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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알고, 사랑하고
박미란 님과 리포터는 도반입니다. 늘 경쾌하고 쾌활했던 박미란 님을 근 3년 만에 화상 인터뷰를 통해 다시 만났습니다. 지회 지원 담당과 홍보 꼭지를 맡아 빈 곳을 찾아 채워주는 박미란 님은 정토회 활동 속에서 나를 보고, 알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의 반대도, 응원도 모두 디딤돌로 삼은 주인공의 단단한 수행담 소개합니다. 법 만난 인연 남편은 가난한 집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본인 외에 가족들에게는 조건 없이 주는 선물 같은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남편은 바르고 곧은 성격으로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해 헛된 낭비와 사치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저 또한 경제적 자립을 위해 남편과 뜻을 같이해 절약하며 살림을 일궈 일찍 집을 장만했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정토 불교대학 홍보 화상회의 후 딸과 아들이 성장해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되자, 저를 위한 취미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문화센터를 몇 년 다니다가 문득 ‘내가 나이 들면 뭘 하고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홍보 현수막을 보고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심각한 사연을 말하는 질문자에게 유쾌하고 간결하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스님의 말씀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습니다. 스님의 유튜브 법문도 듣고 책도 읽어 보며, 즉문즉설 강연을 계속 찾아 다녔습니다. 세종으로 이사를 온 후에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중도와 ‘사성제’ 등 불교 교리가 너무 좋아 남편과 아이들과 산책하며 불교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이야기하면, 가족들도 공감해 주었습니다. 2018년 불교대학을 졸업하면서 이 좋은 법을 만나게 해준 인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봉사해 준 도반들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이 법을 만날 수 있게 봉사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진짜 할 사람이 없어 봉사 제안이 나한테까지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거절하지 못하니 소임이 하나둘 늘어났고, 할 일도 점점 쌓였습니다. 지원 담당과 실천 활동 꼭지, 경전대학 진행까지 맡다 보니 집안일을 거의 할 수 없었습니다. 물 마시는 것부터 모든 것을 가족에게 맞춰 주며 살다가 갑자기 집안일에 손을 놓으니 가족들은 몹시 못마땅해했습니다. 제가 가족들을 길들여 놓고 갑자기 나 몰라라 내팽개친 모양이었습니다. 남편은 “사이비에 빠져서 니 엄마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는 저럴 수 없다”며 걱정했습니다. 문경 연수원 계곡에서 도반들과 함께 소중한 내 법당 딸이 취직 준비로 서울에 올라가 방이 비었습니다. 화상회의나 도반들과의 전화는 부부 방 옆에 붙어 있는 딸 방에서 했는데, 오랜 시간 하하 호호 시끄럽게 떠들다 보니 어느 날 남편이 당장 딸 방에서 나가라며 쫓아냈습니다. 남편은 직장 스트레스로 집에 오면 좀 편히 쉬고 싶은데, 도반들과 소통하며 크게 떠드는 소리가 불편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창고 방으로 옮겼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지저분하고 먼지 나는 곳에서 어떻게 기도하고 회의를 해?’ 싶은 마음에 너무 막막했습니다. 부부 방에서 거실로, 딸 방으로, 다시 창고 방으로 옮겨 다니며 집안에서 유랑자가 된 것 같아 몹시 억울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닐 때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인도에서 지낸 16박 17일 동안 자고, 먹고, 씻는 일이 사는 데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디서 자면 어때? 거실은 너무 편하고, 딸 방은 침대가 있어 더 좋고, 창고 방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 마음이 이해되어 방문에는 계란판을 붙이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했습니다. 남편 눈치가 보여 난방도 냉방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명상 할 때는 너무 더워 죽을 맛이었지만 ‘이것도 수행이다’라는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이제 창고 방은 저만의 공간이자, 일하고 기도하는 제 소중한 법당입니다. 2018년도 인도 성지순례 마음은 늘 왔다리갔다리 제가 화도 잘 내지 않고 “여보, 미안해. 내가 할게, 지금 빨리 할게” 하면서 남편이 원하는 걸 바로 챙겨 주다 보니, 아내가 정토회 다니면서 조금 변했다는 믿음이 생겼나 봅니다. ‘정토회 활동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변해가는 모습은 또 괜찮다’ 이런 마음인 것 같습니다. 가족 여행 스케줄을 정할 때 남편이 당신 정토회 일정이 어떻게 돼? 라며 먼저 물었습니다. 제 일정을 먼저 챙겨 주는 남편의 말은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남편은 포기할 건 포기하고, 봐줄 건 봐주며 저를 인정도 해 줍니다. 저는 이런 남편에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원망을 보다 어릴 적,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 집에 있었던 때였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즈음 창고에서 작두를 만지다가 발등을 찍었습니다. 제가 우는 소리에 동네 아줌마가 피가 솟는 발을 동여매 주었습니다. 저는 혼날까 봐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안아 주며 어떻게 하다 다쳤어? 라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프고 겁먹은 저를 마구 때렸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고, 사는 것이 버거워서 그랬다는 사실은 커서야 알았습니다. 어느 날, 제 마음이 너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부정적이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음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자 원망이 생겼습니다. 누구보다 자식을 위해서만 사셨던 어머니였는데도 말입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던 제가, 나이 들어 힘 빠진 어머니를 이제 와서 원망하고, 거기에 죄책감까지 더하니 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웠습니다. 2019년도 동북아 역사 기행 착하기만 했던 딸이 한 번도 내지 않던 화를 내자 어머니는 많이 당황해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말다툼이 늘다 보니 어머니는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고 했고, 저도 내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서로 잘한 것만 반복해서 내세웠습니다. 고생하며 키워 준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잘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명상도 하고 법사님과 상담도 해봤지만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에서 제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니와 틀어진 관계를 풀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가여운 어머니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가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어머니와 외삼촌을 먹여 살렸기에 어머니도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보내며 늘 주변 사람의 따가운 시선에 주눅이 들었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어머니는 때때로 주변을 살피고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도 아무 것도 받지 못한 부모님은 오직 일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댈 곳 없이 숨죽여 살아온 어머니의 숨가쁜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거웠고, 결혼 후에도 억척스레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가 가여웠습니다. 미소를 잃은 채 하루하루 살아내기 위해 경계하고 의심하며 억척스러운 모습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2019년도 JTS 빈곤퇴치 운동 할 수 있는 만큼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보다 저를 믿고 많이 의지하며, 힘들거나 괴로울 때면 전화를 자주 했습니다.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맺힌 한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해 몇 시간씩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하는 말은 좋은 말이나 밝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제게도 어머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잘 해야지’라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친정을 가면 어머니가 이웃들의 시시비비를 따질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부딪치지 않으려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끝까지 들어주는 남편이 고마웠지만, 차라리 친정에 안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싶어, 때가 되면 또다시 친정에 갑니다. 부딪쳐 가며,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저도 어머니도 함께 지키고 싶습니다. 부딪칠 때 나를 본다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때는 제가 저를 잘 보지 못합니다. 봉사를 할 때도 저 자신은 보지 못한 채, 일이 좋아 일만 했습니다. 한 번 맡으면 3년은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에 부쳐도 맡은 일을 그만두지 못하니, 봉사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는 에너지가 바닥이 났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저를 보았습니다. 2018년도 인도 성지순례 부처님 진신사리 앞에서.right ‘너 고집 진짜 세구나’, ‘너 진짜 화 많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어머 순식간에 마음이 확 돌아가네’ 이런 저를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 열심히 봉사했고, 분별심이 날 때는 300배도 많이 했으니 수행이 깊어졌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 퇴행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봉사는 분명 즐겁고 행복했지만, 저를 보지 않으면서 하는 봉사는 점점 더 커지는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건 분명 과정이고, 좋은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걸 알기에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이 제일 좋다 과정이니 ‘이걸 좀 고쳐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습니다. 화가 확 올라올 땐 일부러 일을 천천히 하거나, 화상회의 화면을 잠시 끄기도 했습니다. 일은 조금 늦게 진행해도 괜찮지만, 도반에게 준 상처는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매년 하던 명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잡념이 많아지고, 눈만 감으면 제멋대로인 호흡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 쉬어 가자’ 싶은 마음에 명상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봉사는 도반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까지 모두 살피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 오롯이 제 마음을 살피고, 저를 되돌아보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 줍니다. 힘들 때 저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아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박미란 님은 인터뷰 전, 옛일이 잘 기억나지 않아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은 주변 도반에게 물어보기도 했답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이번 인터뷰가 지난 날을 돌아보며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까지 환히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고 해서 고마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애써 인터뷰에 응해 준 박미란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글과 편집곽도영 각주2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배추로 쌓아 올린 공양탑_정토사회문화회관 김장 봉사
정토사회문화회관 김장하는 날, 봉사자들의 손길로 쌓아 올린 공양탑은 그 자체로 깊은 정성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리포터는 3일간 진행된 김장 일정 가운데 마지막 날만 취재하게 되어, 전 일정에 함께 한 봉사자들의 모습을 모두 담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번 김장에는 약 100명의 봉사자가 참여했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김장하는 날에도 많은 봉사자들의 마음이 모여 큰 공양을 이루었습니다. 저장고에 가득 쌓인 김치통을 바라보니 앞으로 공양간에서 김치를 맛볼 때마다 봉사자들의 분주하면서도 따뜻했던 손길이 떠오르겠구나 싶습니다. 올해도 많은 정토행자들이 공양간 봉사에 동참하기를 기도하며, 그날의 현장을 전합니다. 2025년 11월 27일은 정토사회문화회관 김장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리포터는 취재를 위해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날씨는 차가웠지만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했습니다. 지하 1층 공양간에 도착하자 높게 쌓인 김치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 김치통이 가득 차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배추 씻기 시작 리포터가 도착하기 전인 아침 7시부터 봉사자들은 절인 배추를 3단계로 나누어 씻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절여 놓은 배추의 소금기를 씻어내고 있어요. 3단계로 깨끗하게 씻은 뒤, 배추 물기를 쫙 빼고 양념 속을 넣을 예정이에요” 왜 3단계로 씻을까?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예요. 1단계에서 배추를 씻고 물이 더러워지면 2단계가 1단계가 되고, 3단계 물이 2단계로 갑니다. 그리고 새 물을 받아 3단계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계속 순환하고 있어요.” 공양간은 자리 이동이 잦으면 혼잡해지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효율적으로 순환 작업을 합니다. 한쪽에서는 9시에 도착할 봉사자를 위해 돗자리와 양념 통을 준비합니다. 7시에 온 봉사자들은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숨을 돌립니다. 한 봉사자가 3일간의 일정을 정리해서 말해주었습니다. 1일 차 김장 재료 손질하기 2일 차 양념 만들기, 배추 절이기 3일 차 소금 절인 배추 씻고 물빼기 → 배추 속 넣고 버무리기 → 김치통 저장고로 운반하기 청년 붓다 긴급 지원 잠시 후 청년 붓다들이 공양간에 도착했습니다. 예불하러 가기 전 잠깐 들러 무거운 물건을 척척 옮기는 등 필요한 일을 찾아 도왔습니다. 짧았지만 든든했던 긴급 지원이었습니다. 버리는 것 없이 쓰는 공양간 공양간에서는 배추를 씻다가 떨어지는 잎도 버리지 않습니다. 깨끗이 손질해 우거지나 겉절이, 볶음 재료로 다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봉사자들은 배춧잎 사이에 낀 낙엽이나 더러운 이물질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정성스럽게 손질합니다. 배춧잎 정리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9시가 되자 봉사자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라는 명심문으로 여는 나누기를 시작합니다. 이은숙 님 안내 공양간 총괄 담당인 이은숙 님이 봉사자의 역할을 안내합니다. “보통은 8명이 한 조인데, 오늘은 6명이 한 조입니다. 한 분은 배추를 나르고, 한 분은 양념 속을 나르고, 한 분은 배추를 통에 담아주세요. 봉사자들은 계속 오기 때문에 가능한 만큼만 하고 가셔도 됩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사고 없이 하시면 됩니다. 하다 보면 고춧가루가 눈에 튈 수도 있고, 매운 걸 많이 먹으면 속이 쓰릴 수도 있어요. 갑자기 안주가 생각난다고 나가실 수도 있고요. 이렇게 재미있게 하시면 됩니다.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기 다루듯 배추 버무리기 배추에 양념을 넣고 버무리는 손길은 마치 아기를 다루는 모습처럼 섬세하고 정성스럽습니다. 한 포기 한 포기가 소중한 먹을거리라는 마음이 모두에게 전해집니다. 김장 배추 맛을 묻자 한 봉사자는 “담백하고 맵지 않아요. 맛있습니다.”라고 웃으며 답합니다. 3일간의 김장 대장정 3일간 이어진 김장은 마침내 마무리되었습니다. 김치 저장고에는 약 80개의 김치통, 1,000kg 가량의 김치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변수가 있겠지만, 하루 두 통씩 소비한다면 3월쯤이면 모두 소진될 예정입니다. 김치통 나르는 봉사자들 “이 김치통들을 남자 세 분이서 다 날랐습니다. 힘들어도 즐겁게 해야죠. 무거운 걸 드는데 힘 안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까지 맛있게 먹기만 했는데, 김장을 도와서 누군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이제 그 은혜를 조금씩 갚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2025 김장 김치통은 헷갈리지 않도록 ‘2025 김장’이라고 표기해 보관합니다. 점심 공양 후 나누기 시간 김장을 마친 뒤 봉사자들은 중간 정리를 하고 닫는 나누기를 위해 다시 모였습니다. 김장 봉사는 처음인데요, 아침에 와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뚝딱 끝난 느낌입니다. 우리는 속을 버무리고 넣기만 했는데, 사전에 준비할 일이 정말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회관에서 밥 먹을 때마다 우리가 담갔던 김치다 하며 감사히 먹을 것 같습니다. 안양지회 최수연 님 저는 공양간에서 식자재 주문 꼭지를 맡고 있어요. 오늘 온몸으로 일하다보니 옷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이 옷을 입고 어떻게 지하철을 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배추 헹구고 설거지에 집중하다 보니 잡념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집에 가면 피곤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즐겁게 일해서인지 몸이 가볍고 머리도 상쾌합니다. 성남지회 현은영 님 다음은 정토사회문화회관 운영팀장인 김진숙 님의 소감입니다. 김진숙 님 나누기 “3일 동안 여러 봉사자 분들의 지원 덕분에 김장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일 년 동안 먹을거리가 마련돼서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합니다. 오늘 많은 일을 하셨는데 청소까지 마무리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공양간 담당 법사인 월광 법사님의 나누기도 이어집니다. 월광 법사님 나누기 “반갑습니다. 공양간 담당 법사입니다. 이름만 담당 법사이지, 사실은 맨날 밥만 많이 먹고 김장하는 날에는 이렇게 사진만 찍고 있습니다. 어제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하다 보니 회관 1층에서 지하 1층 공양간으로 짐을 내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거예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1년 내내 밥만 얻어먹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나라도 짐을 옮겨보자는 마음으로 회관에 올라가니, 마침 공양간 짐이 있어 우선 간장하고 시금치만 가지고 내려왔어요. 그러다 지나가는 분들을 붙잡고 짐이 무거우니 함께 좀 내려달라고 부탁도 하고, 마침 차에서 내리는 분이 있어 함께 힘을 모아 짐을 옮겼습니다. 그 순간 “아, 마음을 내는 게 중요하구나” 느꼈어요. 약한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마음을 내니 모두가 도와주려 한다는 걸 또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모두 관세음보살이었어요. 그러니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예하고 하면 다 됩니다. 저는 이렇게 공양간 담당 법사로 살 수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럽습니다.“ 나누기 속에 봉사자들의 기쁨과 감사, 뿌듯함이 가득했습니다. 나누기가 끝나고 공양간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니 오늘 하루가 더욱 뿌듯하게 다가옵니다. 공양간 청소 김장 마무리 후, 공양간 총괄 이은숙 님과 회관 운영 팀장 김진숙 님을 모시고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두 분은 공양간이 특별한 수행처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오히려 더 수행이 된다고 합니다. 함께 일하다 보면 ‘나도 요리할 줄 안다’는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부딪히고, 더 잘하려는 과정에서 분별심이 일어납니다. 김진숙 님은 그때마다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그렇구나 하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된다며, 일어나는 마음들을 다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곳이 바로 공양간이라고 말합니다. 이은숙 님은 시간에 맞춰 수십, 수백 명의 공양을 준비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할 틈 없이 오로지 지금 여기 일에 집중하게 되는 점을 공양간 봉사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습니다. 음식을 채우느라 다섯 개의 배식대 앞을 바쁘게 오가는 시간은, 그 자체로 명상이 따로 필요 없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김진숙 님은 가장 힘든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늘 “나는 제일 쉬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은숙 님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칭찬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서로를 지지하는 그 마음들 덕분이었습니다. 공양간은 누군가의 한 끼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온기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우리들의 좋은 수행처였습니다. 글최민지 사진최민지 지원김선숙 편집여수연 허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