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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한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주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이 둥게스와리의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하셔서 인도JTS의 사업에 대해 소개하고, 라즈길에 있는 부처님의 성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새벽 예불과 108배,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둥게스와리의 새벽을 깨웁니다. 오늘도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지혜를 닦아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발원을 하며 한배 한배 몸을 낮춥니다.
▲ 새벽 예불
아침6시40분이 되자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주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이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두 분께 반갑게 환영 인사를 한 후 JTS 홍보관으로 함께 들어가셔서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와 인도JTS의 사업 전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간단히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입구에 마련된 JTS 홍보관
“이곳은 부처님이 6년간 고행을 하신 성지입니다. 이곳에 부처님께서 정진하신 동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보러 왔는데 아이들 수백명이 줄을 서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이 일요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다” 라고 해요. “그런데 왜 아이들이 학교에 안가고 구걸을 하느냐?” 물으니까 “학교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학교가 없느냐?” 하니까 “진짜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마을로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과 학교를 짓는 것에 대해 의논을 했지요. 처음에는 교실 4칸짜리 학교를 지어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4칸을 지어놓으니까 아이들이 더 몰려와서 300명이 넘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2층으로 건물을 올렸어요.
그리고 세 번 정도 강도를 당했는데, 결국 마지막 세 번째는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던 한 분이 강도가 쏜 총에 맞아서 돌아가셨어요. 2002년이였어요. 그 때 이후에는 경찰이 주둔하게 되면서 치안이 조금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얻은 평화라 할 수 있죠.
이 산은 부처님이 고행하시던 전정각산이예요. 이 산 주위에 천민마을이 주욱 있습니다. 15개 마을이 있는데 마을마다 유치원을 다 지어주고 핸드펌프를 설치해주었어요.
1999년부터 지이바카 병원도 지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지이바카는 부처님의 주치의 이름입니다. 1995년도에 콜레라가 발생해서 그거 치료하다가 저도 콜레라에 걸렸었어요. 병원은 아직 보건소 수준이예요.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저체중아와 산모에 대한 영양식 지원을 하고 있고요. 결핵 퇴치를 계속해서 결핵환자가 처음에는 300여명이였는데 지금은 4명만 남았습니다. 종기 환자가 많아요. 간단한 치료는 자체에서 하는데, 그 이상 되는 치료는 보드가야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하고요.
▲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고 계신 스님
지금은 도로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이곳에 차가 들어오지도 못하는 곳이였는데 최근 10년 사이에 인도 경제가 좋아지면서 성지 개발이 시작되고 여기까지 많이 좋아졌거든요.
JTS는 Join Together Society의 약자입니다. 일방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 Join Together, 즉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어떤 지원도 공짜로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마을에 어떤 건물을 지어줄 때도 우리가 재료를 주면 짓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지어야 합니다.”
이어서 수자타아카데미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상물을 보면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저렇게 구걸을 하고 있었어요. 학교를 짓기 전에는 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동생들을 다 엎고 와서 수업 진행이 제대로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유치원을 짓게 된 거예요. (웃음)
중학생들은 오전에는 마을마다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해요. 얘들은 유치원 선생 1년을 하고 나면 금방 어른이 되어 버려요. 여기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전부 다 학교 선생님이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인도말로 “함까랑게” 라고 해서 “내가 하겠습니다” 라는 구호를 갖고 전부 쉬람단이라는 공동 노동을 합니다.”
대사님과 함께 국제불교연합(IBC)에서 오신 인도인 여성 한분은 “스님은 한국의 마더테레사입니다. 너무 훌륭하십니다” 라고 하면서 외국인이 자기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아 했습니다. 대사님과 문화원장님도 “JTS 후원신청서를 가져다달라” 고 하시면서 무척 감격스러워 하셨습니다.
▲ 인도JTS 소개 영상을 보고 계신 이준규 대사님(왼쪽)과 김금평 한국문화원장님(오른쪽)
인도JTS 활동가들은 그냥 늘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일 뿐인데 감격스러워하는 대사님 일행을 보면서 ‘외부에서 우리들의 활동을 바라볼 때는 큰 감동을 주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최말순 보살님과 인도JTS 활동가들이 새벽부터 준비한 아침식사를 대사님 일행 분들께 대접해 드렸습니다. “음식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다” 고 하시면서 맛있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 최말순 보살님과 인도JTS 활동가들이 정성껏 마련한 아침식사
식사 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학교를 한바퀴 둘러보면서 스님께서 각 건물마다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이 차가 앰블란스입니다. 동네에 타고 다니면서 예방 접종하고 환자 실어다 나르고 있는데, 조금 더 큰 차로 바꿔달라고 자꾸 그러네요.”
▲ 지이바카 병원의 앰브란스
“이것은 ‘짜르카’라고 해서 무명으로 실 만드는 기계입니다. 부녀자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 운영하고 있어요.”
▲ 짜르카 물레 교실이 열리는 곳
“이것은 중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자전거입니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 유치원에서 가서 아이들 가르치고, 오후에는 다시 학교로 와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어요.”
▲ 중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여기가 교실이고요. 저학년들은 책상이 없고 바닥에 천을 깔고 공부하고 있고요. 상급 학년은 책상을 놓고 공부하고 있고요.”
▲ 수자타아카데미 1학년 교실 복도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이렇게 주마간산 식으로 학교를 둘러본 후 전정각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산이 부처님이 6년 간 수행하셨다는 전정각산입니다. 부처님이 계셔던 곳마다 탑을 세웠는데 이 산 전체에 탑이 17개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여기가 유적지라는 개념이 없다보니까 탑을 반으로 갈라서 길을 낼려고 하길래 제가 올라가서 말리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여기 탑들은 아쇼카 왕 때 쌓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손을 거의 안 댄 거예요.”
▲ 전정각산 산 봉우리마다 세워진 탑을 가르키는 스님
“저기 보세요. 칼날 능선이죠? 대사님이 시간만 좀 더 내시면 대사님 애를 좀 먹일려고 저 능선을 다 가볼려고 했거든요. (웃음) 저 능선을 따라가면 산 맨 끝에 네이란자라 강이 흐르는데 강 건너편에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자리가 있어요. 그 근처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수자타 여인의 마을이 있고요. 그 너머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대탑이 있습니다.”
▲ 전정각산의 칼날 능선
“저기 보이는 것이 부처님께서 드셨다는 샘터입니다. 이 산 전체에서 유일한 샘입니다. 여기서 자연 그대로 물이 나오는 곳은 저기 밖에 없었어요. 원숭이, 소, 사람 모두 물은 저기서 마셨죠. 저기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보고 갈게요.”
이렇게 전정각산을 올라가 본 후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아침 8시 무렵이여서 그런지 중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기 전에 조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사님께서는 중학생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 조회 시간
“여러분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여러분들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야지 찾아옵니다. 법륜 스님을 비롯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여기 와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이분들의 봉사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을 격려해주고 계신 이준규 대사님
중학생들은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 대사님께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스님, 대사님, 문화원장님 그리고 중학생들이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 교사들과 함께
스님께서는 “얘네들이 어릴 때는 다 구걸하던 아이들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선생님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래요” 하시면서 선생님들과 중학생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수자타아카데미 방문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대사님 일행 분들과 함께 라즈길로 이동하셨습니다. 문화원장님께서는 불교 성지를 가꾸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스님께서는 “성지순례를 하실려면 제 안내를 받으면 좋아요” 하시면서 라즈길에 있는 대표적인 성지들을 찾아가 그곳에 얽히 부처님의 일화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대사님께서 이동을 하게 되니까 인도 정부에서 경찰들의 경호를 붙여 주어서 이동하는 내내 선두 차량과 후미 차량은 경찰들이 싸이렌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에스코트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지에서도 경찰들이 앞과 뒤를 경호해 주어서 지난번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이번에 스님께서 인도에 머무시는 21일 동안 라즈길을 3번 다녀가게 되는데, 첫 번째는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했고, 두 번째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버스를 타고 순례를 했고, 이번에는 경찰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코스를 색다르게 경험을 하게 되네요.
▲ 대사님 차량을 에스코트 해주는 인도 경찰 차량
아침 8시4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먼저 10시 무렵에는 ‘다사라뜨 만지’라고 하는 인도 사람이 22년간 망치와 정만 갖고 산에 길을 낸 일로 유명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인도 사람은 부인이 병으로 위독했으나 길이 산을 돌아가야 해서 병원에 긴급히 데려가지 못해 부인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다시는 나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발원을 하고 22년 동안 혼자서 바위를 깨서 산에 길을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 일화를 들려주시면서 산 중간에 길이 난 곳에 직접 올라가 보고 대사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부인을 잃고 22년 동안 ‘다사라뜨 만지’가 만들어낸 길
산을 내려와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제가 다사라뜨 만지의 손자입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한 청년이 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대사님은 무척 반가워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김금평 한국문화원장님과 다라라뜨 만지의 손자
10시30분 무렵에는 ‘제띠안’ 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제띠안은 부처님 당시 왕사성의 서문 밖 15km에 위치해 있는데,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처음으로 영접했던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입니다. 스님께서는 제띠안의 탑터 위에 올라가 대사님께 이곳에 얽힌 부처님의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한 ‘제띠안’
“이곳은 빔비사라왕과 부처님이 만난 곳입니다. 부처님은 가야에서 우루벨라 가섭 등 천명의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 왔고, 왕도 몇 천명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서로 만난 곳이 이곳입니다.
그 때 왕이 우루벨라 가섭한테 절을 하면서 “제가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젊은 수행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세 살 먹은 어린 아이가 팔십 먹은 노인을 보고 ”너는 내 손자요“ 하는 것보다 더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우루벨라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바퀴 돌고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이 분은 저의 스승이고,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을 만나고 나서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윤회의 씨앗을 심었다는 것은 푸자를 지내고 복을 구했다는 얘기이고, 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것은 수행 정진해서 해탈 열반의 길을 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때서야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위대하심을 알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을 청합니다.
부처님이 왕을 위해서 설법을 하자 왕은 그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서 너무 기뻐한 나머지 이렇게 신앙 고백을 했어요. “내가 왕자 때 다섯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내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내가 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닫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네 가지 소원은 이제 다 이루었는데, 이제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싶으니 부처님께서 왕궁으로 오소서.” 하고 식사 초대를 했는데 부처님께서 승낙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왕은 성 밖에 있는 왕사성으로부터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대나무 숲을 기증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가 생긴 연원입니다.
여기에 와보셔야 죽림정사로 가는 스토리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래서 여기로 모셔 온 겁니다. 이 탑은 아쇼카왕 때 이후로 손 댄 적이 없기 때문에 2300년 된 탑입니다.” (웃음)
▲ 제띠안에 올라서서. 뒤로 부처님께서 왕사성으로 걸어가셨다는 길이 보입니다.
이렇게 제띠안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다음은 왕사성 서문 쪽으로 들어가 영축산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성지순례를 오시면 항상 걸어서 올라가시는데, 오늘은 국제불교연합(IBC)에서 안내원이 나와서 안내를 하는 바람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니 산치 수투파의 모양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일본 절이 정갈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일본 절에서 앞을 내다보니 라즈길 전체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산 능선에는 왕사성 성벽이 남아있는 흔적도 보였습니다. 저 성벽은 3천년 전에 쌓아진 아주 오래된 성벽이라고 합니다.
▲ 3천년 전에 쌓았다는 왕사성 성벽
다시 산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니 부처님이 설법을 하셨다는 영축산이 보였습니다. 영축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리푸트라가 수행하였다는 동굴이 하나 있었고, 동굴 위에는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해칠려고 돌을 던져 그 돌조각이 부처님 발에 맞아서 피가 났다고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아난다 존자가 수행하던 동굴도 있었습니다.
▲ 사리푸트라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 동굴
영축산은 인도말로 ‘그리드라쿠타’라고 부르고, 독수리봉이라는 뜻에 맞게 정말로 산 봉우리가 독수리 모양으로 생겼습니다.
▲ 뒤에 보이는 바위가 독수리처럼 생긴 바위입니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셨다고 하는 정상 부분에 이르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작은 단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대사님과 문화원장님 각각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으신 후 다함께 영축산을 내려왔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서 땀을 뻘뻘 흘렸는데 내려오는 길은 제법 바람이 불어 선선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축산을 내려오면서 이 영축산 아래에서 육방예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설해졌다고 이야기해 주시면서 ‘스님의 주례사’ 라는 베스트셀러 책이 출간된 배경을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
▲ 영축산을 내려오며 육방예경이 설해진 배경을 이야기해 주고 계신 스님
“부처님이 이 영축산에 계시다가 마을에 내려가서 탁발을 하고 올라오다 보니까 어떤 젊은이가 한번은 남쪽을 절을 하고 한번은 동쪽으로 절을 하고, 또 하늘을 보고 절을 하고 땅을 보고 절을 하고, 이렇게 동서남북상하 여섯 번을 절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너는 왜 절을 하느냐?“ 고 물으니까 ”모른다“고 했어요. ”모르면서 왜 절을 하느냐?“고 하니까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지 않으시고 그 젊은이가 절을 한 방향마다 교훈을 심어 주십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위대함이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어떻게, 친구 지간에는 어떻게, 또 주인과 종은, 요즘으로 비유하면 상사와 아랫 사람이겠죠. 이렇게 총 여섯가지에 대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각각 지침을 줘요. 지금 읽어도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인간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아주 잘 설해 놓았거든요.
그래서 이 경전을 기초로 주례사를 한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된다, 부부지간에는 서로 어떻게 해야 된다,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해야 된다, 부모한테는 어떻게 해야 된다, 친구 관계는 어떻게 해야 된다, 직장에서 상하관계는 어떻게 해야 된다, 하는 것들을 기초로 해서 제가 이야기한 것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입니다.”
대사님과 원장님은 스님의 주례사가 부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놀라워 하셨습니다.
영축산을 내려오니 벌써 12시가 되어서 다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들려주셨습니다.
▲ 대사님, 문화원장님과 점심 식사
스님께서는 부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때 가장 신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 인도 정부에서 나온 안내원들이 영어로 영축산에 대한 안내를 함께 해주기도 했는데, 책에 나와 있는 얘기를 주욱 늘어놓는다는 느낌 뿐 그 속에 부처님의 대한 존경심과 감동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얘기해 주시는 부처님의 일생을 듣고 있노라면 부처님 당시로 다시 돌아간 듯 금방 몰입이 되었습니다.
다음은 죽림정사로 갔습니다. 죽림정사 안에 위치한 연못을 한바퀴 빙 둘러보면서 스님께서는 죽립정사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곳은 ‘배누반 바나’라고 하는데 대나무숲이란 뜻입니다. 죽림정사는 절이 아니라 숲이란 개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아무런 건물을 짓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적지에 지어진 건물들은 다 나중에 지어진 거예요.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시는 동안 당시 최대의 제자였다고 하는 지혜제일 사리푸트라와 신통제일 목갈리나가 부처님께 출가를 합니다. 두 분은 산자야라고 하는 분의 제자였는데 각각 자신의 제자 100명씩을 데리고 와서 부처님께 귀의를 하게 됩니다. 그 분들이 나중에 실제로 교단을 이끄는 사람들이 됩니다. 두 분 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종교적인 수행 경력도 훨씬 많으셨고요.
그러니 여기서는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제자에다가 사리푸트라와 목갈리나의 제자 200명까지 총 1200명의 제자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처음 깨닫고 나셔서 사르나트에서 설법을 해서 제자가 되신 분들이 60명이거든요. 그래서 경전에는 이 분들을 다 합쳐서 ‘1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가 항상 나오거든요.”
이렇게 설명을 해주시고 나서 대사님과 원장님 다함께 연못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죽림정사
스님께서는 대사님과 원장님께 “언제 한번 이곳에 다시 와보시겠어요? 사진을 꼭 남기셔야죠” 하시며 주요한 곳곳마다 사진 한 장씩을 꼭 찍으실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죽림정사를 끝으로 라즈길에 있는 성지에 대한 안내는 모두 마쳤습니다. 대사님과 함께 온 ‘국제불교연합(IBC)’ 이라는 단체에서 나란다 대학과 파트나 일정에 대한 안내를 이미 준비해 놓았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죽림정사까지만 안내를 해드리고, 대사님과 원장님께 인사를 한 후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셨습니다. 대사님과 원장님은 “한국에서는 정말 뵙기 어려운 스님을 여기 인도에서 하루 종일 뵙게 되었다” 면서 아주 감사해 하셨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니 오후4시가 다 되었습니다. 숙소로 들어오니 SBS에서 촬영팀이 도착해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촬영팀을 반갑게 환영해 주셨습니다.
저녁 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18일부터 21일 한국 출국 전까지 남은 일정과 마을잔치 등 계획된 행사들에 대한 준비사항을 점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마을리더들과 함께 논의할 토론 주제, 신축해야 할 건물이 있는지, 유치원 교육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학교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새로운 인도 스텝 인준,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밤9시가 넘었습니다.
▲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
내일은 오전에 마을리더들과 회의, 오후에는 중학생 법회, 초등학생 법회, 교사들과의 회의,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를 각각 연달아 계속 가지실 예정입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의 내일 일정을 공유받고 나서는 “스님께서는 인도에서도 어쩜 이렇게 쉴 틈 없이 계속 바쁘시냐?” 고 하면서 “잠시만 시간을 내셔서 전정각산만이라도 같이 한번 올라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같이 웃었습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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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8 (인도 16일째) 수자타아카데미 마을리더, 중학생, 초등학생, 교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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