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접수 : 1월 30일(금) ~ 3월 16일(월)
5개월 과정 (26년 4월~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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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세계관의 이해와 체득

정토경전대학

수업기간 : 2026년 3월 ~ 2026년 8월 (5개월 과정)
접수기간 : 2026년 2월 19일(목) ~ 3월 9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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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만일결사

제2차 천일결사 입재식

2026년 3월 15일(일) 오전 9시 30분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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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7기

접수 : 1월 21일(수) ~ 3월 18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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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법회 : 2026년 3월 26일(목)
열반재일법회 : 2026년 4월 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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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오프라인

주말명상 & 월명상

온라인 : 2월 20일(금) ~ 2월 22일(일) / 2박3일
오프라인 : 3월 18일(수) ~ 3월 22일(일) / 4박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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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세계 명상의 날 포럼

The Unified Mind

일시 : 2026년 3월 20일(금) ~ 21(토)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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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도심속 절캉스

일정 : 1월 15일(목) ~ 3월 31일(화)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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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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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보리수? 아직도 잘 모르지만_마음은 편안합니다.

김창래 님은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도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이를 극복하였고, 직장에서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정토회를 만나 수행을 통해 그 위기를 이겨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발바닥 파스 사건’으로 볼 때, 매주 토요일 문경을 오가는 보리수 활동이 육체적으로 힘들 법도 한데, 김창래 님은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바로 김창래 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가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진다 충북 진천에서 8년간 일하던 직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급여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2년이 지나자 5,000만 원 정도 빚이 생겼습니다. 아무런 계획도 돈도 없이 시작한 동거 생활은 제 살 깎아 먹기 식으로 서로 힘이 들었습니다. 딸린 사람 없는 혼자 몸이었다면 그저 내 몸 하나 지키면 되지만, 그게 아니다 보니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저축은 꿈도 못 꾸고 신용도가 바닥까지 떨어져서 이자를 조금 낮출 수 있는 대환대출도 안 되었습니다. 결국 회사가 문을 닫을 즈음 직장과 동거생활 모두 정리했습니다. 거래처 사장님 소개로 청주에 와서 다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째입니다. 입사한 날부터 하루 12시간씩 토요일까지 일했습니다. 일요일과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 쉬는 날 없이 일하며 월급뿐만 아니라 특근비와 시간외수당까지 빚을 갚는 데 보탰습니다. ‘내가 한 일이니까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 술에 의존했고,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고혈압이 생기고 치아도 하나둘씩 손실되었습니다. 5년이 지나면서 빚을 다 갚고 드디어 여유롭게 저축도 하면서, 생활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굿네이버스 등 세 군데에 매월 정기적으로 기부한 것입니다. 어렵게 살다 보니 밥값을 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항상 형과 누나들이 밥값을 계산할 때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내가 밥 한번 사고 싶고, ‘나 같은 사람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문경 보리수 9기 모임 중에 또 다른 위기와 불안감에 스스로 찾아간 그곳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빚을 모두 갚고 생활이 안정되자 휴일에는 쉬고 싶었고, 정규 근무 시간 외에는 이전보다 일하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쟤는 원래 쉬지도 않고 일하던 애야, 그런데 요즘엔 왜 일을 더 안 해?”, “초심을 잃어버린 거 아니야?”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욕먹는 것도 지치고, 일도 점점 하기 싫어졌습니다. 자잘한 차량 관련 사고가 잇따라 일어났고, 거래처에서도 내가 한 일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회사에서 내 입지가 흔들렸습니다. 겉으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위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를 운전하다가 법륜 스님 얼굴이 나온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하기에 입학을 하고, 졸업할 무렵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경전대학 수업을 듣고, 실천활동과 수행연습 과제를 하면서 도반들과 나누기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행이 되고 내 마음을 살필 수 있어 회사에서도 점점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졸업 무렵 다시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과연 졸업 후에도 내가 잘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침 경전대학 진행자로부터 보리수 정진에 대해 들었습니다. 성격상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움직이는 걸 선호해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에 무조건 접수했습니다. 보리수 회향수련 중에 힘든 게 별것 아니더라 아무것도 모르고 보리수 정진에 참여하는 바람에 매주 문경수련원에 가야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고장이 잦은 차를 부랴부랴 바꾸고, 고갯길 두 개를 넘어가면서 수련을 이어갔습니다. 쉬는 토요일이 있는 첫째, 셋째 주말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푹 쉬며 잠을 보충하고, 다른 하루는 수련원에 다녀와도 크게 피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일하는 토요일 주말이었습니다. 문경을 오가는 길에서 졸음이 쏟아지면 어김없이 중간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여야 했습니다. 일 수행이 끝나고 30분 명상 중에 졸기도 하지만, 운전 중 졸음이 쏟아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왜 보리수를 신청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면 더 고된 하루가 기다리고 있어서인지 힘든 게 별것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수련이니까 조금 힘든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명상 후 나누기에서 다른 도반도 졸았다는 얘기를 들으며 ‘다들 피곤해하면서 봉사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저는 지각하는 걸 싫어해서 아침에 문경에 갈 때 너무 빨리 달리다가 여러 차례 길을 벗어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입니다. 보리수 활동 중에 몸살에 붙인 파스가 마음을 보여주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일 수행을 마치고 귀가했는데, 그날따라 무리했는지 몸살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약이 없어서 어쩌지 하다가 문득 유튜브에서 본 ‘파스를 발바닥에 붙이고 자면 좋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거라도 해보자’ 싶어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몸이 가볍고 개운했습니다. 발바닥 파스가 정말 효과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양말을 신으려고 보니 파스가 잘못 붙어 있었습니다. 끈끈한 약품이 묻은 쪽을 발바닥 살에 붙이고 부직포로 고정해야 하는 데 반대로 되어 있었습니다. 크게 웃음이 났습니다. 파스를 잘못 붙였으니, 효과가 전혀 없어야 하는데, 내 마음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신 일화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행복과 불행이 다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를 실제 경험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체험하고 한결 자유로워졌습니다. 법사님이 “요즘 힘들다던 거래처에 가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1년 넘게 공부하면서 제 마음이 바뀌어서인지 그전보다 훨씬 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왜 일을 저렇게 할까? 저렇게 하면 힘들 텐데…’라며 내 방식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습니다. 저는 몸을 쓰는 일을 오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좀 더 쉽게 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혀왔습니다. 그런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다르게 일하는 사람을 보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나곤 했습니다. 정토회에서 ‘나를 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거래처나 상대방이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 자신을 바꾸는 데도 한참 걸렸는데, 다른 사람을 탓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살을 안으로 돌리고, 어떻게든 내가 이해하자고 생각하니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연습하고 또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일은 또 생기고, 내려놓는다고 해도 다시 올라옵니다. 그때마다 다시 또 내려놓습니다. 수련 덕분에 되찾은 건강한 수행자 보리수 입재 수련을 마친 뒤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참가자는 정토회 회원보다 일반인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정토회 보리수 회원이라고 소개하며, 관심을 보이는 분에게 간단히 보리수 활동을 설명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이 봉사 활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뜻깊었습니다. 깨장 수련이 끝나고 참가자를 대상으로 대화방이 개설되어 매일 아침 기도 대문을 열고, BBS에서 제공하는 부처님 말씀도 문자로 공유했습니다. ‘엄지척’을 가장 많이 달던 동기 한 분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마치 제 일처럼 기뻤습니다. 깨장 이후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예초기를 메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풀을 베는 일 수행도 했습니다. 수련원이 산 중턱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등산하듯 몸을 움직이게 되었고, 그 덕분인지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와 고혈압 약을 더는 복용하지 않습니다. 치과 치료도 시작했습니다. 살릴 수 있는 치아가 많지 않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실천하다 보니 건강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매주 수다원에서 보리수 일 수행 전에 함께 읽는 스님 말씀이 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읽을 때마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다르게 느껴져 신기합니다. 돌멩이를 둑에 모아둘지, 밭 한가운데 버려둘지 있을 자리를 생각하듯, 내 마음도 어디에 어떻게 놓아야 자연스럽고 행복한지 일 수행을 하며 가만히 집중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회사에 일하면서 쌓인 마음속 티끌이 체에 걸러지듯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듭니다.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내려놓는다고 해도 자꾸 걸리는 것은, 온전히 내려놓지 못해서 그렇습니다”라는 법사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과 수행이기에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여전히 미묘한 감정을 재빨리 알아차려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욕심을 덜어내며 꾸준히 연습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수행자로서 잘 쓰이겠습니다. 주차장 예초 작업 중에 이 글은 2025년 8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김창래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월간정토 2026.03.09. 1,00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청년지부 강화도 역사 기행

청년지부에서 기획한 이번 강화도 역사 기행은 정명 법사님의 간결한 해설로 시작되었습니다. 강화도의 전근대와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고, 자세하고 유익한 설명으로 역사 지식을 넓히는 계기였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청년들은 임무에 참여하고, 점심을 함께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아봅니다. 지도를 볼 때는, 글을 읽듯이 가장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훑어봅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여행지, 맛집 등을 빼곡히 표시해 놓습니다. 가장 북서쪽에 있는 강화도를 자주 들여다보며, ‘아, 강화도에는 밴댕이나 민물장어가 유명하구나. 전등사, 백련사, 보문사라는 이름난 절이 있네,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화도의 바다 풍경 강화도는 삼별초 항쟁,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국사 시간에 배운 많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고, 작년 여름 수도권 청년지부와 함께한 덕수궁 역사 기행이 좋았기에 공지가 나오자마자 냉큼 신청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학사 돕는 이, 청년페스타 방 탈출 담당 등 여러 봉사를 맡았기에, 이번만큼은 ‘일반 참가자’로 편히 즐기고 싶어 역사 탐방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청년지부에서 운전이 가능한지 물었고, 저는 ‘수처작주, 보살행’의 마음을 떠올리며 “네”라고 답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번 역사 기행에서는 스태프들을 태우는 운전사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날까지 역대 최악의 한파가 찾아와 걱정이 많았습니다. 당일은 부처님 가피 덕분인지 날이 좋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반들을 차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습니다. 한 차례 길을 잘못 들어 조급해지고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차 안에서 첫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마다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달라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강화에 도착했습니다. 한파 탓에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강화해협은 강처럼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바닷길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염하와 도로 사이는 철책이 길게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강화는 북한과 접경 지역으로 군사 시설이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차가운 철책의 대비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며,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연미정 연미정에서 의병 자세를 취하며 역사의식을 불어넣는 청년들 정명 법사님의 역사 해설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기행지인 ‘연미정’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형제 관계 조약을 맺었던 곳입니다. 정묘호란이라는 굴욕적인 역사를 겪고도,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조선 조정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연미정에서는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로 눈앞에서 조망할 수 있어 신기했습니다. 선조들은 우리 땅이니 그저 아름답다고 바라봤을 텐데, 씁쓸했습니다. 강화산성 남문 두 번째 기행지는 ‘강화산성’이었습니다. 강화산성 동문을 거쳐 남문으로 이동했습니다. 당대 최강이었던 몽골군에게 끝까지 항전했던 삼별초 이야기가 가슴에 남습니다. 강화에서 진도와 제주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선조들의 얼과, 위기 앞에서 똘똘 뭉친 백성의 정신은 유구히 이어졌습니다. 또한 남문에서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병자호란 때 자폭했던 일화와 그 후손들이 권문세가로 세도 정치의 폐단을 이끌었다는 점은, ‘불구부정’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습니다. 기다리던 점심 식사는 조원들과 밴댕이 정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혹 강화도에 가면 풍물 시장에서 밴댕이를 꼭 맛보길 바랍니다. 세 번째 기행지, ‘선원사지’는 고려시대 사찰 터로, 팔만대장경을 해인사로 옮기기 전까지 보관했던 역사적인 곳입니다. 어렸을 때 ‘팔만대장경’을 떠올리면 ‘전쟁 통에 불경 목판 제작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인력 낭비, 국고 낭비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팔만대장경 제작은 당시 흩어진 국론을 통합하고 기강을 세우는, 현대에 비유하면 제작 자체가 핵 미사일급의 위력이었다.”라는 정명 법사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정족산성에서 본 강화도 전경 전등사 둘레길 돌탑 다음 기행지는 ‘전등사’였습니다. 전등사는 특이하게 일주문이 없습니다. 대신 정족산성 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이 정족산성이 단군의 세 아들이 지었다는 삼랑성의 후신이라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강화도는 단군과도 맞닿아 있구나 싶었습니다. 섬 자체가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전등사 대웅전에서 108배를 올리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남은 곳은 마지막 기행지였던 ‘광성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찾은 ‘무명용사 무덤’은 청년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름 없는 용사들, 특히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함경도 출신의 호랑이 포수였다는 사실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선조나 조상이라 하면 으레 남한 지역 사람들만을 떠올렸던 제 안의 관념도 그 순간 허물어졌습니다. 북한 땅에서 살던 이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우리의 조상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별심이 옅어지며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이 밀려왔습니다. 또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려진 장면처럼, 신미양요 당시 역부족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섰던 조상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래, 이것이 우리 얼이고 우리 정신이다. 나는 오늘 어떤 변명을 하며 살아왔는가?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참회했습니다. 여러모로 깊은 생각과 새로운 마음가짐을 심어준 기행이었습니다. 이 기행을 정성껏 준비한 정명 법사님과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다른 도반들도 기회가 된다면, 꼭 역사 기행에 참여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맺습니다. 글청년지부 김동한 사진청년지부 김동한 편집광주전라지부 서광주지회 여수연

통일 2026.02.27. 1,289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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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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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