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2 인도 JTS 활동가 명상수련 2일째
“반복되는 습관을 끊는 방법”

안녕하세요. 인도 JTS 활동가 명상수련 2일째입니다. 아직 캄캄한 5시에 요령소리를 듣고 일어나 5시 20분부터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합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왼발을 오른발 위에, 또는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립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폅니다.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모읍니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명상이 시작되고 나서 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뒤에 앉아서 명상을 했습니다. 그다음 시간부터는 늦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옆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려옵니다. 40분씩 두 번 명상을 하는 사이 안개가 걷히고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 공양으로 따뜻한 짜이, 식빵, 사과 한 개를 먹고 다시 명상을 했습니다.


인도 JTS 활동가 대부분이 명상수련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와 병원은 4일간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인 활동가 한 명과 학교 선생님 세 명이 남아서 수련생들의 공양을 짓고 있습니다. 점심에는 손이 많이 가는 짜파티가 나가기 때문에 12학년 여학생 5명이 공양 준비를 도왔습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 다시 날이 저물 때까지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 수련 중에는 묵언을 합니다. 정진을 하면서 궁금한 점은 쪽지에 적어서 스님에게 전달됩니다. 명상수련 2일째, 쪽지에는 몸의 이곳저곳의 통증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감자와 우유로 저녁 공양을 먹고 다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물었습니다.

“명상을 해보니 많이 힘들어요?” (모두 웃음)

수련생들은 조용히 웃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요. 밥 먹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 밖에 없었잖아요. 근데 뭐가 힘들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도 정말 힘듭니다. 첫째, 졸음이 많이 옵니다. 오늘까지도 계속 졸리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손을 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리 통증이 심한 사람 손 들어보세요.”

대부분 손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한 사람 손 들어보세요.”
“목이 아픈 사람 손 들어보세요.”
“머리가 아픈 사람 손 들어보세요.”
“무릎이 아픈 사람 손들어보세요.”

이곳 저곳 통증에 손을 들었습니다.

“명상 시간이 끝나도 계속 아픈 사람 있어요? 명상할 때만 아프지 명상 시간이 끝나고 다리를 풀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밥을 먹을 때는 안 아픕니까?”

수련생들은 묵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정상입니다. (모두 웃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개선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이렇게 오래 동안 앉아있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습관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졸음이 많이 오는 것도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점점 없어지고, 다리가 아픈 건 4일째에 제일 심하다가 점점 없어져요. 그런데 우리는 명상을 4일밖에 안 하니까 아프다가 끝나요. (모두 웃음)

그래서 명상에 대해 부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10일을 한다면 5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내일쯤 되면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요. 그러다 죽비 탁 치고 일어나면 아무렇지 않아요. 그런데 밤에 잘 때도 아프고, 명상을 안 할 때도 아프면 말해주세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명상을 하지 않을 때도 계속 아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다 괜찮아요. 통증이 있는데도 계속 명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나타나는 증상이에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한 게 못 견딜 정도로 심하다면 말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약간 진정을 했다가 명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심하지 않으면 명상하는 과정에서 초기에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에요. 갈비뼈 아래가 도려내듯이 아픈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그게 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명상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지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항복받아야 합니다. 다리를 펴고 싶고, 눕고 싶고, 먹고 싶고, 말하고 싶고, 자고 싶은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하고 싶은 대로 안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몸에 통증이 일어나고, 명상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만둡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여기 큰 물통에 관을 꼽아서 물을 바깥으로 뽑아낼 때를 생각해보세요. 입으로 관을 빨아들이면 물통에 있는 물이 관을 따라 올라옵니다. 일정한 고비를 넘으면 자동으로 물이 넘어오는데, 그 고비를 못 넘기면 100번 해도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만 반복합니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찾아온 첫 번째 고비는 몸이 아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다리가 아프면 ‘명상을 하니 다리가 아프구나’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몸의 통증을 어느 정도 극복하면 이제 정신적인 문제가 나타납니다. 생각이 끝없이 일어나고 심해지면 혼미 상태가 돼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돼요. 이게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3박 4일 명상에서는 그런 혼미상태까지 가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3박 4일 동안 몸의 저항이 제일 클 겁니다. 그다음에 나타나는 증상은 회의적인 생각입니다.

‘아무 재미도 없는데 명상하면 뭐해? 이거 한다고 깨닫나? 깨달으면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두게 됩니다. 이런 장애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어야 장애가 일어날 때 두려워하거나 끌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것이 장애인지 모르니까 몸의 통증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이해했어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과 여러 차례 명상을 해봤기 때문에 많은 증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어요. 명상하다 죽은 사람도 없었고, 다리병신이 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밤에 잘 때도 아프면 꼭 말해주세요. 의문이 있으면 자꾸 써내세요. 또 한 번 해봅시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명상 자세를 취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스님은 수련생들의 두려운 마음을 살펴주며 다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몸을 조복 받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요한 가운데 간간히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명상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12연기와 명상을 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요즘 과학자들 중에는 ‘불교는 과학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은 부처님이 물질을 연구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연구했는데, 마음에 대한 연구를 마치 과학자가 물질을 연구하듯이 해서 그 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식물을 예로 들어 볼게요. 땅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씨앗이 됩니다. 그 씨앗을 다시 심으면 또 싹이 트고, 또 자라고, 또 꽃이 피고, 또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을 또 심으면 또 싹이 트는 것이 되풀이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도 이렇게 되풀이됩니다.

까르마(Karma, 業)란 무엇인가

그 씨앗과 같은 것이 바로 까르마(Karma, 業)입니다. 까르마 역시 씨앗처럼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 맺었다는 것은 그 까르마가 커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또 씨앗이 되고 자라기를 반복합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까르마는 ‘정해진 것’, ‘전생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까르마는 용어는 같지만 그 의미는 다릅니다. 까르마는 ‘형성된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습관화된 것’입니다. 내가 담배를 자꾸 피워서 담배 피우는 습관이 형성이 됐다면 그 습관을 까르마라고 말하는 겁니다. 까르마라고 하는 것은 ‘본래 정해진 것’, ‘전생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형성된 것’, ‘습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까르마는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계속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까르마도 무상한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을 예로 들어봅시다. 처음에는 담배 피우는 습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담배 피우기를 몇 번 되풀이함으로 해서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습관이 곧 까르마입니다. 그 까르마가 씨앗이 되어서 다시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없는 사람은 담배가 여기 있어도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여기 담배가 있으면 피우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납니다. 욕망이 일어나면 담배를 손으로 잡고, 입으로 가져와서, 불을 붙여 피웁니다. 그렇게 되면 담배 피우는 습관이 더 커집니다.

담배 피우는 습관이 커졌기 때문에 또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고, 또 담배를 피우고, 그러면 담배 피우는 습관이 더 커지고, 그것에 의해서 또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고, 이러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마치 씨앗을 심어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처럼 반복됩니다.

이 반복되는 것을 끊어내고 멈추도록 하는 게 니르바나(Nirvana), 즉 해탈이에요. 어떻게 끊고 멈출 것인지 알려면, 우선 이 까르마가 어떤 사이클로 돌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까르마가 형성되는 원인, 12연기(十二緣起)

내가 담배 피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합시다. 이것을 ‘애(愛)’라고 해요. 빨리어로는 ‘딴하(taṇhā)’라고 해요. 하고 싶다거나 하기 싫다는 것을 욕구, 욕망, 또는 갈애(渴愛)라고 말합니다.

욕구가 일어나면 ‘담배를 피우겠다’ 하고 담배를 가져와서 피우려고 해요. 이렇게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취(取)’라고 해요. 취(取)는 애(愛)의 다음에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담배 피우는 습관이 남습니다. 그것을 ‘유(有)’라고 해요. 습관이 형성되어 남았다고 해서 유(有)라고 합니다.

그다음은 습관이 남아서 다시 반복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를 ‘생(生)’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또 계속 되풀이된다고 해서 ‘노사(老死)’라고 합니다. 즉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욕구는 왜 일어날까요? 왜 나는 담배를 보면 피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다 그럴까요?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담배를 눈으로 보거나, 담배와 관련된 소리를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보거나, 손으로 만지거나, 머리로 생각을 하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담배를 피우는 까르마가 있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그런 까르마가 없는 사람은 기분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런 기분 좋음이 일어나는 게 바로 욕망의 원인이에요. 그런 기분 좋음을 ‘수(受)’라고 합니다. 그래서 애(愛) 전에는 수(受)가 있습니다.

왜 이런 기분 좋음이나 기분 나쁨이 일어날까요? 담배의 까르마가 있는 사람은 담배를 눈으로 봤거나, 귀로 들었거나, 코로 냄새 맡았거나, 혀로 맛봤거나, 손으로 만졌거나, 머리로 생각했기 때문에 기분 좋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감각 기관이 그 대상과 접촉이 일어났기 때문에 수(受)가 일어난 거예요. 그것을 ‘촉(觸)’이라고 합니다.

촉(觸)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몸에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눈, 귀, 코, 입, 몸,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육입(六入)’이라고 합니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은 내 몸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겁니다. 이 몸을 ‘색(色)’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몸만 있으면 시체 하고 똑같아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정신을 ‘명(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육입이 있으려면 ‘명색(名色)’이 있어야 합니다. 명색을 빨리어로는 ‘나마루빠(nāmarūpa)’라고 합니다.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작용하려면 몸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몸과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담배 피우는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어야 담배에 호의적 반응을 합니다. 그 습관이 없으면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이것을 ‘식(識)’이라고 합니다. 이게 일종의 까르마예요.

이 까르마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반복되어 오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그걸 한문으로는 ‘행(行)’이라고 합니다. 빨리어로는 ‘상카라(saṅkhāra)’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습관이 형성됐을까요? 반복된 습관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서 제일 첫 번째로 반응을 보인 때로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어요.

처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바로 ‘무명(無明)’, 즉 알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뇌는 근본적으로 이 무명(無明)에서 시작됩니다. 알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뜻이에요. 다른 사람의 담배 피우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따라한 것이 바로 무지의 시작이에요.

이것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계속되는 것을 행(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식(識)이 형성되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싹이 튼 것이 수(受)예요. 식(識)에서 그냥 수(受)라고 하는 싹이 트는 것이 아닙니다. 식(識)이 명색(名色)이라는 몸과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가 육입(六入)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과 접촉이 일어나면서, 다시 말해 촉(觸)이 일어나면서 수(受)가 일어나는 거예요. 씨앗을 땅에 심으면 그냥 무조건 싹이 트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가 있어야 싹이 트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눈치를 보니까 ‘아이고, 어려워라’ 하고 있네요. (모두 웃음)

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그냥 먹고 싶다고 먹는 것처럼 간단해 보이지만,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행위가 일어나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 놓으셨어요. 담배를 한 번 피우는 과정도 열두 개의 과정을 거쳐서 일어난다고 분석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을 ‘십이연기(十二緣起)’라고 해요. 그리고 이 열두 가지 고리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을 분석해서, 이것을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방법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계율, 애(愛)에서 멈추기

부처님께서는 그 고리를 끊는 첫 번째 방법으로 ‘애(愛)’, 즉 욕망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담배 피우고 싶다’라는 욕망이 일어난 단계에서 그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더라도 그 결과가 나쁘니까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라(sīla), 계율이라고 합니다.

해탈과 열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이것을 계(戒), 정(定,) 혜(慧)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戒), 정(定,) 혜(慧)를 빨리어로는 실라(sīla), 사마디(samāhi), 빤야(prajñā)라고 합니다. 그중 첫 번째 단계인 실라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욕망이 일어났을 때 행위를 멈추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피우고 싶은 욕망, 먹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 다음에 행위를 멈추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래서 참다가 결국 먹어버리거나, 참다가 결국 피워버립니다. 그러나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 해요. 못 지키면 참회하고 또 지키고, 그러다가 못 지켜도 또 참회하고 지켜야 합니다. 계율은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행의 덕목입니다.

욕구, 욕망, 갈애보다 한 단계 앞이 바로 ‘수(受)’입니다. 담배를 보자마자 기분 좋음이 일어날 때, 그 기분 좋은 것을 알아차리면 피우고 싶은 욕망을 안 일으킬 수 있습니다. 수(受)를 알아차려서 애(愛)로 넘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개의 부싯돌이 탁 부딪치면 불꽃이 반짝 일어나죠. 반짝 일어난 불씨를 옆에 있는 연료에 옮겨야 불이 일어납니다. 작은 불이 일어나면 불이 확 붙어나가서 큰 불이 됩니다. 이처럼 불이 붙어 타는 것이 욕망입니다. 욕망이 일어나면 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욕구라는 불씨가 조그마할 때 알아차리고 탁 끄면 쉽게 불을 끌 수 있어요. 불씨가 커져 버리면 아무리 끄려고 해도 잘 꺼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부싯돌 두 개가 부딪혀서 불이 반짝하더라도 주위에 인화물질이 없으면 불이 옮겨 붙지 않습니다. 눈이 담배를 보고 코가 냄새를 맡는 것은 두 개의 부싯돌이 딱 부딪혀서 반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순간에 기분 좋음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수(受)입니다.

이 수(受)를 알아차리면 불꽃이 반짝하고 일어나더라도 옆에 옮겨 붙지 못하고 그대로 꺼져버립니다.

수(受), 느낌 알아차리기

이처럼 수(受)를 알아차리면 갈애가 일어나지 않아요. 내가 까르마가 있더라도 수(受)가 일어날 때 바로 알아차려 버리면 욕망으로 옮겨가지 않아요. 이 수(受)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사마디(samāhi), 즉 선정을 닦고 있는 거예요.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 상태에서 아주 부드러운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숨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윗입술 주위, 콧구멍 주위와 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을 알아차린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을 통해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곧 수(受)를 알아차리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Vipassana)의 첫 번째가 몸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두 번째가 수(受)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 감정을 억제합니다. 이것은 계율을 지키는 거예요. 감정을 억제하는 방식으로는 계율을 지키다가 못 지키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 호흡을 통해 수(受)를 알아차리면, 좋고 싫다는 느낌은 일어나지만 감정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렵죠? 이해가 돼요? 아니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줄 알면서도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것은 왜 명상을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런 생각이 들겠죠.

‘다리 아파 죽겠다. 지루해 죽겠다. 이거 해서 뭐하나?’

명상을 하는 것은 결국 느낌을 알아차리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이 느낌을 알아차리면 감정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일어나는 이전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한국인에게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설명할 때 담배를 예시로 들면 쉽게 알아듣는데, 인도인 수련생들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3명뿐이라 적합한 예시가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다른 비유를 고민하다가 식물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습니다.

작은 싹을 꾸준히 뽑듯이

“다시 쉽게 설명해 볼게요. 이번에는 식물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밭에 잡초가 많아서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언제 제거해야 할까요?

내버려 두면 계속 씨앗이 떨어져서 잡초가 자꾸 더 많아져요. 먼저 잡초가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기 전에 잡초를 뽑아야 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해야 다음에 더 많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잡초가 너무 크면 뽑기가 어렵습니다. 잡초가 어릴 때는 뽑기가 훨씬 쉬워요.

어릴 때 잡초를 다 뽑아버려도 잡초가 바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땅속에 잡초 씨앗이 있기 때문에 뽑아도 계속 싹이 나옵니다. 그러나 계속 뽑으면 점점 적게 나오게 되고, 땅속에 있는 씨앗이 다 없어지면 그때는 다시는 싹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아주 작은 싹을 꾸준히 뽑아버리는 것이 명상을 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명상을 해서 수를 알아차리면 까르마에서부터 계속 느낌이 올라오더라도 욕망으로 발전해 가지 않습니다. 명상을 왜 해야 하는지 대강은 이해했어요?”

“네.” (모두 웃음)

“그러면 포행(布行)을 하고 다시 명상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대충 하면 안 돼요.

첫째,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셋째,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넷째,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걸 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 수 있는데, 처음에 자리 잡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잠시 일어나서 포행 한 바퀴만 돌겠습니다. 포행을 하면서 다리를 풀고 다시 앉아서 명상을 해보겠습니다.”

힌두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인도인들에게 안 그래도 어려운 개념인데 한자어를 빨리어로, 힌디로 번역하니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다시 명상을 시작하며 스님은 힘들어하는 수련생들에게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많은 돈을 주고 이런 명상 수련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무료로 하다 보면 별 것 아닌 줄 생각하기 쉽지만, 명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왕 참석했으니까 정성을 기울여서 해보면 좋겠습니다.”

눈을 감고 오늘의 마지막 명상을 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어두운 새벽에 시작한 명상은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내일도 새벽부터 밤까지 명상수련이 계속됩니다.

전체댓글 39

0/200

정지나

지금,여기 숨이 들어오고 나가고만 있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2-16 18:35:24

고겨희

명상이 굉장히 중요한지를 알아갑니다.

2020-02-06 11:24:32

이지아

어제 경전반에서 명상수련을 했습니다.
20분명상을 2회에 했습니다.
명상하는법을 다시금 배우고, 도반들과 함께 명상하는 시간이 의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새벽기도후 명상과 관련된 스님글을보니
마음에 더 와닿고 스님말씀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2020-02-01 06:47:08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