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쉰다, 생각이 쉰다

정토불교대학

접수 : 25년 8월 1일(금) ~ 9월 14일(일)
5개월 과정 (25년 9월 ~ 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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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명상

4박5일 / 7월 25일(금) ~ 7월 29일(화) *한국시간 기준
6박7일 / 7월 25일(금) ~ 7월 31일(목)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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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설레고, 가면서 행복한

반나절 템플스테이 2025_여름

일정 : 25년 7월 1일(화) ~ 7월 24일(목)
장소 : 지역별 팝업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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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여름휴가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25년 7월 3일~8월 28일
장소: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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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9년

백중기도

입재 : 7월 23일(수) / 회향 : 9월 6일(토)
기도접수 : 7월 11일(금) ~ 9월 8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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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한국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정토담마스쿨 입학생 모집

마감 : 2025년 8월 5일(화)
입학 : 2025년 8월 28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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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5 행복한 대화

전국 11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오프라인 강연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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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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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다른 사람의 웃음에서_ 내 마음을 마주합니다

참 외롭고 괴롭던 시절, 이러다가 혼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이봉우 님. 불교대학 수업도 자주 빠졌지만 힘들어도 붙어 있기만 하라는 진행자님의 응원에 힘입어 천일결사도 입재하고, 수행법회도 들었습니다. 보리수 활동 역시 도반들에게 등 떠밀리듯 시작했지만, 직장 일과 병행하기가 참 고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힘들어도 붙어 있기 정신을 발휘하였는데요. 그 결과 이봉우 님께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마음같지 않았던 결혼생활 아내와 저는 스무 살에 만나 결혼했습니다. 밥숟가락 하나 없이 빈손으로 시작했지만, 철이 없어서 처음에는 직장 생활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큰아이가 태어나자 장모님이 의료보험 카드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자동차 공장에 입사했고 6개월만 다닐 요량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야 10시간씩 2교대로 일하는 건 힘들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니 좋은 가장이 되고 싶어 힘이 났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늘 먹고살기에 바빴고, 돈에 쪼들리며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장사하느라 하루하루가 바빴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형님과 어머니는 끊임없이 다투었고, 늘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본가 형편을 신경 쓰면서 괴로웠습니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일을 하는 데도 돈은 부족했고, 고생시키고 싶지 않던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점점 무심해졌습니다. 좋은 남편, 친근한 아빠가 되어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가정불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봉우 님 가족을 떠난 자책과 외로움 법륜 스님을 알고 나서 즉문즉설을 1,000편 이상 보면서 스님에게 대단한 통찰력이 느껴져 일반 종교인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깊은 말씀을 듣고 싶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2교대인 직장 일로 수업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로 온라인 불교대학이 시작되었고 자의 반 타의 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기간에도 가정에서의 문제는 계속됐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게 분명한데, 상처 주려고 함께 사는 사람들처럼 참 많이 싸웠습니다.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나는 시집살이와 경제 문제로 고단하고 힘든 아내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술도 좋아해서 자주 마시다 보니 서로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결국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몸만 나와 혼자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미안함과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이 커졌습니다. 남자가 혼자 사는 것도 창피했지만, 막상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에 아내에게 받기만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자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괴롭고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수련원 예초 중 묻지 않고 함께해준 도반들의 응원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다면서 불교대학 수업에 자주 결석하고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싫어도 도망만 가지 마라, 힘들어도 붙어 있기만 하라”면서 응원하고 챙겨주었습니다. 덕분에 천일결사에 입재하여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2교대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고, 원룸이라 기도 음원을 크게 틀어놓지 못했지만 빠지지 않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정진이 필요했습니다. 스님의 법문과 도반들의 활동 및 나누기가 있는 수행법회도 여건이 되는 대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돈 버는 게 더 중요하다는 핑계와 술을 좋아하는 탓에 수행을 점점 게을리했고 타성에 젖어갔습니다. 이러다가 정토회에 누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그 무렵, 도반들의 권유로 등 떠밀리듯 보리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교대 근무와 퇴직을 핑계로 보리수 활동보다는 ‘천룡사나 두북수련원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서 적당히 봉사하며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궂은일을 힘들어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도반들에 대한 미안함에 거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지껏 봉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 기회에 정진이라도 백일은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 수행 중 회피하고 싶을 때 기꺼이 하는 마음 보리수 백일정진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1주 2교대로 주 6일 근무하는 조건이라서 야간에 일하는 날은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일주일 중 하루 쉬는 날, 으뜸절에서 봉사하게 되니 몸에 무리가 와서 피곤했습니다.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하는 마음도 들고 수입도 걱정되었습니다. 붙어 있기만 하라던 말이 떠오르면서 ‘어렵게 내디딘 한 발을 빼내지는 말자’라고 마음을 돌렸습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돈으로 받을 수 있는 월차를 보리수 교육 받는 시간으로 활용하면서 법회 참석, 실천장소 방문도 하게 되니 일석삼조였습니다. 회사에서 주는 말년 휴가도 보리수 정진으로 잘 쓰였습니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하려는 마음을 내니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매주 카풀로 천룡사에 봉사하러 갔는데, 처음 만나는 도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치부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서로 아무렇지 않게 편안히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도 부끄럽고 입이 안 떨어질 것 같은 제 얘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는데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마음을 풀어놓으니 편안하고 홀가분했습니다. 도반들은 저에게 그만하면 잘했다고, 잘 살았다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아내에게 들어보지 못한 칭찬을 들으니 기분도 좋고 감사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서로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들어준 도반들과의 나누기는 새로운 법문이었습니다. 참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에 문득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천룡사 야간 작업 중 풀과 함께 마음의 번뇌를 날리고 법사님이 보리수 백일정진 동안, 매주 한 번씩 수행 상태를 점검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사느라 고생했으니 수행하고 공부하면서 지금을 잘 살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뜻으로 들리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따뜻한 격려와 함께 “지금을 잘 살겠습니다”라는 명심문도 받았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법사님과 도반님들에게 받은 위로는 든든한 용기가 되었습니다. 실천장소인 천룡사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유명한 산을 찾아 놀러 다니면서, 같은 산을 가면서 봉사라는 거창한 이름에 얽매여 그것을 일로 여긴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효율성을 따지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던 봉사에 대한 생각은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놀이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한쪽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등산객들과 실천활동하는 불교대학 학생들의 들꽃 같은 웃음 속에서 예초기로 풀과 함께 마음의 번뇌까지 시원하게 베어내는 나를 보았습니다. 마음은 괴롭고 불편한데,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수행도 봉사도 한쪽에 밀쳐내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보리수 정진을 꼭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보리수 교육에서 법사님과 진행자, 선배 도반들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분들이 말없이 행하신 ‘무주상보시’가 인연이 되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길을 닦고 꽃을 심어, 다음에 오는 도반들의 마중물이자 길잡이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발만 살짝 담그려는 저에게 수영도 해보라는 가르침을 주신 유수 스님 말씀처럼 주저함 없이 머무는 이곳에서 오늘 하루 잘 쓰입니다. 천룡사에서 모둠 활동 중 이 글은 2025년 2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수행담입니다. 글이봉우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월간정토 2025.07.14. 1,07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아픈 과거에서 평화의 길을 배우다_대경지부 DMZ 철원 역사기행

6월 14일 토요일, 대구경북지부는 DMZ 철원으로 역사기행을 떠났습니다. 출발지로부터 6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기에, 새벽 3시쯤부터 대구와 경북 각지에서 버스 세 대가 출발했습니다. 회원들은 오전 6시 문경휴게소에서 모두 합류했습니다. 출발할 때는 비가 많이 내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휴게소를 두 군데 거치며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땅은 말라 있었습니다. 오전 9시, 화창한 날씨 속에 철원 김화읍 화강 수변의 쉬리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좋은벗들 사무국장 이승용 님을 만나 함께 입재식을 가졌습니다. 저격능선 전투전적비와 김화의 사라진 마을 입재식을 마친 후, 영화 고지전에서 소재로 등장한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가 있는 곳으로 걸어서 이동했습니다. .left 전투 전적비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당시 북한국, 중국군과 전투를 벌였던 방호가 남아 있었고, 전적비 양쪽에는 실제 사용했던 대포를 모형으로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승용 님의 설명을 들으며, 당시 철원 김화와 평강을 오가며 대치된 전투가 바로 이 자리에서 전개되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전적비를 둘러본 뒤, 다시 쉬리공원으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김화의 사라진 마을 이야기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전쟁이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대에 자리한 김화군 생창리의 이야기입니다. 전쟁 마지막까지 남북한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지역입니다. 결국 김화군 중간에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김화읍 전체가 사라져 버린 비운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공공 건물들을 비롯해 마을 발전을 위해 결성된 모임들, 그리고 오밀조밀한 건물들로 한때 활발했을 시가지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번성했던 마을이 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습을 보니, 전쟁이 남긴 허무함과 잃어버린 생기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충렬사와 승일교와 고석정 다시 버스를 타고 충렬사로 향했습니다. 충렬사는 조선 인조 14년, 서기 1636년 병자호란 당시 공을 세운 충렬공 홍명구와 충장공 유림을 모신 사당입니다. 특히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더 이색적이었습니다. 우리 군에 미리 견학을 허락받고, 군인의 동행 하에 군에서 정해주는 방향으로만 사진을 찍으며 둘러보는 경험이 특별했습니다. 충렬사를 둘러본 후, 고석정으로 향하는 길에 승일교가 있습니다. 승일교는 북한 정부에서 공사를 진행하다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남은 구간을 남한에서 건설한 교각입니다. 조금 지체된 일정 탓에 내려서 보지는 못하고, 가까이 천천히 지나가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남쪽과 북쪽이 각자의 시공법으로 완성하게 된, 좋게 보면 합작품인데, 건설 중에 전쟁이 끼어 사연 많은 다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름도 이승만의 승과 김일성의 일을 따서 승일교라 했다는 설도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일승교라 불릴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어쨌든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모양으로 합체된 승일교를 지나 고석정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철원의 축제 기간과 겹쳐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고석정 주차장 여기저기 그늘진 곳을 찾아 조별로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챙겨 먹고 고석정 자유 투어를 했습니다.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북한의 평강 지역에서 분출되어 흘러나온 용암이 돌이 되어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흡사 제주도처럼 구멍이 송송송 뚫려 있는 현무암 계단을 내려가 한탄강까지 가보니, 한복판에 치솟은 10여 미터 높이의 기암 양쪽으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르는 경관이 빼어나게 수려했습니다. 하루 종일 책상과 집 안에만 머물던 눈과 머리에 시원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았습니다. 돌계단을 내려가 정자와 고석정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미리 알려준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도착해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백마고지 전적지 버스는 20여 분을 달려 백마고지 전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북한군과 중공군 1만 명 이상의 사상자와 포로, 그리고 한국군 3천4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곳입니다. 비 오듯 쏟아진 포격으로 산등성이의 나무들이 사라지고 하얗게 드러난 바닥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모습과 같아 백마고지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입구의 백마상과 전승비를 지나 올라가는 길은 좌우로 자작나무와 함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어, 마음이 더욱 비장했습니다. 태극기 길을 따라 위령비에 이르면, 전투 전사자들의 이름이 가득 적힌 비석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멈춰 선 6.25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전쟁 승리 일자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전사자들의 위령비와 함께 전쟁의 아픔이 더욱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습니다. 다시는 남북한 간에 이처럼 참담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길 양쪽으로 간략하게 마련된 백마고지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마고지 전투에 대한 기록을 찬찬히 살펴본 후, 바로 이어져 있는 전적비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전적비와 커다란 태극기에서는 자유를 향한 숭고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적비 뒤편에 있는, 머리 없는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의 탄피 조형물을 볼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종각이 있는 전망대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건너편 DMZ에 위치한 실제 백마고지도 확인했습니다. 노동당사와 소이산 전망대 그리고 회향식 .right 해가 오후를 넘어가는 즈음에 노동당사에 도착하여 이승용 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 조는 회원들의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노동당사는 전쟁 전 북한이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옛 건물이라 그런지 벽체가 두껍고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쟁으로 인한 포탄과 총탄 자국이 건물 곳곳에 빼곡히 박혀 있음에도 건물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노동당사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갈라진 건물 틈새로 피어나 바람에 흔들거리는 야생화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소이산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습하고 햇살은 뜨거워 땀이 많이 났습니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한을 바라보며 이승용 님의 지리적인 설명을 집중해서 들은 뒤 회향식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이산가족에 대한 생각과 전쟁 당시 희생한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거리가 멀어 계획하기 힘든 이 역사기행을 정토회 덕분에 알차게 하게 되어 모두 감사해 했습니다. 그리고 이념과 편견, 갈등을 전쟁으로 풀면 안 되고 대화로 풀도록 해야겠다는 나눔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두 평화에 대한 기원을 하게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밤이 늦도록 달려 9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지만, 알찼던 평화 공부에 모두 참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글과 사진정수옥

통일 2025.07.04. 960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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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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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