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70년

부처님오신날

점등식 : 2026년 5월 2일(토) 오후7시
봉축법요식 : 2026년 5월 24일(일) 오전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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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년 프로그램

바라지 전국 모집

기간 : 2026년 6월 / 1박 2일 또는 부분참여 가능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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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리즈 첫 번째 책

<행복> 양장본 출간

온라인 서점 이벤트 진행중
2026년 5월 18일(월)부터 소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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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4박5일 / 7월 24일(금) ~ 7월 28일(화) *한국시간 기준
6박7일 / 7월 24일(금) ~ 7월 30일(목)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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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깨어 있는 삼매의 경지로

생방송 여름 명상 바라지

14박15일 / 7월 18일(토) ~ 8월 1일(토) *한국시간 기준
장소 : 선유동 정토연수원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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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 속 절캉스

일정 : 4월 28일(화) ~ 6월 18일(목)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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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깨달음의 장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
장소 : 문경정토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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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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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포교상]현대판 용성조사의 후예

오늘은 지난 21차 회향식에서 정토포교상을 받은 유주영 님의 수행담입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십수 년 간을 함께 번역 봉사를 해온 도반들과 지난 3년간 국제지부 콘텐츠국에서 봉사해 주신 모든 분을 대표해 받은 상이라며 그 공을 도반들에게 돌렸습니다. 워싱턴정토회 총무, 번역팀장, 미국 JTS 팀장, 콘텐츠 국장, 바라지 팀장, 북미유럽지회 지회장 등 수많은 소임을 맡고도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 유주영 님의 비결이 무엇인지 들어보겠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자유, 다시 정토회로 배가 고파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절을 했습니다. 하다가 지치면 쓰러져 잠들었고, 일어나면 다시 했습니다. 쉴 새 없이 절을 하다 보니 발목과 등, 목까지 온몸이 아팠습니다. 손톱도 깎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지면서 온갖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힘들어 내일은 포기해야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절을 했습니다. 마음의 공포가 그만큼 컸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3,000배를 100일 동안 했습니다. 2015년 4월 미국 메릴랜드 워싱턴정토회 법당에서 도반과 함께 미국 정착 생활을 하던 중, 2008년 남편 사업을 위해 살던 집을 팔고, 낯선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사업이 무산되었습니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현실은 천 길 낭떠러지로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극도의 불안으로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습니다. 그때 엄마의 권유로 오로지 부처님에게 의존하는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시작한 삼천배 기도였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 ‘삼천배 기도만 안 해도 삶이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100일을 채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 기도를 끝냈을 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더 이상 불면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몸을 괴롭히던 통증들마저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부처님께 무언가를 바라며 시작한 기도였지만, 의존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려는 힘이 생겼습니다. 백일기도를 마치자마자 워싱턴정토회에서 대중공양으로 백일기도를 회향했습니다. 정토회는 대학 시절에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2월에야 비로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어 6월에 천일결사 입재하고 11월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부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게, 소임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반들과 화합하며 일을 잘해보려 애썼지만 다른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업식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오해가 생겼고, 결국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갈등이 풀리지 않아 정토회를 떠날 결심도 했었습니다. 다행히 도반들과 깊은 나누기를 하며 오해를 풀고 지금까지 수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14일 포교상 엄마로부터의 자유 저는 어릴 때부터 쉽게 상처받고 눈물이 많았습니다. 네 남매의 맏이로 책임감이 강했고, 엄마의 지나친 기대 때문에 마음 한편이 늘 무거웠습니다. 남편을 외교관으로 둔 엄마는 외국에 나가 살면서 가까운 친구가 없었습니다. 엄마에게는 제가 친구였고,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을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힘들고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후에도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고 마음이 좀 편해졌을 때 엄마에게 어릴 적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며 지금은 괜찮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했길래 네가 힘들었니?” 하며 엄청나게 화를 냈습니다. 순간 저는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저 한마디를 바랐습니다. “네가 그랬구나, 그때 힘들었구나” 하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엄마가 나를 받아줘야지, 왜 내가 엄마를 받아주고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2009년 9월 법륜스님의 메릴랜드 해외 순회강연 중에 남편과 함께.left 그런데 수행과 〈나눔의 장〉 등을 통해 제가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엄마로 인해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최선을 다해 우리 네 남매를 키운 것은 당연하고, 내 마음을 안 받아주고, 내가 바라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괴로웠던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엄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2년 전, 여든이 되던 해에 미국에 와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평생 자기 뜻이 분명하고 고집이 셌던 분인데, 이제는 순한 아이처럼 제가 하자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한편으론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론 안도합니다. 엄마 덕분에 불법 만나 이렇게 수행자로 살아가며 세계전법에 이바지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번역은 수행 따라 워싱턴 법당 초기에는 스님의 책이나 법문 영상이 영어로 번역된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번역 봉사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육아와 가사, 직장 일, 그리고 정토회 총무 소임까지 맡고 있어 번역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경전과 법문 번역은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전과 법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저는 이해가 부족해 사전적 의미에 기대어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제가 번역한 것을 다시 들여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번역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법문을 이해하는 깊이가 아직 부족했던 것입니다. 2021년 3월 영어 천일결사 나누기 모임.right 예를 들어 돌이키고 참회하다에서 ‘돌이키다’는 처음에는 reflect on이나 look back on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들은 단순히 ‘되돌아보다’라는 의미에 머문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번역을 시작한 지 10년쯤 지난 후에야, ‘돌이키다’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내 인식 상의 오류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acknowledge the error in my perception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단어 하나부터 시작해서, 사전적인 의미만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며칠씩 씨름했습니다. 실제 영어권 사람들이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끊임없이 확인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똑같은 법문을 열 번 들어도 그때마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저 자신이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번역하는 모든 과정이 수행이자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었습니다. 외국어 불교대학은 세월 따라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6년, 한국에서 스님을 모시고 해외 활동가 수련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세계전법을 위해 영어 불교대학을 개설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먼저, 2019년부터 영어 불교대학 기획팀에서 스님의 수많은 법문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필요한 내용을 교리별·주제별로 나누어 정토담마스쿨 1 교과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법문 영상 번역이 다 완료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2022년 3월에 불교대학을 개설하였고 87명의 영어권 학생이 입학해서 71명이 5개월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매주 필요한 진행자 멘트와 법문을 허겁지겁 번역하며 정말 아슬아슬하게 불교대학 1기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이후 바로 국제지부 영어 번역팀은 정토담마스쿨 2 교재와 법문 번역을 진행하여 2023년 9월에 개설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근본불교 9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일어, 불어, 독어 정토담마스쿨도 개설했습니다. 2023년 9월 미국 메릴랜드 통역강연 홍보중.left 그러나 여전히 외국어를 할 수 있는 소수의 한국어권 봉사자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어,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학생들이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하면 이들을 정토행자로 양성해, 이들이 정토담마스쿨을 이끌게 하면 된다. 그렇게 각 나라에서 배출한 정토행자들이 전법을 이어가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는 그때까지 이 사람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또 한 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지나왔지만, 돌아보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외국인도 괴로워 수행이 해외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고뇌를 안고 살아갑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과 갈등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 수행과 봉사를 통해 어리석음을 내려놓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해집니다. 정토담마스쿨이 시작되기 수년 전, 천일결사에 입재한 아일랜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정토회가 없어 그분은 천일결사 입재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건너가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입재식은 한국어로 진행되었지만, 그분은 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손에는 저희가 번역한 《Prayer》가 들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어 사이트에 천일결사 기도 음원이 올라가 있어 외국인도 쉽게 따라 수행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영어 자료가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그분은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기도하고 절을 하며 수행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수행담을 발표하던 그분의 모습을 보며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6년 4월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스터디투어 정토담마스쿨을 이어가며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이 점점 더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그 중에는 몇 해 전 어린 아들을 잃은 분도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누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큰 상처였을 아픔이었지만, 차분하게 나눌 수 있을 만큼 슬픔을 지나온 듯했습니다. 그때 제가 번역한 스님의 법문이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포교 활동을 하며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2022년, 13년간의 노력 끝에 정토담마스쿨이 시작되던 순간의 벅찬 감동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것은 2차 만일결사의 목표인 세계전법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한국에서는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준비된 자료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지부에서는 모든 내용을 현지 정서와 언어에 맞게 새로 번역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자료를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에, 세계전법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처럼 큰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지금 국제특별지부에는 54명의 현지어권 정토회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록 많지 않은 인원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수많은 봉사자의 정성으로 수행자 길을 걷고 있는 소중한 도반들입니다. 앞으로 세계 전법의 주체로 성장해 갈 이들과 함께 오늘도 묵묵히 세계전법의 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나와 함께 가는 도반들이 모두 세상의 희망입니다.” 2026년 5월 미주 정토회관 명상홀 개원식에서 국제지부회원들과 함께 유주영 님과의 대화 속에서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재 용성기념관 도슨트 소임을 맡아 용성 조사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조사님께서는 어려운 한문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백성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해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유주영 님이 하고 계신 일이 용성 조사님께서 하신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주영 님이 번역한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나는, 세계 속 수많은 외국인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글배병갑 희망리포터 편집윤정환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2026.05.27. 149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따뜻했던 눈빛과 손길을 기억합니다_두북 어르신 봄나들이

2026년 4월 16일,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 속에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두북 어르신 봄나들이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두북 수련원에는 이미 중울산, 동래, 해운대 3개 지회 봉사자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나무가 푸르른 새벽 두북 수련원 겨우내 움츠렸던 산천초목은 새잎과 여린 가지들로 봄을 맞습니다. 마주한 봄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따뜻했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움직여 피곤할 텐데, 봉사자들 얼굴에는 어르신들을 맞을 기대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행사 팀장을 맡은 윤미자 님은 여는 모임을 하고 역할 설명과 당부가 이어집니다. 다 함께 명심문으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내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 먼저 손 내밀고 다가가겠습니다.” 어느새 모여든 버스 3대와 승합차 2대, 봉사자 승용차 4대가 근처 12개 마을 어르신을 모셔 옵니다. 도착한 150여 명의 표정에서 설렘이 묻어납니다. 봉사자들은 꼼꼼히 출석 체크하고 한 분 한 분에게 목걸이 신분증을 걸어드립니다. “오늘의 금목걸이네” 할머니 한 분이 노란색 종이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며 농담을 건넵니다. 오늘의 금목걸이를 받고 빠뜨리지 않도록 꼼꼼히 선물을 전하는 문미경 님 집에 아픈 소를 두고 차마 나올 수 없었다는 할아버지 소식을 들었습니다. 함께 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소를 가족처럼 아끼는 마음이 그려져 따뜻했습니다. 한 시간을 달려 포항 내연산 자락에 자리 잡은 보경사에 도착했습니다. 미리 도착한 선발대가 길을 밝히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내 표지판을 들고 마중하는 임명숙 님 일주문을 지나 부처님의 세계로 잠시 틈을 타 미소가 아름다운 정도현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환한 미소가 예쁜 정도현 님 “보리수 10기를 인연으로 두북에서 매주 JTS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반찬 배달과 목욕 봉사로 어르신들을 자주 뵙지만, 함께 나들이하여 더욱 뜻깊고 좋은 시간입니다. 어르신들이 웃으며 행복한 모습에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투박한 손으로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하는데 뭉클했습니다.” 울퉁불퉁 자갈길, 우리가 도와 드려요. 어르신들이 보경사에 도착하자 봉사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집니다. 속도를 맞추어 기다리고, 손을 내밀어 힘을 보탭니다. 보행이 힘든 어르신은 휠체어로 함께합니다. 굽은 허리가 봄나들이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평소 보고 싶었고, 안부가 궁금했던 친구, 지인들을 만나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보듬으며 마음을 나눕니다. 비록 발걸음은 엇박자일지라도 그리웠던 마음을 전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천왕문 앞에서 법륜스님과 보경사 주지 탄원스님이 어르신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법륜스님은 보경사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보경사는 불국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대덕 지명 법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입니다. 그 후 고려 시대에 중창 불사를 하고 세월이 지나 조선 숙종 때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절을 새로 지었습니다. 한편, 현대에 크게 잘 지은 법당도 있지만, 잘 지으나 못 지으나 예전 건축물을 둘러보자고 한 스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 함께 이동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법륜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경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중 돌계단 앞에서 봉사자들의 섬세한 손길 마을별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사진 촬영이 한창일 때, 배내 마을 이름이 이중 마을로 개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법륜스님이 배내 마을이 더 좋은데 왜 바꿨냐?라며 농담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시간 같은 추억을 가지고, 깊은 유대감으로 이어져 온 공동체이기에 가능합니다. 두 팔 가득 하트를 크게 그려보기 주지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은 다음 행선지로 향합니다. 도착한 곳은 경주의 뷔페식당입니다. 차창 밖으로 싱그러운 자연이 그려내는 생기에 이동하는 한 시간이 즐겁습니다. 미리 도착한 선발대는 어르신들의 식사와 음료까지 만찬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맛있는 식사 후 법륜스님은 즉문즉설과 불안정한 현재 세계정세에 관해 설명하고 개인의 작은 실천이 있기를 당부했습니다. 참가자들과 봉사자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습니다. 이어 대경지부 문화 예술팀의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여흥의 시간이 열립니다. 갈고닦은 실력이 펼쳐지고 정토회 BTS 대경지부 공연팀 함께해서 모두가 행복한 날,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무대를 보여준 이명애 님의 참여 소감을 들어봅니다. 재주꾼 이명애 님 “어르신들의 봄나들이 봉사지만, 저희도 나들이하듯 화창한 날에 즐거운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런 봉사라면 신청 경쟁이 붙지 않을까?라는 행복한 상상도 해봅니다. 역사가 깊은 두북 어르신 나들이에 함께하면서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법륜스님과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현하고 손을 꼭 잡는 두북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화광 법사님의 축하공연 화광 법사님은 목청껏 한 곡조 힘차게 뽑았습니다. 어르신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곧이어 신명 나는 어르신들의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멋스러운 어르신 국악 한마당 어르신들과 어우러진 공연팀과 봉사자들 두 시간 동안, 춤도 추고 노래도 마음껏 불렀던 여흥을 끝으로 행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은 오늘 행사에 수고한 부산, 울산지부 봉사자들과 공연팀에 감사를 전했습니다. BTS 공연팀에서 정태남 님 수행자의 자긍심을 보여준 공연팀, 정태남 님의 소감을 들어봅니다. “두북 어르신 잔치에 공연팀으로 참여하며 모처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노래자랑 시간에 법륜스님이 앞이어도 어르신들과 함께 막춤을 추며 흥겹게 놀았습니다. 정토회의 다른 활동에서는 접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어르신들의 행복한 모습에 저도 행복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무대를 세팅하는 봉사자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수행의 힘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정토회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함께한 어르신들의 표정을 한 번 더 담고 싶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활짝 웃으며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감사함과 벅찬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르신들 만수무강하세요. 가을에 또 뵙겠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봉사자들은 행사 뒷정리와 닫는 모임을 했습니다. 운전 봉사로 함께한 김남동 님을 만나 나들이 동행 소회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듯 잘 쓰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오늘의 운전사 김남동 님 “저는 봉고차에 봉사자들을 태우고 보경사로, 또 식당으로 이동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허리가 땅에 닿을 듯한 할머니를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아팠습니다. 대전에 있는 91살의 어머님이 생각났어요. 이 좋은 자리에 한가지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가슴 벅차고 뿌듯한 하루였습니다. 봉사는 역시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번 배웁니다.” 끝으로 화광 법사님의 닫는 인사입니다. 이로써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어르신들 봄나들이를 매듭지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 모두 출동 태세로 나타난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이것은 법륜스님, 유수스님이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이 모든 것을 이루고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가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새벽에 울컥했어요. 봉사자들 덕분에 잘할 수 있었어요.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법륜스님과 봉사자 기념사진 잇따라 사진 찍는 카메라 앞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준 봉사자들에게 고생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하루를 꽉 채운 수행자들은 그저 행복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서툴고 새롭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추억 속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따뜻했던 눈빛과 손길을 떠올리며 어르신들 손을 잡고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김희진 사진김미향 , 서은주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

복지 2026.05.14. 2,041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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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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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