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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화) |
오후 2시 / 늦은 9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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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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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금) |
늦은7시30분 | 서울정토회 |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작가인 김홍신. 그리고 국회의원 8년동안 늘상 의정활동 1위에 뽑혔던 김홍신. 화려한 이력의 김홍신 작가가 8년에 거쳐 1만 2천 매 원고를 만년필로 직접 써가며 집필한 소설입니다. 더욱 정토행자들에게 뜻 깊은 것은.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남기는 게 국회의원 열 번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이 시작이었습니다."라는 사연때문입니다. |
“발해는 고구려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었습니다. 총연장 4300km에 사방 5000리(1리는 5.6km)에 달하는 대제국이었으니까요. 2005년과 2006년 여름 두 번을 다녀왔는데, 법륜스님과 고구려, 발해의 유적지부터 항일운동 유적지까지 다 훑었습니다. 발해의 첫 수도이자 시조산인 동모산은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데 재수 좋게 올라갔다 왔어요. 정말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광활한 곳이었습니다.”
△ 옛 발해의 영토 ㅣ 2005년
"내가 1986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족 향토사학자에게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규정하고 북한을 속방으로 삼기 위해 역사 왜곡을 강행할 거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는 믿지 않았지만 가슴속에는 어느덧 기묘한 씨앗 한 알이 심겨졌습니다. 그 후 1991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으로 의식이 선명한 젊은이들과 함께 고구려 역사 기행을 하며 고구려, 발해의 장엄한 역사가 중국의 변방사로 전락하는 걸 느꼈습니다.
△ 좋은벗들 제11차 역사기행中 고구려 환도산성에서 ㅣ 2005년
△ 발해의 마지막 도읍지 상경용청부를 찾아가던 길 차가 고장났다..타박 타박 걷다가 현지인의 도움으로 출발 ㅣ 2005년
이번 같은 경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철저한 역사 고증이었습니다. <대발해>는 발해 역사 전체를 복원한 통사에요. 최초로 이루어진 작업이죠. 발해 역사의 99%는 중국 기록입니다. 나머지 1%가 거란, 일본, 고려, 삼국사기, 삼국유사, 후대 연구 기록입니다. 소설이긴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실증적으로 그려낼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소설이지만 독자들이 ‘역사’로 받아들이길 원했습니다.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에. 사실을 복원시키는 게 중요했습니다. △ 경박호는 5,000년전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호수이다. 발해 당시에도 경치가 좋아 발해의 왕이 유람을 했다는 곳이다. △ 발해의 가장 유명한 도읍지이고 궁의 규모가 가장크고 통치 시기가 오래된 곳으로 상경용천부 제1궁성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