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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100년을 만나 동행하다
구자웅 님은 2013년, 21년의 치열한 직장 생활을 정리 해고로 마무리하고, 일 년 정도 도서관을 다니며 법정 스님과 경전에 빠져 지내다 지인의 권유로 평화재단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강좌를 들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의 「새로운 100년」 읽고, 평소 고민했던 평화와 통합의 비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좌가 끝나자마자 바로 평화재단 통일의병각주29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학생 운동으로 시작된 열정이 평화재단 통일의병으로, 지금은 정토회의 다양한 실천 활동으로 이어져 인생 이모작을 알차게 짓고 있는 구자웅 님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보겠습니다. 2024년 6.13 만인대법회 음원 녹음 정토사회문화회관 6층 구자웅 님 삶을 흔들었던 자책의 굴레 학생운동을 하면 자연스레 노동 현장으로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며,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오자, 사무직으로 취직해 운동을 이어가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습니다. 운동가에게 취직은 또 다른 형태의 운동이었고, 사무직에서도 노조를 만들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민주적 요소를 확보하며, 구성원들이 민주사회에서 거리로 나설 수 있을 만큼 힘을 조직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두려움 때문에 노동 현장이 아닌 사무직을 선택했습니다.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은 졸업을 못 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학점을 꾸준히 관리한 덕분에 대기업 소프트웨어 연구소의 실력 있는 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전원 버튼밖에 눌러본 적이 없어서, 매일 컴퓨터 용어를 외우고 묻는 일이 일상이었고, 욕도 많이 들으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운동과 생계를 병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고, 마음과 달리 금융권이나 전문직에서는 노조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2024년 11월 평화재단 20주년 기념행사 구자웅 님 부족한 업무 능력을 메우기에 급급했고, 업무 부담은 날로 늘어갔습니다. 성실함과 책임감만큼은 누구보다 강했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에는 늘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창조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했고, 세상을 바꾸고 싶던 젊은 날의 열정과 달리 사회운동과 점점 멀어지는 현실 속에서 생계를 위해 사는 자신에게 자괴감도 컸습니다. 특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는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왜 나는 창조적이지 못하고, 남이 벌여놓은 일의 뒷정리나 하며 문제 해결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과 비교해 생긴 열등감으로 스스로 한계를 만들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학생 운동의 명암 군부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학업까지 포기하며 헌신했던 이들이 노선 차이로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싸웠던 경험은 오래도록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 일은 ‘평화와 통합’이 왜 필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해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평화와 통일은 서로 옳다고 주장하며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모아 함께 추진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화와 통일이 특정 계층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이 문제는 어떤 정당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결정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2025년 8월 동북아 역사기행 두만강 공원에서 구자웅 님 학생운동을 끝내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한동안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일에서 능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면, 학생운동으로 공부할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가 늘 따라다녔습니다. 여전히 치고받고 싸우는 세상에 대한 답답함, 생계에 묶여 예전처럼 살지 못한다는 자책, 남과 비교하며 생기는 갈등을 50대까지 품고 살아왔습니다. 퇴직 후, 시민 학교의 인연으로 법륜스님의 「새로운 100년」을 접하며 제가 그렇게 고민했던 것이 그대로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평화재단의 핵심 키워드인 평화와 통합은 제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았습니다. 학생운동 막바지에 노선 차이로 갈등하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돌아선 경험에서 생긴 응어리와, 여전히 남아 있던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통일의병’을 만나며 풀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원리가 ‘통합’에 있고, 이는 계급이나 계층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며 2016년에 에 참가했습니다.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해야 통합이 가능했습니다. 통일의 형식이 어떻든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면 전쟁은 일어날 리 없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이자 평화이며, 곧 통일이고 내가 자유로워지는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2015년 12월 7일 평화재단 통일의병 법륜스님의 통일이야기 봉사 구자웅 님 통일의병을 시작으로 잘 쓰이고 있습니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자 ‘법륜스님의 통일이야기’ 순회강연이 진행되던 해였습니다. 젊은 시절 인연이 있던 평화재단 사무처장의 권유로 부스 팀장과 무대 팀장을 맡아 스타렉스를 타고 전국 강연장을 누볐습니다. 직장을 그만둘 당시부터 평화·통일 관련 봉사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시작한 활동은 2016년 말 평화재단 평화운동본부의 상근 봉사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평화재단 통일의병 사무처장을 맡고 있습니다. 2022년은 전법행자로 서대문지회 복지 꼭지를 맡아 영양꾸러미각주32, 연탄 나눔, JTS 거리캠페인을 이끌었고, 불대홍보활동, e실천학교, 에코시네마 진행자, 지부 다문화 담당, 인도성지순례 스텝으로 동행하는 등 평화재단과 지부를 오가면 10년 째 잘 쓰이고 있습니다. 불법을 만나 알아차리다 2016년 1월 을 다녀온 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마치고 발심행자각주33가 되면서 정토회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늦잠 자던 습관 때문에 천일결사각주26의 새벽 정진이 쉽지 않았지만,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놓친 날이 있어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어갔습니다. 2023년 인도성지순례 구자웅 님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때, 또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단정 지을 때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나 갈등과 논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알아차림이 깊어지면서, 상대의 말투나 일상의 작은 일로 갈등이 생겨도 예전처럼 쉽게 폭발하거나 밀어붙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괴로움이란 결국 한 생각에 사로잡힌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지는 이제 겨우 3년 정도입니다. 말로는 10년을 수행했다지만, 사실 흉내만 내던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50대 초반까지는 부족함과 못하는 점에만 매달려 허덕였지만, 지금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살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번 정일사각주3 과제는 ‘끝까지 듣기’라고 정했습니다. 예전에는 주장하고 논쟁하며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듣기보다 말하는 쪽이었고,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 답변을 생각하느라 상대방 얘기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불법을 접하며 주장보다 경청이 조금씩 자리 잡고, 집착과 논쟁이 줄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과 언성을 높일 때도 있지만,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반대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으로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다름을 인정하려 애씁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고 이를 실천하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2일 평화재단 통일의병 법륜스님의 통일이야기 구자웅 님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 제 어린 시절은 늘 부족했고,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19살에 집을 나온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한 해군 상사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월급을 받아도 생활비를 주지 않자, 어머니는 사글셋방에 살면서도 일수를 해 삼 형제를 키우고 가르치셨습니다. 집안 사정을 알았기에 저는 어머니께 손 벌리지 않으려고 놀이에서 딴 구슬과 딱지를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어머니는 ‘내 자식들은 대학까지 보내야 한다.’라는 목표가 있었고, 생활력 강한 어머니를 닮아 저도 학생운동이든 직장 생활이든 늘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상처 아닌 상처를 드린 기억도 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현관 앞에 버려져 있던 사회·과학 서적들을 보고 어머니께 거칠게 대들었던 일, 학생운동으로 집을 나와 유치장을 다녀온 일 등…. 명절이면 친척들에게 ‘정신 못 차렸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훗날 아버지가 둘째 아들 덕에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좋아졌다.라고 말하셨을 때는 뿌듯했지만, 사실 저는 20대 내내 부모님께 걱정만 끼친 아들이었습니다. 고맙고 미안한 아내와 딸 2013년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공부는 계속되었고, 소프트웨어 개발, 온라인 서비스 업무로 잦은 야근은 기본이었습니다. 밤샘, 새벽 시스템 장애 대응까지 직장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다 집사람과 아이들과 점점 소원해졌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늘 지쳐 있었고, 맞벌이하는 아내와도 각자 버티며 살아가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선후배 관계에서 비롯된 인연에 가부장적인 태도까지 더해져 말에 힘이 실리다 보니 갈등이 생기곤 했습니다. 2025년 부처님 오신 날, 정토사회문화회관 봉사자 구자웅 님 정리해고 과정을 겪으면서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그러면 돈은 벌어오지 않아도 좋으니,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보라라며 어렵게 수긍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퇴직금을 나누어 쓰며 생활했고, 그 덕분에 저는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흔쾌한 동의는 아니었지만, 사실 무엇보다 고맙게 느끼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함께 학생 운동했던 귀엽고 당찬 후배였습니다. 가끔 내가 쉬고 싶을 때 당신이 먼저 쉬었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내에게 남아있을 서운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압니다. 고맙고 미안한 아내와 조금씩 대화를 늘려가겠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소박하게 지내며 아내와 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마음을 더욱 넉넉히 쓰며 살고 싶습니다. 또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인생의 이모작을 펼쳐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대로 충만합니다’, ‘그저 다만 할 뿐입니다’라는 명심문으로 기도한다는 구자웅 님.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모습에서 수행자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특정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평화, 기후, 환경의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구자웅 님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글손해경 희망리포터 편집이주현 각주3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각주7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각주26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각주29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화해·상생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민간단체. 통일의병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강령과 정관에 동의하면 가입 가능하며, 정기회비를 내고 각종 통일의병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음. 홈페이지 httpwww.tongilkorea.kr 각주32 영양꾸러미 국제구호단체인 JTS가 2016년부터 청소년 모부가정, 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결식아동 등 취약계층을 찾아 여름, 겨울방학마다 결식아동을 위한 식료품을 지원하는 사업. 각주33 발심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회원가입 신청서를 제출해야 함. 발심행자 3년 후 서원행자 자격이 갖추어짐.
설렘 가득 첫 발걸음!_JTS서울다문화센터 개원식
기다리던 그날입니다. 안산, 부산, 일산에 이어 정토사회문화회관에도 JTS다문화센터가 힘찬 개원식을 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지난 11월 16일 오후 13시 30분에 시작되는 JTS서울다문화센터 개원식을 맞아 정토회원과 다문화가족, 봉사자들이 맡은 역할을 준비했습니다. JTS서울다문화센터 개원식에서 어떤 소중한 순간들이 펼쳐졌을까요? 행사장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고, 곳곳에서 작은 환호와 따뜻한 인사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날, 참석자들을 한순간 멈춰 서게 만든 특별한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이 모두의 눈길을 붙잡았을까요? 그리고 이 새로운 JTS다문화센터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게 될까요? 곧 이어질 이야기 속에서 그 답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회의사진 개원식 준비가 한창이던 회의실 안은 묘한 긴장과 설렘이 공존했습니다. 행사 순서가 마지막으로 조율될 때마다 실무자들의 속삭임이 오가고, 사회자의 멘트 한 줄까지 다시 점검하는 모습에서 오늘 행사가 가진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조금 더 따뜻하게 표현하는 게 좋겠습니다.” “내 외빈 소개 순서를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이처럼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기려는 마음이 모여, 개원식을 찾을 모든 이들을 환영하려는 준비가 차곡차곡 완성되어 갔습니다. 접수, 맞이팀 공양팀 공연팀 한편,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에서는 봉사자들이 현수막과 안내 배너를 정리하고, 공연팀은 동작 하나하나를 맞춰가며 연습을 하고, 공양팀은 여러가지 먹거리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아직 시작 전인데도, 마치 이미 축제가 시작된 듯한 활기와 따뜻한 공기가 행사장 안에 가득 퍼지고 있었습니다. 13시 30분, 사회자 허안숙 님의 사전 안내를 시작으로 기다리던 JTS다문화센터 개원식이 막을 올렸습니다. 먼저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이 진행된 후, 이어서 떡케이크 커팅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떡케이크 커팅에는 유수 스님, 정토회 대표 전해종 님, JTS 대표 김기진 님, 안산 마하매우나워 사원 삿뜨 위무뜨 스님, 대구 마하매우나워 사원 아리아 위지트 스님, 서울 네팔법당 쿤상 스님, 태국 붓다라마 쉬라삭 스님, 피터 스님, 스리랑카 다문화 커뮤니티 대표 기산드 님, 전 남서울대학교 교수 림욕손 님, 시명 법사님, 월광 법사님, 주점란 님, 오중열 님, 곽우석 님 등 여러 귀한 분들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개원식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마음으로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럼 케이크를 함께 자르겠습니다.” 사회자는 힘차게 안내했고, 참석자들은 한마음으로 떡 케이크를 함께 자르며 개원을 축하했습니다. 커팅식 사진 커팅식과 함께 JTS서울다문화센터의 힘찬 출발이 시작되자 유수스님의 다문화센터 개원 취지와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 “우리가 다문화센터를 만든 것은 외국에서 오신 많은 분들이 우리 사회의 기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고, 법률적, 의료적, 재정적, 그리고 생활 측면에서 마땅히 주어져야 할 혜택을 누리지 못할 때 저희는 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로하는 것이 필요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을 때 그에 대한 응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저희들이 돕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여기 계시다가 각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한국을 칭찬할 것이고, 나쁜 이미지라면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유수 스님의 법문 후 정토회 대표 전해종 님의 인사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다문화 인구는 더욱더 많아질 것입니다. 특히 20년 정도 후에는 다문화인들과의 갈등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에 대비하여 먼저 준비를 하자는 취지에서 본격적인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출발을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먼저 개원했어야 했지만, 준비 기간이 좀 있었습니다. 2024년 3월에 부산, 일산에 개원을 했고, 이제야 서울다문화센터가 개원하게 되어 다행입니다. JTS서울다문화센터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지 모르겠지만, 전체 다문화 사업을 컨트롤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수 스님과 전해종 님의 말씀을 들으며, 다문화센터가 대나무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힘차게 개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함께 한 모든 분들의 가슴에 자라나는 듯했습니다. 이어서 미얀마에서 오신 나이치누누 님의 축하 공연, “아칫 토 피안 페 바”—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싶은 마음을 담은 노래—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마치 고향 미얀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나이치누누 님 감동의 여운이 이어지는 가운데, JTS서울다문화센터 개원 경과보고는 서제지부 다문화센터 개원 TF 팀장 곽우석 님이 맡아 주었습니다. 곽우석 님의 보고는 약 13개월간 준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압축된 시간이었으며, JTS서울다문화센터가 어떤 절차와 노력을 통해 개원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던 감사하고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곽우석 님 이어 다문화사원에서 오신 스님들의 소개 후 대표로 쿤상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쿤상 스님 스님들 우리도 수행자로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습니다. 각각 법당도 여기저기 운영하고 있고 법을 나누는 이유도 개인적으로 뭔가를 하려는 것보다는 여기 나와있는 노동자들과 이주민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분들이 이렇게 큰 다문화센터를 개원해 주신 것이 저희 같은 외국에 나와있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그동안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쿤상 스님께서는 수줍은 듯하지만 또렷한 한국말로 조용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담담한 표현 속에는 왜 다문화센터가 반드시 개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깊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어 참석하신 많은 분들의 소개가 진행되었습니다. 서제지부 시명 법사님, JTS 안산 다문화센터 담당법사이신 월광 법사님을 비롯해 JTS 국장 박영숙 님, JTS 봉사자들, 서제지부 지부장 주점란 님, 사무처 이은정 님, 김영희 님 등 여러 봉사자들의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는 이날의 진정한 주인공들인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에서 온 다문화 가족들의 인사가 릴레이처럼 계속되었습니다. 소개될 때마다 터져 나온 박수와 환호는 JTS서울다문화센터 개원의 성공을 알리는 힘찬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월광 법사님의 축사는 막 피어오르는 새싹처럼 생명력과 희망을 가득 품은 이야기였습니다. 월광 법사님 “반갑습니다. 지금 마음 너무 떨리고 행복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서울에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네 번째로, 제일 큰 다문화센터가 개원한다는 건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일이고요. 앞에 스님께서 다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다 연기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법이잖아요. 부처님 계시고 법이 있고 또 지도자 스님들과 우리 봉사자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하나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든든하시죠. 근데 뭐가 안 되겠습니까? 우리는 다 잘 될 일밖에 없습니다. 그다음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곳곳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해결하기 위해서 만든 귀한 자리인 만큼 저는 지금 마음이 행복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 드리고 고맙습니다. 공연팀 드디어 오랜 시간 기다려온 축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제지부와 청년지부, 정토회 회원, 그리고 태국에서 온 라사미 님이 함께 준비한 무대로 기대가 더욱 컸습니다. ‘행복합니다’라는 곡명처럼 흥겹고도 감동적인 무대였으며, 특히 라사미 님의 밝고 진심 어린 표정과 에너지는 공연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주점란 님의 닫는 나누기로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주점란 님 마음도 따뜻해지고 활동도 같이 하고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공간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이 되신다면, 정토사회문화회관 1층부터 둘러보시고 지하 3층에 있는 JTS사진전도 관람해 주세요. 다문화 가족들과 스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에서 이런 행사를 해봐야겠다, 네팔 사람들과 함께 이런 활동을 해봐야겠다 하고 마음껏 구상하시고, 이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해 주시면 좋겠어요. 오늘 스님과 다문화 가족들이 이 공간을 마음껏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공간을 마음껏 써 주실수록 이 건물은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제가 다른 건 못해도 구호는 잘한다고 하는데 외치고 싶은 구호는 하나입니다. JTS서울다문화센터 파이팅입니다. 다 같이 한번 해볼까요? 전체사진 모든 행사를 마치고 다과가 준비된 곳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개원식 내내 ‘참여하길 정말 잘했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센터의 비전과 향후 운영 방향이 소개되었고, 지역사회와 다문화 가족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발표되면서 앞으로 펼쳐질 모습들이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서울에도 드디어 다문화센터가 문을 열었다”라며 환희와 설렘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습니다. JTS서울다문화센터는 앞으로 교육·상담·문화교류의 장으로서 다문화 가족들을 가까이에서 지원하고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 계획입니다. 새로운 터전에서 펼쳐질 다양한 활동들이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가 모이는 가운데, 이번 개원식의 감동과 의미를 더 깊이 담기 위해 개원식 전 봉사 준비를 하는 봉사자들 인터뷰를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청년특별지부 서울남부모둠 김다윤 님 저는 청년특별지부 서울남부모둠 소속 김다윤입니다. 저는 사실 어제 급하게 합류한 거고 제가 아는 청년 도반이 같이 하자고 해서 왔습니다. 처음에는 좀 오기 싫었는데 그냥 하다 보니까 좋은 마음을 내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있고 그리고 월광 법사님께 좀 힘을 실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서울제주지부 양천지회 이현주 님 양천지회 이현주입니다. 오늘 저희는 1층 맞이 봉사 맡아가지고 오게 됐는데 그동안 다문화센터 개원한다는 소식은 스님의 하루에서 조금씩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동안 오랫동안 고생해 오신 분들이 드디어 개원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도 작은 봉사라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은 기쁜 마음입니다. 글윤보경 사진오미경, 조문순, 윤보경 편집권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