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기광주지회
사람 살리는 길 정토, 나를 살리는 길 수행

경기광주지회 양평모둠 통일 꼭지를 맡고 있는 김숙자 님을 줌으로 만났습니다. 3번의 수술과 지금도 항암치료 중이지만,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 거의 매일 300배를 정진한 공덕 덕분인지 병색이 없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10년 동안 다양한 봉사 이야기와 딸, 주변 지인,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10명 이상 전법 한 비법을 들어보겠습니다.

2018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100일 300배 릴레이 정진(왼쪽 네 번째 김숙자 님)
▲ 2018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100일 300배 릴레이 정진(왼쪽 네 번째 김숙자 님)

1990년대 법륜스님께서 북한동포돕기 백만인 서명 운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종교에 관심이 없던 저는 진보적 스님이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2013년 정토회와 인연 맺은 동생의 안내로 2014년 가을 불교대학(이하 불교대)에 입학하였습니다. 입학 법문에서 ‘상구보리 하화중생, 지혜를 구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불교’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불교 안에서는 풀리지 않던 제 삶의 의문이 해결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그동안 어리석게 자신을 내팽개치고 밖으로만 내달려 온 삶이 정리되었습니다. 수행하면서 사회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어지는 대로 봉사하였습니다.

저는 3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배움에 아쉬움이 컸던 아버지의 배려로 1970년, 7살에 유치원까지 다니며 4남매 중 가장 특혜를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 다니다 베트남에 기술자로 파견되어 근무하였습니다. 70년대에는 중동 지역에서 해외 근무를 오랫동안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오랜 부재로 부녀 간의 친밀도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이 어렵고 남처럼 느껴졌습니다. 술 마시면 초등학생인 저에게 “네가 집안의 기둥이요 등불이다.”라고 자주 말하였습니다. 그 말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저의 무의식에 책임감을 강하게 남겼습니다.

2015년 불교대 졸업 (앞줄 맨 왼쪽 김숙자 님)
▲ 2015년 불교대 졸업 (앞줄 맨 왼쪽 김숙자 님)

1980년대 초 대학 입학 후, 광주 민주항쟁의 실상을 알고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감옥에 다녀왔습니다. 대학을 떠나고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하였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정답이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맏딸로서 책임감 있기를 바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지고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무거운 마음 내려놓기

2015년,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정진에 참석하면서 아버지를 깊이 이해하고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당시 법당별로 순서를 정해 1시간에 1명씩 1초도 쉬지 않고 1000일간 서초법당에서 정진하였습니다. 정진 전 읽는 기도문에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기도하는 내용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통일은 북한 동포를 살리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정진하면서 분단의 시절에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돌아가신 할머니, 식민지 치하에서 만주로 간 할아버지, 어린 나이에 혼자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삶, 분단되어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 성당에서 신부에게 배운 영어로 시작한 카튜샤, 베트남 근로자 파견, 하고자 했으나 안된 일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가족들 등등. 아버지에게는 ‘술이 보약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진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 (왼쪽 세 번째 김숙자 님)
▲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 (왼쪽 세 번째 김숙자 님)

‘내가 마음을 닫고 있어서 보지 못하였구나, 마음을 열면 가까이에서 진리를 보고, 마음을 닫으면 진리도 한갓 논쟁거리밖에 안 되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나는데 목탁을 멈출 수 없어 눈물 콧물을 흡입하며 정진하였습니다. 뒤에서 함께 정진하던 도반들도 울면서 정진을 마쳤습니다. 그러면서 무거웠던 제 마음도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나를 위한 선물, 봉사

10년 동안 주어지는 대로 봉사하다 보니 웬만한 소임은 거의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 학생 때 맡았던 불교대 담당 소임을 시작으로, 통일의병 담당, 양평법당 부총무, 남양주 정토회 총무 소임까지 이어졌습니다. 함께한 도반들과 꾸준한 수행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소임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도반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던 업식들도 자연스럽게 알았습니다. 질문을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습관, 부담스러운 말을 제때 하지 못하는 습관, 원칙에 사로잡혀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습관 등이었습니다.

2019년 통일의병 활동모임 (앞줄 맨 오른쪽 김숙자 님)
▲ 2019년 통일의병 활동모임 (앞줄 맨 오른쪽 김숙자 님)

지나고 보니 법당이 조용히 유지된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말해봤자 소용없겠다’라며 조용히 자리를 떠난 도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교만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은 감사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듣는 것은 저의 수행 과제입니다. 특히 ‘잘 듣는 것’의 중요성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면서, 수행의 끝은 듣는 귀에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봉사하면서 크게 힘든 일이 없었습니다. 남편도 제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고, 딸은 대학에 입학 후 집에 없었기에, 저는 봉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양평법당은 인원이 많지 않아 조용했고, 도반들이 저보다 일을 잘하고 분위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법당이 외진 곳에 있어 법당에 오고 갈 때 제 차로 도반들과 함께하였습니다. 각자의 일은 알아서 잘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도반들과의 갈등도 없었습니다. 남양주 총무 소임을 맡은 지 1년 되기 전, 법당 체제가 온라인으로 바뀌고 총무 소임도 마쳤습니다.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 (둘째 줄 왼쪽 다섯 번 째 김숙자 님)
▲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 (둘째 줄 왼쪽 다섯 번 째 김숙자 님)

온라인 정토회가 발족하면서 지원국 경전대학 팀장 추천을 받았습니다. 지역 활동은 시간 내어 도반들과 함께하면 되는데, 지원국 일은 기획과 운영 능력이 필요하고, 아이디어를 내야 해 제게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처음으로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일을 하면 하게 되는 업식대로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선출된 지회장을 사퇴하고 경전대학 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이 일 역시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2023년 2차 만일결사 때, 교육국이 신설되고 불교대 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두 소임 모두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할 만큼 일이 많았지만, 도반들과 함께한 덕분에 제 능력 이상으로 전법의 최전선에서 일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잘 쓰였기에 제게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봉사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남한테 받는 것보다는 주면서, 베풀고 도움이 되는 존재임을 느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부심이 생기니, 봉사는 결국 진실로 자기를 위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주어진 소임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자부심을 높이고, 힘들지만 해내니 스스로 뿌듯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2021년 남양주정토회 부총무단 ( 윗줄 왼쪽 두 번째 김숙자 님)
▲ 2021년 남양주정토회 부총무단 ( 윗줄 왼쪽 두 번째 김숙자 님)

사람을 살리는 전법

불교대를 시작부터 전법 한다는 생각보다 저에게 좋은 것을 공유한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스님의 하루’나 ‘불교대 홍보물’을 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보내면서 좋아할지, 싫어할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읽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불교대를 해보라고 권유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보 공유, 선택은 자유’라는 문구만 추가하였습니다. ‘불교대를 안 하면 본인 손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부총무를 할 때, 법당 전화번호를 제 핸드폰으로 착신해 놓았습니다. 법회나 불교대 문의, 희망강연, 즉문즉설 문의를 한 전화번호로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먼저 연락한 분들에게는 계속 정보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 이름을 모르니 어떤 것을 문의했는지 날짜와 함께 저장하여 계속 정보를 보냈습니다. 가끔 제가 보내준 정보 덕분에 경전대학까지 졸업했다는 감사의 글을 받을 때도 있었고, 회원이 된 분도 있습니다. 3년 보내고 정토회와 인연 된 분, 6년 보내고 인연 된 분들 정보를 보낸 10년간 10명 넘게 전법 하였습니다.

2025년 모둠활동, 딸과 불교대 홍보
▲ 2025년 모둠활동, 딸과 불교대 홍보

가장 최근에 불교대를 선택한 사람이 제 딸입니다. 정보 공유 9년 만입니다. 딸은 불교대를 졸업하고 회원이 되었습니다. 딸은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직장에서 기획안을 다시 쓰라고 해도 짜증이 안 나고, 발표할 때도 떨리지 않아 사는 게 편해졌다고 합니다. 천일결사 입재도 하였고, 다음 학기는 경전대학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딸에게 전법을 하니, 할 일을 다 해 더 할 일이 없다는 한가한 마음이 듭니다.

나를 살리는 수행

2023년 12월, 대장암 4기 진단받았습니다.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동안 하던 소임은 내려놓고, 병가를 내고 회원 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10년간 꾸준히 법문 듣고 300배 정진한 힘으로 제 마음이 크게 요동치지 않으니, 가족들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수행과 봉사는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구나’를 알았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받으니 항암 반응도 크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8년 한반도 평화협정 제정 백악관 청원 활동(오른쪽 첫 번째 김숙자 님)
▲ 2018년 한반도 평화협정 제정 백악관 청원 활동(오른쪽 첫 번째 김숙자 님)

암 발견이 늦어 전이가 많이 된 상태라 쉽게 완치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300배 정진한 공덕으로 체력이 좋아서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모두 효과가 좋은 편입니다. 아버지가 암이었기 때문에 ‘형제 중 한 명은 걸릴 수 있고, 그게 나한테 왔구나! 내가 걸린 게 차라리 낫다.’라고 생각합니다. 10년간 법문 들은 것이 제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천도재에서 영가들에 들려주는 법문이 제게 들려주는 법문이라 생각하며 독경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관점을 뚜렷하게 갖는 것이 궁극적인 해탈이라 생각합니다.

‘밥 먹듯 기도하듯 치료 받습니다.’라는 명심문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암을 완전히 내보내려고 애쓰면 너무 힘드니 “암아, 같이 살자”라는 마음입니다. ‘웃어도 암이고 울어도 암이니 이왕이면 웃는 게 낫지’라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웃지 않지만, 웃음이 많아졌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일상을 살 듯 그냥 치료받고 있습니다. 최근 기도를 한참 안 하던 도반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싶어 10차 100일 기도에 입재하였습니다. ‘내가 도반들 덕분에 살고 있구나, 내 병도 쓸모가 있구나’라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23년 사무처 교육국 불교대팀 회의 (윗줄 맨 왼쪽 김숙자 님)
▲ 2023년 사무처 교육국 불교대팀 회의 (윗줄 맨 왼쪽 김숙자 님)

서원행자 수계식에서 또 눈물, 콧물을 흘렸습니다. 지도법사님의 축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축원 중이라 움직일 수도 없고, 두 손은 연등을 들고 있어 눈물을 닦을 수 없었습니다. 손수건도 없어 눈물, 콧물 묻은 손으로 스님과 악수하였습니다. 수계식을 하며 다시는 어리석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정토회와 함께하는 지금이 참 행복합니다. 제가 사는 날까지 정토회에서 도반과 함께하며 조금이라도 쓰일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2025년 통일염원 300배 정진 (아랫줄 맨 오른쪽 김숙자 님)
▲ 2025년 통일염원 300배 정진 (아랫줄 맨 오른쪽 김숙자 님)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면서, 보통 사람들은 암에 걸리면 ‘왜 하필 나야?’라는 막연한 억울함이 있고 저 역시 그럴 것 같습니다. 김숙자 님은 ‘형제 중 차라리 내가 걸려 다행이다.’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오랜 수행으로 다져진 공덕과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항암치료도 거뜬히 잘 이겨내고 4번째 수술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에 저도 두 손을 모았습니다. 앞으로도 암은 있는 듯 없는 듯, 지금처럼 늘 웃는 모습으로 봉사하며 도반들과 함께하며 수행자의 자세를 보여주기를 발원합니다.

글_이재선 희망리포터(대경지부 경주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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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 변상용

김숙자님과 알게 된 지도 10여년이 훌쩍 지났네요. 지금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제겐 처음과 별반 차이가 없이 단단하셨어요 ㅎ
지금까지 그래왔듯 꿋꿋하게만 견뎌내 주시면 병은 저 구석에 가서 찌그러져 있을 겁니다.
김숙자님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는 도반과 같은 마음으로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아자!

2025-12-17 13:51:04

정윤희

김숙자보살님, 글을 보면서 참 나와 비슷해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보살님과 비슷한 또 다른 김숙자가 응원과 완쾌를 발원합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소중한 도반님_()_

2025-12-17 13:13:08

선등 신성철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차라리 내가 걸려서 다행이다,,,라는 말에서 수행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2025-12-17 12: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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