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한번째 강연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최말순 보살님과 이경미 보살님께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셔서 오전 6시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보스턴에서 몬트리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리랜드 애커슨 박사와 이경미 보살님, 그리고 두 아드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하룻밤 잘 묵고 간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고 7시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

<이경미,리랜드 애커슨 가족>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조금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틈에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 교정업무을 보셨습니다.
<휴게소에서 원고 교정업무를 보시는 스님>
93번 도로를 타고 몬트리얼로 올라가는 길에 White Mountain이 있었습니다. 뉴햄프셔주와 버몬트주는 산이 많다고 하였는데 과연 산세가 아름답고 단풍이 멋지게 물들어 있어서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하였습니다. 워싱턴DC지역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고, 어제 보스턴 지역을 보니 조금씩 단풍이 물든다 싶었는데, 이곳은 완연한 가을 단풍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0시 30분경에 단풍구경도 하고 휴식도 취할겸해서 세계 3대 단풍명소중의 하나인 화이트마운틴 산맥의 뷰포인트에서 잠시 단풍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뷰포인트에서 보니 저멀리 보이는 단풍들이 아주 멋지고, 스님께서는 계곡으로 내려가셔서 물에 손을 담겨보기도 하셨습니다.
미대륙의 양대 산맥은 서부에 로키 산맥과 동부의 애팔래치안 산맥이 있습니다. 그 중 동부의 애팔래치안 산맥의 최고봉이 White Mountains이며, 그중 미국의 초대부터 16대까지의 대통령의 이름이 다 붙여져 있는 Presidential Range 선상에 있는 Mountain Washington이 1972m로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Mountain Washington은 White mountain으로 불리는데 1년 중 7개월 이상 봉우리에 눈이 덮여있고 여름에도 항상 흰구름에 싸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 바람이 가장 드세기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오는 한냉 전선과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온 습한 공기와 대륙을 건너온 건조한 바람이 이 곳 정상부근에서 항상 부딪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지역 일대는 나무 수종이 다양하고 무성하여 국유림으로 지정 관리되며 세계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세 곳 중의 하나로 미동부에서 탐방객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단풍 구경을 잠시하고 곧 다시 길을 들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미국 국경을 넘기 직전에 잠시 점심 요기를 할 곳을 찾아서 고속도로 옆에 있는 크리스탈 호수 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김명호 거사님께서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12시 30분에 크리스탈 호수 공원에 들어서니 드넓은 호수와 호수비치가 있어서 정말 미국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평화롭고 한가롭게 호수가운데를 오리들이 지나가고 저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풍력발전소가 돌아가는 밝고 아름다운 가을 날씨와 함께 정말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버너에 물을 끓여서 각기 숭늉과 사과 한조각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들어 1시 40분에 캐나다 국경에서 입국 수속을 하고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길을 달려 오니 저멀리 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옵니다.
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오자 다리 저편으로 다운타운이 보이고 우리가 넘어가고 있는 다리 주변으로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몬트리얼을 서쪽편으로 두고 남북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 45분에 오늘의 숙소인 전민락 거사님 댁에 도착하니 전민락 거사님께서 아주 반갑게 저희들을 맞이해주셔서 차에서 짐을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님께서는 다시 누룽지로 간단히 요기를 하신 후에 6시 10분경에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몬트리얼 한인천주교회였습니다. 몬트리얼은 정토 열린법회도 없고 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세계 100회 강연을 기획한 다음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홍보를 하여 몬트리얼 행사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신 김은아님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를 찾아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한인천주교회가 아주 웅장하고 크고 아름다웠는데 기꺼이 법륜스님께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교회를 빌려주셨다고 하였습니다. 6시 30분경에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과 참석자들이 다가와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입구에 들어오시면서 토론토 정토법당 김정란 총무님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후에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이번 행사를 후원하고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몬트리얼 한인회의 김광인 회장님께서 간단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이곳 몬트리얼까지 찾아주시니 한인들이 이렇게 모이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힐링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6시 50분에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몬트리얼 강연은 처음이고, 20년전에 몬트리얼을 잠시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강연을 한적은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좋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성당에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신 한인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씀부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감기 몸살로 목소리가 좋지 않는 것도 양해해주면 좋겠고, 또한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어제도 하버드대학에서 질문이 20개 이상 나왔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18개만 받았는데, 오늘도 스님께서는 마음껏 인생사 개인 얘기, 사회 얘기, 종교 얘기, 과학 얘기, 사람 얘기, 자연환경 얘기 등,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총 10명이 질문하였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2명의 질문자도 시간관계상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몬트리올에 온지 2년이 되었는데 영어와 불어를 못하는 것도 짜증이 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분, 평생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데 취직이나 돈버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학생,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고 말주변이 없어서 취업 면접도 걱정된다는 학생, 아이들 교육 문제로 몬트리올에 왔는데 시부모님과 관계가 안좋아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이 걱정된다는 분,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고 크게 의심하고 분노하라는 구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분, 이민을 온지 2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허무한 마음을 달래는 법을 묻는 분, 즉문즉설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인생이 행복해져서 스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는 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묻는 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본분인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어 고민이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이모와 어머니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이곳 몬트리올에 14살 때 혼자 유학을 와 이모네 집에서 자라 지금 나이는 22살입니다. 처음 오게 된 계기는 몬트리올에 이모랑 이모부가 살고 계셔서입니다. 이모 댁에 같이 살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나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이모랑 이모부를 뵙기는 했는데, 작년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러 한국에 가기 위해 돈을 다 준비했는데, 이모와 이모부가 굉장히 반대를 하셨어요. “그 돈을 학비에 보태지 뭐하러 한국에 가느냐” 그러셨어요. 지금 어머니랑 이모랑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마랑 이모가 서로 관계가 안 좋은 것은 자기들끼리 문제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옛날에 은혜 입은 것은 은혜 입은 것이고,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니까 질문자는 자기대로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스물까지 키워야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인데 엄마가 의무를 방기하고 이모한테 맡겼잖아요? 그러니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엄마가 이모한테 갚아야 합니다.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질문자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자기 나름대로 살면 됩니다. 이모가 보고 싶으면 방문하면 되고, 보기 싫으면 안가면 됩니다.
스무살 이전에는 미성년자이니까 결정권이 나한테 없었어요. 이모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보호자에게 결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질문자가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결정권은 질문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아니요”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안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스무살이 넘은 자유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이것은 이해해야 합니다. 친척 아이나 형제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면 반드시 원수가 됩니다.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언니의 아이를 받아서 키웠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언니가 좋아도 언니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친구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열에 아홉은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와 관계도 안 좋고 형제간에 관계도 안 좋아진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이모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이모 본인이 멍청해서 바보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 친척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관계가 나빠질까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를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년에 사촌 누나가 결혼을 해요. 제가 한국에 가려고 했는데 이모도 한국에 간다고 해요. 같이 가면 서로 보게 되는데 어떡하죠?”
“서로 보면 어때요? 보면 인사를 해야지요. 여기에서도 이모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나러 가면 됩니다.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이런 뜻입니다. 한국에 가서 만나게 되면, 이모한테 밥 얻어먹고 공부 했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요.
이모가 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느냐면, 남의 애를 데려다가 키우면 두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것을 야단치게 되면 아이가 반발하게 되고 아이가 반발하게 되면 그것을 자기 엄마한테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 얘기를 듣지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듣기 때문에 섭섭해집니다. 말을 계속 안 들으면 또 이모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이가 문제 있다” 고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그게 또 듣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야단을 쳐도 관계가 나빠지고 가만히 놔두어도 나중에 원망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 믿고 맡겨 놓았더니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냐” 이렇게 해서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모 잘못이 아니라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그런 겁니다.
이모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손해만 봤고 질문자는 덕을 봤습니다. 그러니 이모를 멀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보 이모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모 본인은 손해가 좀 있는데, 질문자한테는 손해난 것이 없어요. 이모가 잔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이모가 아닌 엄마와 같이 있었더라도 잔소리를 더 했으면 더했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모가 잔소리를 하는 것은 엄마가 한 것보다 더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치로 따지만 이모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이모는 애를 먹어가면서 키우고 돌봐줬는데 말도 안 듣고 해서 이모 또한 지금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야단을 치고 난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이모님께 “아이고, 이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거나, 뭐라고 하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됩니다. 말은 안 들어도 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질문자를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 혼자서 큰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서로 만나면 인사해야 하고 짐이 있으면 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니까 구애받지 말고 자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면 됩니다. 무거운 짐을 질 필요는 없는데 고마운 줄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10명의 질문자들과 함께 즉문즉설을 진행하다보니 2시간 35분간 강연을 하였고, 1시간 20분이 넘어서니 스님 목소리가 가라앉고 갈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대답에 정성스레 답하신 후에 스님께서 "목소리가 갈라지니 듣기가 힘들죠?" 라고 오히려 청중들을 걱정하니 청중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은 300명 이상이 참석하였는데 몬트리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길대학교가 있고,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유학생 등 유동인구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동인구까지 다 포함해도 최대 6000명을 추정하는데 오늘 3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엄청 나다고 다들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많이 참석해주시고 오늘 또 이렇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해주셨습니다.
“인생을 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깁니다. 남이 원한다고 내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한다고 또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질문자가 2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2명의 질문자는 질문을 원하지만 제가 다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못해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인생이 뜻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욕심입니다. 행복하게 살면 나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이 됩니다. 여기 이곳에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문제이지 세상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다함께 해보겠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시니 2시간 35분동안 목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박수를 보냈습니다.
2012년, 2013년 캐나다 토론토와 벤쿠버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대중들과의 공감이 어느 곳 보다 뛰어나고 스님과 함께 하는 호흡이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도 강연 중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팡팡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니 2시간 35분의 강연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흐트려지지 않으며 끝까지 집중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자 성당에 계시는 수사님께서 스님의 큰 팬이 되었다고 하면서 스님과 깊은 허그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다시한번 인사를 하셨고, 자리를 이동하여 북 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준비한 책이 영문책 몇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팔릴 정도로 스님의 책도 인기가 많았고, 사인을 받아가기 위하여 줄을 길게 섰습니다. 스님께서는 끝까지 사인을 다 해주시고, 자원봉사자들께도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또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의 후원도 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주신 김광인 회장님께 책을 선물해드렸습니다.
또한 이번 행사를 총괄한 김은아님께도 스님 사인을 한 책을 선물해 드리고, 성기택 베드로 신부님과 서 수사님께도 책을 선물해드리고 그리고 성당을 빌려주심에 감사 헌금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신부님과 서 수사님과 함께 기념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또한 함께 자원봉사를 해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시면서 몸이 아픈 관계로 함께 나누기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양해를 말씀을 구하고 스님께서는 10시에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스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남은 물품을 뒷정리하고 행사준비를 한 분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대중 교통편으로 돌아가야하고 개인적으로 바쁘신 분들은 먼저 돌아가고 4명이 남아서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몬트리얼 책임을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김은아씨는 성당에 다니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이 풀타임 직업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라서 정말 시간적으로 바빴지만 봉사를 하면서 재밌고 신나게 행사를 준비하였고 홍보 또한 적극적으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었다"라고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스님의 좋은 법문을 듣고 함께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모임이 이곳 몬트리올에서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누기를 하고 숙소로 귀가하니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 잠시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고 저는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32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립니다.
* 실외 사진 촬영은 이형만 감독님, 강연장 사진 촬영은 장호 거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