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금정지회
나에게 찾아 온 두 가지 죽음

이현지 님과 대면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이현지 님은 부산에, 저는 경기도 북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 있는 도반을 작은 모니터 화면에서 만났습니다. 둥글고 하얀 얼굴에 밝은 모습을 가진 이현지 님에게 소개를 부탁하니 수행의 찐 맛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현지 님의 수행 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요? 함께 맛보아 보겠습니다.

엄마의 죽음

며칠째 몸살이 낫질 않는다고 병원에 가야겠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몸살인 줄 알고 가볍게 찾아간 병원에서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담도암 4기였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녔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수술도 못하고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후 약물치료로 고통스럽게 6개월을 지내다 임종을 지켜드리지도 못했는데 제 곁을 떠났습니다.

엄마를 보내고 짐 정리를 하기 위해 살던 집으로 갔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몸살로 병원을 간다고 했던 그날의 모습 그대로 집안은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공간에 엄마만 탁 집어 빼놓은 듯한 느낌이 너무 공허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이런 거구나, 부질없다’라는 생각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불안함으로 머릿속이 꽉 찼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동생이 마음공부 하는 곳이라고 정토회를 권유했습니다. 심한 우울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로 정토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 나누기 하면서도 엄마 생각에 많이 울었습니다.

2022년 5월 〈깨달음의 장〉동기들과 1주년 기념으로 문경수련원 도량청정 봉사(맨 오른쪽이 이현지 님)
▲ 2022년 5월 〈깨달음의 장〉동기들과 1주년 기념으로 문경수련원 도량청정 봉사(맨 오른쪽이 이현지 님)

행복한 어린 시절, 남편과의 만남

어린 시절의 저는 행복했습니다. ‘현지’라는 이름도 아버지가 지어 주었는데 저는 그 이름이 참 좋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사교적인 아버지 덕분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아버지의 형제들도 많아 또래 사촌이 많았습니다. 사촌들과 같이 여행도 가고,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 사업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살던 집을 정리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 한쪽에 있는 방으로 이사했습니다. 등록금을 내지 못해 교무실로 불려 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이목을 중요시하고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반면에 엄마는 경제적인 문제로 늘 걱정하고 살았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지만 엄마에게 좋은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학교를 졸업하고 20대에 취직한 회사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조용하고 꼼꼼하고 업무 실적도 항상 최고였습니다. 아빠와는 반대인 모습에서 ‘이 사람은 가정적인 남자겠다. 결혼하면 가족은 잘 챙기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월급 또한 다른 사람보다 많아 경제적인 면에서도 힘들지 않게 살 것 같았습니다.

20년 지기들과 거제도에서 캠핑하며
▲ 20년 지기들과 거제도에서 캠핑하며

하지만 남편은 어둡고 외로워 보였고, 남들과도 쉽게 친해지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그 성격 때문에 부모님과 친구들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잘 참고 남편을 맞추면서 챙겨주면 좋아질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집을 못 구해 들어간 시댁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수입에도 저축한 돈은 한 푼도 없었고, 빛도 안 들어오는 골방에서 시어머니와 같이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출렁거린 결혼생활

3남 1녀 중 막내인 남편은 집안의 장남 역할을 했습니다. 경제적인 면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남편이 결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시어머니의 집착은 대단했습니다. 아침마다 남편의 구두를 닦아놓았고, 남편과의 사소한 언쟁에도 남편에게 말대답한다고 저를 나무랐습니다.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 2년 뒤에 집을 마련해 분가했습니다. 햇살이 잘 드는 곳으로 이사하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장남 역할을 하는 남편과, 큰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저는 시댁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았습니다. 참으며 살면 된다고 했던 생각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편을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외골수였던 남편은 남에게 의지하거나 의논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과도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출렁거리면서 14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돌아가셨고,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22년 6월 발심행자 수료식
▲ 22년 6월 발심행자 수료식

더 가슴 아픈 죽음

취업 준비생이었던 작은 아들은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잡곡밥을 먹이고 싶어 밥과 반찬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두 번 얼굴 보며 점심도 같이 먹곤 했습니다. 말이 별로 없는 아이였지만, 자주 안부 전화를 하는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그날도 “엄마 일요일에 뭐 해? 밥이 없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보통은 음식을 준비해 바로 다음 날 갔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명절 전이라, 장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한 상태였습니다. 장에 다녀와서 ‘엄마가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내일 갈게’하고 톡을 남겼습니다. 답이 없었습니다. 그 주 토요일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 공부하느라 바쁜가 보다 했습니다. 다음날까지 연락이 안 되어 부랴부랴 먹을 것을 챙겨 아들에게 갔습니다.

침대 아래에 있는 아들의 죽음을 본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119에 전화하고, 경찰과 남편에게 전화하고, 그리고는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빈소가 차려지고, 언제 들어왔는지 아들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명절 음식을 준비하려고 2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의 시장을 가는 동안 아들은 뇌출혈로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장을 가지 않았다면 아들은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듯 아팠습니다. 조상님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내가 뭘 그리 큰 잘못을 했길래 그 시간에 아들을 데려갔냐’라고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차려진 빈소에 오후부터 아들 친구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너무나 많은 친구가 왔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군대 선임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문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많은 친구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 많은 친구를 두고 어떻게 갔냐고 또 울었습니다. 한 친구에게 제 아들이 어떤 친구였냐고 물으니, 친구들 말을 잘 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2022년 5월 〈깨달음의 장〉동기들과 1주년 기념으로 문경수련원 도량청정 봉사. 법사님과 차담 중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현지 님)
▲ 2022년 5월 〈깨달음의 장〉동기들과 1주년 기념으로 문경수련원 도량청정 봉사. 법사님과 차담 중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현지 님)

둘째 날 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25년이라는 짧은 인생이었지만, 누구에게 원한을 주고 받지 않고 그저 자기 삶을 잘 살다 갔구나! 이렇게 많은 친구가 슬퍼해 주는 것을 보니 잘 살았구나!’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후에는 울지 않고 입관과 화장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헌 옷을 태워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는 매일 울고 지냈는데,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너무 담담했습니다. ‘이것이 수행 덕분인가? 수행을 아주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변화가 있을 수 있을까?’ 저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수행은 저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장례를 다 끝내고 돌아와 사후세계는 어떠한지 궁금하여 유튜브를 보다 <마이클 버튼> 박사가 지은 《영혼들의 여행》이란 책을 알았습니다. 책에서는 많은 연구 사례를 통해 "영의 세계는 빛과 에너지로 되어있고, 수련하기 위해 고통과 기쁨으로 얽혀진 한 인간의 삶을 선택하여 태어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도 수련이 다 끝나 돌아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친정엄마를 통해 인간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 이런 수련을 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에 ‘수행자로 살다 가자!’라고 마음 정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모둠장도 맡았습니다.

24년 613 대회 행사 전, 사전평화행동 모둠활동
▲ 24년 613 대회 행사 전, 사전평화행동 모둠활동

모둠장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부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챙겨야 하고, 저 또한 잘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회장과 법사님의 설득으로 소임을 받았습니다. 수행하면서 남편을 힘들게 하지 않고 남편의 의지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수행 법회때 도반들을 맞이하느라 웃고 있으면 “아들을 잃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라며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렇게 가시가 돋친 말로 저를 괴롭히는 남편과 싸우다가, 문득 13년 전 제가 엄마를 잃고 했던 행동이 보였습니다. 그때부터는 ‘자식 잃어 힘들어하는 도반이 불교대학에 입학했구나’라는 생각으로 남편을 대했습니다. 이후로 제 마음도 편하고 남편도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소임을 통해 나를 살피다

전법회원 교육생으로 불교대학 돕는이 실습할 때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할 때인데 제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잘 못하는 것을 하려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복통으로 병원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를 답답해하는 진행자에게 많은 분별도 했습니다. 화가 나서 아무것도 안 하려 한 적도 있었는데, 담당 도반의 조언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가 진행자가 돼 보니 그때 그 도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미안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 사람을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니 어떤 일이든 철저히 해야 하고 잘해야 하는 남편의 성격과 그 사람의 성격이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마음이 일었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후에 그 도반을 만나 사과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돕는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어떤 일이든 좋고 나쁜 게 없음을 다시 한번 알았습니다.

소임 하기 전에는 저만 보면 되는데 소임을 하고 나면 여러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저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지금 관점을 잘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지 않고 안으로 나를 살피는 일이 많아집니다. 소임에 따라 수행 거리도 다양해지고 그만큼 내면도 성장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소임이 저를 살렸습니다.

24년 8월 선유동 연수원.〈깨달음의 장〉동기들과 메리골드 꽃차 만들기 봉사(왼쪽 이현지 님)
▲ 24년 8월 선유동 연수원.〈깨달음의 장〉동기들과 메리골드 꽃차 만들기 봉사(왼쪽 이현지 님)

언행에 깨어있겠습니다

학창 시절 불우했던 남편은 외롭고 힘든 시절 문예부에서 시를 적으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에게 가끔 시를 적어 보냅니다. 사랑 표현을 잘 못하는 남편의 아들 사랑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해 힘든 부분이 많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해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 부분은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남편이 불편합니다. 30년을 살다 보니 숨소리에 담긴 감정, 저 말 뒤에 따라올 한마디 등 예전보다는 서로 많이 편해졌고 맞춰져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수행 목표는 ‘언행에 깨어 있겠습니다’ 입니다. 그렇게 맞추기 힘든 남편 덕분에 다른 사람과는 갈등이 없습니다. 큰며느리 역할도 이제는 분별없이 잘합니다. 동생과는 가끔 전화로 나누기합니다. 그런 동생이 있어 참 좋습니다.

25년 모둠장으로 으뜸절 천룡사에서 실천 활동(맨 오른쪽 이현지 님)
▲ 25년 모둠장으로 으뜸절 천룡사에서 실천 활동(맨 오른쪽 이현지 님)


이현지 님 수행의 맛이 어떤 맛인지 저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어려운 수행담을 조용한 목소리로 편안하고 간결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10여 년의 수행의 결과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현지 님의 서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의 서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저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 체험으로 체득하였습니다. 제가 이 법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팔자가 왜 이렇게 박복할까 한탄하며 어리석게 살고 있었을 텐데, 수행자로 살다 보니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 법 만난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남은 생 동안 수행자로 열심히 수행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글_이삼월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남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2

0/200

강성숙

수행담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2025-08-29 20:14:27

무구의

수행담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꾸준히 수행하며 살아가겠습니다.

2025-08-29 19:38:34

현광 변상용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텐데 잘 이겨내시고 멋진 수행자가 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수행하러 세상에 왔다가 그것이 끝나면 돌아간다는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기네요.
이런 수행담을 접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2025-08-27 22: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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