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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지장의 매력이 참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소개글을 작성할 때마다 느낍니다. 오늘의 주인공 박상희 님은 첫 번째 바라지장을 갔을 때 '나는 호캉스가 어울리는 사람인데, 잘못 온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마칠 때는 그동안 나를 위해 음식을 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고 합니다. 두 번째 바라지장에서는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지는 이유를 찾게 되었고, 세 번째 바라지장에서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박상희 님의 네 번째, 다섯 번째 바라지장에서는 어떤 수확물이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저는 그동안 세 번의 ‘바라지장’을 다녀왔는데, 매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바라지장에 참가한 것은 2023년 여름입니다. 여름휴가로 해외여행을 갈까, 호캉스를 갈까, 고민하다가 정토불교대학에 재입학을 앞두고 바라지장에 가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첫날 나누기에서 ‘나는 호캉스가 어울리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지만, 마칠 때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의 공덕이 있구나’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변호사가 되기까지 공부만 하느라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시고 식사 준비까지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바라지장에서 수련생들을 위해 공양을 준비해 보니, 재료 손질 하나하나 손이 얼마나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지 여실히 알았습니다. 지금껏 제 뒷바라지를 해주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께 감사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이후 ‘내가 먹을 음식은 내 손으로 준비한다’라는 생각으로 조금씩 요리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5월 두 번째 바라지장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전반에 진학해서 수업을 듣는데,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져서 이유를 고민하던 시기입니다. 바라지장에서 이런 제 마음을 내놓았더니, 한 도반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마음이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슴 한편이 찌릿하게 아파지면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세 살 때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갖은 고생을 하며 학업마저 포기해야 했습니다. 결혼하면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남자가 있어 그 말을 믿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아 빚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남편은 술을 좋아해서 술만 마시면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떠날 것만 같아 밤에 잠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100점짜리 시험지를 안겨주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공부에 별로 소질이 없던 제가 엄마가 바라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10년간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던 나를 생각하니 ‘엄마가 왜 그토록 나한테 집착했을까, 엄마가 왜 그렇게 공부하라고 했을까, 나는 또 왜 그렇게 공부했을까’하는 퍼즐이 맞춰졌습니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문들을 통해서 제 무의식 속 괴로움의 본질과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도반이 “어떻게 엄마가 시킨다고 고시 공부를 10년이나 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단단히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실 공부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고, 엄마가 기뻐한 것은 덤이었습니다.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 같은 남자를 고른 것이 지금의 남편인데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라는 생각에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남편이 가난한 고시생 형편에도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고, 무엇이든 나누는 모습에 반해서 제가 먼저 고백했습니다. 진실을 깨닫고 나니 이번에는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2025년 1월 1일, 마침 재판이 없는 휴정기에 가족의 양해를 구하고 세 번째 바라지장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의욕적으로 김치 담당을 맡았습니다. 팀장님에게 배운 대로 김치의 지저분한 끝부분을 제거한 뒤 가지런히 놓고 가로로 4등분, 세로로 이등분하여 접시에 곱게 담았습니다. 그런데 높낮이가 고르지 않아 낮은 곳에 김치를 더 채워 넣고 높낮이를 맞춰서 다시 검사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뚜껑을 열었을 때 김치가 정갈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니, 다시 해보라고 했습니다. 또다시 김치 한 포기를 희생하고도 답이 없자 결국 다른 분이 소생 시켜 완성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하심下心하는 경험으로 삼았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과일을 담당했습니다. 김치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정성껏 과일을 세척하고, 균등하게 잘라 먹기 좋게 세팅했습니다. 나와 수준이 비슷한 도반과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세팅하면 가장 예쁠지를 연구했습니다. 그 정점에 이른 것이 바로 마지막 날 쌈 채소 세팅입니다. 크기가 가장 큰 배추를 밑에 깔고, 그 위에 상추, 가장 작은 로메인을 맨 위에 올려서 간편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간 안에 빠듯하게 완성한 쌈 채소는 마치 꽃을 피운 듯한 자태였는데 드디어 공양간에서 내 몫을 해낸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세 번의 바라지장에서 얻은 수확물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웃음’입니다. 11년째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평소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좋은 일로 변호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저는 늘 진지하고 심각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웃기는커녕 억지 미소조차 지을 수 없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바라지장에서 소리 내어 깔깔거리며 바닥을 치며 웃다가, 어느 날은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아픔을 들으며 웃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다 함께 웃는 사이 그 아픔이 함께 치유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잘못 온 것 같다고 했던 첫날의 나누기가, 마지막 날에 “밖에서 일이 힘들다고 투정 부렸는데, 바라지장에 와서 그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바라지장에서 하듯이 일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다”라는 소감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언젠가는 문경수련원에서 발우공양, 꿀잠, 쾌변에 모두 성공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여름 휴정기에도 바라지장에서 만나요!
글_박상희 (경남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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