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51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6년 3월 6일(금) ~ 6월 13일(토)
접수마감 : 2026년 2월 19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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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

정토담마스쿨 입학생 모집

영어, 한국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마감: 2026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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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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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감사로 물든 백일

12년 전 서동아 님은 열정이 넘치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청년학교와 동북아 역사기행을 비롯한 정토회의 여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백일출가를 꿈꾸었지만, 직장인이었기에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위기를 기회 삼아 백일출가에 참여하였고 그곳에서 몰랐던 스스로의 분별을 마주하였다고 합니다. 백일출가를 권하는 서동아 님의 마음에서 그가 100일간 얻은 단단한 힘이 느껴집니다. 참회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며 수행하는 서동아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년학교와의 만남 2014년 군에서 제대하고 이듬해 대학교에 복학했습니다. 전공 실험실에 들어가며 교수님과 면담 자리에서 “무엇이든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막 제대한 복학생의 이글이글한 열정을 읽으셨던 걸까요?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청년학교라고 있는데 재밌을 거야. 한번 해볼래?” 교수님의 권유를 받고 곧장 청년학교 사이트를 검색했습니다. 8주 과정이었고, 사랑 편, 사회 편, 역사 편 등 다양한 사람이 모여 매주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청년학교는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청년들이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일러주는 곳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방황해도 괜찮아』, 『새로운 100년』 등의 책을 읽고, 즉문즉설 법문도 들었습니다. 통영에서 대학 생활을 했기에 청년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매주 창원을 오가야 했습니다. 첫 수업이 시작되고, 영상으로 청년학교 교장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청년학교 교장 선생님이 바로 지도 교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첫 수업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인 탓에 저는 차례가 오기 전부터 땀을 비 오듯 흘렸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덜덜 떨면서 자기소개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한 주 한 주 쌓이다 보니 마음 나누기에도 차츰 익숙해졌습니다. 청년학교는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고라니밭에서 청년학교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동북아 역사대장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백두산은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법륜 스님을 비롯해 도반들과 함께 간다니,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떠났을 때는 몇 번을 졸다가 깨어도 송수신기를 통해 끊임없이 법륜 스님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때 경험은 ‘나도 작으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발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북아 역사대장정을 다녀온 뒤 통영에서 청년학교를 열었습니다. 청년학교 활동을 즐겁게 할수록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내성적이야’라며 스스로 만들어둔 틀이 조금씩 깨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고, 불교대학을 거쳐 경전반도 졸업했습니다. 그러다 전국 운영위 모임을 할 때 종종 만나던 도반에게 백일출가 얘기를 들었습니다. “백일출가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어”라는 도반의 말이 머릿속에 한참 맴돌았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이 성장한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도반이 ‘최고의 경험’이라고 말하는 백일출가는 대체 어떤 것일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경주 남산에서 백일출가를 꿈꾸며 2018년, 백일출가를 결심하고 입방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것이 정직원이 되고, 직장 생활 3년 차가 넘어가자 백일출가를 꿈꾸던 마음은 저만치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회사와 집을 오가다 경주역사기행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어떤 도반이 백일출가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더라 한 번 가보면 어때?” 저의 추천으로 백일출가에 다녀온 아내는 많은 부분에서 업식이 녹아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날이 갈수록 회사 일이 많아져 100일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어느덧 6년 차가 되었고, 업무와 책임은 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부서 이동도 잦아 처음부터 일을 다시 배우는 업무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결국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계기는 현장직으로 일하다 보니 몸이 상할 때도 많았는데 회사가 2년 연속 임금을 동결한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해마다 더 많은 일을 하며 몸까지 아픈데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크나큰 좌절감이 느껴졌습니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잘 쓰이는 사람이 되자’던 초심은 잊고, 깊은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히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때마침 아내가 만 배 바라지를 신청했습니다. 이미 백일출가를 다녀온 아내는 제게도 백일출가를 진지하게 권했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권유로 백일출가를 신청했고, 면접을 본 뒤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희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백일출가를 선물한 셈이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여긴 마음 “100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만 분별을 찾아도 회향할 때 나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 묘수 법사님 말씀처럼 100가지는 아니더라도 제 안에는 다양한 분별이 있었습니다. 수련원에서는 공양할 때 발우를 사용하는데 어느 날 점심 공양 때 행자대학원 행자님이 어시 발우 밥 위에 카레를 넣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침 발공 시간이 아니면 어시 발우에 밥과 다른 반찬을 올려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다른 도반이 “어시 발우에는 밥만 담아야 해요”라고 다시 알려줬지만, 그 말을 의심부터 했습니다. ‘행대 분들은 어시 발우에 밥 말고 다른 것도 넣던데?’, ‘내가 제대로 봤는데, 착각한 거 아닌가?’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실대로 알려줘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겁니다. 뒤늦게 행자대학원 행자님들이 어시 발우가 아닌 국 발우에 밥과 반찬을 담은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그제야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얼마나 고집 센 사람인지, 한번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고, 나는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고 우기는 아수라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정정당에서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며 평소 은근히 저를 경계하는 듯한 한 도반이 있었습니다. 저는 뭐든 나서서 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어느 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도 먼저 나서서 커튼과 병풍을 치려는데 그 도반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혼자서 너무 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본인도 혼자서 다 하시잖아요”라고 탁 받아쳤습니다. 속으로 ‘먼저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자기 모습은 보지 못하고 나를 분별하네?’, ‘자기 일을 내가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싶어 기분이 나빴습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때 보지 못한 다른 것들이 보였습니다. ‘내가 나서서 다 해버리면 다른 도반의 기회를 뺏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혼자서 다 하려는 욕심이 있었구나.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스스로 해볼 기회를 안 줄 수도 있겠다.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하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외에도 공양간에서 서두르다 도반에게 분별심을 냈던 일, 다른 도반의 말에 걸렸던 일, 도반이 분별하는 것을 보며 같이 분별했던 일, 내 고집을 세웠던 일 등 분별심은 끊임없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일출가의 가장 좋은 점은, 어떤 상황이든 그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돌이키고 참회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함을 알게 해준 백일 백일출가 프로그램을 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회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정토회는 날 감동하게 하는구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저녁 예불 때 도반들과 목소리를 맞추며 느낀 큰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대웅전에서 개인 정진을 마친 후, 부처님을 오롯이 뵙고 있을 때는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이 좋은 법을 어떻게 저에게 전해주신 겁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백 번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이미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 더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 감사기도 기간에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봤던 30대의 부모님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어른 같았습니다.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부모님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구나,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워주셨을까… 그저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회사에서는 회장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미리 그다음을 생각하는 태도와 적극적으로 일하는 방법 등을 배웠습니다. 일 수행을 하면서 특히 많이 체감했습니다. 20대의 나라면 할 수 없었을 대부분을 회사에서 배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법도, 분별을 내려놓는 법도, 스타렉스나 더블캡 트럭을 운전하는 것도 모두 회사에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 돈을 받으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것을 배웠구나’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물론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며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인정받길 바랄 때가 있습니다. 다만 그 마음 때문에 전처럼 괴로워하지 않는 건, 백일출가에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아내를 이해하게 된 시간 아내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왜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백일출가를 해보니 그동안 가졌던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집안일하는 방식도, 나누는 방식도 아내는 백일출가의 기준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백일출가를 다녀온 덕분에 아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아내에 대한 사랑도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나누기할 때마다 아내가 떠올랐고, 그리운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왔습니다. 그저 아내가 존재하는 것이 감사하고, 또 함께할 수 있음이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나 홀로 온전한 온달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머지 반달을 말없이 채워주는 아내가 있었기에 온달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처음 정토회를 접하게 해주신 교수님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또 함께했던 통영법당 보살님들을 떠올리다가 감사한 마음이 북받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불법을 전해주신 불·법·승의 ‘승’이 바로 그분들이구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백일출가는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내 삶에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지 마음 깊이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헛되지 않은 나만의 백일 무엇보다 지금은 내 마음을 살피는 힘이 생겼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보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고작 100일로 삶이 얼마나 변하겠느냐고 말합니다. 백일출가에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했을 때, 친한 지인은 “야, 그건 절 밖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주장을 하려는 울컥함보다 그를 이해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내 100일이 헛된 것은 아니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백일은 온전히 나만의 감동이다, 이 경험으로 내 안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이젠 이런 확신이 있기에 누가 뭐라 해도 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련원에서 다시 초발심으로 백일출가는 제 마음 깊은 곳에 심은 한 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씨앗이 꽃으로 활짝 피어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꾸준히 돌보는 것이 앞으로 할 일입니다. 백일출가 회향할 때는 천일결사 정진과 수행법회를 빠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 복귀하고 다시 일상에 적응하다 보니 수행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밤 퇴근하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회향한 지도 4개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사실 업무에 치여 정진도 수행법회도 놓치고 있는 지금, 소감문을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이 소감문을 계기로 다시 초발심을 내봅니다. 앞으로 수행 과제와 공부 방향은 천일결사 정진과 수행법회를 빠짐없이 실천하는 것입니다. 소감문을 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백일출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인연이 닿았을 때 오롯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감동을 경험하시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2025년 6월 호에 수록된 백일출가 소감문입니다. 글서동아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월간정토 2026.01.05. 1,580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손과 마음을 모아 만든 겨울의 온기_2025년 김장 축제

김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봉사를 넘어, 서로의 삶을 보듬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과 좋은벗들 봉사자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김장을 담그며, 나눔을 통해 평화를 실천하겠다는 소중한 약속을 나누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현장에서 피어났던 온기와 웃음, 함께했기에 더욱 의미 있었던 연대의 시간을 전합니다. 대구경북지부 아도모례원 김장 윗동네와 아랫동네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11월 22일 이른 아침, 대구경북지부의 6개 지회가 으뜸절인 신라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아도모례원 앞마당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오늘 김장 행사는 북한이탈주민과 고려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좋은벗들과 봉사자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초전법륜 성지 앞마당에서 김장 봉사는 당일의 분주한 손놀림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일주일 전부터 지역농협과 협업하여 절임 배추를 수급하고 양념 재료 준비까지, 지회별로 사전 교육을 통해 역할을 분담하고 조직적으로 준비했습니다 묵묵히 마늘 한 알씩 준비합니다 여는 마음 나누기 지역별 팀장을 중심으로 모인 봉사자는 ‘세상 누구와도 좋은 벗이 되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하고 김장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절임 배추가 줄지어 놓인 작업대가 있고 그 사이에서 갖은양념을 버무려 속을 골고루 채워 넣습니다. 바깥 배춧잎 한 겹으로 예쁘게 감싼 김치 한 포기를 완성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합니다. 서로 양념이 버무려진 김치를 입에 넣어주며 맛을 보는 순간마다 웃음도 끊이지 않습니다. 잘 절여졌습니다 김치를 빨갛게 치대며 속을 넣습니다 문경에서 두 남동생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북한이탈주민이 김치를 버무리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김장 봉사는 처음 참석해 봅니다. 해마다 이렇게 김장을 해서 가져가면 가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말 고맙습니다. 이북은 어릴 때부터 김장을 가족이 함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가족같이 느껴집니다. 우린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앞마당에 소소하게 열린 나비 장터에 쓰이면 좋겠다고 수줍게 라면 두 묶음을 내놓았습니다. 양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작은 정성에 현장 분위기는 더욱 훈훈해졌습니다. 이날은 겨울이 무색할 만큼 햇살 또한 따사로웠습니다. 그 따스한 햇살 아래 지회별로 모여 앉아 직접 담근 김치에 두부와 삶은 고구마를 곁들인 점심을 먹으니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이 맛있었습니다. 이어 흥을 돋우며 몸을 푸는 놀이 한마당이 열렸습니다. 경주지회 이수진 님의 사회로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한데 어우러졌습니다. 전통놀이와 노래자랑을 하며 한동안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노래는 잘합니다 함께 하니 기쁨이 최고입니다 봉사자가 환하게 웃으며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처음 참가하는 김장 축제라 어색했지만, 함께 웃고 손뼉을 치며 어울리다 보니 이렇게도 금세 친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김장하면서도 좋았지만, 같이 손을 잡고 게임하고 노래하는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올해도 만났어요 대구경북지회 지부장 백은정 님이 닫는 인사말을 했습니다. “아도모례원 앞마당이 좀 더 넓으니, 내년에는 그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지회별로 말끔히 뒷정리를 하며 김장 행사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낯선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조금은 더 나은 조건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두가 ‘잘 쓰이겠습니다’라는 모자이크 붓다의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봉사와 나눔의 마음이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져, 따사로운 햇살처럼 계속 퍼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모두 함께 기념 촬영 경남지부 진주지회 김장 지리산 마당에 스며든 평화, 김장으로 하나 된 하루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 개선을 실천해 온 좋은벗들과, 지역에서 꾸준히 나눔을 이어온 진주지회가 만나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진주지회는 북한이탈주민 가정에 설과 추석에 방문하고, 통일축전과 김장 행사 등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일상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는 진주지회의, 함양 지리산 수련원에서 펼쳐진 따스한 김장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좋은벗들과 함께하는 김장 행사 취재를 위해 지리산 수련원으로 가는 길, 벼를 베어낸 논 위로 하얗게 나려앉은 서리가 마치 겨울 솜이불을 덮고 있는 듯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리산 수련원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일찍 도착한 봉사자들의 손길 덕분에 물이 빠진 배추들이 우리를 맞이하듯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이번 김장 행사에는 진주지회 회원 20명과, 북한이탈주민 11명이 참여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손님맞이를 위해 수련원 여기저기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 행사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마당 한켠에서는 차가운 날씨를 데워줄 차를 따뜻하게 끓이고, 양념장에는 청각을 넣어 풍미를 더했습니다. 공양간 팀은 떡국 30인분과 만두를 찌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때마침 도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다소 어색해 하기도 했지만, 봉사자들이 미리 연습한 대로 일렬로 서서 박수로 환영하자 그 어색함도 금세 사라졌습니다. 첫마음 나누기 “작년에도 왔었는데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염치 불고하고 또 왔습니다.” 첫마음을 나눈 뒤 국민체조로 몸과 마음을 풀었습니다. 아침 일찍 물을 뺀 배추는 마당 중앙의 선반 위로 옮겨졌고, 봉사자와 북한이탈주민들은 고무장갑과 앞치마로 무장하고 잘 절여진 배추 앞에 섰습니다. 늘 해오던 김장인 만큼 각자만의 방식과 손맛을 장착한 채 비장한 표정으로 작업에 나섰고, 그 모습 속에서 남과 북이 오랜 시간 음식을 나눠 먹어온 한 민족임을 자연스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장을 어떻게 하나요?” “김장에 돼지고기를 넣어요.” 우리나라도 김장은 지역마다 독특한 방식이 있지만, 수육을 넣는다는 이야기는 정말 새로운 정보였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삶아서 잘게 썰어 속으로 넣어요. 거기는 날씨가 워낙 추워서 배추가 질겨요. 그래서 돼지고기를 넣으면 기름이 나와 배추가 연해져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질긴 배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돼지고기를 넣는 지혜를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참여 인원이 줄고 김장의 양도 다소 적어 일찍 마무리되었습니다. 일찍 끝난 덕에 모두 함께 지리산 둘레길 산책에 나섰습니다. 남과 북이 여전히 분단된 현실 속에서, 이렇게 함께 걸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과 산책을 다녀오는 사이 수련원 마당에는 돗자리가 깔리고, 오늘 담근 김치를 주인공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과 만두, 두부가 차려졌습니다. 김치를 썰어낸 모양과 두부를 담아낸 모습이 마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처럼 그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김장으로 하나가 되었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나는 점심공양이 끝난 뒤, 갑자기 등장한 엠프와 마이크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내 모둠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 시간을 알렸고, 지리산 천왕봉을 관객 삼아 김장 잔치와 노래자랑이 이어지며 이날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3년째 이곳에 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이렇게 반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친정에 온 기분입니다.” “친구가 가자고 해서 처음 따라와 봤는데, 남과 북이 함께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너무 잘 놀다 갑니다. 내년에도 다시 오고 싶습니다.” 단체 사진 공양팀은 설거지와 바닥 청소를 마친 뒤, 처음보다 더 깨끗하게 뒷정리를 했습니다. 김장에 쓰인 큰 대야와 선반들도 깨끗이 닦아 물기를 뺍니다. 수련원 마당은 다시 조용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달여 간 행사를 준비한 지회 봉사자들도 앞치마와 머리 두건을 벗으며,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만남은 특별했지만, 동시에 일상의 평범한 만남 속에서 우리가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정토회 수행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진 지원황재윤 글김미정 사진김정미 편집권효정

통일 2025.12.26. 1,234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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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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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