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2.7 제9차 천일결사 회향 수련 1일째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

안녕하세요. 정토회 제9차 천일결사를 마무리하는 회향 수련이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3년 동안 매일 수행하고 활동한 것들을 마무리하는 3000배 정진을 하고, 내일은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서 정토회가 어떤 부족함이 있었고 어떤 점을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중공사’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계곡에는 물이 꽁꽁 얼었습니다.

회향 수련을 하기 위해 언덕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손에도 추위를 대비해서 침낭, 담요 등 괴나리 봇짐이 한가득입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600명밖에 안 됩니다. 오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공간의 제한 때문에 기준을 정해서 인원을 한정했습니다. 첫째, 9-1차 백일기도부터 9-10차 백일기도까지 모두 참석하고 기도비까지 낸 사람, 둘째, 발심 행자 이상이면서 통일의병인 사람, 셋째, 정토회에서 담당자 이상으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한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과 함께 제9차 천일결사 회향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중은 청법가로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여기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활동하시고 정진하신다고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정토회에서 정말 알토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서로 얼굴 한 번 보세요.” (모두 웃음)

이어서 어떤 자세로 정진을 해야 하는지 1시간가량 법문 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3000배 정진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세와 관점을 갖고 정진을 할 것인가

“형식적인 의미에서는, 참선을 한다든지, 염불을 한다든지, 절을 한다든지, 독경을 한다든지, 주력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정진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물건을 담는 박스와 같이 포장에 해당하는 겁니다.

이에 반해 정진의 내용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마치 흙탕물과 같아요. 가만히 놔두면 흙이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물이 맑아 투명하게 비칩니다. 그런데 약간 흔들거나 자극을 주면, 밑에 있는 흙이 올라와서 전체 물이 흐려져 버립니다. 그래서 흐린 물에는 아무것도 비치는 게 없어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상태를 ‘무지(無知)’라고 합니다. 앎이 없거나 잘못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해서 ‘치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무지 상태가 되면,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욕심이 일어납니다. 내가 어떤 것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욕구이지 욕심은 아닙니다. 욕구가 지나치게 커지면 욕심이 됩니다. 마음이 흐려져서 욕구가 지나치게 커진 것을 모르는 겁니다. 이것을 ‘탐심’이라고 합니다.

둘째, 자기 생각이 옳다는 무의식적인 고집이 생깁니다. 고집이 생기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성내는 마음이라고 해서 ‘진심’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탐심, 진심, 치심에 의해서 고통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중에 치심, 어리석음이 근본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일어나더라도, 즉 마음이 흐려서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도, 행동의 결과로 인해 손해가 나는 줄 알면 그 행동을 멈춰야 합니다. 이것이 ‘계율’입니다.

그러나 계율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마음이 흐려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자꾸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맑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이 맑아지도록 하려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합니다. 물을 휘젓지 말고 가만히 놔두는 겁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졸려요. 그래서 멍청해지기가 쉽습니다. 마음이 흔들려서 앎이 없는 게 아니고, 고요한 데도 멍청해져서 앎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고요한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정’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물이 맑은 상태가 유지되면, 갖가지 사물이 물에 비치듯이 마음이 고요하면 지혜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아예 행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서 우리가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하는 겁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흙탕물과 같은 상태가 바로 현재 우리의 마음이에요. 자극을 안 받고 조용할 때는 괜찮은데, 자극을 받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무언가를 눈으로 보면 시각적 자극을 받아서 흔들립니다. 어떤 소리를 들으면 청각적 자극을 받아서 흔들립니다. 냄새를 맡아도 흔들리고, 맛을 봐도 흔들립니다. 손으로 만져도 부드럽거나 따뜻한 감촉에 갈애가 일어나거나 혐오가 일어납니다. 생각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 갑자기 마음이 들뜨거나 경직되거나 슬프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때는 마음이 흔들리는 줄을 알아차려야 해요. 그 흔들리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면 그 마음이 가라앉게 됩니다. 욕망이 일어날 때 욕망이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리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 욕망이 사라지게 됩니다. 화가 일어날 때 그 화나는 상태를 알아차리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 세력이 점차 약해져서 고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초심자는 가능한 자극이 없는 산속에서 정진을 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자극이 없어서 고요한 것은 완전한 수행은 아니에요. 자극을 받아서 흥분하는 것보다는 좋은데,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계속 산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방식으로는 병든 마음을 응급으로 치유할 수는 있지만, 건강한 상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는 공간을 멸균상태로 해놓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건강입니다.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건강해지려면 면역력을 키워서 온갖 세균이 있는 환경에서도 내 몸이 그것을 이겨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진짜 건강입니다. 그래야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디에서든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마음도 눈에 보이는 게 있어도 거기로부터 자유롭고, 귀에 들리는 게 있어도 거기로부터 자유롭고, 냄새에도 자유롭고, 맛에도 자유롭고, 감촉에도 자유로운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자기 마음의 상태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처음 도를 구하는 사람들은 깊은 산속에서 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의 무지를 깨우치고 법의 이치를 알았다면, 다시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세상 속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점검합니다. 이것을 선에서는 ‘보림’이라고 합니다.

법의 이치를 깨치는 것을 ‘초견성’이라고 하는데, 초견성을 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안 걸려요. 그러나 보림을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육조 혜능대사도 6개월 간 방아를 찧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만, 보림을 하는 데는 16년이나 걸렸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초견성을 언제 했을까요?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다면 그때 초견성을 한 거나 같아요. 왜냐하면 깨달음의 장에서 대부분 법의 이치를 체득하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금 보림을 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보림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빠져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보림을 하려면,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머슴살이도 하고, 생선가게도 하고, 하인 노릇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대를 받고, 핍박을 받고, 고통을 겪어야, 그런 가운데에서도 내가 자유로워지는지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좋은 환경에서는 특별히 수행을 안 해도 누구나 다 잘 지낼 수 있으니까요.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아도 화상도 모례 장자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보림을 하기 위해 지금 남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남의 집 남편이 되어서 아내한테 실컷 구박을 받아보고 있는 중이고, 아이들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한테서도 압박을 받아보고 있는 중이고, 회사에 들어가서 상사한테 온갖 꾸지람을 듣고, 이렇게 종살이를 한 번 해보는 중인 겁니다. 그 속에서도 내 마음이 여여해지는지 연습하러 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이 이런 관점을 다 놓치고 사는 것 같아요. (모두 웃음)

이 속에서도 마음이 여여해졌다면, 이제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기 싫어서 그렇게 헤매고 사는 거예요? (모두 웃음)

남편이 하는 말, 아내가 하는 말, 가게에 온 손님이 하는 말, 직장 상사가 하는 말,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수행자는 ‘이런 말속에서도 내가 여여해지는가?’ 이렇게 살펴야 해요. 화가 나면 ‘아, 내가 또 놓치네’ 하고 자기를 체크해봐야 합니다. 이게 바로 수행적 관점입니다.

‘저 소리에, 저 행동에, 이 상황에 내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는가?’

이것을 딱 체크하는 겁니다. 고요함이 유지되고 안 되고는 부차적인 문제예요. 이 관점을 갖고 있으면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욕을 많이 해주면 해줄수록 연습할 기회가 많아지는 거예요. 하루에 한 번도 욕을 안 해주면 그 날은 연습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남편이 하루에 열 번씩 욕을 해주면, 아침에 놓쳐도 점심때 또 기회가 생기고, 점심때 놓쳐도 저녁에 또 기회가 생기고, 자기 전에 또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이런 식으로 내가 마음공부가 되는지, 안 되는지 계속 점검해 나갈 때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 관점을 놓치면 ‘수행적 관점을 놓쳤다’ 이렇게 말합니다. 정진의 내용적 측면은 바로 이겁니다.

이 관점을 24시간 유지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모든 게 수행입니다. 대화하는 것도 수행이고, 일하는 것도 수행이고, 화를 벌컥 내는 것도 수행입니다. ‘아, 내가 놓쳤구나’ 하고 체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건 아무렇지 않은데, 이해관계가 걸린 것은 잘 안 된다.’

‘이해관계가 걸린 건 아무렇지 않은데, 자존심이 상하는 건 못 견딘다. 아직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하구나.’

‘남편에게는 되는데, 아이한테는 안 된다.’

이렇게 나는 어떤 것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일상이 다 수행입니다. 참선하고 염불하고 절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일상이 수행입니다. 꾸준히 정진한다는 것은 이 관점을 늘 유지하고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바깥에서 자극이 얼마나 강하게 들어오느냐, 내 업식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서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해요. 그러나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 실패를 반복하다가 결국 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마치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는 횟수가 많아지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이때 수행적 관점을 놓쳐버리면 안 돼요. 관점을 놓쳐버리면 경계에 휘둘리게 됩니다. 그러나 경계에 휘둘리더라도 내가 경계에 휘둘리는 줄을 알고 자기중심을 잡고 있으면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일상 속에서 보림을 하기 위해 파견 근무를 나온 겁니다. 이렇게 보림을 하고 있다는 관점을 딱 가지고 있으면, 경계가 강할수록 자신에 대한 체크가 더 깊이 됩니다. 상대가 세게 나올수록, 환경이 나쁠수록, 내 안에 더 깊은 무의식이 반응합니다. 오늘 3000배를 하면 육체가 힘들어요. 육체가 힘들면 내 속에 있던 업식이 여기에 반응합니다.

‘부처님이 이런 고행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완전히 고행이네. 사람을 죽이려고 이러나?’

이렇게 온갖 것에 의심이 듭니다. 힘이 들면 들수록 자기 속에 있던 분별이 끝없이 올라오게 돼요. 그럴 때 자기를 봐야 해요.

‘아, 내가 몸이 힘드니까 이런 상황까지도 다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이렇게 연습을 자꾸 해나가야 해요. 절을 장시간 하는 이유는 육체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3000배를 하다 보면 3년 공부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절하는 모습은 반듯한데, 속은 부글부글 끓습니다. 절을 하면, 땀이 나고, 다리가 아프고, 옷이 젖고 하니까 짜증이 올라오거든요. 절을 하느라고 마음이 불편해져 있는데, 옆에서 방귀를 뀐다든지, 문을 쾅 닫고 나간다든지, 이렇게 자극을 주면 그쪽으로 마음이 확 쏠려서 시비를 일으키게 되죠. (모두 웃음)

절을 하는 것은, 첫째, 건강에 좋아요. 둘째,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는 의지력도 키울 수 있어요. 셋째, 자기 속에 내재해 있던 업식을 지켜보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할 수 있어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입니다. 몸의 피곤함이라고 하는 외부의 자극이 주어졌을 때 나에게는 어떤 분별이 올라오는지 살펴보고, 거기로부터 내가 편안해져야 해요. 이를 악물고 참으면 안 되고, 그 상태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져야 합니다. 편안해지지 않으면 편안해지지 않는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래야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게 돼요.

젊은 사람들은 주로 의지력이 약하니까 의지력을 키우는 것을 중심에 놓고 해도 돼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3000배는 다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 그걸 극복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그러나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젊은 사람들처럼 의지력 테스트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을 쫓아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히려 자기를 관찰하고 알아차려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은 ‘이러다가 몸에 고장이 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분별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넘어서야 해요. 나이 든 사람은 ‘끝까지 해내겠다’ 하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이렇게 사람마다 건강상태에 따라 각자 수행의 목표를 다르게 세워야 합니다. ‘나는 의지력이 약해서 항상 중간에 그만둔다’라고 할 때는 그걸 극복하는 것을 주목표로 삼고, ‘나는 늘 욕심을 내서 나중에 후회를 한다’라고 할 때는 욕심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을 주목표로 삼으면 돼요.

절을 하다 보면 과거에 잘못했던 일, 상처 받았던 일, 이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이때 그 생각에 빠지면 안 돼요. ‘아, 내가 이런 상처가 있었구나’ 하고 흘려보내야지 골똘히 그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골똘히 생각하면 힘이 덜 들긴 해요. 그러나 힘이 덜 드는 것에 목표를 두면 안 됩니다.

오늘 3000배를 하는 목적은 지난 3년 동안 정진한 힘을 모아서 3000배를 해냄으로 인해 의지력을 키우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목적은 정진할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처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상처가 떠올라도 마음이 흥분되거나 경직되거나 미워지지 않고, 그것을 그냥 바깥 하늘을 보듯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을 중심에 놓고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정진할 때는 환경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정진은 환경을 외부 자극으로 보고, 그 자극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지느냐를 연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열악한 환경에서 정진을 할수록 정진이 잘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수행이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을 딱 가져버리면 환경은 더 이상 논하지 않게 돼요.

그래서 3000배를 한 경험이 참 중요해요. 일상으로 돌아가서 가끔 누가 잔소리를 해서 듣기가 싫을 때 ‘잔소리 듣는 게 나을까, 3000배 하는 게 나을까?’ 이렇게 기준점이 생기게 됩니다. ‘아, 그래도 잔소리 듣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이 되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이렇게 힘든 3000배도 했기 때문에 잔소리 들어주는 건 별로 안 힘들어요. 사로잡히면 정말 힘든 일이 되는데, 거기로부터 벗어나면 전혀 힘든 일이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하나 극복하면 삶의 기준점이 생겨요. 비행기를 장시간 타서 힘들 때 시골에서 트럭 타고 몇 시간을 갔던 때를 생각할 수 있게 되고, 트럭 타고 가는 게 힘들 때는 몇 시간을 걸어서 갔던 때를 생각할 수 있게 돼요. 이런 경험을 통해 낮은 기준점을 갖고 살아야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유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렇다고 항상 어려운 곳에서만 살아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경험을 하면 삶의 자유가 훨씬 더 커진다는 겁니다.

이런 마음으로 3000배 정진을 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수행적 관점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나침반과 같은 스님의 법문이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입재 법문 이후로는 묵언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각자 집에서 싸 온 반찬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12시 40분부터 4시 40분까지 15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다시 1500배 정진을 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대 수련장은 500여 명이 뿜어내는 땀과 입김으로 열기가 가득 찼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지난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손목이 아프기도 하고, 무릎이 아프기도 하고,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생각이 수없이 떠오르지만, 함께 하는 힘 덕분인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스쳐 지나가고 맙니다.


3천 배 정진을 하는 중에 20명씩 모둠별로 나와서 스님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절을 하고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밖으로 나와 스님이 머물고 있는 4수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활동가들은 먼저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도 함께 삼배를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3년간 수고 많았어요.”

절을 한 뒤 둘러앉아 각자 소속 법당과 자신의 소임을 이야기하며 스님과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총무님은 할 만했어요?”

“첫 해는 힘들었어요. 지금은 할 만해요.”

“정토회 총무 3년 하면 성불한다는 말이 있어요. 힘든 게 당연해요.”

스님은 한 분 한 분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경청한 후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법당에서 활동하시다 보면 어려운 점은 없어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면 수행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말을 잘 못하는 거예요?” (모두 웃음)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다는 분들도 있었고, 어려운 점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주간반 활동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고민입니다. 요즘은 주부들도 다 돈을 벌러 나가요."

“봉사하는 사람이 늘어야 하는데, 점점 줄어드네요. 대한민국 경제는 점점 좋아진다는데 개인은 살기 더 어려워지나 봐요. 옛날과 달리 칠십까지도 일을 하잖아요.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이 가장 살기 빡빡해요. 한국도 잘 살아질수록 사는 게 빡빡해지는 거 같아요. 수행을 해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아니면 죽을 때까지 헐떡거려요.”

법당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건물이 오래돼서 비가 새요.”
“법당이 너무 좁아요.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데, 공간이 좁아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객 소임을 서로 안 하려고 해서 고민이에요.”
...

개선점에 대해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한 후 한 분 한 분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제가 올해 고추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고춧가루를 만들었어요. 서원 행자 분들에게는 고춧가루를 한 봉지씩 선물로 드릴게요. 발심 행자 분들에게는 고춧가루보다 더 좋은 새 책을 사인해서 드리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스님이 직접 농사지은 고추를 선물로 받자 다들 기뻐했습니다.

“스님 피땀이 서린 거예요. 서원 행자는 매운 고춧가루 먹고 정신 좀 차리고, 발심 행자는 책 읽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어떤 활동가는 “아직 김장도 못했는데 김장에 써야겠다.”며 기뻐했습니다. 밤 10시, 스님과의 만남이 모두 끝나자 대 수련장에서는 3000배 정진도 모두 끝났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 마음도 홀가분해졌습니다.

내일은 지난 3년을 돌아보며 소감문 작성을 한 후 정토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대중공사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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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나

자꾸 자학하고 자책하고 움추려듭니다
다시,시작 아~그렇쿠나 감사합니다 꾸벅^^

2019-12-27 21:55:29

전은혜

여여해지게습니다

2019-12-26 06:36:30

김현중

지금 여기에서 나를 살피는 일에 깨어있습니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을 살피고 마침내 고요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연습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12-17 06: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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