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법륜스님

북미 해외순회강연

9월 12일(토) ~ 20일(일)
현지인 대상 영어통역 강연 및 교민 대상 한국어 강연
자세히 보기

지구별을 여행하는 청년을 위한

2026 청년페스타

2026년 10월 10일 (토) ~ 11일 (일)
장소 :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
자세히 보기

2026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

9월 23일(수) ~ 27(일)
4박 5일
자세히 보기

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자세히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엄마잖아, 그 한마디에 시작한 바라지가_ 저를 살렸습니다

류양희 님은 직업군인이던 아들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고 나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스님께 질문드렸고, 그에 대한 답을 들은 뒤부터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문경수련원에서 바라지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주 바라지장에 가서 소임을 해냈습니다. 류양희 님은 다른 이들의 공양을 위해 보낸 그 시간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이었다고 밝힙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지만, 결말이 아름다워 다행입니다. 류양희 님 “엄마잖아, 그냥 좀 그렇게 지내면 어때” 지난해 6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떠밀리듯 장례를 치렀습니다. 아들이 직업군인이었기에 일주일 안에 숙소를 정리해야 했고, 사고 조사를 위해 아들에 관한 모든 것을 조회해 군 경찰에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일이라 여기저기 물어 가며 일을 처리했습니다. 마음 놓고 울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걱정하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잘 지내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저는 그렇게 지내지 못했습니다. 무기력하게, 마치 시체처럼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런 제 모습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 저를 안타깝게 본 지회 법사님이 백일출가를 권하였습니다. 하지만 서른다섯에 사별하고 혼자 벌어서 먹고살아야 했던 업식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때 법사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기로 마음먹고, 오도재일에 스님께 제 상태에 대해 질문하니 “엄마잖아. 그냥 그렇게 좀 지내면 어때?”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가 조급한 마음에 너무 애쓰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두북 수련원 봉사 중에 그 후 사직서를 내고 문경수련원 바라지를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무기력한 마음 때문인지 감기와 몸살이 반복되었습니다. 링거를 맞고 약을 먹으면서도 수련이 있을 때마다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면 환자 방에서 쉬고, 조금 나아지면 공양을 지었습니다. 바라지를 하던 중,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물 위에 뜬 기름처럼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엄했고, 그런 부모님이 무서워 사춘기 때도 반항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말 잘 듣고 동생들을 잘 돌보는 맏딸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를 보내 줄 수 없으니 산업체 고등학교에 가라는 아버지 말에도 그저 제 운명이라 여기며 받아들였습니다. 제 기억 속 어머니는 해 뜨면 밭에 가고 해지면 잠자리에 드는 분이었습니다. 남편과 사별 후 기댈 곳이 없던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친정에 갔지만, 어머니는 늘 바빴고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저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는 서운하다는 마음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불교대학 돕는이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미역국 한 그릇의 화해 아들의 장례를 치른 저에게 어머니는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너라도 정신 차려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제 가슴에 박혔는지 두고두고 생각이 났습니다.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어머니는 본인의 자식이 먼저였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를 위로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휴대전화에 남은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도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일을 그만두고 문경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문경을 왜 가느냐?”는 질문에 “아들이 보고 싶고, 제가 살려고 간다”라고 답했을 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전화는 뜸해졌고, 어머니는 제 소식을 동생들과 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라지를 하며 도반들과 나누기하던 시간에, 어머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처음으로 꺼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원망과 서운함이 조금씩 옅어졌습니다. 공양을 짓고, 더운 여름날 대웅전 풀을 뽑으며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2박 3일 여행을 하며 어머니와 친해지고 싶었던 제 마음을 알았습니다. 몇 달 만에 어머니 집에 가서 잤는데 생일에 못 먹었던 미역국을 끓여 주었습니다. 그 미역국을 먹으며, 제가 어릴 적 하지 못했던 사춘기 반항을 이제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그 모습으로 제 곁에 있었고, 표현은 서툴렀지만, 저를 더없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바라지장에서 내가 필요한 곳에 쓰이는 기쁨, 소임이 복이다 바라지를 네 번째 갔을 때, 수련 담당자가 공양간 팀장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이제 네 번밖에 안 왔고, 밥도 안 해 봤는데 어떻게 팀장을 하나요”라며 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횟수는 중요하지 않고, 밥은 팀장이 안 해도 된다”라는 법사님 말에 일단 “예, 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수련 담당자에게 그냥 바라지만 하게 해달라고 다시 부탁했는데, “수련원에서 보살님이 필요하다잖아요”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필요한 곳에 잘 쓰이겠다는 마음으로 수련원에 왔으면서,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예, 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올해 1월 1일, 소임으로 첫 팀장을 하며 말 그대로 우왕좌왕 좌충우돌했습니다. 큰 밥솥에 밥물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고, 양 조절을 못 해 국을 넘치게 끓이기도 했습니다. 수시로 수련 담당자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첫 소임을 마쳤는데, 다른 바라지 팀장이 성지순례에 가서 그 빈자리까지 메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1월 한 달 동안 팀장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안정이 되었고, 요령도 생겼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내며 느끼는 성취감과 자신감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값진 것이었습니다. 타인을 위한 공양이 나를 살리는 길이 되어 소임에 집중하니 잡생각을 할 수 없었고, 수시로 아프던 머리도 차츰 나아졌습니다. 평소에 “소임이 복이다”라는 선배 도반들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의례적인 말처럼 여겼는데 팀장 소임을 하며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1년 전 처음 문경에 왔을 때는 바라지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습니다. 어느새 1년이 넘도록 수요일에 출근해 일요일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집에 있었다면 마냥 늘어져 있었을 시간을,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공양을 짓는 데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를 살리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괜찮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이 만든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많은 분의 도움과 보호 속에서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단단해졌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살 수 있음을 깊이 느낍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신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살아주고 있는 딸에게도 참 고맙습니다. 지리산 수련원 바라지장에서 이 글은 2026년 2월 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류양희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월간정토 2026.09.14. 166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한글 한 땀, 바느질 한 땀의 되살림

지난 3년 동안 정토회 경주지회 황성 모둠은 매주 목요일마다 고려인 이웃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칠월 어느 날, 경주지회 4개 모둠원과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되살림 바느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고 자원을 아껴서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경주지회 정토 행자 22명은 여는 모임 후 이름표, 현수막, 바느질 도구, 자리 배치 등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고려인 이웃들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이름표 모임 시간에 맞춰 고려인 14명이 되살림 바느질 ‘한 땀을 배우기 위해 경주시 한빛길 부근에 마련된 ‘고려인 사랑방’에 도착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고 명심문을 읽습니다. 다 같이 외우는 한마디는 방 안 공기를 새롭게 만듭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그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 황성 모둠 강순자 님이 벽에 붙은 천과 작은 받침대에 써 놓은 글자들을 하나하나 함께 읽으며 오늘의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땀의 바느질이 마음을 잇고 하나로 만듭니다. “산에 들에 꽃이 더 예쁘게 피고, 시냇물에 고기도 더 많이 살고, 하늘에 달님도 더 예쁘게 반짝였으면 좋겠습니다.” ‘되살림 바느질 한 땀으로’ 제목으로 시작된 글이 시 한 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환경을 살리자는 취지이면서, 작은 천 조각도 이렇게 ‘꽃이 피고 고기가 살고 달님이 뜬 것처럼 수를 놓으면 예쁜 천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안내입니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깔을 담은 고운 그림 같은 실선이 천 안쪽에 숨어 있지 않고, 천 바깥에 자리하기 때문에 ‘보이는 수선’이라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으나 잘 실행하지 않는 ‘장주머니’ 쓰는 법도 함께 읽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장바구니’라고 부르며 쓰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드러운 천을 준비했습니다. “흙 묻으면 털어 쓰고, 물 묻으면 말려 쓰고, 가끔은 빨아 쓰고, 항상 갖고 다니고” 장주머니 쓰는 법을 알려 주는 이림 님 ‘되살림 바느질’ 진행자 이림 님은 장주머니 쓰는 법과 보이는 수선 직조 바느질 법을 알려 줍니다. 지구를 살리고 자원을 아끼는 실천 방법을 함께 숙지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도 눈도 나이를 먹는 연로한 분들에게 바느질 권하기를 망설였습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수업을 고려하여 직접 만든 장주머니를 준비했습니다. 바느질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작업이고, 여러 바느질 법을 배우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쉽게 할 수 있도록 굵은 실을 준비했습니다. 옆에서 돕는 정토 행자들도 바늘귀가 작아서 실을 꿰기가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서로 도우며 실을 꿰고 바느질합니다. 파란 실과 분홍 실이 격자로 엮이고, 서투른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늘이 오가는 사이 마음은 손끝에 집중합니다. 구멍을 메우듯 감쪽같이 체크무늬로 된 사각 천 바탕이 탄생합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정토 행자들이 도와 한 땀 한 땀 장주머니를 꾸밉니다. 되살림 바느질을 함께 배우니 즐거움도 배가 됩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실이 모여 색다른 체크무늬 천이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각자 바느질 솜씨를 뽐내는 ‘오늘의 금손 선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손 선정권을 가진 이림 님이 출품한 모든 작품이 훌륭하다.라며 장주머니마다 감자와 양파를 담았습니다.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한 것입니다. 두근두근 오늘의 금손이 선정되는 순간 완성된 장주머니에 동글동글 감자를 담았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함께 둘러앉아 짧게 한 줄 소감을 나눴습니다. 고려인 김마야 님의 얘기입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은 평소 일하느라 사랑방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허조야 님입니다. “오늘은 일을 쉬고 나왔어요.” 한국어를 제일 잘해서 고려인 한글 수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최타마라 님입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세 명의 소감에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고려인 이웃들을 처음 만난 대구경북지부 담당 향존 법사님은 환한 웃음이 참 좋다. 앞으로 가끔 만나러 오겠다.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고려인들과 정토 회원들이 이면지에 손수 ‘좋은 벗들’이라고 적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지만, ‘좋·은·벗·들’ 네 글자처럼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이웃이 되는 중입니다. 고려인들과 함께하는 좋은 이웃의 날, 단체 사진 수업이 끝난 후, 경주지회 평화 실천 꼭지 이승헌 님이 좋은 벗들에서 지원한 토마토를 고려인 이웃 한 분 한 분에게 한 박스씩 건네며 소감을 전합니다. “경주지회 활동에서 봤던 도반들이라 낯이 익어 이번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되살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고려인이 많은 다른 지역에도 이런 행사가 계획되어 해보면 좋겠습니다.” 토마토를 전해 주는 이승헌 님 이어 다른 봉사자들의 소감 나누기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 선생님 제일 예쁘다.” 누군가는 이 한마디 말에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습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 참여했다는 어떤 봉사자는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과 만난 것처럼 순수하게 소통하는 그 자체가 새롭고 신선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양말을 꿰매 신는다는 도반은 오늘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라며 좋아했고, 아들의 구멍 난 양말 이야기로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지역 실천을 이어오던 도반들이 ‘손끝 재주를 세상에 꺼내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되살림 바느질 자리가 기획 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더 남습니다. 바느질 공방을 성심성의껏 이끈 이림 님의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아왔을 고려인 분들과 버려지는 옷가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눔 받은 천으로 장주머니를 만들고 직조 수선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려인 분들이 바느질하며 작은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활동이 소비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공유와 회복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자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자리를 기획한 황성 모둠장 공영순 님의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지회 재편으로 고려인 지원사업 지속이 불투명해지자, 기후 위기 시대에 맞춰 되살림 바느질을 기획해 좋은 벗들과 연합하게 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수를 놓는 모습이 시골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고, 완성된 장바구니에 감자를 담아드릴 때,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국경과 세대를 넘어 마음이 이어지는 뜻깊은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고려인 지원사업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부가 이 사람들 조상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국 땅에서 고생한 그 사람들이 이제는 선조들의 고향에서 따뜻한 여생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글이든 바느질이든,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기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음을 다시 느낍니다. 3년을 이어온 목요일도, 오늘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인 하루도 다르지 않습니다. 꾸준함이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매주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그 위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더해질 때 봉사는 훨씬 더 깊은 울림이 된다는 것’을 배운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날이 가까워지고 또 다정한 이웃이 되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미향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통일 2026.08.21. 1,355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자세히 보기

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자세히 보기

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