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1. 인도성지순례 9일째 (룸비니)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은”

안녕하세요. 오늘은 네팔국경을 넘어, 부처님 이전에 한 젊은이로서의 삶을 만나보기 위하여 룸비니로 향했습니다.

네팔 국경을 넘는 날은 원래 다른 날보다 일찍 출발합니다. 이번에는 네팔 관광부에서 정토회 순례단을 환영한다고 해서 조금 더 일찍, 2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인도 출국 심사가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직원이 단 2명이 출입국사무소에 450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인도인 직원들은 난감한 얼굴이었습니다. 상부에 지원요청을 하겠다고 하고선 한참동안 자리를 비우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빈 시간을 활용해서 버스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룸비니 가서 공부할 건데 지금 공부하겠습니다. 여기가 룸비니라고 생각하세요. 바로 옆입니다.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서 독송을 먼저 하겠습니다.”

경전을 독송하며 부처님이 태어났던 당시로 돌아갔습니다. 스님은 이어서 부처님의 전생과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경전을 읽어보니 무슨 소설 같죠? 경전에 표현된 부처님 탄생의 모습에는 부처님의 신화적인 전생 얘기와 이 세상에 부처님이 역사적 인물로 태어나는 현생의 사건이 교묘히 이어집니다. 사회 역사적으로 당시의 인도 사회는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처럼 작은 나라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빈부격차는 아주 극심해지고,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는 혼란기였습니다. 이런 혼란기에 부처님이 출현했어요.

이런 혼란기에 인도 민중은 어떤 사람을 원했을까요? 첫째, 정치적인 혼란을 잠재워줄 사람을 원했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한 나라 안에서도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거나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는 시대 속에서 폭력적인 방식 아닌 법과 정의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줄 왕을 세상 사람들은 원했습니다. 이런 왕을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합니다. 왕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처럼 정치적으로 평화롭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세상을 원하는 중생의 희원이 있었습니다.

둘째, 완전히 깨달은 사람을 원했습니다. 당시는 사상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기존 브라만교의 믿음과 사상, 철학이 있었지만 그것은 현실과 맞지 않았어요. 기존의 사상과 믿음으로는 현실 세계를 다 설명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이게 진리다’, ‘저게 진리다’ 하는 온갖 주장이 백가쟁명(百家爭鳴) 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중은 완전히 깨달은 누군가가 나타나서 어떤 게 바르고 어떤 게 그른지 확연히 밝혀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두운 밤에 눈을 감고 더듬어 본 뒤에야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게 아니라, 불을 확 켜서 누구나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분이 출현하길 바랐던 거예요. 그것은 바로 붓다의 출현입니다.

이런 당시의 조건을 사회역사적으로 해석하면 시대적 요구에 부처님이 응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부처님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자님이나 노자님도 시대적 조건에 응답을 하신 거예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분들도 시대적 조건에 응답하신 분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인도라는 곳은 믿음이 강하고 신비로운 나라입니다. 부처님은 아주 지성적이고 냉정하신 분이셨지만, 부처님의 일생을 기록한 분들은 인도 사람이었어요.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법문을 왜곡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인도 특유의 문화가 있다 보니 그래도 간혹 왜곡이 일어납니다. 특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와 태어나실 때의 이야기는 작가가 기록하는 것이니 더 자유로웠겠죠. 그래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들은 굉장히 신비롭게 인도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인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런 위대한 성인이 이 세상에 태어나 출가하고 6년 고행해서 바로 부처가 됐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과거 생애 수도 없이 닦아온 공덕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전생 이야기들이 나오게 됩니다.”

스님은 547가지의 전생담 중에 재미있고 유익한 2가지 이야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선혜동자가 연등부처님에게 제자가 되는 이야기, 코끼리왕 이야기였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난 순례자들이 졸지 않도록 스님은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호명보살(護明菩薩) 이야기가 전생담 중에서 마지막 이야기이고, 그 다음은 현생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카필라 성(Kapilavastu, 迦毘羅衛城)의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과 마야부인(摩耶夫人, Mahamaya) 사이에는 정반왕이 40살이 넘도록 아기가 없었어요. 당시에는 40살이 넘으면 벌써 손자 볼 나이였기에 걱정이 컸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해도 아기가 없던 어느 날, 마야부인이 침대에 잠시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는지 꿈을 꿨어요. 본인은 꿈을 꾸는지 몰랐죠. 바깥에서 웬 음악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봤더니 음악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고 있었어요. 또 조금 있으니까 뭔가 별빛 같은 게 반짝거리며 내려왔어요. 빛이 마야부인 가까이 왔을 때 자세히 보니까 흰 코끼리예요. ‘웬일인가?’ 하고 보고 있는데, 흰 코끼리가 갑자기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팍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실제가 아니라 꿈이었어요. 태몽을 꾼 거죠. 이 꿈을 꾼 때부터 마야부인에게 태기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전생이 현생의 꿈으로 연결되고, 다시 부처님의 일생으로 연결됩니다. 전생 얘기는 모두 하나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기에 좋은 내용들이고, 현생에서는 마야부인이 태몽을 꾸고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을 표현한 겁니다.

여기서 어느 쪽을 중심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마야부인 중심, 즉 이생 중심으로 보면 마야부인이 태교를 잘해서 이런 위대한 성인이 태어났다고 볼 수 있어요. 한편 호명보살, 즉 부처님을 중심으로 보면 부처님이 마야부인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태중에 들자 벙어리는 말을 하고, 봉사는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고, 꼽추는 서게 되고, 결박에 묶인 자는 결박이 풀어지고, 지옥의 불은 꺼졌다. 개구리와 뱀이 함께 뛰놀고, 토끼와 사자가 함께 뛰어 놀았다.’

바로 이 대목이에요. 원래대로라면 사자는 토끼를 잡아먹어야 하고,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어야 하잖아요. 이건 부처님이 앞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줄 열반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불평등이 사라지고,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없어지는 세계예요.

장님이 눈을 떴다는 묘사도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눈을 뜨고 있지만 진리를 못 보잖아요. 다시 말해 어리석은 자가 지혜의 눈을 얻었다는 뜻이에요. 또 우리는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잖아요. 경전의 표현은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경전에 나온 꼽추라는 표현은 제 힘으로 못 서고 남에게 의지해서 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꼽추가 일어섰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 있던 사람이 제 힘으로 섰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공부를 하는 중에 출입국사무소에서 불렀습니다. 법문을 멈추고 다시 수속 절차를 밟았습니다. 스님은 11시 무렵 네팔 출입국 사무소로 넘어왔습니다. 네팔 관광부와 NGO단체에서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정토회 순례단이 새벽 7시에 도착한다고 해서, 이 분들도 일찍 나와서 4시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네팔 사람들은 꽃잎을 뿌려주고, 흰 천을 목에 걸어주며 환영해주었습니다. 따뜻한 차도 준비해주었습니다.

네팔 출입국 사무소에서 다시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출입국 절차를 밟으며 순례자들은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 공양을 마쳤습니다. 도시락을 싸두어서 어떤 일이 생겨도 걱정이 없습니다.

인도와 네팔 경계인 소날리에 새벽 6시 30분에 도착해서 오후 1시 50분이 되어서야 네팔 국경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11대의 차량 중에 9대가 룸비니로 출발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이었습니다. 쿠시나가르에서 새벽 2시 30분에 출발해서 13시간이 지난 셈입니다.

순례자들은 가사를 수하고 한 줄로 룸비니에 입장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국이 찍혔다는 벽돌과 부처님 탄생 설화를 새긴 조각을 둘러보고 너른 공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순례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 후에 스님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너무나 멀리 오셨습니다. (모두 웃음, 박수) 룸비니가 먼 곳이에요.(모두 웃음) 새벽 2시 반에 출발해서 3시 반에 도착했으니까 13시간 걸렸네요. 그래도 A팀이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 갈 때 보다는 3시간 적네요. 그 땐 16시간 걸렸잖아요. 부처님의 탄생지와 성도지가 중요하긴 중요한가 봐요. 우리들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 짜증 안내고 즐겁게 보냈습니까?”

“네!”

“다행입니다. 부처 다 됐습니다.”(모두 웃음)

이어서 부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룸비니

“마야왕비는 흰 코끼리 태몽을 꾸고 아기를 갖게 됐어요. 시간이 흘러 아기를 낳을 때가 되자 왕에게 허락을 받고 친정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마야부인은 꼴리족(Koliya, 拘利族) 출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석가족(Sakya, 釋迦族)과 꼴리족이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어요. 두 종족은 사이가 아주 가까워서, 석가족 왕족의 여자들은 꼴리족 왕족에게 시집을 가고 꼴리족 여자들은 석가족 왕족에게 시집을 오는 관계였습니다. 마야왕비, 야소다라(耶輸陀羅, Yasodhara) 공주, 마하프라자파티(Mahaprajapati) 부인 모두 꼴리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꼴리족의 수도는 ‘데바다하(Devadaha)’라는 곳입니다. 석가족의 수도는 ‘카필라바스투’라는 곳입니다. 데바다하를 한자로는 천비성(天臂城)이라고 해요. 마야부인은 아기를 친정에서 낳기로 하고 남편의 동의를 얻은 뒤 동문으로 나갔습니다. 카필라바스투와 데바다하 사이의 거리는 56km 정도 됩니다. 56km는 하루 만에 가기 어려운 거리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길을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룸비니는 카필라바스투와 데바다하 사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요. 룸비니에서 카필라바스투까지 28km 정도 되고, 룸비니에서 데바다하까지도 28km 정도 됩니다. 정오쯤 됐을 때 일행이 룸비니에 도착했는데, 마침 꽃이 아주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쉴 겸, 꽃구경도 할 겸 가마를 세웠어요. 마야부인이 그 중 가장 아름답게 핀 꽃나무에 다가가서 탐스러운 꽃을 구경하려고 오른손을 들어 가지를 잡았을 때 산기를 느끼고 아기 낳을 준비를 했어요. 준비를 마치고 아기를 낳는데, 방금 오른손을 들었던 옆구리로 태자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늘의 대범천왕(大梵天王)인 마하브라만(Maha brahma) 네 명이 내려와 황금 그물로 아기를 받았고,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일산으로 볕을 가려주고, 범천왕(梵天王, Brahmadeva)이 불자(拂子)를 들고 시립을 하고, 용왕이 더운물과 찬물로 아기의 몸을 씻겼습니다. 그러자 아기 몸이 황금빛으로 빛났습니다. 아기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습니다. 그때 발걸음마다 송이송이 연꽃이 피어올랐어요. 그리고 아기는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존귀하도다. 삼계가 다 고통 속에 빠져 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이것이 붓다의 탄생 당시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건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인도의 풍속에 따라 전설과 설화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어요. 또 당시의 일부 종교적 시각에서는 여성을 부정하게 여겼으니까 ‘어떻게 부처님 같이 위대한 분이 여성의 사타구니로 태어날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해서 나온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중요하지 않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옆구리로 태어났다’라고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도 있어요. 믿음은 자유니까요.

이것을 사회적으로 해석해보면, 인도의 창조신화에 따라 부처님의 계급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한 브라만(Brahman)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신의 입김으로 사제인 브라만(Brahmin,婆羅門) 계급을 창조하고, 신의 양옆구리에서 왕족인 크샤트리아(Kshatriya, 刹帝利, 刹利種)를 창조하고, 신의 배에서 장사하고 농사짓는 평민인 바이샤(vaisya, 毗舍)를 창조하고, 신의 두 발바닥에서 노예 계급인 수드라(Shudra,首陀羅)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인도 전통사회에서는 이처럼 계급을 신이 창조했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묘사는 부처님이 왕족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탄생할 때의 모습

부처님이 태어나서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여섯 발자국이 뜻하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벗어났음을 상징합니다.

육도(六道)는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를 말합니다.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를 삼악도(三惡道)라고 하고,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를 3선도(三善道)라고 부릅니다.

악도든 선도든 다 윤회의 세계 안에 있습니다.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상에 태어났더라도 그 복이 다하면 다시 이 세상에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비록 천상의 복락이라 하더라도 지속 가능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윤회의 세계 안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윤회를 벗어났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해탈을 얻을 것이다’,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태어나자마자 한 손은 하늘 위를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자처럼 외쳤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천상(天上)은 정신적인 세계, 형이상학적인 세계, 신들의 세계입니다. 천하(天下)는 인간 세계라는 뜻입니다. 철학적으로는 형이하학적 세계, 즉 물질세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상천하를 통틀어서, 즉 신[天人]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통틀어서 붓다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신을 믿고 신을 존귀하다고 하지만, 깨달은 이가 신보다 더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세계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말하고, 하늘 아래 인간 세계의 가치는 권력이나 재물, 명예 등을 의미합니다. 그 모든 것들보다도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붓다, 다시 말해 깨달은 이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만 기억하시면 안 돼요. 그 뒤에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는 한 줄이 더 있습니다.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이루어진 이 세계를 말합니다. 이 세계는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인 욕계, 욕망은 없지만 모양과 형상이 있는 세계인 색계, 모양과 형상마저도 없는 세계인 무색계,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세계를 분류하는 방법입니다. 예불문에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욕계, 색계, 무색계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시라는 뜻입니다.

삼계개고(三界皆苦)는 ‘삼계가 다 괴로움에 빠져 있구나’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개(皆)’ 자는 ‘모두 개’ 자예요. 아당안지(我當安之)는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는 뜻입니다. 즉 ‘고통 받는 중생들을 다 구제하리라’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만 알아서 잘못 이해하고 있죠. 자기가 잘났다고 내세울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쓰잖아요. 원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의 만물 중에서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또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인간의 권리, 즉 인간의 존엄이 가장 중요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깨달은 이 붓다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 즉 깨달은 자가 되는 것으로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해야죠. 그런 뜻을 표현한 말이 하화중생(下化衆生)입니다. 그것을 탄생게(誕生偈)에서는 ‘삼계개고아당안지’, 즉 ‘삼계가 다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구제하리라’ 이런 표현으로 나타냈습니다. 이를 대승불교 형식으로 말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상구보리(上求菩提)’에 해당하고, ‘삼개계고 아당안지’는 ‘하화중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이곳 룸비니에서 아기를 낳자 마야부인은 친정으로 가다가 카필라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카필라 성으로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 만에 마야부인은 돌아가셨습니다. 아기도 키워야 하고 왕에게 부인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정반왕은 그 당시의 풍속에 따라 마야부인의 막내 동생인 마하프라자파티를 왕비로 들였습니다. 마야부인의 다른 동생들은 다 시집을 갔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막내 동생이 정반왕과 결혼해서 왕비가 된 거예요. 그러니 마하프라자파티 부인은 부처님을 키워준 양모라고도 할 수 있고, 엄마의 동생이니까 이모라고도 할 수 있죠. 마하프라자파티 부인이 생물학적으로는 양모라고 하더라도, 부처님은 실제로 친엄마와 똑같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부처님이 왕궁으로 돌아온 뒤, 아기의 이름을 짓는 명명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름을 싯다르타(Siddhartha)라고 지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성취의 의미로 지은 이름이었어요.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온 유명한 아시타 선인이라는 분을 모셔서 싯다르타 태자의 관상을 보게 했어요. 이때 관상을 보는 장면이 많은 벽화나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타 선인이 싯다르타 태자의 관상을 보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걱정이 된 왕이 ‘불길해서 그렇소?’라고 물었더니 선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세속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붓다를 이룰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늙었기에 이 아이가 성도할 때까지 살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법문을 들을 기회가 없으니 슬프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데려온 시자(侍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붓다가 출현했다는 소리가 들리거든 가서 뵙고 가르침을 받아라.’

이때 정반왕은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자기 아들이지만 절을 했습니다. 이것이 정반왕이 부처님께 첫 번째로 한 절입니다. 나중에 농경제 때도 절을 한 번 하고, 성불해서 돌아오셨을 때도 절을 합니다. 이처럼 평생 동안 아버지인 정반왕이 아들인 붓다에게 세 번 절을 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아시타 선인의 예언을 듣고 감동해서 한 절입니다.”

이어서 경전독송을 하고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어렵게 온 룸비니에서 스님은 두 가지를 하자고 했습니다.

“여기 오기 쉽지 않으니까 두 가지를 하려고 해요. 하나는 정진이고, 하나는 기념사진 촬영이에요. 지금까지 조별로 한 번도 사진을 못 찍었잖아요. 여기서 오늘 조별로 찍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곧 문을 닫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108배 정진을 하는 동안 돌아가면서 조별 사진을 찍겠습니다.”

108배 정진을 하는 사이 순례자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다 찍고 이제 문 닫을 시간이 된 줄 알았더니, 해가 뜰 때 열고 해가 지면 닫기 때문에 오늘은 여섯시 반까지 문을 열어둔다고 합니다. 갑자기 한 시간이 더 남았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성장하신 카필라성에 대한 경전을 독송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내일은 원래 일정에다 오늘 가기로 한 카필라성, 쿠단까지 순례할 예정이기 때문에 성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다 카필라성 안이에요. 내일 일정이 빠듯하니까요. 여기서 읽고 내일 카필라성에 가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미리 예습을 했습니다. 독송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두워졌지만 자유롭게 둘러보고 숙소까지 걸어왔습니다.

네팔에 있는 한국절인 대성 석가사에 도착해 절에서 준비해준 음식으로 공양을 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배추김치와 된장국, 배추와 된장을 맛있게 먹고 따뜻한 보리차도 마셨습니다.

순례객들은 조별 나누기를 한 뒤 취침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해서 3시에 출발하는 일정입니다. 탄센으로 가서 해발 2천미터의 산 위에 올라 저 멀리 8천 미터 높이의 히말라야 산 봉우리들과 일출 모습을 보고 내려올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오늘 가지 못한 카필라바스투와 쿠단, 부처님께서 전쟁을 막으셨던 로히니강과 꼴리족이 세운 진신사리탑 랑그람을 참배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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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부처님에 말씀,결심,다짐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다!!!
감사합니다 꾸벅^^

2020-02-06 22:14:04

임다희

네팔 국경을 넘어갈 때 어찌보면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일찍 일어나서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인도에서 많은 기다림이 있다보니 빨리빨리라고 외치던 한국 문화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대성석가사의 푸짐한 저녁공양을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2020-02-02 00:49:41

이옥희

고맙습니다!
이렇게 복습할 기회를 주셔서. . .
기억이 새롭고
감동이 배가 됩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2020-02-01 17: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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