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하루

2019.9.10 북미 순회강연 (6) 미국 달라스(Dallas)
“둘째 아이를 낳고 나니 첫째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뉴욕에서 북미 동부지구 불교대학 졸업생을 위한 수계식을 한 후 텍사스주 북부 달라스로 이동하여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어제 늦은 밤까지 업무를 본 후 새벽 4시 30분부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각자 숙소에서 108배와 명상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뉴욕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수계자들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전 8시에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수계자는 뉴욕에서 4명, 맨해튼에서 6명, 뉴저지에서 4명, 버지니아에서 4명, 보스턴에서 1명이 참가하여 총 19명이 함께했습니다. 작년 11월에 토론토에서 수계식을 한 차례 하였고, 워싱턴에서 많이 참가하지 못해 오늘은 수계자의 숫자가 적었습니다. 적은 숫자지만 목소리는 우렁찼습니다.

이어서 수계자들은 스님에게 수계 법문을 청했습니다.

“여러분은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재가 수행자가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발심해서 오늘 삼귀의 오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삼귀의 오계는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삼귀의와 오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에게 최초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다섯 명의 수행자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사회에서 알려져 있던 수행을 했는데, 부처님이 발견한 새로운 법을 듣고 그들 또한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됐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고뇌가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다음에 부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야사 비구예요. 본래 그는 바라나시에 사는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자신이 즐겼던 쾌락이 곧 고통임을 자각하고 굉장히 괴로워했어요. 그러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법문을 듣고 고뇌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바로 부처님께 자기도 출가 수행자가 되기를 청했어요. 부처님께서도 승낙을 했습니다. 야사 비구는 본래 수행자가 아니었고 그냥 세상에서 쾌락을 즐기던 젊은이였는데 이렇게 급격한 삶의 전환이 일어난 거예요.

야사의 아버지 구리가 장자는 사라진 아들을 찾다가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역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을 떴어요. 그러나 이미 가족이 있고 나이도 들었으니까 집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구리가 장자에게 세속에 살면서도 수행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길이 바로 삼귀의 오계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받게 되는 삼귀의 오계를 처음 받은 사람이 바로 야사 비구의 아버지 구리가 장자입니다.

그러고 나서 구리가 장자는 부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어요. 식사를 하고 야사 비구의 어머니와 부인도 부처님의 법을 청해 듣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래서 그들도 재가 수행자가 되기를 청했고 부처님께서 승낙을 하셨어요. 이렇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어둠의 장막이 걷혔을 때 이들이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우친 마음을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심과 같고,
덮여있던 것을 벗겨 보여주심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이
여러 가지 설법으로 저희를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오늘부터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부처님의 수행 대중에게 귀의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삼보에 귀의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칭찬을 하시면서 삼보에 귀의한 재가 수행자는 반드시 5가지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삶의 지침을 주신 거죠. 그 지침의 요지는 수행자라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첫째, 어떠한 경우에도 괴롭지 않고 속박받지 않는 해탈과 열반을 증득해야 해요. 둘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수행자라고 하면 출가 수행자만 있고 재가 수행자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리도 조선시대에 복을 비는 신자 개념만 있었지 재가 수행자의 개념은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지금부터 백 년 전에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서명하신 백용성 스님이 다시 재가자들에게 삼귀의 오계를 주면서 재가 수행자의 길이 열렸습니다.

정토회는 불교신자의 모임이 아니라 수행자의 모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가 되어야 정토회의 정식 멤버가 될 수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누구한테 복을 빌고 도움을 청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수행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면, 이제 여러분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목표를 가지고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누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법문을 마치고 오랜 세월 동안 지은 허물을 참회하는 연비 의식을 했습니다. 수계자들은 호궤 합장을 하고 참회 진언을 외며 왼쪽 팔을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수계자들의 팔에 향으로 연비를 하고 참회 발원을 했습니다.

“마른 풀이 불에 타듯 흔적조차 없어져라. 죄의 본성 따로 없고, 마음 따라 일어난 것. 마음 한번 없어지면 죄업 또한 없어지네. 죄도 없고 마음 없어 그 자리가 비었으니 텅 빈 마음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일세.”

이렇게 참회와 연비를 마치고 스님이 축원을 했습니다. 대중은 모두 합장을 했습니다.

“오늘 저희 정토행자들은 뉴욕 법당에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재가 수행자가 되겠다고 크게 발원하고 맹세하며 삼귀의 오계를 받았습니다. 저희들이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에는 ‘내가 착하게 살고 부지런히 살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런가, 남편을 잘못 만나서 그런가, 아내를 잘못 만나서 그런가, 자식 때문에 그런가, 이렇게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전생을 탓하기도 하고, 사주팔자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살펴보니 이 모든 것은 나의 어리석음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본래 밝은데 눈을 감은 자는 세상이 어둡다고 불 밝히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어리석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잘한다고 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쁜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이제 부처님 법 만나 모든 것이 나의 무지, 나의 무명, 나의 어리석음에서 빚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에게 돌이켜 무엇이 잘못됐는지 찾아 감은 눈을 뜨는 그런 지혜로운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남에게 구걸하는 거지 인생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남을 도와주는 주인다운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연비를 하고 지극한 참회를 하니 모두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합니다. 새로 태어난 수계자들에게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불명을 주고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수계자들은 내가 어떤 부처님과 인연 있는지 자세히 알게 되어 기뻐했습니다.

수계식을 마치고 법당 별로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저녁 강연 장소로 가야 하기 때문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가 1시간 10분 지연되었습니다. 거의 4시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오후 5시에 텍사스 주의 달라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곧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Kawai Piano Gallery(카와이 피아노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달라스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아이들도 스님에게 인사했습니다. 스님도 반가워하며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강연 전까지 스님은 대기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김밥과 죽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7시 정각이 되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2년 만에 달라스를 찾은 스님을 청중은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즉문즉설이라는 것은 경전을 펴서 설법이나 설교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 속에서 겪는 문제를 가지고 ‘과연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느냐’, ‘이렇게 화내고 짜증내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면서 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느냐’, ‘다른 방식은 없겠느냐’ 하는 것을 주제로 서로 대화해 보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이 딱 좁혀져서 '어떻게 네가 그럴 수가 있냐!' 이렇게 되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어질 만큼 마음이 좁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마음을 크고 넓게 가지면 온 우주가 그 속에 다 들어가도 보이지가 않는대요. 마음이란 게 그만큼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고, 나쁘게 생각하면 온갖 것이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마음을 어떻게 가질 거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옛날부터 ‘일체 유심 소조(一切唯心所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이 컵을 보고 금이다 하면 금이 된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이런 의미예요. 요즘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이게 다 사람이 자기 입장 차이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진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좀 더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바라볼 수 있겠느냐. 만약 그런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이해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믿음이나 신앙에 치우치지 않고,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많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7명이 스님과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그중에서 다음의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제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많이 걱정하게 되고 조급한 마음이 많이 생깁니다. 제가 엄마 아빠와 같이 있을 때에는 괜찮았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면서 이런 저의 성격이 조금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뭔가 조급함이 생기면 자꾸 남편이랑 아이들한테 표현을 하게 되니까 더 다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남편이나 아이들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라는 걸 알고는 있는데 그걸 어떻게 다스려야 될지 모르겠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그렇게 뜬구름 잡듯이 추상적으로 얘기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세요.”

“예를 들어서 오늘 이 강연에 온다고 치면 제가 아이를 재우고 나와야 되는데, 아이가 안 자면 자꾸 조급하게 빨리 자야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빨리 자, 자’ 이렇게 다그치게 되고, 뭐 그런 것들이...”

“애가 몇 살인데요?”

“22개월요” (모두 웃음)

“집에 아무도 없어요?”

“아, 남편이 있긴 있는데요.”

“남편한테 맡겨놓고 와야죠. 애보고 자라고 한다고 애가 잠이 오나요?” (모두 웃음)

"머릿속으로는 아는데 자꾸 마음속으로..."

"마음속에서 '애가 잤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이해가 돼요. 저도 오늘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요,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요?”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겠죠.”

“질문하는 사람들이 제가 말하면 빨리빨리 알아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까요? 못 알아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까요?”

“빨리 알아들었으면.”

“그런데 실제로 사람이 오고 안 오는 건 내가 오라고 오고, 오지 말라고 안 오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빨리 알아들으라고 한다고 빨리 알아듣고 이런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안 된다고 조급해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에요. 왜? 그것은 원하는 대로 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원하기 때문에 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백두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오늘 구름이 싹 개어서 천지가 환히 보였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다 가지지만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구름이 싹 없어지고, 안 가진다고 구름이 확 끼고 이런 거는 아니에요. 그건 아무 관계가 없어요. 백두산에 올라갔을 때 구름이 끼는 건 끼는 거고, 보이는 건 보이는 거예요. 그렇다고 ‘천지가 보였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고 말하면 그건 인간성에 위배가 됩니다. 인간이 그걸 원하는 건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게 안됐다고 괴로워하는 것이 잘못된 거라는 거예요. 그건 자기 맘대로 하겠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22개월짜리 애가 잠자는 걸 어떻게 내 맘대로 해요? 애는 자기가 졸려야 잠을 자죠. 잤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애가 자면 자기가 여기에 오기가 쉽고, 남편이 좀 반대를 덜 할 것 아니에요. 근데 애한테 문제가 생기면, 남편이 ‘애 놔두고 왜 갔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질문자가 ‘아이고, 너라도 좀 빨리 자면 내가 가기가 좀 쉽지 않겠냐’ 이런 바람을 갖는 것은 이해가 돼요. 하지만 그렇다고 애가 자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애가 잤으면 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안 잔다고 그걸 갖고 시비할 건 아니에요. 그러면 남편한테 이렇게 말을 하세요.

‘여보, 애가 자면 좋겠는데 잠을 안자네. 당신한테 일거리가 좀 많아져서 미안한데, 내가 좀 다녀올 테니까 오늘만 애를 좀 봐줘. 대신 내일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이렇게 뭔가 항상 대가를 제공을 해야 돼요. 그냥 봐 달라 그러지 말고 ‘오늘 봐주면 내가 갔다 와서 뽀뽀 좀 해줄게’ 하든지요. (모두 웃음)

일반인은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자세로 자꾸 임해야죠.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막 울고불고하는 건 어린애 마음이잖아요. 애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막 울고불고 난리잖아요. 질문자는 이제 애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으니까 좀 달라져야죠.”

“한 가지 더 질문해도 될까요?”

“네”

“첫째가 22개월이고, 둘째가 이제 2개월인데요. 첫째 한 명을 돌볼 때는 아이가 어떻게 떼를 부리고 울고 해도 전혀 화가 나거나 마음이 동요가 안 되고 그냥 차분하게 대처를 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면서 자꾸 첫째한테 화를 내게 되더라고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를 입양시키면 어떨까요? 왜냐하면 하나 키울 때는 화를 안 내고 키웠다니까요. 하나 키울 자격은 있는데, 지금 22개월짜리한테 화를 낸다는 것은 질문자가 두 명 키울 자격은 없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를 입양을 시키는 방법이 있어요. 제일 쉬운 게 그 방법이에요.”

“사실 저도 둘째를 낳고 ‘아, 내가 두 명을 키울 수 있는 자격은 안 되나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게 이미 닥친 상황이라서 제가 잘 다스리고 싶은데...”

“다스린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2개월짜리와 22개월짜리를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22개월짜리가 큰애인 건 맞아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22개월짜리는 큰 애가 아니에요. 아이에게 자아가 형성되고 심리의 근저가 형성되는 기간이 3년, 즉 36개월이에요. 36개월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될 시기예요. 아이가 알아서 하는 건 하는 건데, 거기에 무슨 교육 개념이 들어가면 안 돼요. 뭘 가르친다는 개념이 들어가면 안 돼요.

3살이 넘어서 4살로 넘어갈 때부터 교육 개념이 들어가야 돼요. 그전까지는 첫째, 엄마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면, 아이 심리가 불안정하게 형성이 돼요. 아이의 심리가 불안정하면 어떠냐, 나중에 공부를 잘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심리가 불안하면 행복할 수가 없어요.

엄마가 자식한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행복의 바탕이 되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겁니다. 근데 엄마들이 자기가 줄 수 있는 거는 안 주고 나중에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는 지식이라든지 기술이나 이런 걸 자꾸 주려고 해요. 그건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줄 수 있어요. 선생님이나 전문가한테 맡기면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이 심리적인 안정은 누구도 줄 수 없어요. 그건 엄마만이 줄 수 있는 거예요.

여기서 엄마는 꼭 생모라는 뜻은 아니에요. 엄마라는 말은 생물학적인 생모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른 자'를 엄마라고 해요. 그 ‘기른 자’의 심리가 그대로 그 아이의 모체가 됩니다. 생물학적인 엄마 아빠가 이 아이의 육체적인 원천이 된다면, 심리학적인 원천은 기른 자예요. 옛날에 조선시대 같은 때 왕자로 태어나도 키우기는 왕후가 키워요, 유모가 키워요?”

“유모”

“유모는 신분적으로 천민이죠?”

“예”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는 바깥 의식의 세계에서는 왕자로 살지만, 심리적으로는 약간 억압을 받고 위축된 유모로부터 자랐기 때문에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어요.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늘 갈등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 정신 질환 수준이 돼요. 그래서 나중에 가면 왕들이 다 신통치 않은 거예요. 역대 왕들의 가계를 한 번 보세요. 어머니가 신분 차별 속에서 악을 쓰는 가운데 애를 키웠으면 그 아이의 심리는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커서 왕이 됐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이 아이의 심리의 모체가 어디에서 형성되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니 아이를 낳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낳는 것은 간단해요. 그냥 딱 수정할 때 모든 게 다 결정되어 버려요. 하룻밤만 자면 낳는 건 결정되는데, 그 후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겁니다. 그 아이의 정신적 모체가 형성되는 데는 최소한 3년이 필요해요.

UCLA 의과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은 아이와 엄마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의 3살 때 뇌를 찍어서 비교했더니 학대받은 아이는 뇌 성장이 사랑받은 아이의 절반밖에 안 되었다고 해요. 이렇게 부처님이 한 얘기가 요즘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절대로 야단을 치면 안 돼요. 아이의 요구가 좀 부당하다 싶으면 안 해주면 되지 야단을 치면 안 돼요. 짜증을 내거나 야단을 치면 심리적으로 억압이 돼요. 엄마가 슬피 울어도 그 영향으로 아이의 마음이 우울해져요. 그럼 아이들 하자는 대로 해줘야 되느냐? 그러면 버릇이 나빠져요. 그래서 ‘저거는 아니다’ 싶으면 안 해주면 되지 야단을 치면 안 됩니다.

만약에 밥 먹으라 하는데 밥을 안 먹는다면 우리는 야단을 친단 말이에요. 야단을 치지 말고 그냥 놔둬야 돼요. 밥을 치우고 나서 뒤늦게 애가 밥 달라고 하면 그때는 밥을 주면 안 돼요. 그때 주면 아이가 버릇이 나빠져요. 근데 우리는 엄마들이 어떠냐? ‘아까 먹으라고 할 때는 안 먹고!’ 하고 막 야단을 치고는 또 밥을 차려줍니다. 이것이 애 키울 때 제일 나쁜 행동이에요. 야단을 쳐서 심리적 억압을 가져오게 만들고, 또 밥을 차려줘서 버릇을 나쁘게 만들고, 두 가지 나쁜 것을 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 야단도 치지 말고, 밥을 차려주지도 말아야 돼요. ‘엄마, 밥 차려줘’ 하면 ‘엄마 근무시간 끝났어. 네가 배고프면 네가 차려먹어'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를 해야 돼요. 아이가 막 울어도 ‘어이구, 울면 배가 더 고픈데?' 이러면서 약간 놀리다시피 하고 절대로 아이의 요구에 끌려가면 안 됩니다. 우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아이고, 알았다, 차려줄게'라고 하거나, 아이가 악을 쓴다고 ‘아이고, 알았다, 차려줄게' 이렇게 하면 안 돼요. 그럼 버릇이 나빠져요. 그럼 아이가 ‘아, 떼쓰면 엄마는 해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 후로는 전부 떼를 쓰는 거예요.

엄마가 어떨 때 아이한테 제일 굴복해요? 3살, 4살 때는 ‘밥 안 먹는다!’ 하면 엄마가 제일 걱정을 해요. 그런데 초등학교 다닐 때가 되면 애가 ‘나 밥 안 먹어!' 해도 엄마가 겁을 안 냅니다. 그때부터는 ‘공부 안 해!' 이렇게 해요. 조금 더 크면 ‘공부 안 해!' 이래도 부모가 겁을 안내요. 그때부터는 ‘집 나간다!' 이래요. 그다음에는 ‘집 나간다!' 이래도 겁을 안내요. 그럼 이제는 ‘죽어버릴 거야!' 이렇게 나옵니다. 이렇게 네 가지 단계로 올라갑니다. 애를 한 번 키워보세요. 저는 안 키워봐도 이렇게 잘 알아요. (모두 웃음)

이렇게 아이는 부모의 약점을 잡습니다.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애들이 스님한테 오면 그렇게 못하죠. 스님은 만약 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밥을 치워버립니다. 공부 안 한다고 하면 책을 치워버립니다. 집을 나간다고 하면 문을 잠가버립니다.

선생은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스승의 사랑은 냉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따뜻한 사랑밖에 몰라요. 냉정한 사랑을 몰라요. 그래서 어릴 때는 스승보다 부모가 낫고, 크면 스승이 나은 거예요. 부모는 애들을 망칩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조금 힘들어도 반드시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커서는 딱 냉정해야 돼요. 그런데 이걸 거꾸로 한다는 겁니다.

작은애를 돌본다고 큰애를 야단치면 큰애의 무의식 세계에 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생겨요. 그래서 애가 나중에 크면 동생을 못살게 굽니다. 절대로 비교해서 말하면 안 돼요. ‘엄마는 동생을 돌보고 있는데 어떻게 네 밥을 줘? 지금은 동생을 돌봐야 돼’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돼요. ‘조금만 기다려라. 엄마가 좀 일이 있어' 이렇게 말해야 돼요. 동생을 핑계로 잡으면 큰애는 자기의 혜택이 동생 때문에 뺏긴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되면 안 돼요.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이것도 모르는 사람이 왜 결혼을 해서 애를 낳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아는 저도 애를 안 낳고 있는데요.” (모두 웃음)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둘이 아니라 10명을 키워도 애는 애입니다. 내가 10명을 키우는 건 내가 바쁜 일이지, 내가 10명을 키운다고 아이한테 짜증 낼 일은 아니에요. 내가 다른 일이 바쁘다고 그 짜증을 애한테 낼 일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애의 관점에서는 그건 엄마의 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아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 미국에 오기 전의 삶과 오고 난 후의 삶이 180도 바뀌어서 힘들어요.
  • 백혈병 암투병 중입니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은 가요?
  • 이민 온 지 2년이 되었는데 한국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돌보지 못해 걱정입니다.
  • 남편이 새어머니에게 차별받고 자라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 큰 아들이 욕을 하고 동생 물건을 함부로 만져요. 동생들이 형을 싫어해서 걱정입니다.
  • 이민생활을 하면서 자꾸 위축돼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즐겁고 집중된 분위기였습니다. 220여 명이 참석하고, 10명이 사전 질문을 신청했지만, 밤 9시에는 강연을 마쳐야 해서 7명만 스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을 하지 못한 3명에게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경험을 했든, 내가 신체장애가 있든, 내가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든, 부모가 돌아가셨든, 자녀가 신체장애가 있든, 어떤 조건에 관계없이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러이러해서 나는 불행해야 된다’라는 생각은 제가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불행하고 싶어서 핑계 대는 거예요. ‘조건에 관계없이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다 지나간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늘 조건을 붙이고 지나간 일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지금 불행해하잖아요.

오늘 질문자 중 한 분이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이혼해서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데,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건 커서 보면 자기 둘이 맘이 안 맞아서 헤어진 거지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상처를 입고 삽니다. 그러면 지금이 불행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때는 어떻게 생각해야 된다고요?

‘아이고, 두 분이 마음이 안 맞았구나. 그래도 나를 낳고 안 버리고 키워준 것만 해도 고맙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내가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기의 행복을 자기가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청중은 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연한 스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줄이 길었지만 기다리는 얼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봉사자들은 “달라스에 한인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경우가 없었다”며 즐거워했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았더니 “답답한 것이 해결되어 시원해졌다”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었습니다. 길고 긴 책 사인회가 끝나고 단체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강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축하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봉사자 중에는 남편과 함께 아칸소 주에서 6시간을 운전해 온 분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실무 총괄을 한 정수진 님을 비롯한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또 음향과 시설이 훌륭한 강연장을 섭외해 준 김은경 님에게도 수고 많았다고 격려했습니다.

강연 모금함에 미국 JTS에 후원한다고 적힌 봉투에 6,000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에 감사한다는 편지도 들어있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비교적 일찍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한국과 전화 통화를 하며 업무를 봅니다. 낮에는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지만 밤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붑니다.

텍사스의 밤이 깊어갑니다. 내일은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으로 이동하여 즉문즉설 강연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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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10-03 21:05:09

감사

짜증은 정말 안좋군...감사합니다

2019-09-17 11:23:07

송미해

오늘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엄마는 어떠한가에 대해 생각하며
그동안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음을 반성합니다.

2019-09-15 18: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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