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달서지회
삶의 무게는 같으니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괴로움은 자기 어리석음의 ‘인연과보’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는 주인공. 그래서 수행 정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구경북지부 달서지회 강나영 님의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딸과 함께 아도모례원에서(맨 오른쪽 강나영 님)
▲ 딸과 함께 아도모례원에서(맨 오른쪽 강나영 님)

청정한 정토법당에 마음이 편해지다

저는 자식의 입시를 위해 보시하고 복을 비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2016년 말 건강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치료를 하기 위해 입원했을 때, 함께 지냈던 환우가 법륜스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매일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항암치료가 끝나면 꼭 정토회를 찾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년 후, 민 머리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대구 성서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소박하게 꾸며진 정갈한 법당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도반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밝아서 이전에 제가 알던 세계와는 다른 ‘천국’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법당 총무가 제 손을 잡고 따뜻하게 반겨 주었는데, 고맙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침 불교대입학은 마감이 되어서 먼저 6개월간 수행법회에만 참석했습니다. 온라인 전환 이전에는 누구나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수행법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여동생과 함께 불교대와 경전대를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1>에도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는 처음 이틀 동안 심하게 아프던 머리가 삼 일째에는 환하게 맑아졌습니다. 저의 모나고 뾰족한 성격과 딸을 다른 애들과 비교하며 추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편의 말에 휘둘리면서도 지기 싫어 마음속에 증오를 차곡차곡 쌓아둔 제 꼬락서니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지은 인연과보임을 깨닫고, 남편을 품을 그릇이 못 되는 제 수준을 알았습니다.

아도모례원 햇감자 수확(왼쪽 강나영 님)
▲ 아도모례원 햇감자 수확(왼쪽 강나영 님)

계산기 두드려 한 결혼에 괴로움의 시작은 남편

제 괴로움의 시작은 남편이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 넷째 딸로 태어나 일찌감치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기 위해 스물여섯 살에 천만 원을 가지고 선본 지 6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결혼생활에 관해 전혀 모른 채, 계산기만 두들겨 선택한 6살 연상 남편은 가부장적이었습니다.

밤 12시에 콜라를 사 오라며 ‘지시’하는 등 저를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남편을 미워하면서 참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중국지사로 발령받았을 때, 초등 2학년 아들은 절대로 중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떨어져 아들과 딸을 데리고 한국에 남았습니다. 남편은 중국에서 직원 300명을 거느리는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한두 달에 4일 정도 인천집에 오면 ‘왕’ 대접을 받으려 했습니다. 회사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던 저도 남편이 고생한다고 말해주길 바랐으니, 갈등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집에서도 사장 노릇 하려는 남편이 올 때마다 ‘나는 없다. 4일만 버티자!’를 속으로 삼키며 20년을 살았습니다. 몸속에 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돈돈’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상가와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가지니 남편 없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이 발견되고 독한 항암치료를 해야 할 때, 대구 친정으로 내려가 몸조리하라는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모릅니다. 결국 대구에서 언니와 동생이 사는 동네에 집을 구해 서울로 항암치료를 하러 다녔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남편은 부진한 중국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남편은 아픈 저를 앞세워 사업을 시작하려 했는데, 그러다간 정토회 활동을 못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정토회와 인연이 끊어지면 절대 안 될 일이었습니다. 저는 살기 위해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가부장적인 남편이 ‘감히 니가’라는 표현을 쓸 때면 제발 이혼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주고라도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며 이혼을 거부했던 남편은 이혼한 몇 달 뒤 재혼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천일결사2 백일기도 입재 후 매일 정진하면서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이혼을 요구했듯이 그도 살기 위해 그렇게 했겠구나’. 정진할수록 저의 뾰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업식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백일 출가
▲ 백일 출가

백일 출가의 행운

이혼하고 딸은 저와 아들은 남편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딸이 괴로움의 원인이었습니다. 딸은 대학 졸업 후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매일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아픈 줄 모르고 게으르다고만 생각하고, 밖에 나가지 않는 딸을 채근했습니다. 딸을 온실의 화초처럼 키운 어리석음을 참회하면서도, 또래들과 비교하며 취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등 떠밀려 구청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딸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어느 날 스타킹으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충격적인 순간, 딸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저의 어리석음에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가 바로 서야 한다’하는 생각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캐는’ 심정으로 새벽 정진을 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딸은 약도 먹고 상담도 받으며 행복학교3와 불교대학도 졸업했습니다. 자진해서 두북수련원에 봉사 가고, 법당 도반들과 함께 아도모례원 봉사도 가는 딸이 이제 건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딸은 건강이 회복되자 약 먹기를 거부하였고, 저도 강권하지 않았습니다. 이참에 딸을 독립시키고,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수행자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으로 백일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제가 백일 출가를 하면 딸은 자연적으로 독립을 경험하게 되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2021년 가을 백일 출가하여 만 배를 할 때는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백일동안 행자생활을 하면서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길래 이렇게 백일 출가의 청정한 삶을 맛볼 수 있을까? 모두 딸 덕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맑고 편안했으며, 공동체 도반들과의 삶이 너무나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항암 약의 부작용으로 3년 동안 먹던 수면제도 끊었고 딸 걱정도 사라졌습니다. ‘백일 출가도 했는데, 못 할 일이 없다’하는 자신감으로 집에 오니 딸은 백일 동안 저 없이도 잘 살았습니다.

아도모례원 하루 명상(왼쪽에서 세 번째 강나영 님)
▲ 아도모례원 하루 명상(왼쪽에서 세 번째 강나영 님)

엎어져야 깨닫는 것

남편은 1년 6개월 만에 또 이혼했습니다. 프랜차이즈 가게를 혼자 하는 것이 힘들다며 딸이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겠다고 갔던 딸은 아빠와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한 달 만에 짐을 싸서 내려왔습니다. 이 고비를 잘 넘겨 보자고 딸을 달래어 정신과 상담도 하고 약도 처방받아서 다시 남편에게로 보냈습니다. 경전반 진행을 하는 동안 ’고와 락이 둘이 아니다‘라는 법문이 어느덧 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딸은 오자마자 베란다로 뛰어갔습니다. 순간적으로 딸을 붙잡는데 몸이 떨렸습니다. 그새 딸은 더욱 나빠져 강제 입원을 시킬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폐쇄병동에서 사흘을 딸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전남편에게 화살을 날렸을 것입니다. 전남편도 예전의 저처럼 무지하여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생각하니 측은했습니다. ‘수행은 한마음 돌이키는 것이구나’.

3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잘 마치고 나온 딸은 약을 꾸준히 챙겨 먹으면서 요가와 도자기도 배우고 다시 정토회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처음 딸을 정신과 병동에 강제 입원시켰을 때는 제 잘못이 크다고 자책하며 너무나 부끄러워서 모둠장 소임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엎어진 덕에 딸도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었고, 저도 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명상바라지
▲ 명상바라지

딸이 보살이다

딸은 제게 불법의 인연을 이어주는 진정한 보살입니다. 이왕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2급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경험도 없고 나이도 많아서 연습 삼아 이력서를 냈는데, “인상이 좋다”는 평을 받고 합격해서 지금 입사한 지 3개월이 되었습니다. 실습 경험이 없어서 일 처리가 좀 느릴 뿐 직장 동료와도 잘 지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저 사람이 지금 흥분했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하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제 수행하지 않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수행을 놓으면 50년의 두터운 업식을 가진 이전의 저로 돌아갈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딸은 제 수행을 도와주는 보살입니다. 정토회에서 컴퓨터와 인간관계를 배웠습니다. 정진하며 제 마음을 알아차리고 실천하니 삶이 가벼워졌습니다. 불법의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제가, 지금은 꾸준한 새벽 정진으로 괴로움 없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한 발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딸은 아빠 만나기를 거부합니다. 딸의 마음도 존중하고, 전화하면 얘기를 그냥 들어주는 제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전남편의 마음도 존중합니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볍게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강나영 님)
▲ 부처님 오신 날(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강나영 님)


정토회 활동하고는 다른 이의 감정과 말에 휘둘리지 않게 된 것이 큰 변화라고 말하는 강나영 님. 자랑할 것도 없고 힘들었던 경험을 내놓고 싶지 않았다면서도 인터뷰 중 시종일관 담담하고 밝은 표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삶의 무게는 같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다.’ 몸소 체득하여 들려준 귀한 교훈이 뇌리에 남습니다.

글_이경분(서울제주지부 관악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3.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50

0/200

보덕심

귀한 경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1-11 14:27:43

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4-01-11 11:40:20

사탕구

강나영님 감동입니다.

2023-11-25 15:02:05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달서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