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5번째 강연이 미국의 뉴욕주인 버팔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제 스님께서는 캐나다쪽 나이아가라폴에 도착하여 오전까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전 7시경에 녹두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저희들은 각자의 업무를 보다가 오전 11시에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숙소(Inn)를 나왔습니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차에서 내려 미국쪽 폭포와 캐나다쪽 폭포를 잠깐 보고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준으로 동북부에는 온이타리오 호수가 있고 서남부에는 이리호가 있는데 이둘은 규모도 거의 비슷한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오니 이리호가 시작되는지 오른쪽편으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버팔로 시내로 들어와서 한국식당을 찾아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입구에 스님의 버팔로 강연 포스터가 문 앞에 붙어 있어 더 반가웠습니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자 하였더니 사장님이 “스님 식사는 공양으로 올리는 것입니다”고 하면서 식사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저녁에도 성당으로 스님 강연을 들으러 갈 것이라며 저녁에 뵙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에 도착하였습니다.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
도착하니 미주동북부/캐나다동부 지구장인 임금이님과 이곳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반갑게 스님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오늘 숙소는 이곳 성당 부속으로 있는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고, 임금이 지구장님은 오늘 행사를 총괄하기 위해서 어제 뉴욕에서 유정희님과 함께 올라와 미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주동북부/캐나다북부 임금이 지구장님>
강연이 오후 7시에 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스님께서도 숙소에서 업무와 휴식을 하고, 저희도 각자 개인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버팔로는 이리호에 면하여 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였으나 이리호 인근 도시인 디트로이트, 클리버랜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화학공업이 쇠퇴하면서 도시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곳 입니다. 그래도 근처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어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으나 캐나다 쪽 보다는 훨씬 뒤쳐져 있는 느낌입니다. SUNY Buffalo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 -뉴욕주립버팔로-대학교가 있어서 한국 유학생 약 700명을 포함하면 전체 버팔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약 1,500명~2,000명을 예상한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6시에 SUNY 버팔로 대학교의 Mark Nathan 미국인 교수와 김욱수 교수와 잠깐 미팅을 하였습니다. Social Work를 가르치는 김욱수 교수님은 이번 행사에서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Mark Nathan 교수는 한국 역사와 동아사아 불교를 버팔로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전에 고려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때에 정토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미팅 요청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한국에서의 포교와 스님의 활동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지난해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초청으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라는 컨퍼런스 참가하여 즉문즉설을 하셨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김욱수 교수와 Mark Nathan 교수는 한국말이 유창하여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끝까지 참가하여 듣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욱수 교수님께 새로운 백년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렸고 Mark Nathan 교수에게는 최근에 번역한 영문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 전 로체스터에 살고있는 손정애님께서 준비해오신 저녁 식사를 한 후,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바로 1층 강연장으로 내려와서 자원봉사자들과 참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곳 버팔로에서 강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연장을 내어주시고 후원해주신 버팔로 성김대건 김영수 시몬 신부님의 환영사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6시 50분에 큰 박수와 함께 연단으로 오르셨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생들 손들어 보세요. 절반이나 되네요. 모두 버팔로 대학에 다니는가봐요. 이렇게 좋은 장소와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100회 강연에는 성당에서 강연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작은 도시는 저희 활동가도 적고 인연도 없고 해서 남미나 소도시는 성당에서 많이 협력해주셔서 이렇게 강연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렇게 인사말을 하신 후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인생고민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전부터 스님께서는 몸상태도 좋지 않고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전 미팅때부터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해서 행사를 시작하자 목소리가 더 안좋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정성을 다해 질문에 답해 주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성당근처에 SUNY 버팔로 대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고 질문도 많았습니다. 말법 시대에 부처님이 나타나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알수 있을텐데 왜 부처님은 기간을 정해놓고 지금 나타나지 않는지 묻는 분, 성당에 사람들을 더 많이오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분, 작은 생물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배웠는데 최근에 실험을 하다가 쥐를 죽여서 충격을 먹었다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묻는 분,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해서 스스로도 힘들고 자기 자신이 더 싫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대학생 때 불상에 “오직 예수” 라는 빨간 라카칠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일절 대화를 끊고 있는데 앞으로 교수가 되어서도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건지 고민인 분,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올 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은지 알고 싶은 분, 외출할 때마다 문이 잠겼는지 매번 확인해야 하는 등 강박증을 앓고 있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나눔을 실천할 때 행복을 느끼는데 남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 분,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묻는 분, 현실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남을 돕는 길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헷갈립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봉사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이고, 불편하더라도 내가 괴롭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스님은 내적 갈등이 있어도 행을 함에 있어서는 나를 우선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립니다. 나를 존중하는 것과 이기적인 마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원시 시대에 내가 혼자서 사냥을 하면 토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협력을 하면 세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각각 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을 하죠. 협력을 했을 때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협력했을 때는 분배가 문제가 됩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갖고 싶어집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가지면 상대편은 한 마리도 못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 상대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손해를 봤기 때문에 이 사람은 다음부터는 협력을 안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세 마리를 갖는 것은 오늘은 이익인데 내일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오늘 하루로써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소한으로 너 한 마리 나 한 마리는 가지고 증산된 한 마리를 갖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는 한 마리이고, 최대는 세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한 마리를 갖겠다’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 권리에 속합니다. 내가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합니다. 내가 두 마리 이상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라고 합니다. 이 과욕을 부리게 되면 상대에게도 손실이지만 나에게도 곧 손실입니다. 그래서 과욕은 버려야 합니다. 사회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를 해야 합니다. 한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기본 권리는 보장해주고 과욕은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기본 권리는 보장해 주지 않고 과욕은 규제를 안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과욕을 규제 안해주면 다른 사람에게 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본인한테도 해가 됩니다. 즉,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장이 안 됩니다.
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잖아요. 오늘날 우리 문명은 지구 생태계에 비하면 과욕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우리가 성장을 계속하면 우리 인류 문명은 곧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우리의 발전을 유지하려면 과욕은 규제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놓고 너와 내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1.5마리를 갖는 것이지만, 이것이 꼭 현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 토끼를 잡는데 너는 게을렀고,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똑같이 나눈다면 기분이 나쁘고, 좀 섭섭하고 불평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분배는 1.2대 1.8이 될 수도 있고, 1.7대 1.3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1.5이지만 현실은 1.5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5를 향해서 분배를 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고 이기심입니다. 이것은 버려야 합니다.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은 절제를 해야지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서로 절제를 해야 1.3대 1.7로 나누던지 1.4대 1.6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다 갖겠다고 하면 싸움만 일어납니다.
여기서 이타심은 무엇일까요? 한 마리를 갖는 것과 두 마리를 갖는 것 사이에서 이타심이 나옵니다. 나의 기본 권리도 못 찾아 먹는 것은 바보이지 이타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기본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고, 또 기본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기본 권리마저도 스스로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면 “이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갖는 것과 두 마리 갖는 것 사이에서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것도 “이타”에 속합니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 거지가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내가 도와주려니 돈은 없고, 안 도와주고 가려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럴 때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요?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즉 내가 행복해야 남을 실제로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은 희생의 대가를 바라는 행동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너부터 먼저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우면 옆에 사람의 무거운 짐을 들어줄 생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설령 내가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의 무거운 짐을 탁 내려놓아버리면 옆에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한 들어줄 여력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의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과 수행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서로 다릅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자기도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남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타심”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며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가 그 은혜를 모르는구나’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 차원에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행 차원에서는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 좋다’ 이런 마음이여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남을 도울 때 이것을 수행에서는 “자리이타”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질문자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의 대답에 청중들도 큰 박수로 환호해줍니다. 스님께서는 11명의 질문에 모두 답해 주신 후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진리의 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해야 합니다.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끝나고 나면 허전해지고요, 유익하긴 한데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를 지루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에 근접해야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이런 식으로 신앙을 갖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생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무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규정해서 자기가 쪼그러 들어 있어요. 자기가 규정한 그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위축감을 같고 살고 있습니다.
산에 있는 다람쥐나 토끼 한마리와 같이 우리 인간들도 그냥 나고 죽습니다. 다람쥐도 토끼도 괴롭다고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데 인간이 더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얼마나 속박을 받았으면 날고 있는 새를 부러워 하겠어요. 자기의 아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기를 지나치게 우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삶이란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행복하게 됩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두번 세번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면 됩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주어진 상황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가볍고 기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처음부터 목이 갈라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목이 아픈대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동안의 강연을 마치니 참석자들이 스님께 큰 박수로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법륜스님 강연의 주제는 언제나 행복과 자유입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고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도 132명이 스님과 함께 하여 행복과 자유에 관하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서 바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할 자리로 옮겨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사인을 받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떠했냐고 물어보니 "다들 너무 좋았다"고 특히 뭐가 더 좋았냐고 하니 "전부 다 좋았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석한 많은 분들이 유학생이었는데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번 행사의 총 책임을 맡은 버팔로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최지혜님과 스님 일행의 식사를 준비한 로체스터에 계시는 손정애님께 사인을 하여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손정애님은 스님께 공양 올리기 위하여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로체스터에서 음식을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7명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도 감사함을 담아 사인을 하여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버팔로는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서 흔쾌히 강연장과 숙소를 제공해주셨으며, 또 성당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임금이 지구장에게 소개시켜주셔서 오늘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스님 왼쪽이 식사를 준비해주신 손정애님, 오른쪽이 강연을 준비해주신 최지혜님>
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숙소로 올라와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수요일부터는 매일 하루 2번 이상의 강연 혹은 미팅이 있기 때문에 내일까지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저는 스님과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
<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
버팔로 강연은 한인성당이 후원하지 않았으면 행사자체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버팔로에서 강연 포스터가 보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버팔로 대학교 및 한인 식당, 상가 등 구석구석에 자원봉사자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김욱수 교수님은 "도대체 누가 자원봉사를 했느냐"고 궁금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중간고사와 겹쳐서 학생들이 바쁜 가운데 정말 열심히 홍보를 하고, 행사 당일날 자원봉사도 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봉사했던 학생들도 "이곳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시고 또 강연 자체가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해주었다"며 즐겁고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5번째 미국 버팔로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 내일은 36번째 강연이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시라큐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