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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님과 함께 베트남 사업예정지를 함께 답사하실 정철상 대표님이 프놈펜에서 밤길을 달려
새벽 4시경에 이곳에 도착하셨답니다. 정 대표님은 프놈펜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캄보디아 JTS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정 대표님은 지난 9일 부산을 출발하여 호치민을 거쳐, 9일 오후 5시경 프놈펜 공항에 도착해서 하루 먼저 온 새로운 자원활동가 문태훈 법우를 만나 이곳에 오셨는데 밤길이라 속도를 내면 위험해서 낮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낮에도 8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거든요.
스님께서는 정 대표님이 조금 쉬시도록 기다렸다가 8시 50분 베트남 국경을 향하여 출발하셨습니다. 국경으로 향하는 길은 포장상태가 좋아서 먼지도 덜 나고 한결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도로 연변에는 고무농장과 캐쉬넛 농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참, 어제 학교신축현장 일대와 사무실로 오는 길에도 캐쉬넛 농장이 연이어 있었는데요, 이 농장들이 대부분 베트남의 자금이 들어와 운영된다고 합니다.
한 시간 가량 국경 쪽으로 달렸을 때 길 옆에 잘 정돈된 후추농장 앞에 싸론이라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싸론은 캄보디아 JTS 사업 초기에 라타나끼리의 교육청과 관련되는 업무를 하면서 JTS가 사업지를 선정하고 교육청과 협의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싸론을 추가로 태우고 조금 더 가다가 경찰서에서 전직 경찰 한 분이 우리의 안전과 통역을 위해
함께 가겠다고 탑승하였습니다. 이후 국경까지 가는 길 연변에는 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많은 후추농장이 있고, 후추농장을 새로 설치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육식을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나게 되니 후추 수요도 증가하여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10시 30분 국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인은 신분증만 있으면 간단한 증명서로 국경을 통과하는데 우리는 불과 3일 전에 프놈펜 공항에서 미화로 한 사람당 20달러나 들여 발급받은 비자를 반납하고 출국허가를 받았습니다. 10시 50분 도착한 베트남출입국관리소에서는 캄보디아인을 제외한 외국인은 당일(5시까지)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입니다. 11시20분에 베트남 입국수속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오늘은 국경변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정도와 교육시설이 어떠한지 둘러보기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베트남의 면적은 33만㎢로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면적의 1.5배 쯤이고, 인구는 2010년 통계로 8천8백5십만 명이며, 사회주의공화제를 실시하는 나라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가 보여주는 지도를 보시면서 출입국관리소에서 100m 쯤 들어와 왼쪽으로 난 길로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국경변의 교육여건이 열악하다고 생각하신 게지요. 그 길은 지도상으로는 제법 크고 좋은 길로 표시되어 있지만 들어가자마자 이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아졌습니다. 길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울퉁불퉁한 데다가 구불구불해서 그 길을 따라 국경변을 답사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하여 돌아나와 플레이꾸(Fleiku)시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베트남 영토에 들어서니 캄보디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우선 가옥구조부터가 눈에 띠게 달랐습니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의 누각처럼 일층은 비워두고 2층에 벽을 둘러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나라는 바로 땅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땅은 평지가 아니라 대부분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 지형과 지세를 이용해서 고무농장, 후추농장, 커피농장이 끝도 없이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는 단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던 소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한두 그루가 아니라 가로세로 줄을 맞춰 조성한 송림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싸론에게 소나무를 심은 이유를 물으니 ‘자기 생각으로는 미군이 월남전 때 이곳에 고엽제를 엄청나게 살포했는데 아마도 생명력이 강한 소나무를 심은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싸론의 대답을 듣기 전에는 소나무가 목재로서 가치가 있어 계획적으로 조림한 것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듣고 놀랐습니다. 전쟁의 잔혹함에 진저리가 처지는 한편, 전쟁의 상흔을 딛고 그 위험한 지뢰밭을 저토록 쭉쭉 뻗은 아름다운 송림으로 가꾸어 놓은 베트남 사람들의 의지에 마음속으로 갈채를 보냈습니다.
도로변에 나타나는 주택과 건물들의 형태나 농토와 숲의 모습, 사람들의 움직임, 농장과 수목의 모습으로 보아 주민들의 생활이 호화롭지는 않으나 매우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을 이겼다는 자부심이 있고, 호치민이라는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있다는 긍지가 대단해서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 점이 존경할 만한 청렴한 지도자가 없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플레이꾸시에는 오후 1시쯤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는 10층이 넘는 고층빌딩도 많고, 꽃가게가 많은 것으로 보아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안정된 도시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려면 우선 환전이 필요해서 은행으로 가자 하니 싸론은 귀금속가게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환전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명동과 남대문시장 등지에서 달러를 바꾸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쌀국수집을 찾으려고 몇 바퀴 돌다가 들어간 식당에서 시원한 국물을 생각하며 해물쌀국수를 시켰는데 라면처럼 구불구불한 면을 볶아서 그 위에 새우와 함께 볶은 야채를 얹은 접시가 나와서 스님과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밥은 옹기솥에 담겨 나왔는데 바닥에 눌어 있는 밥을 보신 스님께서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종업원이 와서 보고 밥을 한 솥 더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밥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나봅니다. 아까 주방에서 밥솥을 커다란 설거지통에 담근 채로 밥솥에 붙은 밥을 긁어서 그냥 설거지물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도 누룽지 만들어 먹는 법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또 한번 웃었습니다. 밥맛도 좋았지만 아작아작 씹히는 누룽지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2시 10분에 플레이꾸시를 출발하여 시내 서쪽의 구릉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멀리 갔다가 출국수속 마감 시간에 쫓길 일을 감안하여 지름길을 택했는데 능선길이었습니다. 오가는 차나 인적이 거의 없는 한산한 길이었는데도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농장은 농장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황무지 마저도 캄보디아와는 다르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3시 50분 베트남출국 수속을 무사히 마치고 4시 15분에 캄보디아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하여 또 20달러를 지불하고 입국비자를 새로 받았습니다. 삼면에 바다가 있고 휴전선이 막혀 도로로 출입국을 할 일이 없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이 참으로 생소하고 몇 시간 만에 새로 지불하는 비용이 아깝게 여겨졌습니다.
베트남 국경근처를 돌아보신 스님께서는 ‘사람 사는 모습으로 보아 절대 빈곤은 없는 것 같고, 사회주의제도의 틀 안에서 문맹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캄보디아와는 다른 방향의 사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의료지원 사업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며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오늘 베트남 사업예정지답사에 동행하지 못하고 감사를 마무리한 김기진 감사님으로부터 감사결과를 보고 받으시고 내일 아침 8시 감사결과와 사업방향에 대한 회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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