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실천

으뜸절
벚꽃잎 흩날리듯 연등빛 산사에 내리다.
2026년 4월 정토 미륵사 연등달기

연둣빛 새싹은 어느새 초록을 더하며 피어오르고, 한철 분홍 벚꽃은 바람에 흩날립니다. 아침 숲길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계절이 깊어갑니다. 두 갈래의 길에 이르렀을 때 ‘정토 미륵사 가는 길’이라는 수수한 안내판이 손님을 고요히 맞아주는 이곳은 광주,전라지부 으뜸절 정토 미륵사입니다.

미륵사 가는 벚꽃길
▲ 미륵사 가는 벚꽃길

미륵사 전경
▲ 미륵사 전경

미륵사는 1995년에 중창된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이 있고 편백 나무, 삼나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였습니다. 동쪽에는 자그마한 경작지도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는 연등 설치 봉사를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어머니를 모셔 오기도 하고, 아내가 남편을 이끌어 정토회 활동을 이어가던 중,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훌쩍 자라서 이제는 일손을 돕겠다며 나서기도 합니다. 물맞이 공원과 치유의 숲이 조성되어 가족들과 나들이 오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진 만큼, 자연스럽게 가족 단위의 참여가 이어집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 어머님을 모시고

딸과 함께 봉사하러 온 정토부부.
▲ 딸과 함께 봉사하러 온 정토부부.

환한 미소로 맞이하기.
▲ 환한 미소로 맞이하기.

단정한 차림으로 이른 아침 도착하여 참배하고, 금세 옷을 갈아입고는 도량 이곳저곳을 정비합니다.

중후한 멋을 풍기는 정충근 님 (동광주 지회)
▲ 중후한 멋을 풍기는 정충근 님 (동광주 지회)

정충근 님의 변신한 모습
▲ 정충근 님의 변신한 모습

약속된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속속 도착하여 누가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곳곳에 스며들어 입구 길 안내를 맡고, 주차를 돕고, 작년에 정리해 둔 연등 설치 도구 상자를 꺼내는 등 가볍게 필요한 일들을 잘 찾아서 하기 시작합니다.

교통안내를 위해 붉은 봉을 잡고
▲ 교통안내를 위해 붉은 봉을 잡고

민들레 홀씨처럼
▲ 민들레 홀씨처럼

그런 모습은 흡사 둥글게 활짝 피어 이곳저곳으로 날아오른 민들레 홀씨의 모습입니다.

 철 기둥이 꽤 무거워 입을 꾹 다물고.
▲ 철 기둥이 꽤 무거워 입을 꾹 다물고.

무거운 철 기둥을 나르고 있는 조상희 님은 이미 지난주부터 외곽 기둥 라인 작업과 굵직한 사전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쉴 틈 없이 분주해 보이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맡은 일을 즐깁니다. 벌써 몇 해 동안 미륵사 연등 설치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달 내내 주말을 기꺼이 내어주며, 구조물을 하나하나 세워 갑니다. 힘들지 않냐는 뻔한 질문에 그저 머쓱한 미소로 답합니다. 말 대신 번지는 행복한 표정은 이미 노동과 일이 하나 된 경지에 이른 듯 보입니다.

마음 나누기
▲ 마음 나누기

곳곳에서 가볍게 일하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니 모두 모여 명심문과 시작하는 마음 나누기를 잊지 않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왁자지껄 소란했던 풍경은 어느새 사라집니다. 둥글게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명심문을 세 번 낭독합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작업을 총괄하는 조상희 님이 오늘은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인 만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며 거듭 안전을 강조합니다. 이후 맡아서 해야 할 일들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연등을 정리하며
▲ 연등을 정리하며

연등 상자를 차례로 꺼내 정리하고 색깔을 확인합니다. 작업을 하다가도 카메라가 들어오면 손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순간을 의식하며 연출하는 일은 어느새 자연스럽습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빛이 납니다.

철 기둥을 세우고
▲ 철 기둥을 세우고

둥글고 미끄러운 철 기둥에 장비를 단단히 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워 보였습니다. 손에 힘을 줘도 자꾸 미끄러지고, 각도를 맞추느라 몇 번씩 다시 풀고 조이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전문가라면 혼자서도 금세 끝낼 일을, 안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몇 번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지나면서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점점 익숙해지고, 구조물 설치 작업에도 서서히 리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요령을 터득하며
▲ 요령을 터득하며

“아하! 이제 요령을 알았어!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어깨로 밀면서 하는 거였구먼”

몇 번이나 미끄러지던 손이 자리를 잡고 몸의 중심을 옮겨 어깨로 밀어내는 순간 단단히 고정됩니다. 각자 맡은 일이 손에 익어가며 얼굴에 번지는 표정은 아이처럼 환해지고, 그 모습을 보는 주변에서도 자연스레 웃음이 번집니다.

용접하고 있는 모습
▲ 용접하고 있는 모습

용접으로 쇠말뚝을 만들고
▲ 용접으로 쇠말뚝을 만들고

잠깐 숨을 고르는 틈이 생기자, 바닥에 흩어진 공구와 자재를 하나씩 정리하고 동선에 걸릴 만한 것들을 치웁니다. 다음 작업에 필요한 부품을 미리 맞춰보고, 치수를 다시 확인한 뒤 용접을 준비합니다. 불꽃이 튀는 용접이 시작되자 순간 긴장되지만, 보호장비를 단단히 갖추고 주변에 위험한 작업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차분하게 이어갑니다. 번쩍이는 불꽃 사이로 금속이 붙어가는 모습은 긴장 속에서도 묘한 안정감이 느껴지고, 손놀림에는 이미 익숙함이 배어 있어 믿음직스럽습니다.

아삭한 오이의 힘, 으랏차차!
▲ 아삭한 오이의 힘, 으랏차차!

오전인데도 햇빛이 제법 따갑습니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더위에 지칠 때쯤 시원한 오이 한 바구니가 간식으로 건네집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미륵사에 오신다는 김순옥 님입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때를 잘 맞춰 간식을 내어주나 싶어 모두 칭찬과 고마움을 전하며 무척이나 반가워합니다.

“아휴, 큰일 하시는데, 간식 챙김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수줍게 손사래를 치시지만, 뿌듯한 표정입니다. 아삭한 오이 한입에 더위가 한결 가시는 듯합니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은 넉넉하게 전해지고, 덕분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잠시 더위를 식히며 다시 미소를 되찾습니다.

풀을 매는 사람들
▲ 풀을 매는 사람들

도량정비도 함께 하며
▲ 도량정비도 함께 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연등 설치를 위한 소소한 일까지 빈틈없이 총괄하는 이미덕 님입니다. 연등을 달고 잠시 쉬려니, 이번에는 그 와중에도 별안간 호미를 들고 나타나 앞마당에 잡초를 매자고 이끕니다.

이미덕 님(왼쪽 첫번째)
▲ 이미덕 님(왼쪽 첫번째)

“허리 아픈 분은 하지 마세요, 다리 아픈 분은 쉬세요.”

누가 무리하게 일한다 싶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 상태를 모두 알고 있어 세심하게 먼저 챙깁니다.

“허리 아프면서 왜 하세요?”

부드럽지만 강하게 만류합니다. 그 말을 듣고도 한 분이 미안한 듯 대답하며 머뭇거립니다,

“그래도 어떻게 일을 안 해요?”

옆에서 또 다른 한 분이 슬쩍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청합니다.

“그럼요, 놀면 안 되죠. 흥겹게 노래라도 한 곡 불러주세요.”

“아닙니다. 그냥 일할래요.”

그러는 통에 한바탕 또 웃습니다. 분주한 손놀림 사이에도 빈틈없이 웃음이 채워집니다.

연등 다시 설치하기
▲ 연등 다시 설치하기

더 꼼꼼하게
▲ 더 꼼꼼하게

전구 하나하나를 정성껏 이어 대웅전 연등 설치를 마친 봉사팀은 잠시도 쉬지 않고 호미를 들고 앞마당 풀을 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연등 작업팀에서 연등을 달아놓은 전선의 길이가 맞지 않아 다시 해체하고 다른 줄로 연결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막 마친 수고를 다시 되돌려야 하는 순간, 누구라도 눈앞이 아득해질 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풀을 매던 손길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호미를 내려놓고 짧게 “네”하고 답한 뒤 곧장 다시 자리를 옮깁니다. 이내 매달린 연등을 풀어 내려놓고 전선을 바꾸며 하나하나 새로 연결합니다. 작업은 불평 없이 이뤄졌으며 오히려 모두가 함께하니 금방 했다고 신기하다며 뿌듯해합니다.

연등 분리 작업,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 연등 분리 작업,지구 환경을 생각하며

왁자지껄한 가운데 어느 한쪽 편에선 고요히 낡은 연등을 분리해서 버리는 손길이 지구를 지키는 세심한 배려가 됩니다.

완성된 연등을 보며, 파이팅!
▲ 완성된 연등을 보며, 파이팅!

드디어 맡은 일을 완수했다고 마당에서 일을 마친 봉사자들이 힘차게 외칩니다.

“파이팅!”

모두 기뻐하며 손뼉을 칩니다. 그러자 대웅전 작업을 하던 조상희 님이 들릴 듯이 마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합니다.

“아직 할 일이 엄청 많이 남아 있어요”

아직은 완전히 다 끝나지 않았다고 고삐를 다시 잡듯 한마디 건넵니다. 순수하게 기뻐하던 모습은 이내 멈추어지고 다음 일을 향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움직입니다.

길가에 연등을 달고 미륵사로 올라오는 봉사팀 사이로, 한 소쿠리 나물을 뜯어 온 양지원 님이 점심 공양 때 함께 나누자며 환히 웃습니다. 일의 흐름 속에서도 틈을 놓치지 않고, 봄의 계절이 주는 선물 같은 즐거움도 한껏 누립니다.

길에서 다 함께
▲ 길에서 다 함께

길가 연등 다는 모습
▲ 길가 연등 다는 모습

우리는 연꽃, 연등팀
▲ 우리는 연꽃, 연등팀

둘째날입니다. 오늘따라 길가에 걸린 연등 하나하나가 더욱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은은히 빛나는 그 작은 등불이 다시는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방향을 잡아주는 것만 같아 오래도록 시선이 머뭅니다.

줄줄이 가로등이 된 연등
▲ 줄줄이 가로등이 된 연등

이후로도 많은 봉사자는 매일 다녀갔습니다. 늘 완성된 모습으로만 바라보던 그 등을 직접 매달고 이어 붙이며 하나의 빛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을 체험하니, 그 등불의 의미가 더욱 깊이 이해됩니다. 무거운 구조물을 나르며 손끝으로 전해지던 무게와 등을 달 때 바람에 흔들리던 미세한 떨림까지, 이제 모두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미륵사 마당을 꽉 채운 색색의 연등
▲ 미륵사 마당을 꽉 채운 색색의 연등

광전지부 봉사자 모두 다 함께
▲ 광전지부 봉사자 모두 다 함께

미처 대화로 만나지 못한 숨은 봉사자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곳곳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피어올라 찬란하게 빛이 났습니다. 정토 미륵사의 계절이 아름답게 깊어갈 때, 모두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그날 이후, 연등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마음을 밝히는 등불의 약속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연등 설치 봉사를 해마다 빠짐없이 함께 할 이유가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해마다 연등불을 켜듯 어리석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나아가 사회를 밝히고, 마침내 온 지구가 밝아지길 서원합니다.

글_문현선(광전지부 동광주지회)
사진_문현선(광전지부 동광주지회)
편집_황재윤(경북지부 포항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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