 달려왔지만 공청회 시작 시간에 10분을 늦었습니다.

오늘 공청회의 주제는 사회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서울시장의 사망 사건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해 각자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인의 생각을 편안하게 말해보세요.”

공동체 수행대중은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같은 문제도 바라보는 관점과 느낀 것이 다 달랐습니다.

8시까지 공청회를 하고 저녁예불을 드린 후 마음 나누기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결사 행자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일요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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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현

“가까이 두지마라! 관심을 두지 마라! 평정심을 잃지마라!” 감사합니다

2020-08-08 19:17:32

자재왕

정토행자인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2020-08-07 10:42:38

고경희

천룡사

2020-08-06 08: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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