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접수 : 1월 30일(금) ~ 3월 16일(월)
5개월 과정 (26년 4월~26년 8월)
자세히 보기

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7기

접수 : 1월 21일(수) ~ 3월 18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자세히 보기

불교 세계관의 이해와 체득

정토경전대학

수업기간 : 2026년 3월 ~ 2026년 8월 (5개월 과정)
접수기간 : 2026년 2월 19일(목) ~ 3월 9일(월)
자세히 보기

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자세히 보기

온라인/ 오프라인

주말명상 & 월명상

온라인 : 2월 20일(금) ~ 2월 22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3월 18일(수) ~ 3월 22일(일) / 4박5일
자세히 보기

제2회 세계 명상의 날 포럼

The Unified Mind

일시 : 2026년 3월 20일(금) ~ 21(토)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
자세히 보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속 절캉스

일정 : 1월 15일(목) ~ 3월 31일(화)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자세히 보기

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자세히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부산 승지혜 보살님 첫 번째 이야기_햇살처럼 내게 온 인연

우리의 삶은 다른 듯 닮아있어 나의 발자취가 누군가에겐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성취의 크기보다 과정 속에서 품었던 진심과 방향이 한 사람을 설명합니다. 저에게 어디로 가는가 보다 어떻게 가는가에 대해 돌아보게 했던 결사행자 승지혜 보살님의 첫 번째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부지런한 어머니, 다정했던 아버지 저는 3녀 1남 중 둘째로, 언니와 남동생, 여동생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게 일이 많아 늘 바빴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야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았지만, 가게와 집안 살림을 항상 깔끔하게 해 놓고 사는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찾아오는 친척분들을 위해 “이번엔 뭘 좀 해 먹일까?” 하던 손이 큰 맏며느리였습니다. 2025년 간월재에서 김경희 님 아버지는 아주 가정적인 분이었습니다. 직장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와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검소한 살림꾼으로 집을 사용하기 편하게 재활용품으로 물건을 만들어 고쳐 놓았습니다. 새 학기에 교과서를 받으면 아버지는 밀가루 포대를 물에 담갔다가 말린 뒤 다림질하여 책 표지를 감싸 주셨습니다. 붓글씨로 51 산수, 김경희 라고 겉에 적어 주던 세심한 아버지는, 가운데 잘라 낸 종이도 버리지 않고 잠자리와 나비를 만들어 주며 놀아 주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버지가 만든 종이 책 씌우개 대신 문구점에서 파는 유행하는 비닐 책 씌우개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우리를 깨우던 모습도 떠올리면 흐뭇합니다. 불자는 아니었지만 천수경이나 당시 유행가를 크게 틀어 놓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발을 집게발 모양으로 만들어 이불 속에 넣고는 “여기 게가 한 마리 있네” 하며 발가락으로 우리 다리를 집어 대곤 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언니 초등학교 졸업식에서.right 친구 집과 학교 운동장, 공터를 오가며 잘 놀던 저는 그만큼 무릎을 자주 깨고 옷과 신발에 구멍을 내어 들어와 어머니에게 한 번씩 잔소리를 듣곤 하던 딸이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가게 일로 바빠 외식을 하거나 가족 나들이를 갔던 기억은 없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눈을 돌리며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입학하고 어느 날 학교 정문 시계탑을 지나가는데 하얀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공감이 되었고, 그들의 말을 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학생운동은 그동안 제가 마치 딴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했습니다. 내 발 앞만 보며 주어진 길을 순탄하게 따라가던 저에게 처음으로 바깥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는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부산으로 내려와 공동육아를 시작했고, 이웃들과 마을도서관을 만들어 함께 어울렸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가장 큰 관심사는 환경 문제였습니다. 특히 ‘지속 가능한’, ‘생태’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끼던 때에 친구가 동래정토회에서 생태 강좌가 열린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2002년 두북 탑곡수련원 풀뽑기 봉사 강사들은 여러 전문가들과 원불교, 천도교, 정토회 분들이었는데, 종교인들이 화합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환경과 생태 문제를 여러 종교가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도 신선했습니다. 강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 또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보수법사님이 “생태적인 삶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을 품는 마음이다. 내 중심적으로 재단하지 않는 삶이다. 흙은 모든 것을 품는다”라고 하셨던 말씀은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고, 남는 것은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갖는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들으면서 정토회는 어떤 단체일지 궁금해졌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이 사회가 문제야. 환경 문제를 개선하려면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몇 명이 실천한다고 환경 문제가 해결되겠어” 하며 거대한 변화를 한꺼번에 이루려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답답해하고 무력감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통해 정토회는 ‘느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소중한 출발이며, 아는 만큼 작은 실천 하나라도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한 걸음 밖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는 곧바로 정토불교대학각주43에 입학했습니다. 2002년 9월 정토불교대학 개강 마이크 울렁증, 사회를 맡다 2001년 당시 불교대학은 수시 모집으로 운영되는 2년제 과정이었습니다. 6개월을 한 학기로 하여 총 4학기로 운영되었습니다. 전국에 법당이 몇 곳 되지 않았지만,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거리가 상당하여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보수법사님이 직접 전국 법당을 다니며 불교대학 강의를 맡았습니다. 개강하자마자 저는 젊다는 이유로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마이크 울렁증이 있어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정해진 멘트를 읽으면 된다는 권유에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그대로 읽는 일도 매번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3년을 반복하니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그동안 잘하고 싶어 하고, 눈치를 보며 위축되고,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저 자신을 수없이 마주했습니다. 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제 모습이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은 문경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2003년, 5년 만에 얻은 생후 6개월 된 둘째를 데리고 참석했습니다. 무대에 올라 졸업장을 받을 때 남편과 여러 사람이 번갈아 아기를 안아 주었습니다. 저는 3년에 걸쳐 4학기를 모두 마쳤고 전 과정을 개근했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개근자는 네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자 역할을 맡았기에 가능했습니다. 2001년 법복도 없이 불교대학 사회 보던 시절의 김경희 님 덤으로 받은 선물 집에서 동래정토회까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일찍 서둘러야 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법당에 나가 그 마음을 나눌 수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일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정토회의 환경·복지·통일 사회 실천 활동은 매 순간 특별했습니다. 세상에서 쉽게 하지 않는 방식의 일들이라 시작하기 전에는 무겁고 낯설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고 나면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났던 제 마음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2014년부터 1차 만일결사각주22 8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 동래정토회 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법당이자 규모가 큰 곳이었기에 부담이 컸습니다. 이전에 총무를 맡았던 분들과 저를 비교하며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자주 올라왔습니다. 다른 법당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법당과 견주어 보기도 했습니다.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쉽게 결단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대신 책임지고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기도 했습니다. 맡아서 책임진다는 일은 제게 쉽지 않은 수행이었습니다 2015년 정초 순회 법회 후 주간·저녁·청년 법회와 일요명상까지 일주일 내내 법당이 돌아갔고,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학생 수도 많았습니다. 저녁 불교대학의 경우 많을 때는 100명이 넘게 입학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저녁 활동가들이 올 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남아 기다려 주었고, 청년들에게 인사하며 간식과 저녁 공양을 챙겼습니다. 또 진행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묻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혼자 떠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일이며, 제가 할 일은 엄마 같은 역할이 아니라 저 역시 하나의 역할을 맡아 함께 나누는 일임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법당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많은 분들의 손길로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부처님 법을 듣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실천해 나가는 수행자들이었습니다. 이해가 부족해 부딪힘이 잦았지만, 그것을 꺼내 놓을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상처받고 감추고 외면하기도 했지만, 점차 굳은살이 생기며 수행을 더 깊게 해 나가는 기회로 삼는 도반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소소한 감동은, 총무 소임을 맡으며 덤으로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2008년 입재식 공연준비 총괄 상보다 더 큰 보상 18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 동래정토회는 3년간 건물 밖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기로 하고 ‘빈그릇운동’과 ‘쓰레기 제로 운동’을 실험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점심과 저녁 공양을 하는 상황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일은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동래정토회는 ‘내 마음의 푸른마당’이라는 활동과 환경 공청회를 꾸준히 열어 왔고, 환경 실천을 구체화해 온 활동가들이 있었기에 이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닐 없이 장을 보고, 식재료는 껍질까지 모두 사용해 조리하고,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 그래도 남는 꼭지와 겉껍질은 지렁이 상자에 넣거나 말려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법당 공간 안에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문화가 중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불교대학, 경전대학 학생들과 법회 참석자들에게 충분히 안내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정토회가 빈그릇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공양간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과일도 껍질째 먹어야 했는데, 수박의 흰 부분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수박의 흰 껍질은 반찬과 국으로 활용했고, 푸른 겉껍질은 얇게 벗겨 말렸습니다. 수박 보시가 들어오면 학생들이 수업을 마친 뒤 봉사활동으로 수박 겉껍질을 얇게 벗기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박 껍질 처리하는 동래법당 도반들 어느 날 한 분이 무거운 수박을 들고 동래정토회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마침 여름이라 수박 보시가 잦았고, 껍질 처리로 어려움이 많던 때였습니다. 공양간 활동가들이 선뜻 수박을 받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고맙게 받아야 할 보시물을 두고 ‘저 수박 껍질을 어떻게 처리하지?’ ‘또 수박 보시가 들어왔네’ 하며 걱정을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은 결과, 도심의 건물에서 3년 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외부로 배출하지 않는 실험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활동이 마무리될 무렵 동래정토회는 정토행자상 ‘환경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상보다 더 큰 보상은 함께 마음을 모아 이루어 낸 사람들의 변화였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물 흐르듯이 그냥 가보자 KBS홀 대강연을 준비하던 때의 일입니다. 강연 준비 방식은 사전에 충분히 연습하여 당일에는 여유 있게 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해운대정토회와 동래정토회를 합쳐 봉사자가 약 150명 정도 필요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훨씬 적은 인원으로도 진행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2019년 KBS홀을 가득 메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대강연 준비는 처음이었고, 공간은 넓었으며 팀도 여러 팀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소임까지 세분화하여 나누었습니다. 강연 동선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 보며 시뮬레이션했고, 이를 반복적으로 교육했습니다. 서울에서 여러 차례 강연 봉사를 경험한 한 분은 이렇게까지 교육하는 곳은 처음 본다며 “지독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미리 점검하여 당일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예상 범위 안에서 웃으며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KBS홀에서의 대강연은 처음 시도하는 행사였습니다. 2,500석 규모의 공간이었지만 5,000명을 모아 보자고 했습니다. 부산 전역에서 스님의 강연 포스터와 전단지,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적극적으로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약 5,500명이 모였습니다. 일부는 입장하지 못했기에 외부에 TV 두 대를 설치하여 로비에서도 강연을 시청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봉사자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좀 바꿔 봅시다” 하면 “왜요?”라고 묻기보다 “알겠습니다”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큰 규모의 강연을 한 번 치르고 나니 이후 작은 강연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도 걱정보다는 “물 흐르듯이 가 보자”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글편집이주현 각주22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각주43 정토불교대학은 인생을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곳입니다. 온라인반5개월 과정 주 1회 매주 목요일 오프라인반 5개월 과정 주 1회 매주 목요일 입학신청 httpswww.jungto.orgedujunior

[특집] 결사행자 이야기 2026.03.04. 5,519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청년지부 강화도 역사 기행

청년지부에서 기획한 이번 강화도 역사 기행은 정명 법사님의 간결한 해설로 시작되었습니다. 강화도의 전근대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고, 자세하고 유익한 설명으로 역사 지식을 넓히는 계기였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청년들은 임무에 참여하고, 점심을 함께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아봅니다. 지도를 볼 때는, 글을 읽듯이 가장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훑어봅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여행지, 맛집 등을 빼곡히 표시해 놓습니다. 가장 북서쪽에 있는 강화도를 자주 들여다보며, ‘아, 강화도에는 밴댕이나 민물장어가 유명하구나. 전등사, 백련사, 보문사라는 이름난 절이 있네,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화도의 바다 풍경 강화도는 삼별초 항쟁,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국사 시간에 배운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작년 여름 수도권 청년지부와 함께한 덕수궁 역사 기행이 좋았기에 공지가 나오자마자 냉큼 신청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학사 돕는 이, 청년페스타 방 탈출 담당 등 여러 봉사를 맡았기에, 이번만큼은 ‘일반 참가자’로 편히 즐기고 싶어 역사 탐방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청년지부에서 운전이 가능한지 물었고, 저는 ‘수처작주, 보살행’의 마음을 떠올리며 “네”라고 답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역사 기행에서는 스태프들을 태우는 운전사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날까지 역대 최악의 한파가 찾아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당일은 부처님 가피 덕분인지 날이 좋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반들을 차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습니다. 한 차례 길을 잘못 들어 조급해지고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차 안에서 첫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마다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달라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강화에 도착했습니다. 한파 탓에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강화해협은 강처럼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바닷길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염하와 도로 사이는 철책이 길게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강화는 북한과 접경 지역으로 군사 시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차가운 철책의 대비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며,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미정 연미정에서 의병 자세를 취하며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청년들 정명 법사님의 역사 해설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기행지인 ‘연미정’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형제 관계 조약을 맺었던 곳입니다. 정묘호란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를 겪고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조선 조정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연미정에서는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로 눈앞에서 조망할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선조들은 우리 땅이니 그저 아름답다고 바라봤을 텐데, 씁쓸했습니다. 강화산성 남문 두 번째 기행지는 ‘강화산성’이었습니다. 강화산성 동문을 거쳐 남문으로 이동했습니다. 당대 최강이었던 몽골군에게 끝까지 항전했던 삼별초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강화에서 진도와 제주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선조들의 얼과, 위기 앞에서 똘똘 뭉친 백성의 정신은 유구히 이어졌습니다. 또한 남문에서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자폭했던 일화와 그 후손들이 권문세가로 세도 정치의 폐단을 이끌었다는 점은, ‘불구부정’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기다리던 점심 식사는 조원들과 밴댕이 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혹 강화도에 가면 풍물 시장에서 밴댕이를 꼭 맛보길 바랍니다. 세 번째 기행지, ‘선원사지’는 고려시대 사찰 터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기 전까지 보관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어렸을 때 ‘팔만대장경’을 떠올리면 ‘전쟁 통에 불경 목판 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인력 낭비, 국고 낭비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팔만대장경 제작은 당시 흩어진 국론을 통합하고 기강을 세우는, 현대에 비유하면 제작 자체가 핵 미사일급의 위력이었다.”라는 정명 법사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정족산성에서 본 강화도 전경 전등사 둘레길 돌탑 다음 기행지는 ‘전등사’였습니다. 전등사는 특이하게 일주문이 없습니다. 대신 정족산성 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이 정족산성이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는 삼랑성의 후신이라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강화도는 단군과도 맞닿아 있구나 싶었습니다. 섬 자체가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전등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올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은 곳은 마지막 기행지였던 ‘광성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찾은 ‘무명용사 무덤’은 청년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름 없는 용사들, 특히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함경도 출신의 호랑이 포수였다는 사실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조나 조상이라 하면 으레 남한 지역 사람들만을 떠올렸던 제 안의 관념도 그 순간 허물어졌습니다. 북한 땅에서 살던 이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우리의 조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별심이 옅어지며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려진 장면처럼, 신미양요 당시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섰던 조상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래, 이것이 우리 얼이고 우리 정신이다. 나는 오늘 어떤 변명을 하며 살아왔는가?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참회했습니다. 여러모로 깊은 생각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심어준 기행이었습니다. 이 기행을 정성껏 준비한 정명 법사님과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다른 도반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역사 기행에 참여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글청년지부 김동한 사진청년지부 김동한 편집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여수연

통일 2026.02.27. 1,091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자세히 보기

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자세히 보기

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