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4년

백중기도

입재 : 2020년 7월15일(수) ~ 회향 : 9월 2일(수)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 오후 7시30분
문의: 전국 정토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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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즉문즉설

정토회
일반회원을 위한
정기법회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문의: 각 지역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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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 이벤트 중

⟪지금 이대로 좋다⟫
여름 에디션 출간

기간 : ~ 사은품 소진시까지
문의 : 정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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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이산 저산 다녀봐도 행복은 지금 여기!

히말라야 원정대를 따라 아프리카의 킬로만자와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정상 등 전 세계의 유명한 산봉우리들을 다 정복한 분이 있습니다. 누구나 하기 힘든 그 숨 막힐 듯 장엄한 대자연을 경험하고서도 얻지 못한 행복과 자유를 문경의 희양산이 보이는 낮은 언덕〈깨달음의 장〉에서 찾았다고 합니다. 현재 《월간 정토》의 행정 책임을 맡고 있는 이응노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러시아 엘브러즈 정상 5,642 m에 오른 이응노 님 행복과 자유를 찾아 이 산, 저 산으로 저는 무척이나 고집스럽고 과격하며 직설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던 2006년, 제게 그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유일한 취미는 산을 오르는 거였습니다. 히말라야 원정대를 따라 해발 6,500 m 도보여행을 다녔습니다. 아프리카의 킬로만자로, 러시아의 엘브러즈, 파키스탄의 히말라야 정상 등 전 세계의 많은 산봉우리를 올랐습니다. 늘 높은 고지의 산을 오르거나 장거리 도보여행을 가면 ‘그냥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피해 떠난 대자연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얻기는커녕, 머릿속은 그저 지옥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산악 원정대 리더였던 선배가 을 가보라고 추천했습니다. 그 리더를 상당히 신뢰했던 저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신청했습니다. 등산 장비를 잔뜩 싣고 템플스테이 정도라 생각하며 가볍게 찾은 문경에서의 4박 5일 그 경험은 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도반이, 질끈 묶은 머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못마땅함이 가득한 못된 사감 선생님 같은 얼굴로 주변을 싹 훑어보는 저의 첫인상을 기억합니다. 수련 전에 제 주위 사람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부끄러워집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을 마친 첫 말이 “나는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 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과격하고 거칠었던 행동과 말로 괴롭혔던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그들에게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주말에는 문경으로 내려가 밤늦게까지 울력이며 바라지를 했습니다. 매주 문경에 내려갔던 건, 다시 옛날 그 모습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과 저는 공무원이었고, 극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법륜스님은 즉문즉설각주27로 많이 알려졌고 정토회의 활동도 투명하여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인터넷에는 가끔 스님이 반체제 인사로도 비쳐져, 주위 사람들이 많이 의심하곤 했었습니다. 성향이나 집안 분위기로 선뜻 정토회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제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하는 거로 보였을 것입니다. 문경에서 선주법사님의 안내로 2007년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샤모니 도보여행 중 이응노 님 괴로웠던 지난 시절 저는 6남매 중 셋째 딸이었지만 형제들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연로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당뇨로 인해서 무릎 아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고, 어머니는 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은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에 대한 미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에 분노가 고스란히 쌓여 갔습니다. 형제들의 존재는 제 노력으로 얻은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빼앗아 가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사는 건,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슴 속 분노가 주변 지인들에게 고스란히 표출되었습니다. 신경이 곤두서서 저도 모르게 주변 지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사건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음 생은 수행하는 도반으로 만나세 에 다녀온 후 저의 변화를 알아챈 건 어머니였습니다.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삼배로 그간 오만무도한 저를 받아주었음에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불자였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새벽마다 천수경각주13과 금강경각주10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독경을 했습니다. 어릴 적 제게는 어머니의 독경 소리가 아침잠을 깨우는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였습니다. 천일결사각주26에 처음 입재 하던 날, 유수스님의 독경을 무심코 따라 하던 저를 알아채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천수경이었는데 한 번도 배워보지도 못한 제가 따라 할 수 있었던 건 어릴 적 어머니가 새벽마다 했던 덕분입니다. 어머니에게 불교를 왜 믿냐고 물어보면 “아버지가 나를 여기로 보내셨지”하고 빙그레 웃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부모 자식의 인연이 아닌, 도반으로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2018년 돌아가시기 얼마 전 어머니가 제 손을 잡으면서 “다음 생에는 수행하는 도반으로 만나세” 했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무엇이 사람을 180도로 바뀌게 했지 지금은 부모님을 돌볼 수 있는 제 자신에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만들어 준 부모 형제들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형제자매들도 어찌 아픈 어머니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리고, 도움이 못 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입을 꾹 다물고, 험한 얼굴을 하는 제가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들이 오는 걸 막고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했을 때, 그 무거움을 내려놓으라고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큰언니, 오빠, 올케가 정토회원입니다. 그렇게도 힘들게 했던 제가 확 뒤바뀌어 버린 모습에 오히려 가족들은 무엇이 사람을 180도로 바뀌게 했지? 하며 자연스레 도반으로 함께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힘든 생활은 여전하지만 다들 행복하게 살고 있고, 만나면 도반처럼 나누기를 합니다. 저는 일 추진하는 걸 좋아하고, 성질이 급해서 다 해치워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일을 많이 저질러 놓고, 제 식대로 서두르고, 나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하면서 주변 도반들을 많이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나이가 좀 드니 느려지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삶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주위의 30년 지기 지인들이 나이 드니 유해져서 좋아 보인다고들 합니다. 월간 정토 실무 회의 중인 이응노 님 참회 한동안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계체조부터 테니스까지 모든 운동을 좋아하고 5060년 산을 다녔던 제가 무릎 연골이 많이 닳아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겁니다. 스님에게 절을 많이 하고 싶은데 무릎이 아파요.라고 질문도 했습니다. 그렇게 절을 하고 싶었던 제가 “그럼 다리 아픈 장애인들은 성불 못 하겠네요. 왜 절에 집착하나요? 108배 해보고, 아쉬우면 명상하면 되지요.”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왜 그렇게 절이 하고 싶었는지도 알았습니다. 왼쪽 이응노 님.right 절을 하면 잊혔던 상처 준 사람이 떠오르고, 그 업식을 보고 참회하고 싶어서 무리하게 절을 고집하고 집착했습니다. 지금은 아주 천천히 108배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오를 때 그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다니던 우직하고 미련스러웠던 제 자신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인연들에 미안한 마음을 법륜스님의 책 선물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직선적이고 까칠했던 저와의 인연을 왜 이어갔는지를 물어보면, 성격은 더러웠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있어서 참을 수 있었다. 는 말에 함께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켜 놓은 채 양치를 하는 후배를 보면, 그냥 무작정 꺼버리고 눈치를 많이 줬습니다. 그래도 맘이 안 놓이면 이 물은 미래에 당신 아이들이 먹는 물입니다.라고 써 붙혀 놓고, 일회용 컵도 없애버렸습니다. 일회용 컵을 못 쓰게 하려고 동료들에게 커피를 많이 타줬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후배들을 만나면 양치할 때마다 언니가 생각나서 수돗물을 저절로 끄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 깨어 있음 현재는 정토회 행정처에서 《월간 정토》 편집 이후의 모든 일과 회원 관리, 행정 관리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월간 정토》는 1988년 창간한 이후 2020년 코로나로 힘든 지금까지 신규 구독자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그 일을 시작했던 전임 봉사자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봉사했는지가 느껴집니다. 스님의 하루에서 읽은 기억이 있던 사하촌에 불심이 없다. 라는 말과 내가 행복하고 주변이 행복하려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게 전법이다.라는 스님의 말에 제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늘 깨어있으려고 합니다.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모른채 총무님의 추천으로 이응노 님을 만났습니다. 숨어있는 보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이크 붓다로서 지금, 여기서 빛나고 있는 이응노 님을 인터뷰하면서 정토회와 오래도록 꼭 붙어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습니다. 이응노 님과 함께 하여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글박문구 희망리포터 편집장순복 각주7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각주27 즉문즉설 법륜스님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한 프로그램.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해 즉시 묻고, 즉시 이야기 하는 대화 방식을 말함. 각주10 금강경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각주13 불교 경전의 하나. 관세음보살이 부처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고 설법한 경전이다. ‘한량 없는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없는 대자비심을 간직한 큰 다라니에 관해 설법한 말씀’이라는 뜻이다. 각주26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했습니다.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초법당 2020.07.13. 1,395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래, 시작이 반이다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사상, 이념과 관계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작은 힘이나마 함께 모아 일해 가는 단체입니다. 북한사업, 인도 사업, 필리핀 사업과 국내 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청소년 모부가정, 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결식아동 등 지원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찾아 그해 겨울부터는 여름, 겨울방학마다 꾸준히 결식아동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JTS 홍보물 동인천법당에서는 2017년 하반기부터 복지담당인 조상혜 님과 부담당인 손미연 님이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발굴과 지원대상자의 선정, 물품의 준비과정과 각 가정에 전달되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의 시작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의 발굴부터 승인을 받기까지 민관과의 관계나 서류에서 복잡한 절차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동구에서 태어나서 동구에서만 사는 조상혜 님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의 복지팀과 연계하여 필요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 동구 지역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서 권역별로 옮기면서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지원받는 분을 생각해서 대부분 일회성 지원보다는 3회 정도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조사하고 발굴하게 되면 동인천법당과 연계하여 지원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2017년 하반기에 지원계획을 세우고 JTS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8년 상반기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13세대에는 도시가스 난방비를, 1세대는 연탄업체에 의뢰하여 연탄으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와 온누리 상품권을 13세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상혜 님이 직장에서 퇴근 후 영양꾸러미 지원할 물품들의 목록을 들고 마트에서 하나하나 직접 구매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JTS에서 물품을 법당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법당에서 포장과 전달만 하니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상반기에 각각 20세대, 2019년 하반기에는 21세대로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시죠? 관공서나 타 단체에서는 김치나 쌀, 참치 세트 등의 물품을 지원합니다. JTS 영양꾸러미는 햄, 참치, 반찬류, 떡볶이, 견과류, 간식 등 아이들을 위한 물품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에 대해 물었더니 “라면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이지만 끓여 먹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을 이용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서 지원하지 않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품목들로 찾다 보니 유기농 음료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각 가정에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면서 설문지를 드립니다. 작성한 설문지를 핸드폰으로 받아 추후 필요한 물품들을 선정하는 데 반영하기도 합니다. 영양꾸러미 물품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JTS에서 영양꾸러미 물품이 각 법당으로 내려옵니다. 물품을 취합해서 지원하기까지 1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유통기간이 넉넉한 물품은 괜찮지만, 반찬류는 유통기간이 짧아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방학 기간에 멸치와 견과류 볶음이나 오징어 진미채 볶음을 지원 물품으로 보내올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물품들과 함께 포장해야 하므로 반찬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할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배송 물품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포장하면 안 됩니다. 반찬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송 당일 다른 반찬으로 교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법당에 모여 가볍게 마음을 나누고,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나갑니다. 영양꾸러미 물품 담을 상자 준비 중 물품 목록을 가지고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며 전달할 상자에 쏙쏙 여럿이 함께하니 물품 전달 준비가 뚝딱 영양꾸러미 전달을 위해 사전 계획을 하고 팀별로 동선을 짭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기 위해 출발 영차영차 가볍게 영양꾸러미와 함께 잠깐 담소도 나누고 환한 미소로 인사드립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혜 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부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 혼자서 물품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이 혼자 방치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번은 영양꾸러미를 받은 어머님이 고맙다며 아이와 직접 만든 예쁜 비누를 건네주었습니다. 사양했지만 계속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누 선물을 받기도 그렇고 받지 않기도 그렇고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했다면서 극구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받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활동하는 내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돌아보지 않던 제 삶을 성찰해보고 있습니다. 제 생활이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봉사를 하면서 ‘내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인도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며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풀 한포기도 나서 거름이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언가는 보람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어려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는 마음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각양각색의 예쁜 비누들 우리 법당도 영양꾸러미 지원사업을 참여하고 싶어요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 승인을 받기까지 기관과의 연계나 서류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는 송도법당의 경우 지원 대상자 발굴을 위해서 기관을 방문하여 대상자를 물색하였으나 연계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 지원 대상자를 조금 더 선정한 후 송도법당이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는 인근 법당에서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흔쾌히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정을 마친 행복한 웃음 가득한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 이경준 님 봉사하러 온 도반들이 많았습니다.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고 훈훈한 마음입니다. 가정에 방문했을 때 시설이 노후 되고 벽지에 곰팡이가 핀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마음에 속상했습니다. 이교옥 님 두 번째 봉사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는 아이와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법당의 도반들과 행복을 전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선정 님 작게나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참여했습니다. 방학 때 혼자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려운데 영양꾸러미 간편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끼니를 거르는 아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 뿌듯했습니다. 박옥금 님 처음 참여하는 봉사여서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한 집 두 집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던 중 젊은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만들었다’며 손수 만드신 비누를 건네주셨습니다. 받지 않으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어떻게 매 번 받기만 하느냐?’고 하시면서 다시 건네주신 비누를 어쩔 수 없이 받아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더 많이 나누고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현식 님 개인 약속을 뒤로하고 참여한 ‘영양꾸러미’ 자원봉사 활동. 도반들과 함께해서 값지고 보람되었으며 훈훈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눈으로 보는 순간 내 마음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으며 ‘일체유심조’가 떠올랐습니다. 손미연 님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위해 사전에 수많은 문서들을 준비하고, 민관의 소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내어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JTS의 국내사업의 일부인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거리모금의 의미도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어떤 아이들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조상혜 님 JTS의 영양꾸러미 봉사 횟수가 늘어가면서 함께 늘어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봅니다. 도반이 전부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고마움을 겉으로 표현 못하시는 분도 있고,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쓰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손미연 님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함과 행복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 덕분에 제가 행복해졌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은 꾸준히 계속됩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 초기에는 2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라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힘들었습니다. 2020년 1월에는 7명의 도반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품의 포장부터 전달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이 되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기사를 취재하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2명으로 시작된 힘들었던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영양이 듬뿍 담긴 영양꾸러미를 받고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총무 소임을 새롭게 맡으신 조상혜 님의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더욱더 많은 아이들이 영양꾸러미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영양꾸러미를 준비하고 전달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활동가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기획.취재인연등 글안순애 편집고영훈

복지 2020.03.19. 7,845 읽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전국 강연 일정은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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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