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명상

4박5일 / 7월 25일(금) ~ 7월 29일(화) *한국시간 기준
6박7일 / 7월 25일(금) ~ 7월 31일(목)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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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여름휴가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25년 7월 3일~8월 28일
장소: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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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설레고, 가면서 행복한

반나절 템플스테이 2025_여름

일정 : 25년 7월 1일(화) ~ 7월 24일(목)
장소 : 지역별 팝업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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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2025년 7월

법륜스님 해외 즉문즉설

일정 : 2025년 7월 9일(수) ~ 12일(토)
강연국가 : 싱가포르, 호치민, 홍콩,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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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한국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정토담마스쿨 입학생 모집

마감 : 2025년 8월 5일(화)
입학 : 2025년 8월 28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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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5 행복한 대화

전국 11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오프라인 강연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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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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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좋은 세상을 위한 큰 그림

제주지회 허지은 님을 줌으로 만났습니다. 2018년 불교대학 졸업 후, 불교대학 진행과 모둠장, 환경실천 꼭지 등을 했고, 지금은 불교대학 생방송 반 서제지부 담당과 반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불교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큰 어려움 없이 살다 불법을 만나 큰 세상을 알아가는 허지은 님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2025.3 불교대학 생방송반 하고 싶었던 불교 공부 어머니가 절에 다니며 기도와 사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4남매의 입시 때마다 기도하는 모습이 제게 힘이 되었고 든든했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절로 어머니는 도시락 반찬 준비로 늦게 잠들었고, 틈틈이 사경도 했습니다. 그때의 향냄새가 좋았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는 어머니를 보고, ‘나도 어른이 되면 어머니처럼 불교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2018년 아이가 4학년이 되었습니다. 곧 사춘기가 시작될 아이의 손을 잘 놓아주고 싶어 인터넷에 검색하여 정토회 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1남 3녀 중 셋째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형제자매가 많아 친구가 그립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형제끼리 놀고 공부하면서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계획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일을 할 때, 1안 2안 3안까지 생각하며 책임감 있게 가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저에게 가부장적이고, 억압으로 느껴져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반면 어머니와 저희 남매들은 화기애애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를 했고, 졸업 후는 경제적 활동을 위해 직장에 다녔습니다. 당면한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 주변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혼자 법당문을 여닫으며 졸업하다. 2018년 서귀포 법당이 생기면서 5명으로 불교대학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법당 총무님도 집 안에 일이 생겨 못 나오게 되자 불대 후반 3분의 1 기간은 혼자 법당문을 열고 수업을 시작하고 마쳤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삼귀의부터 끝까지 혼자 했습니다. 2023.1. 인도성지순례.right 도반도 없었고 나누기도 없었습니다. 오프라인의 장점도 모른 채 배우는 즐거움만 있었습니다. 공부 자체가 재미있고 신기해서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혼자 수업을 듣고 졸업했습니다. 불대 마지막 과정인 천일결사 맛보기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정토회에 대한 정체성도 몰랐고, 천일결사 기도의 뜻도 모른 체 어머니와 같은 기복 신앙으로 하였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도반이 나는 기도할 때 물 한 잔 떠서 아들 방 앞에 놓고 절을 한다.라고 했습니다. 너무 괜찮은 것 같다.라는 생각에 저도 천일결사 기도할 때 그렇게 했습니다. 기도 후 “엄마가 기도한 물”이라고 하면서 아들한테 주었습니다. 아들은 좋아했고, 어느 날 물이 없으면 “그 물 어디 있어 ?” 찾기도 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 후, 오프라인으로 법사님과 도반들이 둘러앉아 고민거리를 얘기하는데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뭐 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사연 있는 사람들이 많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정토회에서 불대 공부를 한 이유는 괴로움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고, 저는 지식을 쌓는 불교 공부에 많이 치중했었습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불대 공부도 새로운 내용이 재미있어 열심히 다녔습니다. 법문을 들으며 스님의 사회 활동, 정토회에서 하는 활동들을 보며 시야가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주변을 보고 그 안에서 제가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알아차린 업식 혼자 불대에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같이 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같이하든 하지 않든, 제가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 없으면 도반이 아무리 많아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불대 과정 중 문경 수련원에서 하는 특별 수련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낯선 곳에서 많은 대중이 한 곳에 모여 다 같이 하는 활동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은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 몰랐는데, 특별 수련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성향임을 알았습니다. 봉사도 5명 정도는 괜찮지만, 사람들이 많아지면 불편했습니다. 혼자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고, 누군가와 맞추는 것을 힘들어하는 저의 업식을 알았습니다. 2023. 1. 29. 인도성지순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 학사 진행을 할 때, 소통 절차가 명확하지 않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통을 확실하게 하자고 요청하니, ‘지금까지 이렇게 했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때 도반에게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그 후 정일사 기간에 소통과 화합을 화두 삼아 정진했습니다. 그 무렵, 스님의 하루에 실린 제각기 모양이 다른 돌들을 모아 쌓아 올린 불국사 축대를 모자이크 붓다에 비유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에도 들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듣는 순간 마음에 확 와닿았습니다. 분별심이 났던 도반과 저는 불국사 축대의 돌처럼 모양도 크기도 다르고, 심지어 반듯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불국사의 축대에 쓰인 돌들이 모양이나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의 큰 축대가 만들어지듯, 모자이크 붓다를 이루려면 도반들의 다름 하나하나에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소임을 하는 것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의 한 조각이다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렇게 입장을 정리하니, 큰 그림을 보면 되지, 그동안 필요 없는 망상을 했다.는 생각과 분별심도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지식적 학습에 치중하고 있어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앞만 보고 살았던 제가 봉사를 통해 주위를 살피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봉사를 시작할 때는 주저함과 싫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JTS 거리 모금을 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잠깐의 저의 부끄러움과 아이들이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생각하니, 모금함을 내미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무엇이 더 중요한가 생각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보다 세상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마음을 내니 보람 있고 계속 봉사할 힘이 납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면서 저는 천일결사를 뜨개질에 비유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뜨개질의 실을 끊지 않은 것입니다. 중간에는 큰 구멍, 작은 구멍이 있지만 긴 목도리가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구멍이 나더라도 계속 뜨개질을 하니 긴 목도리가 만들어지듯 매일 하는 기도가 수행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2023. 11 제주지회 줍깅활동 및 행복학교 홍보새별오름.right 시댁은 모두 기독교인이고 시어머니는 목사입니다. 저만 불교입니다. 남편은 사고가 개방적이고 자유로워 저를 이해하고 정토회 활동을 지지합니다. 아들에게 “엄마가 많이 바뀐 것 같지 않냐? 화도 안 내고”라며 저를 칭찬하니, 아들도 그런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나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않냐?라고 묻고 싶지만, 혹시 아니라고 말할 것 같아 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에게 직접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실을 끊지 않고 뜨개질을 계속 한 결과입니다. 남편 또는 아들과 갈등이 있을 때면 그 사람이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으로 관점을 바꾸고, 뒤집어 생각하니 다툼도 줄었습니다. 예전에 아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제가 옳다.라고 고집하고, “이렇게 해야 해”라며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싸움으로 이어지거나 문제가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수행하는 지금은,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제 관점을 바꿉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달하는 것이다. 시절 인연으로 내 뜻을 받아들일 때가 있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내하는 것까지.’라고 생각을 바꾸니 갈등이 없어졌습니다. 아들에게 안내하고 알려주는 것까지 제 일이고, 선택과 결정은 아들이 하고, 책임도 아들이 지는 방향으로 생각했습니다. 보시도 가벼운 마음으로 합니다. ‘법당에서 법문 듣고 공부하려면 인건비는 봉사로 해결하지만, 다른 부수적인 비용이 들어가니 사용료는 내야지’라는 마음입니다. ‘3배를 하든 108배를 하든 절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으니, 자릿값은 내야지’라는 마음으로 보시합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스님의 영상을 보면서 저의 보시가 좋은 곳에 잘 쓰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시 액수가 크든 작든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통일의병 평화실천활동한라산 백록담.right 쓰이는 기쁨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다. 정토회에 오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봉사하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3년 전부터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며 ‘쓰일 수 있어 좋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소비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몸으로 하는 봉사가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받아들일 때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어 머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머리로 이해해야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니, 머리를 써서 하는 일보다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봉사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낍니다. 연말에 연탄 봉사 후 지도법사님이 ‘봉사는 자기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라고 했던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납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시간 여유가 생겨 제 가족만이 아닌 더 큰 일, 더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여건을 마련해 준 남편과 아들에게 고맙습니다.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불법 만나 가장 많이 변하고 마음에 드는 저의 모습은 주변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저만 보지 않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새벽 정진 후, 유기견 입양을 돕는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발원하는 기도도 합니다. 지도법사님이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에서 세상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함께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동안 ‘세상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가 제 마음에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서서히 생겨났습니다. 그날 이후 정진이 끝날 때 스님과 같은 발원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불대를 다닐 때는 아들 기도만 했는데, 지금은 스님을 흉내라도 내며 세상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야겠습니다. 결과보다 화합이 우선 일을 할 때 올바른 과정과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화합이나 공동체 유지는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정이 엉성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화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손해가 있어도 화합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의 수행 과제는 ‘지금 여기, 나한테 깨어 있기’입니다. 핸드폰에 쏟아지는 다양한 매체들을 접하면서 정신이 분산되고, 집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을 미루지 않고 지금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을 수행 과제로 삼아 실천하고 있습니다. 봉사를 원하는 도반을 위한 한마디 불대 진행하면서 법 비를 흠뻑 맞았습니다. 배움을 향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매일 새벽 세상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발원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렇게 이어가겠습니다. 2019 아들과 함께 경전대학 JTS복지활동 인생에 굴곡이나 괴로움이 없었다면 이 공부를 시작했을까? 글을 쓰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허지은 님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든든했던 순간의 기억과 사춘기 아들의 손을 잘 놓아 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소박한 이유로 불법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위한 큰 그림의 한 조각을 잘 메꾸고 있는 허지은 님을 인터뷰하며 저도 다른 한 조각을 잘 메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 작성에 쓰이고 있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글이재선 희망리포터 편집최미영

제주지회 2025.07.09. 75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아픈 과거에서 평화의 길을 배우다_대경지부 DMZ 철원 역사기행

6월 14일 토요일, 대구경북지부는 DMZ 철원으로 역사기행을 떠났습니다. 출발지로부터 6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기에, 새벽 3시쯤부터 대구와 경북 각지에서 버스 세 대가 출발했습니다. 회원들은 오전 6시 문경휴게소에서 모두 합류했습니다. 출발할 때는 비가 많이 내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휴게소를 두 군데 거치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땅은 말라 있었습니다. 오전 9시, 화창한 날씨 속에 철원 김화읍 화강 수변의 쉬리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좋은벗들 사무국장 이승용 님을 만나 함께 입재식을 가졌습니다. 저격능선 전투전적비와 김화의 사라진 마을 입재식을 마친 후, 영화 고지전에서 소재로 등장한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가 있는 곳으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left 전투 전적비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당시 북한국, 중국군과 전투를 벌였던 방호가 남아 있었고, 전적비 양쪽에는 실제 사용했던 대포를 모형으로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승용 님의 설명을 들으며, 당시 철원 김화와 평강을 오가며 대치된 전투가 바로 이 자리에서 전개되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전적비를 둘러본 뒤, 다시 쉬리공원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김화의 사라진 마을 이야기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전쟁이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대에 자리한 김화군 생창리의 이야기입니다. 전쟁 마지막까지 남북한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지역입니다. 결국 김화군 중간에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김화읍 전체가 사라져 버린 비운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공공 건물들을 비롯해 마을 발전을 위해 결성된 모임들, 그리고 오밀조밀한 건물들로 한때 활발했을 시가지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번성했던 마을이 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보니, 전쟁이 남긴 허무함과 잃어버린 생기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충렬사와 승일교와 고석정 다시 버스를 타고 충렬사로 향했습니다. 충렬사는 조선 인조 14년, 서기 1636년 병자호란 당시 공을 세운 충렬공 홍명구와 충장공 유림을 모신 사당입니다. 특히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더 이색적이었습니다. 우리 군에 미리 견학을 허락받고, 군인의 동행 하에 군에서 정해주는 방향으로만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는 경험이 특별했습니다. 충렬사를 둘러본 후, 고석정으로 향하는 길에 승일교가 있습니다. 승일교는 북한 정부에서 공사를 진행하다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남은 구간을 남한에서 건설한 교각입니다. 조금 지체된 일정 탓에 내려서 보지는 못하고, 가까이 천천히 지나가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남쪽과 북쪽이 각자의 시공법으로 완성하게 된, 좋게 보면 합작품인데, 건설 중에 전쟁이 끼어 사연 많은 다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름도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따서 승일교라 했다는 설도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일승교라 불릴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어쨌든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모양으로 합체된 승일교를 지나 고석정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철원의 축제 기간과 겹쳐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고석정 주차장 여기저기 그늘진 곳을 찾아 조별로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챙겨 먹고 고석정 자유 투어를 했습니다.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북한의 평강 지역에서 분출되어 흘러나온 용암이 돌이 되어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흡사 제주도처럼 구멍이 송송송 뚫려 있는 현무암 계단을 내려가 한탄강까지 가보니, 한복판에 치솟은 10여 미터 높이의 기암 양쪽으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르는 경관이 빼어나게 수려했습니다. 하루 종일 책상과 집 안에만 머물던 눈과 머리에 시원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았습니다. 돌계단을 내려가 정자와 고석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미리 알려준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도착해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지 버스는 20여 분을 달려 백마고지 전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북한군과 중공군 1만 명 이상의 사상자와 포로, 그리고 한국군 3천4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곳입니다. 비 오듯 쏟아진 포격으로 산등성이의 나무들이 사라지고 하얗게 드러난 바닥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아 백마고지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입구의 백마상과 전승비를 지나 올라가는 길은 좌우로 자작나무와 함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어, 마음이 더욱 비장했습니다. 태극기 길을 따라 위령비에 이르면, 전투 전사자들의 이름이 가득 적힌 비석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멈춰 선 6.25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전쟁 승리 일자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전사자들의 위령비와 함께 전쟁의 아픔이 더욱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습니다. 다시는 남북한 간에 이처럼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 양쪽으로 간략하게 마련된 백마고지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마고지 전투에 대한 기록을 찬찬히 살펴본 후, 바로 이어져 있는 전적비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전적비와 커다란 태극기에서는 자유를 향한 숭고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적비 뒤편에 있는, 머리 없는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의 탄피 조형물을 볼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종각이 있는 전망대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건너편 DMZ에 위치한 실제 백마고지도 확인했습니다. 노동당사와 소이산 전망대 그리고 회향식 .right 해가 오후를 넘어가는 즈음에 노동당사에 도착하여 이승용 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 조는 회원들의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노동당사는 전쟁 전 북한이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옛 건물이라 그런지 벽체가 두껍고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쟁으로 인한 포탄과 총탄 자국이 건물 곳곳에 빼곡히 박혀 있음에도 건물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노동당사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갈라진 건물 틈새로 피어나 바람에 흔들거리는 야생화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소이산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습하고 햇살은 뜨거워 땀이 많이 났습니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을 바라보며 이승용 님의 지리적인 설명을 집중해서 들은 뒤 회향식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이산가족에 대한 생각과 전쟁 당시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거리가 멀어 계획하기 힘든 이 역사기행을 정토회 덕분에 알차게 하게 되어 모두 감사해 했습니다. 그리고 이념과 편견, 갈등을 전쟁으로 풀면 안 되고 대화로 풀도록 해야겠다는 나눔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두 평화에 대한 기원을 하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밤이 늦도록 달려 9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지만, 알찼던 평화 공부에 모두 참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글과 사진정수옥

통일 2025.07.04. 826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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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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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