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6.11 천룡사 발굴 현장 방문, 행복시민 온라인 즉문즉설
“부채만 늘고, 코로나 때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원망스러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문화재청장님이 경주를 방문해 함께 천룡사 발굴 현장을 둘러본 후 저녁에는 행복시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밤새 창밖에 빗소리가 들리더니 아침까지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스님은 아침마다 하던 농사일을 잠시 쉬고 오전 내내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1시에는 서울에서 정재숙 문화재청 청장님이 경주를 방문해서 차담을 나누고 함께 천룡사 발굴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오전에 경주 구황동에서 지석묘 발굴조사 개토제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김에 스님도 뵙고 가려고 잠시 들렸습니다.”

문화재 발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주 남산 천룡사 발굴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천룡사 복원은 스님이 오랫동안 염원해 온 일입니다. 왜 천룡사가 복원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천룡사는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종교의 목적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지은 절이에요. 황룡사 9층 목탑도 삼한일통을 발원하면서 지은 탑이고, 사천왕사도 당나라와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지은 절입니다. 이런 절을 호국사찰이라고 해요. 다른 종교에서 보면 ‘그건 절이지 않느냐’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유럽에 가면 성당이 꼭 종교적인 목적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유산인 것과 같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보지 종교 건물이라고만 보지 않거든요.”

“그럼요. 저도 동의합니다.”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천룡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유사에는 671년에 중국 사신 악붕귀가 와서 이 절을 보고 말하기를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절이 망하고 신라가 망했습니다. 고려가 건국되자 최치원의 고손자인 최제안 공이 다시 이 절을 복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요. 그런데 조선 순조 때 유생들이 불을 질러서 1819년에는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이 불에 타서 순교를 하셨고, 조실 스님을 끝까지 모셨던 시자는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실상사에 있는 한 스님이 살아남은 그 시자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을 했습니다.

3.1 독립 선언을 할 때 불교계의 대표로 서명하신 분이 용성 조사님입니다. 용성 조사님은 남원 덕밀암 혜월 화상 문하에서 출가했는데, 혜월 화상이 동학을 세운 최제우 선생과 친구였습니다. 최제우 선생이 경주에서 동학을 일으킨 죄로 감옥에 있다 나와서 서쪽으로 도망을 갔는데, 그때 혜월 화상이 있는 절에 1년 간 숨어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동학의 중요한 경전을 집필했다고 해요. 혜월 화상은 최제우 선생을 숨겨준 죄로 승려직이 박탈됩니다. 혜월 화상의 도반이 바로 천룡사가 불에 타면서 화상을 입은 그 시자 스님을 모신 분이었어요. 그 인연으로 용성조사님이 화상을 입은 그 스님을 9년 간 시봉 했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혜월 화상의 제자인 용성 조사님은 최제우 선생의 제자인 손병희 선생과 만나서 3.1 독립 선언을 함께 했던 겁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호국사찰

이런 역사를 보면 굉장히 뜻깊은 곳이 천룡사입니다. 그래서 일제시대 때 용성 조사님이 돌아가시면서 ‘나라가 독립이 되면 반드시 이 절을 복원해라’ 하고 유훈을 남기셨어요. 용성 조사님의 유훈에는 새로운 나라를 ‘대한 정국’이라고 표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나제려 제국’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저의 스승님이 불심 도문 큰스님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불심 도문 큰스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어왔지만,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이제 큰스님의 나이가 90이 다 되어가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얼마 전에 큰스님께서 ‘이제는 네가 이 일을 받아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셔서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절이 불타고 이곳이 폐허가 되자 마을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라와서 농사짓고 살다 보니 대부분이 민간인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불심 도문 큰스님이 1970년대에 이 일대의 부지 6만 평을 틈나는 대로 계속 구입하셨어요. 동네의 절반 정도와 산을 모두 구입했지만, 일부는 아직도 구입을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50년이 흘러온 겁니다.

문화재 발굴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이 들어서게 하려면 이제 이 절이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남북의 평화가 도래하고 통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믿음이 곧 원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게 사실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이뤄져야 국운이 융창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맨날 이렇게 지지부진해서 어떻게 국운이 융창할 수 있겠어요? 저희 정토회에서는 이곳에 아직 절이 새로 지어지지 않았지만 앞마당에 대형 텐트를 치고 통일 발원기도를 자주 했었습니다. 만약 발굴이 끝나면 이곳에 천룡사를 복원해서 대한민국의 국운 융창을 발원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발굴 현장이 궁금하네요. 가볼 수 있죠?”

“네. 그럼요.”

스님의 설명을 듣고 청장님이 천룡사 발굴 현장이 궁금하다고 해서 함께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늘 걸어서 올라가던 길인데, 손님을 모시고 가기 위해 발굴조사단으로부터 더블캡 트럭과 SUV 차량을 지원받아서 비포장 길을 달려 10분 만에 올라갔습니다.

폐허가 된 땅 위에 그래도 이곳이 절이었음을 상징하는 통일신라 시대의 삼층석탑 하나가 우람하게 솟아 있었습니다. 원래는 천룡사 터에 넘어져 있었으나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운 후 보물로 지정이 된 탑입니다.

삼층석탑 뒤쪽으로는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발굴조사단 단장님이 지금 무엇을 발굴하고 있는지 현장에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하층에서부터 7세기 유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7세기는 삼국유사에 나온 천룡사 관련 기록과 거의 유사한 시점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절의 경계선이 되는 담장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담장의 크기가 황룡사 외곽에 세워졌던 것보다 더 큽니다.”

곳곳에 건물이 세워졌던 흔적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발굴된 건물의 흔적을 보면 길이가 28미터, 폭이 12미터입니다. 이 산속에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이 왜 필요할까 싶었는데, 여기서 출판했다고 하는 묘법연화경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책 서문에 경주 천룡사에서 1688년에 이 경을 판각했다고 적혀 있어요. 그래서 이 건물은 판고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무더위에 애쓰고 있는 발굴조사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소를 이동해 실내에서는 지금까지의 발굴 경과보고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1990년에 삼층석탑을 먼저 발굴한 후 보물로 지정이 되었고, 1996년과 1997년에 삼층석탑 주변 지역을 발굴조사하여 건물 10동을 확인했지만, 불심 도문 큰스님이 구입한 땅이 아닌 나머지 구역은 더 이상 발굴조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에 한 번 더 조사가 있었고, 2015년부터 지금까지는 화랑문화재연구원이 주도해서 발굴 작업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설명을 다 듣고 스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전체 발굴을 모두 끝내는 데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지금 속도로는 1년 안에 발굴을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년 안에 발굴이 끝난다는 이야기에 스님이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스님은 천룡사 터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네요.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천룡사가 복원이 되면 이 사진도 같이 전시할게요.”

산을 내려와 서울로 올라가는 청장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신라도 황룡사 9층 탑을 세워서 삼한일통을 염원했듯이, 우리도 천룡사 중창불사를 통해 남북통일의 마음을 모으면 좋겠어요. 미국, 중국 이런 큰 나라들이 온갖 방해를 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 전체가 정성을 모아야 통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어떤 상징적인 것이 필요하거든요. 그걸 만든다고 해서 통일이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그걸 계기로 국민들에게 통일의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오늘 뜻깊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가게 돼서 저도 좋았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은 불심 도문 큰스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큰스님, 문화재청 청장님이 천룡사 터에 오셔서 발굴 현장을 둘러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몸을 바꿀 때가 다 된 것 같네요.”

“아직 몇 년은 더 사셔야 합니다. 천룡사도 복원해야 하고, 봉림사도 복원해야 하고, 평생을 노력해 오신 일인데, 복원된 모습을 다 보시고 돌아가셔야 돼요.”

“예, 알겠습니다. 동헌 조사님 말씀 잊지 마세요. 동학 교주 최제우 대신사는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면, 법륜 스님은 1000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다. 이 말씀 기억하시죠? 잊지 마세요.”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중과 함께 식사를 한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행복학교 과정을 수료한 행복시민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550여 명의 행복시민들이 생방송 주소줄을 타고 스님과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은 스님은 반갑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행복시민 여러분, 어떻게 지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 사건이 안 일어났으면 우리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문제로 인해서 이렇게 화상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월부터 4개월 간 모임을 하지 못하고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오늘 행복시민 여러분들과 화상으로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부터 행복시민 여러분과 함께 하는 온라인 즉문즉설을 출발합니다.”

사전에 올라온 질문들이 스님의 책상 앞에 놓였습니다. 스님은 하나하나 질문을 읽고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오늘은 남편의 사업을 말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50대 여성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부채만 늘고, 코로나 때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원망스러워요

“남편이 얼마 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새 사업을 시작하면서 생긴 부채도 많고,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아 무척 힘든 상황입니다. 본인도 힘들어하고, 저도 남편에게 말은 안 하지만 사업을 시작할 때 말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자금 압박이 계속 오니까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사건은 점성가 몇 명이 예측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에 70억이 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예측을 못했습니다. 인류문명이 너무 개발 중심으로 가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전염병이 창궐할 위험이 있다는 정도의 예측은 있었지만, 바이러스로 인해서 이 정도로 전 세계가 어려움에 처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핵전쟁, 기후변화, 식량부족, 행성충돌, 예기치 못한 전염병 등으로 인류문명이 멸망할 수 있다는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바이러스가 인류문명에 거의 종말에 가까울 만큼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예측이 됐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동안 사스나 메르스 등 바이러스 전염병이 몇 번 나타나긴 했지만, 이번처럼 전 세계에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오랫동안 확산되고 있는 바이러스 전염병은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제일 어려움에 처한 건 항공회사입니다. 비행기가 나라와 나라를 다녀야 하는데 다 멈췄잖아요. 세계적인 항공회사들도 망할 지경에 놓여있습니다. 그 다음은 여행사입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안 다니니까 여행사의 일부는 이미 망했고, 곧 많은 수가 망할 지경에 놓여있습니다. 그 다음에 식당업도 어렵습니다. 이 외 다른 업종도 대부분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연말이 되면 1929년 대공황 이상의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주가가 떨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폭등을 했습니다. 돈을 찍어서 막 풀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막 나누어 준 겁니다. 돈을 나눠주면 돈이 없는 사람은 당장 자기가 필요한 데 쓰게 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이 쌓이니까 결국 주식에 투자해서 주가가 오르게 되는 겁니다. 실물경제가 어려워지면 주식도 떨어지고 부동산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많이 풀리니까 반대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예측을 정확하게 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누가 예측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10명 중에 한 명이 예측을 했느냐, 100명 중에 한 명이 예측을 했느냐, 이런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다수가 예측을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나빠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자의 속상한 마음은 저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안정된 직장에 다니면서 가만히 있었으면 월급은 받았겠죠.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사업은 안 되고, 있는 돈도 까먹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속상할 수밖에 없겠죠. 속상한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서 남편이 죽은 건 아니잖아요. 죽은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이때 이렇게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돈은 좀 잃었지만, 지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 남편은 죽지는 않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어려움에 처한 것인데, 남편을 원망한다고 해결될 일이에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 남편이 ‘당신 고생 안 시킬게’라고 말했다고 했죠. 그때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걸 어떡합니까. 추석에 고향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일가족이 죽는 사고를 가끔 뉴스에서 보잖아요. 그런 사고가 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니 지금 상황은 그냥 받아들이고, 남편이 걱정해도 오히려 격려를 해주세요.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건 당신만 예측 못 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몰랐다. 국가도 예측을 못했는데, 당신이 어떻게 그걸 예측하겠나. 사고가 나면 죽기도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죽지는 않았잖아. 돈은 좀 잃었지만, 그래도 집은 있잖아. 그러니 좀 적게 먹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시작하자. 이 일로 너무 힘들어하면 몸 상하니까 지금은 몸이라도 건강하게 잘 보존하자.’

이렇게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행복학교를 다녔던 것이고, 행복시민이 된 거잖아요. 몇 달간 공부해서 행복학교를 1, 2, 3차까지 나오고 행복시민까지 됐다면, 다른 사람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이럴 때 다른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미워한다면 마음공부를 뭣 때문에 합니까. 이렇게 힘들 때 마음공부를 한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죽은 사람도 있는데,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돈 좀 잃은 것이 뭐 그리 큰 문제냐.’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이 바라는 것을 돕고 싶어요

“시민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 동네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면서도 재밌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시민모임을 하다 보니 스님께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스님이 바라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요.”

“스님이 뭘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저한테 이렇게 묻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제 강의를 듣고 자기 삶에 좀 도움이 되었는지, 이제 거꾸로 ‘스님이 무엇을 원해요? 우리가 좀 도와줄게요’ 이렇게 요청을 한 것이니까요.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시니까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괴로움 없이 살아가기를

제가 원하는 건, 첫째, 여러분이 괴롭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살만한 가치가 있어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살아요?

나도 모르게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혹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때문에 성질을 버럭 내거나 욕심을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꽁 움켜쥐고 괴롭게 살 이유는 없어요.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가족이 죽었다고 몇 년 동안 슬퍼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으로 보면 다 병에 속합니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추우면 추운 대로 좀 적응하고, 더우면 더운 대로 적응하고 살면 됩니다. 요즘처럼 날씨가 더우면 옷 좀 벗고 살면 되고, 창문 좀 열어놓고 살면 되잖아요. 저도 지금 방송을 해야 되니까 소음을 막으려고 문을 닫아놔서 더워요. 그러면 땀 좀 내면 되잖아요. 방송 끝나고 나서 샤워하면 되고요. 더워서 땀 좀 나는 것이 뭐 그렇게 큰 일이에요.

그래서 첫 번째로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괴롭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살면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꽁 하고 있으면 서로 피곤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요?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믿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런 사람 하고도 같이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같이 일하면 됩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없어지고 통일을 이루어지기를

둘째, 저는 한반도의 평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코로나 대응을 아무리 잘했다 해도 전쟁이 나면 끝이에요. 전쟁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문제도 아니고, 북한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도 아니에요. 한국이 지금 좀 잘 나간다고 하지만 전쟁이 탁 나버리면 하루아침에 망합니다. 세계경제 순위가 50등, 100등 밑으로 순식간에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전쟁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제가 ‘평화가 중요하다’,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 이렇게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특정한 종교 이념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은 안 된다는 겁니다. 조금 성질난다고 ‘까짓 거 전쟁 해버리자’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전쟁은 성질난다고 제 부인, 제 남편, 제 자식을 때리는 것과 똑같은 행위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갈등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 듯이 남북 간에도 모두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면서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더 발전하고 잘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8개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 남편의 언어폭력이 심합니다. 며칠 전에는 제게 "너는 내게 기대 사는 기생충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상했습니다. 어떻게 수행을 해야 제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 살면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남들보다 제가 더 못 사는 것 같고 제 가족을 챙겨주는 게 더 좋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봉사를 해야 할까요?
  • 정의기억연대나 나눔의 집 사건을 보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주위에 행복학교 참여를 권유하면 대부분 ‘신천지 아니냐’, ‘도를 아십니까 아니냐' 이런 반응입니다. 취지를 잘 설명해도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 ‘정말 다른 의도가 없냐?’ 이렇게 의심합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행복학교를 전할 수 있을까요?
  • 진행자가 본인이 한 행복학교 수업 내용과 다르게 행동해서 실망했습니다. 예를 들면 수업에서 ‘남 탓하지 않습니다’를 배웠는데 진행자가 남 탓을 하곤 합니다.
  • 7세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제가 클 때와 다르게 자립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자립심이 강한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앞으로 행복학교 진행자를 하게 되면 참가자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일을 했는데 힘든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많이 울고 밤에 잠도 못 자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감정전이가 너무 잘 되어서 좀 두렵습니다.
  • 저는 직장에서 꼭 사이가 안 좋아지는 사람이 생깁니다. 마음의 골이 깊어지면 이직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회피하는 성격인 걸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행복시민들은 코로나 상황에도 화상회의를 꾸준히 하며 마스크 만들기 봉사, 지역 환경 캠페인 등 지역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님은 행복시민들의 이런 지역 활동을 격려해주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시민들이 같이 모여서 지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사회 정의, 환경 실천, 이런 활동들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말 보람 있는 일입니다.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남도 생각할 줄 알게 되고, 사람밖에 모르던 사람이 자연도 생각할 줄 알게 된다면, 스스로 얼마나 자랑스럽겠어요.

물론 아직 지역 활동은 구체적으로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우선 주민들을 만나서 그들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자세히 들어봐야 합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구나. 우리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지역 활동을 만들어 나가야지 우리가 내용을 정해서 우리 마음대로 활동을 하면 지역 주민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일을 하게 될 수 있어요. 본인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너 괴롭지? 행복학교 한 번 공부해봐’ 이렇게 접근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지역에 대해서 먼저 알고 나서 필요한 일을 조금씩 해나가야 지역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사람들을 행복하고, 우리 지역을 평화롭게 할 수 있을까? 나도 작은 기여를 한 번 해보자.’

이런 관점에서 지역 활동을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생방송이 끝나자 실시간 채팅창에 소감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님은 채팅방에 올라온 소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촬영장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데 법사님이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스님 강의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매일 온라인 강연이 있네요.”

“그래도 농사일하면서 강연을 할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어요.”

창문을 열자 밖에서 개구리 울음 소리가 세차게 들렸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두북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처음으로 정토회 정회원이 아닌 일반회원을 위한 정기 법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전체댓글 71

0/200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온라인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2020-11-24 23:48:43

김현숙여래심

천룡사 중창불사가 남북통일의 초석이 되길
지심 발원합니다

2020-06-22 18:56:45

정명

허리는 좀 아프지만 아직 움직일수는 있다. 암!!

2020-06-21 21: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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