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화성지회
더불어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비상계엄 뒤이은 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 소추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던 주말 저녁, 주인공 조민경 님을 만났습니다. 조민경 님은 지금의 국가 상황에 마음이 착 가라앉아 인터뷰가 잘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고, 진행하는 저 역시 다른 때와 달리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조민경 님의 수행담을 듣다 보니 오히려 제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지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진행된 이번 인터뷰가 새삼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통일꼭지 소임을 맡아 새터민과 고려인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조민경 님의 수행담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사랑과 분노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엄마는 제가 동화책 이야기를 하면 눈을 맞추고 흐뭇하게 들어주었고, 아버지는 퇴근 후 저를 자전거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아버지는 멋있고 든든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연일 귀가가 늦는 아버지를 걱정하며 엄마와 함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때 외도하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부모님은 싸우는 날이 잦았고, 급기야 별거했습니다.

이듬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보증을 선 회사에 부도가 나 집안 경제 사정도 급격하게 어려워졌습니다. 집에 압류 딱지가 붙고 관리비를 납부하지 못해 전기와 수도가 끊겼습니다. 결국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한겨울 저와 동생, 엄마는 월세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집안을 풍비박산 낸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아버지에게 분노와 원망이 불길처럼 일었습니다.

2017년 만인 평화대회, 동생과
▲ 2017년 만인 평화대회, 동생과

원망과 죄책감

상위권이던 저의 성적은 형편없이 추락해 지방 대학에 겨우 입학했으나, 바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과외를 비롯해 백화점 의류 판매 등 열심히 일하며 엄마와 빚을 갚았습니다. 대학은 다니고 싶지 않아 '돈이나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를 영입하려 했던 의류회사 직원이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공부는 다 때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대학에 복학하고 졸업도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좀 나아지니 아버지가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번 드렸지만, 액수가 점점 커지고 잦아졌습니다. 2013년 어느 날, 아침부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분명히 돈 빌려 달라는 걸 거야’라고 생각하고, 화를 내려고 아버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신이 없을 때 해야 할 일들을 부탁한다면서 연거푸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통화를 하고 싶은데 네 동생이 전화를 안 받는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발끈한 저는 "돈 빌려주지 않는다고 자식 협박하냐?"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씩씩거렸는데, 그날 오후 1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삼촌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청난 죄책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은 엄마를 향한 원망의 화살이 되었습니다. 엄마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남동생과 저는 3, 4년 정도 엄마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내뱉은 말들이 엄청난 죄책감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일주일 치씩 수면제를 처방받아 약통에 모았습니다. 유명인들의 자살 방법을 찾아보며 어떻게 죽을지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천식 때문에 호흡 곤란이 생겨 응급실에 여러 번 실려 가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을 그동안 무엇 때문에 죽을 방법을 찾고, 죽으려고 용을 썼는지 궁금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사실 저는 살고 싶었나 봅니다. 마음속 깊이 숨겨진 삶의 의지를 알게 된 그날, 수면제 약통을 버렸습니다.

2016년 가을 불교대학 졸업식(앞줄 맨 왼쪽 조민경 님)
▲ 2016년 가을 불교대학 졸업식(앞줄 맨 왼쪽 조민경 님)

참회와 화해

2011년 엄마와 다니던 절에서 성도재일 삼천 배 철야정진을 하던 중 이천 배를 넘기면서 갑자기 터진 울음이 삼천 배를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을 살펴보고자 조계종 사찰의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동안거와 하안거 정진 기도에도 참여했으나, 내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금강경을 사경해 보라'는 제안에 사경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금강경 해설책을 보아도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법륜스님의 금강경 이야기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게 법륜스님을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팟캐스트도 듣고 지역 즉문즉설 행사장에도 갔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웃고 참 시원해졌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3년 뒤 2016년, 사무실 앞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평택지회 정토불교대학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육, 수련, 도반들과 나누기 등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외면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도반이 ‘외도한 아버지에게 원망이 컸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허탈하고 공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유수스님이 “그때 아버지 나이가 몇 살이냐? 아버지는 어쩌다 아버지가 되었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단지 한계를 가진 사람일 뿐, 내가 아버지란 상을 세우고 원망하는 마음을 낸 것이었습니다. 바위처럼 단단히 굳어버린 원망의 마음에 조금 틈이 생겼습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만 들어도 분노가 치솟던 제가 아버지에게 참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꾸준한 참회 기도는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어려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한 것을 참회하면서,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을 남겨준 아버지에게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밉기만 하던 나 자신과 화해하고, 입에 올리기도 싫었던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절에서 했던 아버지 제사를 집으로 가져오고, 우리 가족에게 금기어였던 아버지에 관해 이제는 웃으며 편안하게 이야기합니다. 자식들이 지내는 아버지 제사를 쳐다보지도 않던 엄마도 지금은 술을 올리고 함께 절을 합니다. 엄마는 원망에서 벗어난 자식들이 옆에 있어 든든하다고 합니다.

2019년 평택법당 새벽정진 후(뒷줄 가운데 조민경 님)
▲ 2019년 평택법당 새벽정진 후(뒷줄 가운데 조민경 님)

잘나고 싶은 욕심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 다시 살고자 결심했을 때,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년간 준비해서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학벌과 실력, 사회적 위치 등 모든 면에서 동기들보다 부족한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잘나고 싶은 저는 동기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한 학기를 버텼지만, 제 전공이 아닌 경제학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휴학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던 중, 내 안에 잘 나고 싶은 욕심, 군림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현실의 나를 인정했습니다. 다시 복학해 내 수준을 교수님에게 솔직하게 말하자 교수님은 "불문학과 나와서 경제, 통계, 수학을 공부하는 당신이 용감하다."라고 격려하며, 제 눈높이에 맞는 강의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몰라도 아는 척을 했던 제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라고 하니 동기가 기꺼이 수학 공부를 도와주었고, 무사히 대학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도반에게 물든다

불교대학 팀장을 할 때, 너무 꼼꼼해 그냥 넘어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부총무 도반과 일하며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나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소임자 교육 수련에서 무변심 법사님이 "도반을 불교대학 학생 대하듯 하라."라는 말씀에 무릎을 쳤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안 알아주지?’ 하면서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당연히 윗사람은 나보다 뛰어나야 해’하는 분별심이 갈등의 원인임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도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고자 많이 물었습니다. 도반이 살아온 이야기에 함께 웃고 울고, 왜 이렇게 일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금융권에서 일했던 도반은 꼼꼼했고,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잘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급하게 서두르고 덤벙거리던 제가 이제는 도반에게 물들어 꼼꼼히 챙기고 주변을 살피는 힘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예전 같으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외면했을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다가갑니다. 더 많이 묻고 들으며, 상대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는 저의 모습은 제 삶의 큰 변화였습니다.

2021년 불교대학 반별 활동 DJ로 분장한 조민경 님
▲ 2021년 불교대학 반별 활동 DJ로 분장한 조민경 님

도반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법당에서 매달 열리는 하루 명상을 2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도반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법당 입구에 하루 명상 안내 포스터를 붙이고, 점심 공양, 과일 등을 준비하며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주말 하루 8시간을 오롯이 써야 하는 명상에, 도반들이 기대만큼 참여하지 않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상 중 다리가 심하게 아파 눈을 뜬 순간, 그림처럼 앉아 명상하는 도반들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귀한 시간 내어 온 도반이 그제야 보였습니다. 그동안 참여한 도반은 보지 못하고, 오지 않는 100여 명의 도반들에게 마음 졸이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이후 참여자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는 분별심이 가라앉았습니다. 몇 명이 참가하든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했고, 설령 참여자가 없어도 법당을 혼자 차지하고 명상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감사했습니다.

2024년 좋은 벗들 산타 행사-화성지회(앞줄 맨 오른쪽 조민경 님)
▲ 2024년 좋은 벗들 산타 행사-화성지회(앞줄 맨 오른쪽 조민경 님)

‘엄마 같아요’

2017년부터 새터민들을 방문하는 일을 했는데, 2021년 모둠장을 하면서 통일 꼭지도 함께 맡았습니다. 다양한 통일사업 중 새터민과 고려인의 정착을 돕고, 정신적, 정서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며, ‘좋은 이웃’이 되는 일입니다.

새터민, 고려인은 잘 웃지 않고, 낯선 사람들을 많이 경계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활짝 웃을 때는 정말 뿌듯합니다. 북한에 간 적은 없지만, 이 사람들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굉장히 존중받는 느낌이고, 숨통이 트인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귀동냥한 게 많아 북한 음식이나 지역에 대해 아는 체하면 저더러 "북한 어디 출신이냐?"라고 묻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주변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정말 없었구나, 외로웠겠다.'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또한 '좋은 벗들이 잘하고 있고, 바르게 가고 있구나!' 점검하는 계기도 됩니다.

“수행자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정이 편안하고, 한 마을이 편안하다.”라는 스님 법문을 마음에 새기고 일을 합니다. 방문 전 내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음이 밝고 평온하고 차분한지 살피고, 기분이 가라앉거나 들떠있으면 명상합니다.

2024 화성지회 통일팀 송년회(윗줄 왼쪽 조민경 님)
▲ 2024 화성지회 통일팀 송년회(윗줄 왼쪽 조민경 님)

12살 많은 북한 동포가 결혼하지 않아 아이가 없는 제게 “엄마 같아요.”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를 따뜻하게 느끼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구나!'라는 생각에 뭉클했습니다. 소설 10편을 쓰고도 남을 북한이탈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세상 밖 내가 모르는 세상으로 확장되는 느낌입니다. 나 하나 추스르기도 바빠 평화통일에 관심을 두지 못했던 제가 그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이제 평화통일은 꼭 이루어져야 할 절실한 삶의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내 생각을 밀어붙여 어떻게든지 일을 해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체력은 따라 주지 않아 스스로를 들들 볶기도 합니다. 그런 저를 보고 '도반들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행사 때는 아이디어를 내고 밀어붙이는 이 힘이 원동력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저의 과제는 이 '밀어붙이는 힘'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중도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중도의 길을 찾으려면 주변을 살피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아침 정진이 제일 필요합니다. 급하게 간다 싶을 때는 명상도 하면서 주변을 더 살핍니다.

▲ 2024 상반기 화성지회 통일 활동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는 당연한 사실이 눈물 나도록 감사합니다.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수행할 수 있는 건강함에, 보시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합니다. 정토회에서 일을 맡아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손재주가 남달라 공구를 잘 다루고, 미장일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활동 범위를 넓혀 부탄이나 해외 봉사도 하고 싶습니다. 어디서든 쓰일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수행을 통해 자신을 치유한 조민경 님이 부모 형제와 화합하고,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넘어 편안한 사람,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수행자 한 사람의 편안한 에너지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합니다. 조민경 님을 도반으로 만난 인연에 감사하며, 조민경 님의 수행 여정을 응원합니다.

글_길현숙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송파지회)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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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01-31 07:39:55

윤정환

감사합니다.

2025-01-27 07:30:39

이영숙

감동입니다~^^ 민경님 ~
민경님의 마음을 잘 이해합니다.
예쁘고 젊은 민경님과 같이 활동 하게 돼서 저는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응원 합니다.

2025-01-19 19: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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