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국내외 모든 환자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정토회원 여러분,
신종 코로나19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정토회와 각 법당의 모든 정토회원들은
아래의 지침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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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 : 2020년 3월 2일
열반재일 : 2020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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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공부

2020년 봄학기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모집기간 : 2020년 1월 1일~2020년 3월 29일
문의 : 각 지역 정토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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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지는 길

2020년 봄학기
경전반 신입생 모집

입학식 : 3월 16일(월) ~ 3월 22일(일) *지역별로 다름
신청마감 : 3월 29일(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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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그 많던 기미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옥교법당에는 핑크뮬리처럼 사랑스러우면서도 강인한 실천력을 탑재한 정토행자가 있습니다. 일당백의 내공으로 각종 봉사에 솔선수범하는 옥교의 보배이자, “정토회 가더니 스무 살 연애 시절의 네가 돌아왔어”라는 남편의 뭉클한 고백을 듣는 수행자 10차 천일결사를 앞둔 이 봄, 사랑으로 빛나는 경전반 담당 윤나은 님의 아름다운 수행담을 나눕니다. 2019년 남편과 함께 윤나은 님 행복톡... 셋째 오빠가 보내준 선물이었을까? 저와 정토회의 인연은 2016년 초가을의 늦은 밤, 누가 보내준 지도 모르는 ‘행복톡’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제 손으로 병수발을 들었던 셋째 오빠가 4년간의 투병 생활을 끝으로 임종을 맞은 지 보름이 지난 후였습니다. 앞장서 오빠의 장례를 치러내고, 그때껏 해오던 대로 제가 계속 조카를 키우기로 결정하면서도 저는 큰 동요 없이 의연했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오랜 세월 형제들의 의지처로 살아왔던지라 그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웬만한 일에는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열 사람 몫을 뚝딱해냈던 것처럼 그날도 저는 곧 다가올 셋째 오빠의 49재를 준비하면서 어린이집에 출근하고, 남편과 자식들 건사하고, 아버지 잃은 조카를 돌보고, 시부모님 간식거리까지 챙겨 보내며 능수능란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짜증 나는 것이 있다면 새까맣게 기미로 뒤덮여버린 얼굴 셋째 오빠의 병수발을 들면서부터 시작된 기미가 어느새 얼굴 전체로 펴져 시커멓게 변해버린 것이었습니다. 더는 화장으로 감출 수 없는 상태라 피부과 시술이라도 받아볼 심산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 밤 대충 보다가 뭐에 홀린 듯 다시 보게 된 카톡이 바로 ‘행복톡’이었습니다. 생명줄처럼 내게 온 불교대학 낯선 번호라 평소라면 삭제하고 말았을 메시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행복톡 하단에서 마치 저를 부르는 것처럼 깜박깜박 빛나던 불빛 때문이었습니다. 그 불빛을 따라 클릭해 들어가니 ‘2016년 가을 정토 불교대학’ 홍보 창이 열렸습니다. 지도법사님도 모르던 시절이라 불교대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생경했는데, 입학을 권유하는 짧은 글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몇 마디가 뭐라고 눈물 바람인 저를 보며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했던 그 날, 돌이켜보면 저는 생애 처음으로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 너, 버티고 있는 거니? 서러워?’라고 말입니다. 날짜를 가늠하니 개학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울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불교대학 졸업 갈무리에서 윤나은 님 불교대학 시절 도반들과 함께 윤나은 님 ‘아, 살았다 불교대학에 가면 나는 이제 죽지 않고 살겠구나 우리 가족은 살겠구나’ 예감대로 불교대학은 제게 단비였습니다. 불법을 공부하면서 마음을 알아주는 연습을 하니 거짓말처럼 기미도 사라져갔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 지독했던 기미가 당시 제 마음의 상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오빠의 병수발을 드는 4년 동안 200번에 걸친 비상 호출을 받으면서 죽음은 늘 제 곁에 와 있었고, 그 불안과 초조 속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던 절대 공포의 기억까지 온전히 되살아나 있었으니 마음이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늦게라도 그 절망을 알아주면서 얼굴은 더 환해졌지만 저는 제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큰오빠 부부에 대한 원망을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 없는 더부살이 설움이야 말해서 뭐해 정도로 대충 덮어놓고 살아왔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던 더부살이 상처들 그 상처를 풀지 않으면 가족들과 의좋게 잘 살다가도 한 번씩 뒤집혀 평지풍파를 일으키던 제 울화증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때마침 불교대학 담당자님이 〈깨달음의 장〉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입학 이후 많은 변화를 체험했던 저는 정토회의 수행 프로그램에 대한 확신을 갖고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고 다녀오기를 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윤나은 님 서러움이 산산이 부서지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갑자기 엄마까지 돌아가시고 저에게는 큰오빠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릴 외면했던 큰오빠의 무정함, 그래도 거기밖에는 갈 데가 없어 큰오빠 집으로 들어간 첫날부터 큰올케 눈치 보면서 밥하고, 청소하고, 갓 난 조카들이 하루에 수십 장 씩 싸놓는 똥 기저귀를 맨손으로 찬물에 다 빨아 놓은 뒤에야 학교에 갔던 제 어린 시절의 서러운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랐습니다. 자기 딸들은 철철이 드레스에 구두 신기면서 어린 저와 저보다 더 어렸던 막내 여동생에게는 양말 한 짝 안 사주었던, 탄광촌에 살았어도 광산 관리소장이라 큰오빠 살림은 넉넉했던 기억이 떠오르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는 마지막까지 꽉 틀어쥐고 있던 상처를 떠올렸습니다. 탄광촌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쉰밥 유난히도 무더웠던 중학교 3학년 여름, 학교 갔다 오면 배가 너무 고픈데 큰올케는 제게 쉰밥을 주었습니다. 한번은 실수였다 쳐도 서너 번 반복되니 3년 동안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버렸습니다. 개를 줘도 안 먹는 쉰밥을 자꾸 주는 것은 먹고 죽으라는 뜻이구나 싶고, 그렇게 한번 생각이 비틀리니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농약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앞집 할머니한테 발각되어 한 모금만 넘기고 미수에 그쳤지만, 그 일로 탄광촌이 발칵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산업체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윤나은 님 끝없이 떠오르던 질문... 질문... 그런 시절을 겪은 제가 큰오빠 내외를 원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끝없는 질문이 올라왔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쉰밥이 정말 죽을 이유가 아닌가? 속옷 한 장 못 얻어 입고 식모처럼 살았는데 그게 원망할 일이 아닌가? 동네 사람 모두가 나를 동정하고 큰올케를 욕했는데 그게 아닌가?...아닌가?...아닌가??’ 그렇게 수백 수천 가지 질문을 해도 답은, ‘원망할 이유가 있다’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하는 탄식과 함께 마음의 질문이 뚝 끊겼습니다. 원망할 이유가 확실하다는 답에 이어 ‘그렇게 구박받은 내가, 나는 지금도 너무 불쌍해’라는 말이 뒤따라 붙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오십 줄에 다다른 그때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고아의 형상을 나로 삼고 있음을 알게 된 저는 제 울화의 원흉이었던 자기연민을 통렬하게 부숴버렸습니다. 아모르파티 내게 온 인연을 사랑합니다 스스로를 동정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큰오빠 내외를 원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제가 겪은 모든 일이 자긍심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큰오빠 집에서 집안일을 했기에 저는 살림의 고수가 되었고, 산업체 고등학교를 스스로 선택할 정도로 결단력과 판단력이 빼어났으며,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3교대로 일하고 밤에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의 유명대학에 너끈히 합격하는 끈기가 있었고, 그 와중에도 힘들게 번 돈을 모아 오빠들과 여동생을 챙기며 살았으니, 다시 돌이켜 본 제 삶은 행복 행복이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 시절 학생들에게 받은 꽃을 들고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윤나은 님 마음을 묶어 놓은 봉사 〈깨달음의 장〉 이후 저는 수행을 하며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느꼈던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기둥에 묶어 놓는 심정으로 봉사에 마음을 묶어두었던 것입니다. 경전반에 올라가 학생이면서 담당자 소임을 맡았던 것도, 경전반 졸업 이후 불교대학 담당자가 되었던 것도 봉사를 통해 알아차리지 않으면 언제 다시 제 마음이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조금만 게을러지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어리석음 불교대학에 이어 경전반을 맡고 있는 요즘도 저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제 마음을 살핍니다. 덕분에 이제 기미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환하게 빛나는 얼굴빛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라워하지만 제 변화를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남편입니다. 제 울화증이 사라지니 언제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 살 봄날 같다며 좋아하는 남편 신기한 건 수행을 하면 할수록 남편이 제게 해주었던 고마운 일들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친정 식구들 챙기는 거 타박 한번 안 했던 일, 제 마음이 뒤집어져 성낼 때에도 그저 묵묵히 바라봐주던 눈빛,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마치지 못했던 대학을 다시 보내준 일 등등.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마운 기억들이 떠오르니 남편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일어났습니다. 다혈질이었던 엄마 밑에서 마음고생 했던 아이들도 이제는 엄마 뚜껑 열릴 걱정 안 하고 속마음을 내놓고, 친딸보다 더 저를 많이 닮은 조카도 무탈하게 자라 어느새 대학 신입생이 되어 독립을 하고 나니 저를 둘러싼 모든 인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카와 함께 가족사진 하면 할수록 봉사만한 행복 방편이 없는 것 같다는 윤나은 님. 불법을 통해 자잘한 울화증이 교정되고 봉사로 그 뿌리를 다스리니 가정에 대 평화가 도래했다며 환하게 미소 짓는 윤나은 님의 앞날에 무궁한 행복과 평안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글정진옥 희망리포터 편집방현주

옥교법당 2020.02.27. 1,44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영양꾸러미가 아이들에게 전달되기까지

‘영양꾸러미’ 는 국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는 JTS의 국내 복지 활동으로, 방학 기간 동안 홀로 있는 아이의 영양 섭취에 중점을 두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소박한 식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광명법당 활동가들의 발자취를 좇아, 영양꾸러미의 진행 과정을 함께 해보겠습니다. 일요일 아침 영양꾸러미 물품 포장과 차량 지원 봉사자 모집으로 경쾌한 알람이 울립니다. 법당은 상자 포장으로 배달된 물품들이 한가득 자리를 채웠고, 봄불대 학생들과 담당자를 중심으로 광명법당의 봉사자들이 하나둘씩 모였습니다. 여는 모임으로 마음을 나누면서 하나씩 챙겨 온 다과로 출출함도 채우고, 모든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법당을 가득 채운 물품 그럼, 물품 포장부터 시작해 볼까요? 물품을 담기 위해 펴 놓은 종이상자 착착 접힌 종이 상자를 펴서 벽면에 가지런히 세워 둡니다. 수량에 맞게 상품을 상자에 넣기 담당자가 지급 수량을 안내하면, 각자 맡은 상품을 준비 한 상자 안에 넣습니다. 빈 포장 상자 접기 재활용 가능하도록 테이프는 모두 제거 뒤쪽엔 빈 포장 상자를 정리하는 환경팀이 열일 중입니다. 박스를 재활용하려면 테이핑 된 부분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주소지 라벨처럼 접착력이 강한 것은 제거가 쉽지 않아 마지막에는 다 함께 빈 상자를 정리하였습니다. 물품 점검까지 완료 물품이 빠짐없이 꾸려졌는지 한 번 더 체크하면 포장 끝 여럿이 함께하니 어느새 뚝딱이네요. 지도를 보며 구역을 나누는 중 다음은 동별로 구역을 나누어 팀을 꾸리고 영양꾸러미를 차에 옮깁니다. 현장에서 지도와 주소를 다시 확인 중 이제부터는 직접 발로 뛸 시간. 주소지 지도와 연락처를 챙기고,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러 출발 영양꾸러미 전달 차량 진입이 쉽지 않아 무거운 박스를 들고 다니고 골목골목 집 찾기가 어려웠던 점, 연락이 되지 않아 밖에서 기다려야 했던 점 등, 소소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영양꾸러미를 받고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에 절로 미소 짓게 됩니다. 영양꾸러미 사업 봉사자 소감 처음 해보는 영양꾸러미 전달, 좋아하는 할머님과 계단 올라온다고 미안해하는 아주머님을 보면서 받는 것도 쉽지 않으실 텐데 행복하게 받는 모습이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안내를 할 때 JTS라고 해야 하는데 자꾸 JTB라고 하네요. 어리바리한 봉사자라 미안했지만 마음은 참 좋았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길 찾기가 힘들어서 박스를 들었던 도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이사 간 분 때문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몸 쓰는 봉사를 하니 마음이 가볍고 도반들과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팔이 조금 아프지만, 광명 골목골목을 알게 되고 도반들과 웃으며 함께 한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몇 달 전부터 국내 복지를 준비한 담당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여름 처음 시작할 때는 규모가 작았으나 차차 늘려보자는 의지로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니 참 기쁩니다.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셋이 한 조가 되어 전달했는데, 한 사람은 운전하고 한 사람은 길을 찾고, 한 사람은 전화하고, 박스가 무거워서 집에 있는 수레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봉사해서 즐거웠습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올라오는 마음과, 함께하는 봉사의 즐거움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발로 뛰며 수고한 광명법당 봉사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실제로 집을 방문해보니, 공휴일인데도 보호자 없이 초등생 아이들만 있는 집이 꽤 많았습니다. 영양꾸러미 식품들은 조리과정 없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구성도 다양해서 아이들의 끼니와 영양 균형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영양꾸러미가 마련되기까지는 준비할 것이 많다고 합니다. 대상자 추천과 선정, 이에 따라 필요한 신청서류 제출을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 처음 접하는 활동가들에겐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전체 사업 기간도 사업설명회 참여부터 꾸러미 전달 및 평가까지 몇 달이 걸립니다. 이런 과정을 묵묵히 수행한 홍성정 님과 한영남 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한영남 님과 홍성정 님 영양꾸러미 선정 기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가정 중 결식이 우려되는 초등학생 아동을 대상으로 지원하고, 대상자는 주로 지자체를 통하여 추천 받습니다. 광명법당은 지역아동센터에서 대상자를 추천받았고, 주로 형편이 열악한 한 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위주로 진행하였습니다. 처음 소임을 맡았을 때 마음 그동안 거리모금을 할 때, 인도나 제3세계 어린이를 돕는 등의 해외 사업을 소개하면서, 가끔 우리나라의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면 좋겠다 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내 지원 활동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최저 생계가 보장이 되기 때문에 밥을 굶는 아이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이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주변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정서적 지원이 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는 부분 말고도,이 영양꾸러미 전달을 통해 가정 방문을 하면서 세세한 사정을 더 알 수 있어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어려움 시간을 계속 내야하는 것은 아니기에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업체별로 배송을 각각 하다보니 물건이 따로따로 도착하고, 관련해서 연락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사업의 특성상 법당 총무님과 연계가 중요한데, 이번 사업을 진행할 때는 마침 총무 대행 기간이었고, 대행 총무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가셔서 함께 의논할 곳이 없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전임자가 있어 아주 든든했습니다. 대상자 선정 후 23달 정도 텀이 생기기 때문에 서류작성을 마쳤는데 물품은 왜 안주냐고 문의가 오기도 하고, 그 사이 이사를 가는 가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신청 대상자가 지원이 꼭 필요한지 모니터링의 측면에서 직접 전달해야 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지난번에는 이사를 간 대상자에게 영양꾸러미 전달을 위해 인천까지 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그때 마음은 이번 한 번만 하고 두 번째는 안 해야지. 했는데, 이번에 또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 5명으로 시작해서 16명으로 지원이 늘어나니 고마운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활동 소감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어려운 아이들이 있고 복지의 사각지대에는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국내 상황과 어려움을 전혀 몰랐던 일반분들이 이러한 JTS 봉사를 통해 사정을 알게 되면서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니 더욱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여, 타 종교에 다니는 분들이 반감을 가질까 걱정이 되었는데 JTS에 대해 잘 알고 좋게 생각하는 분이 많아 보람됩니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JTS 활동가들 첫 사업을 꾸리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두 번째는 안 해야지 했던 마음에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다시 고마움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니 정토행자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곳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정토행자의 발걸음이 아름답습니다. 기획,취재인연등 글박난영 편집온라인.홍보팀

복지 2020.02.14. 2,02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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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