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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소정아! 문 앞에 떡볶이 두고 왔다”
임신한 정소정 님에게 자주 걸려 오던 전화 중 하나입니다. 15년 전, 앳된 얼굴의 정소정 님은 마산 법당을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이후 열심히 법당 활동을 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머리에 하나둘 흰머리가 생겼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선배 도반들은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15년 전 마산 법당을 환하게 밝혔던 정소정 님과 함께 웃고 사랑했던 선배 도반들. 그들이 만들어낸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3년째 불교대학 청년반 담당을 맡고 있는 정소정 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책을 읽었는데, 지나고 보니 대부분 불교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법륜 스님 책도 접했습니다. 우연히 불교방송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불교 교리보다 일상적인 주제로 질문을 받고 답하는 스님의 말씀이 신선했습니다. 법륜 스님을 알고 난 뒤, 2009년부터 매주 수행 법회가 열리는 대구 법당, 해운대 법당, 동래 법당까지 찾아가 법문을 들었습니다. 마산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다 마산에도 법당이 있다는 걸 알고, 2011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기 전부터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 과정에서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으면 출가해서도 행복할 수 없다”라는 스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언니는 첫째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면 둘째는 아들이기를 바랐던 부모님은 제 출생에 실망이 컸습니다. 저를 남자아이처럼 머리도 짧게 자르고 옷도 그렇게 입혔습니다. 아버지는 참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셨고 욱하는 성질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아버지가 망치로 집안의 살림살이를 다 부수면 언니랑 울면서 말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출가하고 싶었던 이유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깨닫고 ‘지금 여기서도 행복해 보자’ 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늘 방황했습니다. 마음은 불안했고 자존감은 낮았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부정적이었으며 근심 걱정도 많았습니다. 불교대학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도반들은 부모님 세대였습니다. 나누기를 통해 부모의 갈등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도 얘기하면서, 부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서 열었던 청년학교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법륜 스님 책 《방황해도 괜찮아》로 나누기를 하고 ,《새로운 백 년》으로 북콘서트도 열고, 법륜 스님과 함께 경주 역사기행도 갔습니다.
활동을 이어가면서 문득문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왔습니다. 청년학교 운영위원 전국 모임에서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날 "부처님, 저는 편안합니다. 부처님, 저는 행복합니다."라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2011년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해오고 있었지만, 스님께 기도문을 받은 뒤 더욱 정진했습니다. 이후 불안감이 줄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내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자 바깥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2014년 8월 26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세계 111개 도시에서 115일간 법륜 스님의 연속 강연이 있었습니다. 편두통이 심한 스님이 무사히 강연을 마치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강연 기간 동안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언니와 또 한 명의 도반과 함께 매일 법당에 나와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쌓은 정진의 힘이 지금도 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115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던 어느 날, 셋이서 나누기를 했습니다. 언니는 열쇠로 법당 문을 열 때마다 무섭고, 저는 누군가 와서 해칠 것 같아 무섭고, 다른 도반은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기도하는데도 셋이 일으키는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두 마음이 지은 상임을 깨달은 뒤부터는 무섭다는 생각 없이 담담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 인도 성지순례 때 일입니다. 시장에서 법륜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짜이를 마셨습니다. 그때 저는 용기를 내어 스님이 드신 짜이 잔을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찻잔을 볼 때마다 스님과 함께했던 인도 성지순례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도반이 자기 것도 가지라며 잔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탐났던 것은 찻잔이 아니라 스님의 잔이었는데, 속도 모른채 자기 잔을 건넨 것입니다. 사실 그 도반에게 가장 많은 분별심을 내고 있던 터라 내키지 않았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두 찻잔이 깨지지 않도록 천에 고이 싸서 가방 제일 안쪽에 넣어 두었습니다. 순례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귀국해서 가방을 풀었는데, 어느 잔이 스님의 잔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지중지 싸 들고 온 두 잔을 모두 버렸습니다. ‘아! 이것 또한 집착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청년 활동을 하며 만난 남편과 2016년 결혼했습니다. 시아버지는 저희가 결혼하기 1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를 겪었습니다. 의지하던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는 신혼 초 저에게 "우리 아들은 나한테 남편이고 아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기댈 곳이 아들밖에 없었겠지만, 아들만 바라보는 시어머니가 참 미웠습니다. 갑상샘에 이상이 있다는 제 말에는 위로나 걱정 한마디 없고, 남편 보약만 챙기는 모습을 보며 서운함이 컸습니다.
시어머니 댁에 가면 늘 마음이 상했지만, 저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니 차마 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소정이는 시어머니 문제만 해결하면 보살이 될 거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제게 큰 숙제였습니다.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곱게 자란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습니다. 8남매의 맏이였던 시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고, 술과 도박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기 전 첫 아이를 난산으로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흰색 천에 덮여 작은 두 발만 보였다고 합니다. 그 이듬해 낳은 자식이 저희 남편이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을까 싶었지만, 그 마음이 제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4년 만에 두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낳고 보니 시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첫 아이를 잃고 난 뒤 낳은 그 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점점 몸이 약해져 저와 종종 병원에 갑니다. 햇살이 따뜻하고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던 어느 날, 병원을 나와 함께 걷는데 시어머니가 달리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의 시어머니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제 분별과 기억으로 만들어 낸 ‘미운 시어머니’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꺼내 미워하고, 다시 접어 두었다가 또 꺼내 미워하는 일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제 마음속에 있던 시어머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시어머니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날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 ‘미운 시어머니'를 가을바람에 조용히 날려 보냈습니다.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듯 미움도 원망도 내려놓고, 이제는 시어머니를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저와 자라온 환경이 정반대인 남편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로 시어머니가 매일 안아주며 키웠습니다. 그렇게 귀하게 자랐어도 사회생활 하며 겪는 스트레스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시어머니처럼 우울증이 올까 걱정했습니다. 깊은 대화 끝에 남편은 지난해에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매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108배를 놓친 날에는 다음날 200배 절을 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행이 남편의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해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언니는 2011년 제가 경전대학에 진학할 무렵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정토회 활동을 같이하다가 청년학교가 시작되면서 언니는 창원 지역 담당을 맡았고, 저는 운영위원으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둘 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언니는 울산에서 저는 창원에서 청년 불교대학 반 담당을 맡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인도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같은 소임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매라는 인연을 넘어 같은 길을 걷는 진정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의 친정 엄마 같은 도반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사시 예불 당번으로 공양미와 차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들고 법당으로 가던 중 문턱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바닥에 쏟아졌고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에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때 공양간에서 공양 준비하던 그 도반이 조용히 오더니 "다시 갖고 오셔요. 제가 치울게요" 하며 묵묵히 바닥을 정리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놀란 마음은 금세 편안해졌습니다. 꾸중도 핀잔도 없이 제 마음부터 보듬어 주던 그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법당 활동에서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저와 도반들을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유산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을 때, 임신으로 몸이 무거울 때도 공양을 차려주고, 반찬과 간식을 준비해 우리 집 문 앞에 두고 갔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전할 때도 먼저 상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마음이 전달되어 상대의 마음이 열릴 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그 도반에게 받았던 따뜻한 챙김은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 제가 청년 불교대학에서 반 담당 소임을 하는 가장 큰 원천이 되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따뜻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 그 도반에게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를 낳고는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모둠활동으로 JTS 거리모금을 나갔습니다. 멘트를 읽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제삼 세계 어린이들을 잊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세상을 위해 써야겠다고 다짐했고, 2024년 8차 전법회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청년 불교대학 돕는이를 시작으로 진행자와 반 담당을 맡았는데, 마음이 힘든 청년들이 많습니다. 늘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학생, 부모에게 상처받고 단절하고 지내는 학생 등 정신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많이 공감합니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불안할까’ 청년들이 괴로움 없이 가볍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원이 생겼습니다.
2026년 1월 1일 봉림사지에서 새해맞이 통일 염원 천배 정진이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산속이라 춥고 어둡고 무섭다는 생각과 온갖 마음이 일어났지만, 절을 하면 할수록 간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앞으로도 청년 불교대학 소임을 계속하며 모든 청년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발원합니다.

20대에 정토회를 만나 전국을 누비며 활동하던 열정과 2011년 천일결사 입재 후 꾸준히 정진해온 내공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 깊은 선배의 수행담을 듣는 듯했습니다. 어린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인터뷰 내내 즐겁고 활기찼는데, 그 분위기를 다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오랜만에 밝고 힘찬 에너지를 주는 분을 만나 편안하고 행복했습니다.
잔잔히 여운을 남긴 정소정 님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기도하면 바윗돌만 한 재앙이 돌멩이만 하게 온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의 진정한 뜻은 바위처럼 크게 느껴지는 일도, 수행 정진하면 여여하게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글_손해경 희망리포터(대전충정지부 청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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