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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전문가 모임과 부산 이동 일정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오전 7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지난 미국 일정 이후의 만남이라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조찬을 함께 하며 북한 현실과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2시간가량의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10시 30분에는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 전광용 님과 미팅이 있었습니다.

오후 5시에는 유회준 KAIST(한국과학기술원) AI반도체대학원장 님과의 만남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등 법사님의 부친상으로, 부산으로 급히 가야 해서 스님은 유회준 님이 있는 서울역 근처로 가서 만나고 부산으로 가는 KTX 열차 편을 예매했습니다.

교통 체증으로 길이 많이 막혀 오후 5시경 가까스로 유회준 원장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소 어수선한 공간이었지만 한 시간가량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대화를 마친 스님은 부산으로 향하는 KTX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열차가 광명역에 도착하자, 회관에서 미처 함께 출발하지 못했던 두 행자가 스님이 타고 있는 객차로 들어와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저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웃음) 괜찮아요. 같은 열차 탈 줄 알았어요.”
기차는 2시간 30분을 이동해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역에 미리 도착해 있던 향존 법사님과 최말순 보살님을 만나 다 함께 시타림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아이고, 생각 같아서는 오후 9시쯤에는 도착하려고 했는데 10시가 다 되어가네요.”
시타림 장소에는 유수 스님과 향자재 법사님을 비롯해 미리 도착해서 기도하고 있던 공동체 대중들이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스님은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영가가 안치된 빈소로 이동하여 조문을 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스님, 제가 누구보다 스님 바쁘신 줄 잘 아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보살님이 정토회에 따님을 주셨는데, 당연히 바빠도 와야지요.”
“사실은 제가 스님께 딸을 줄 때 당시에는, 스님이 많이 미웠습니다. (웃음)”
스님이 보살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살님. (웃음)”
지켜보던 유가족들과 공동체 대중들은 소리내어 웃었지만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스님은 곧 자리에 앉아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정성을 다해 영가의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영가 천도를 위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영가시여,
오늘 영가의 열반을 맞아서 영가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토 행자들이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영가를 천도하는 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영가와 인연 있는 대중들이
영가를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제불보살을 불러 기도드릴 것이니,
그 공덕으로
저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에 왕생하시어
아미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으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해탈 열반을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영가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정토회 대중 일동들,
이 공덕으로 지난 생으로부터 지은 모든 업장 소멸하여지이다.”
영가 천도 법문이 끝나고, 스님과 공동체 대중들은 영가께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왕생극락하옵소서.”
스님이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자, 유가족들이 한데 모여 스님께 청했습니다.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싶습니다.”
스님은 침묵으로 청을 받아들였고, 유가족들은 스님께 정성을 다해 삼배를 올렸습니다.

“보살님,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합니다. 영가께서는 명을 다해 가신 것이니, 보살님께서도 너무 애통해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간호하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님은 마지막까지 유가족의 마음을 살핀 후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부산을 떠나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니 어느덧 밤 12시가 넘었습니다.
저녁공양도 하지 않고 움직였던 터라 스님은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과 함께 경주 남산순례를 하고 즉문즉설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5월 밴쿠버에서의 즉문즉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 반 정도 지났습니다. 제가 해외에 오래 살면서 아버지를 자주 못 뵈었습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만 생각해서 자주 찾아뵙지 않았습니다.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너무 후회되고, 제가 여기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조차 죄책감이 듭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상실의 슬픔은 물론, 돌아가셨던 순간이나 입관하시던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왜 극복해야 하나요? 질문자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이 불효자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벌을 좀 받고 괴로워해야죠. 불효를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빨리 극복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잘못했으니 10년 정도 괴로워하면서 벌을 받겠습니다’라고 해야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년 반밖에 안 됐는데 벌써 극복하는 법을 저한테 물어보면 어떡해요?”
“누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버지와 관련된 인터넷 글만 봐도 자꾸 생각이 나서 많이 웁니다.”
“그럼 많이 울어야지요. 원래 불효자는 많이 웁니다. (웃음) 불효했으니까 많이 울어야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더 자주 울고 더 많이 괴로워하세요. 그래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죄책감이 갖는 게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질문자 자신이 많이 잘못했다고 말했잖아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자신이 잘못했다고 해놓고, 제가 몇 마디 하니까 이번에는 또 죄책감을 느끼는 게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어요. 나쁜 짓을 했다면 양심이 있는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면 죄책감을 갖는게 당연한 걸까요?”
“좋은 일을 했으면 천당이나 극락에 갈 테고, 나쁜 일을 했으면 지옥에 가야겠죠. 그런데 질문자는 지옥에 갈 행동을 해놓고 천당에 가게 해 달라고 빌고 있잖아요…. 질문자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불효를 저질렀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어요. 누군가 ‘너는 불효자니까 죄책감을 가져야 해’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자신이 정한 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죄책감을 만들었으니 괴로워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다시 대가를 치르기 싫다고 말하고 있어요. 10년씩 울며 괴로워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빨리 극복하고 싶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간단합니다. ‘나는 아무런 죄를 지은 적이 없다’라고 자각하면 돼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지, 질문자가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건 아니잖아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벌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사실 만큼 사시다가 병이 들어 돌아가신 거예요. 내가 병문안을 갈 수 있으면 가는 것이고, 갈 수 없으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남을 때리거나 남의 돈을 빼앗는 것은 잘못된 행위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은 것은 좋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일 뿐, 그 자체로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는 아버지에게 나쁜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죄를 지은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좋은 일을 충분히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칭찬받을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아버지를 등 떠밀어 돌아가시게 했다든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원인을 제공했다면 나쁜 행위에 해당하겠죠.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질문자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거예요. 좀 더 자주 찾아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돈이라도 더 보내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다 하면서 살 수 있겠어요.
아버지께 충분히 해 드리지 못한 부분을 돌아보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 어머니께 전화를 자주 드리고, 돈도 보내드리고, 한국에도 자주 가면 되잖아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자각하는 게 필요하지, 계속 울고 괴로워하는 데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자가 한국에 살았다면 아버지를 더 잘 돌볼 수 있었을까요?”
“오랜 기간 편찮으셨으니 결국 돌아가시는 건 마찬가지였겠지만, 제가 곁에 있었다면 마음은 좀 더 편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잘 돌봐 드릴까요? 한국에 살아도 부모님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외국에 있어서 돌보지 못한 사람이 죄책감이 더 클까요, 아니면 한국에 살면서도 곁에서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람이 죄책감이 더 클까요?
보통은 한국에 살면서도 돌보지 못한 사람이 죄책감이 크겠지만,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기로 마음먹으면 ‘나는 멀리 있어서 못 찾아뵈었으니, 죄책감을 느껴야 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질문자는 외국에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괴로워하는 편이 낫겠어요? 원래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어요? 질문자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더 편한 모양이네요.”
“편하지는 않습니다.”
“편하지 않은데도 자꾸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사실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지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사세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기 자유예요. 그게 자신에게 더 좋다면 계속 울면서 사는 것도 방법이에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생각을 바꾸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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