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0.21. 수행법회, 백 세 잔치
“정토회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행자들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와 연화회 백 세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새벽 정진과 명상을 마친 스님은 오전 7시, 손님이 찾아와 조찬을 함께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의 만남을 마친 후에는 업무를 보았습니다. 10월에는 경주에서 예정된 일정이 많아 지도를 살펴보며 이동 동선을 점검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설법전에서 정토행자들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도 정토행자들과 함께 주간 정토행자 소식을 시청했습니다. 이어 얼마 전 스님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참석했던 평화재단 한미정책교류 활동 영상도 함께 보았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울여 온 스님의 노력이 활동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어 대중이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하였습니다. 잠시 입정을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여름은 정말 더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10월 하순이 되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할 정도로 기온이 많이 떨어졌어요. 무더운 여름에는 가을이 올까 싶고, 추운 겨울에는 봄이 올까 싶은데, 세월이 흐르면 여름이 지나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옵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살이도 그와 같습니다. 나쁜 일이 몇 번 겹치면 ‘내 인생에 행복한 삶이 있을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곤 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평범한 일상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좋은 일이 몇 가지 겹치면 ‘천국이 따로 있나. 이게 천국이지’라고 할 정도로 기고만장해집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렇죠.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바뀌고 결국 감옥에 가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여름이 덥거나 겨울이 춥다고 좌절하지 말고, 따뜻한 봄날과 시원한 가을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그것이 계속되지 않고, 좋을 때가 있어도 그 또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갑니다. 이 사실을 알면 세상의 좋은 일, 나쁜 일에 지나치게 끌려다니지 않게 됩니다. 기쁜 일과 힘든 일이 오고 가도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마음이 약간 움직일 뿐이지, 그 상황에 빠져들어 큰 파도에 휩쓸리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가 수행 정진하는 것입니다. 정토회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애써 노력함으로써 많은 성과를 보기도 하지만,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성과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너무 들뜨지도 말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인생이란 계절처럼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일이 몇 번 연달아 나타나면 교만해지고 들뜨게 됩니다. 반대로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 큰 재앙이 온 것처럼, 무슨 저주가 따르는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주사위를 던져보면 어떤가요? 주사위에는 숫자가 1부터 6까지 있으니,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 즉 여섯 번 가운데 한 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사위를 여섯 번 던지면 1이 한 번만 나올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서 1이 한 번 이상 나올 수도 있고,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어요. 1이 두세 번 나왔다고 재수가 좋은 것도 아니고, 백 번 던졌는데 1이 한 번도 안 나왔다고 재앙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경우가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일이 조금 이루어지면 복받았다고 난리이고, 자기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나면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하느님의 저주니, 전생의 죄니, 사주팔자를 탓하며 자꾸 그것을 재앙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용하다는 데 찾아가서 관상이나 손금, 사주나 별자리를 보며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이어서 스님은 지난주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평화재단 한미정책교류 프로그램에서 한반도 정세와 평화 문제를 논의한 내용을 전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과 최근에 변화한 한반도의 상황을 중심으로 정세 분석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해결책을 논의했습니다. 미국의 정책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뿐 아니라, 북한의 입장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는 실제 상황이 어떠한지, 사실이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사실에 대한 인식을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치된 사실을 확인한 후,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의견 차이가 많은 부분이 있더라도 대화를 통해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것은 좁히고, 그럴 수 없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함께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적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북한의 정책 변화가 한반도 평화에 어떤 위협 요인이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위험을 미리 방지하려면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와 같은 안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최근에 북한은 소위 발전 전략이라고 하는 경제 성장 정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보면 굉장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빌딩이 올라가고, 아파트 같은 개인 주택들이 지방에도 많이 지어지는 등 우리의 70년대와 같은, 가난한 나라가 경제 성장을 할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환율이 폭락하고 물가가 폭등해서 그들의 곤궁한 삶이 아직 개선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고, 그것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주민들의 자유는 확대되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같이 논의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하려고 북한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량 살상 무기는 전혀 영향받지 않고 더 빠른 속도로 개발됐습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맺고 재래식 무기까지도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 제재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만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조개나 물고기를 잡아 중국에 팔고 그 돈으로 중국에서 생필품을 삽니다. 이렇게 사 온 생필품을 자국 시장을 통해 유통하면서 장마당에서 많은 사람이 먹고살았는데,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수출길이 막히다 보니 농수산물을 생산하거나 광물을 채집하는 사람들의 생계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환이 없어 중국에서 들어오는 생필품도 줄어들고, 시장에 물건이 유통되지 않아 장마당에서 장사하던 사람들까지 다 곤궁해지고 있습니다. 경제 제재는 대량 살상 무기를 제한하고자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목표한 효과는 얻지 못하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만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민 생활과 관계되는 생필품의 제재만큼은 풀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설명은 서구 사회의 변화가 가난한 나라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복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복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옛날에 데모할 때는 돌멩이를 던지고, 물대포를 쏘고, 최루탄을 쏘는 등 난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데모하죠.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시위가 격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 모습을 보면 서구 문명 지역이 점점 쇠퇴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쇠퇴는 애꿎은 지역에 더 크고 나쁜 영향을 줍니다. 그동안 가난한 나라의 여성 교육이나 장애인 시설 지원,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의 자금 지원을 받아 계속됐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나라들은 정부 재정이 넉넉하지 않으므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사회 개발 정책을 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와서 해외 원조 기관인 USAID(국제개발처) 자금을 다 동결시켜 버렸습니다. 유럽은 지금 자신의 나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데모하는 지경입니다. 선생이 부족하고, 교실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닐 정도로 학교 시설이 열악해서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데모의 이유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유럽은 남의 나라를 도울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 원조액이 크게 줄었고, 그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사회 개발 자금도 크게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동남아를 예로 들면, 여성 교육이나 장애인 시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 개발 자금이 대부분 끊긴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의 제안은 첫째, 자꾸 남에 의지해서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립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외국에서 돈 받은 것을 월급으로 쓰고, 사무실 경비로 쓰다 보면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절반이 안 될 때도 많습니다. 중간 경비 지출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 JTS처럼 운영하면 훨씬 더 많은, 약 90퍼센트 이상의 돈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 갈 수 있습니다. 사무실 경비도 안 나가고, 월급도 안 나가고, 해외 어디를 가더라도 저가 항공을 타고, 현장에 가서 잘 때에도 가능하면 최소 경비를 쓰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바꾸어 자립을 꾀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그래도 외부에서의 재정 지원은 필요합니다. 서구에서 지원이 안 온다면 지원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네 나라 정도입니다. 중국은 제3세계에 돈을 엄청나게 지원하지만 시민 단체를 통해 하는 지원이 아니라 주로 국제 영향력 행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입니다.

한류가 퍼져서 우리는 좋다지만 동남아 사람들, 그 부모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집에 돈도 부족한데 아이가 한국 옷 사 입겠다, 한국 음식 먹겠다, 콘서트 가겠다고 난리라는 거예요. 심지어는 없는 살림에 한국에 가겠다고 비행기표까지 사달라고 한다는 거예요. 한류를 통해서 우리가 돈을 번다면, 그것이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사회 개발 자금으로 상대 나라에 많은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정책이 매우 중요하지만, 국민은 돈 벌 생각만 하지 말고 어려운 나라를 돕는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국민 의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옛날에 어려웠을 때 도움을 받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자신의 수입 일부를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써야 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복을 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을 지어야 내가 받는 복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데, 우리는 개인이든 국가든 복받는 것만 생각하지, 복 지을 줄을 잘 모릅니다. 제가 다니면서 복을 많이 지어 놓으니까, 자신들은 복도 안 짓고 복만 받으려고 해요. (웃음)

우리 정토회는 항상 복을 짓는 마음으로 3대 삶의 원칙을 따릅니다. 첫째,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수행, 둘째, 내 수입의 일부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지원하는 보시, 셋째, 나의 재능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봉사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나의 삶과 행복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좋고 내일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항상 복을 지어야 합니다. 복 짓는 것 없이 받기만 한다면 얼마 안 가 밑천이 다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가 하고, 민간이 해야 할 일은 민간이 하면 됩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을 하면 규모를 크게 할 수 있어 좋은 면은 있지만, 그저 일상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돈을 들여 보시하고 봉사하면 거기에는 뜻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우리 수행자는 헌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지 권력이나 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세 명의 질문자가 질문했습니다.

  • 여명학교 건립을 돕기 위한 서명운동을 지회 단톡방에 안내하려 했는데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정토회의 취지에 맞는 시민 활동이라면 지회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을까요?
  • 10년째 기분 순환장애와 트라우마로 우울감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도하고 살아가면 좋을까요?
  • 최근 숨이 답답해진 경험을 한 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그중 기분 순환장애와 트라우마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마음의 병을 받아들이는 법

“저는 어릴 때 순환기분장애와 트라우마라는 질병을 진단받았습니다. 평소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우울할 때가 있고, 자꾸 여자 친구를 만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자 친구를 만나면 만나는 대로 고민이고, 만나지 않으면 만나고 싶어서 고민입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서도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기준이 없고, 어떤 일에 도전해도 금방 포기하고 절망하곤 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째 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침 기도를 할 때 어떤 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좋을지,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을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자의 경우처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정신적인 질병에 들어갑니다. 육체적 질병과 마찬가지로 첫째, 전문의와 상담하고 치료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수행은 일종의 자가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치료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울증이나 조현병,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수행을 통해 치료되지 않습니다.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 알맞은 치료를 받아야 해요. 수행을 너무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둘째, 치료에 도움이 되려면 집중력을 키워야 합니다. 질문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산만합니다. 집중력을 키우려면 명상하면 도움이 됩니다. 명상하면서 마음을 코끝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십시오. 처음엔 누구나 잘 안됩니다. 보통 사람들도 잘 안되지만, 질문자는 더 안 될 거예요. 코끝에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집중이 돼야 하는데, 자꾸 딴생각이 일어나고 마음이 다른 데로 흩어집니다. 이렇게 산만해지더라도 계속 연습해 보세요. 치료가 우선이고, 명상으로는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문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으셨는데요. 질문자는 우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하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 상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병을 고치는 데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 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 심장의 혈관이 하나 막혀서 계단을 잘 올라가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이걸 고치는 길이 하나 있고, 받아들이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길은 오르막을 빨리 올라가지 않고 천천히 올라가거나 아예 가지 않는 겁니다. 몸은 이런데 오르막길을 빨리 가고 싶고 산에도 올라가고 싶다면, 이걸 욕심이라 합니다. 건강하다면 산에 가는 게 뭐가 욕심이겠어요? 하지만 제 건강 상태에서는 욕심인 것입니다.

질문자도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로 해야 합니다. 항상 이대로 좋습니다. 병이 있지만 그래도 살고 있잖아요? 나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꾸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높은 산도 올라가곤 했는데, 지금은 하지 않아요. 이번에도 경주 남산에 가는 일정이 많았는데, 평지로 다니거나, 그 사람들은 밑에서부터 걸어오고 저는 차를 타고 중턱쯤 올라가서 합류합니다. 평평한 길과 내려가는 길만 같이 다닙니다. 저는 이제 산을 오르는 게 어려우니 이런 식으로 맞춰서 살아야 해요. 옛날 같으면 자존심이 상했을 테지만, 이제 나이도 들고 병도 있고 하니 그런 프로그램은 유수 스님께 맡기고 저는 하지 않거나, 하려면 몸 상태에 맞춰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늙으면 이것도 못 하겠죠.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안 돼요. 지금의 내 상태를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이에요.

질문자는 우선 병원 치료를 잘 받고, 산만함을 줄이려면 명상하면서 집중력을 키우세요. 그런데 쉽지는 않을 거예요. 보통 사람도 잘 안됩니다. 그리고 본인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기도를 하세요. 절하면서 ‘이대로 좋습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하고 자꾸 자신을 안심시키는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법회를 마친 스님은 정토회 노보살님들의 모임인 연화회의 백 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 공양간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백 세 잔치는 몇 달 전 박정신 보살님이 정토회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마련되었습니다. 올해 98세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은 스님이 백세 잔치를 열어드리자고 제안했고, 한 분뿐만 아니라 아흔이 넘은 원로 보살님들을 모두 함께 모시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원로 보살님들이 한 분 두 분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연세가 많아 거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도착하는 보살님마다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하며 자리를 안내했습니다.

한 보살님은 오랜만에 스님을 만나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자꾸 눈물이 나네요.”

거동이 불편해 정토회관에 오고 싶어도 쉽게 오지 못했던 시간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스님을 다시 만난 반가움이 눈물에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사회자의 인사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원로 보살님들께 정토회를 대신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백세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정토회 지도법사이신 법륜 스님의 축하와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스님은 백세잔치를 마련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하였습니다.

“박정신 보살님이 법당을 방문하셨는데,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으니까 100세가 다 되셨다고 해요. 올해 98세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우리 백 세 잔치 한번 해드리자.’ 이렇게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 분만 할 게 아니라 100세에 가까우신 분들은 다 함께 모시고 잔치를 해드리자.’ 이렇게 됐어요. 그런데 80세 이상으로 하자니 해당되는 분들이 너무 많고, 그래서 90세 이상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여섯 분을 모시게 됐습니다. 앞으로 매년 백 세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90세가 넘으시면 누구나 잔치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웃음)

이어서 스님은 정토회가 처음 시작되던 시절을 돌아보며 오늘 참석한 원로 보살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정토회 초창기, 정말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함께하신 분들입니다. 제가 처음 정토회를 시작할 때는 청년들만 데리고 시작했거든요. 학생이 아닌 일반인 가운데 첫 번째 신도가 되신 분이 바로 자재 법사님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실상화 보살님이 돌아가셨는데,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정토회라는 이름도 없고, 건물도 없고, 조직도 없던 시절에 저 하나 믿고 함께 시작하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이분들이 기울여 오신 노고와 공로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스님은 앞으로도 원로 회원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들께 살아 계실 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돌아가시면 정토회에서 추모 공원도 만들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신 뒤에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계실 때 ‘내가 죽은 뒤에 우리 아들은 제사를 안 지내주더라도 정토회에서는 때가 되면 밥은 주겠지.’ 이렇게 믿으시고 노후를 건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웃음) 오늘 백 세 잔치로 이렇게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행사의 주인공인 보살님들께 후배들이 꽃목걸이를 걸어드렸습니다. 꽃목걸이는 후배 봉사자가 원로 보살님들을 위해 손수 만든 것이었습니다.

꽃목걸이 증정을 마친 후에는 서울제주지부장 주점란 님이 후배 정토행자들을 대표해 감사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편지에는 정토회 초창기 홍제동 법당 시절부터 묵묵히 수행하고 보시하며 정토회를 일구어 온 선배님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토회의 오늘이 있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시절이 바로 홍제동 법당 시절입니다. 지하에는 무도장이 떡하니 있었고 법당은 예식장이었다고 하는데, 겉모습만 보고는 처음 온 사람이 뒷걸음쳐 나가기 바빴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새벽기도 후 밥을 하려고 쌀독을 열면 쌀이 비어 있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합니다. 법당에 오는 분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께서는 쌀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옛날 초는 왜 그렇게 빨리 닳았을까요? 다른 절에서 사용하던 초를 얻어와 쓰기도 했던 그 시절, 초가 떨어지지 않도록 아껴 쓰고 살피는 것도 선배님들의 몫이었습니다. 김장김치를 담그려고 하면 배춧값이 비싸게 여겨져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버려진 배추 시래기를 줍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싼 배추를 사려고 홍제동 시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셨지요. 그 걸음걸음이 지금의 저희에게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없이 헌신하신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정토회는 따뜻하고 활기차게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법륜 스님께서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님 곁에서 수행하고 보시하고 봉사하며 한 평생을 살아오신 선배님들이 계셔서 지금의 저희가 있습니다. 지금의 정토회가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정토회를 지켜주신 선배님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희도 선배님들의 길을 이어 정토회를 더욱 잘 지켜가겠습니다. 앞으로도 건강과 평안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편지를 듣고 있으니 정토회 초창기 어려운 시절, 보시와 봉사로 정토회 살림을 도맡아 주신 보살님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감사 편지 낭독을 마친 후에는 후배 정토행자들이 원로 보살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드렸습니다. 스님도 함께 보살님들에게 삼배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축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댄스 공연 팀이 무대에 올라 잔치의 흥을 돋웠습니다.

두 번째 공연팀은 원로 보살님들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드렸습니다. 특히 <어버이 은혜>를 부를 때는 스님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보살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공연 후에는 생신 축하 노래를 부르며 박정신 보살님에게 케이크를 전달했습니다. 보살님은 있는 힘껏 촛불을 불었습니다.

케이크 전달 후 스님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처음 이런 행사를 하다 보니까 먼저 돌아가신 분들이 생각납니다. 그분들에게는 이런 자리도 마련해 드리지 못했어요. 얼마 전에도 98세에 돌아가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전에도 많은 보살님들이 정토회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이분들이 우리 정토회 법당을 하나, 둘, 셋, 넷 만들어 가면서 모든 방석이며 기반들을 다 마련하셨거든요.”

스님은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며 해탈주 독송을 대중에게 제안했습니다. 스님과 대중은 두 손을 모아 해탈주를 독송하며 돌아가신 원로 보살님들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이렇게 공로에 감사드리고, 돌아가시면 추모 공원을 만들어서 여러분들이 하신 일을 오래도록 기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선물로는 예쁜 모자와 수저 등이 준비되었습니다. 스님은 원로 보살님들께 직접 모자를 씌워드리고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원로 보살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은 후에는 보살님들 한 분 한 분과 개별 사진도 찍었습니다. 사진은 바로 인화해 액자에 담아, 보살님들이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 선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에는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 공양을 함께했습니다.

공양을 마친 스님은 원로 보살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보살님들은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며 연로해진 몸 상태를 이야기했습니다.

법사님들과 다른 연화회 회원들도 오랜만에 만난 원로 보살님들께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보살님들 곁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손을 잡고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정토회 초창기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도반들이라 오랜만의 만남이 더욱 애틋해 보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공양간을 돌며 연화회 회원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경상도식으로 인사를 반갑게 건넸습니다.

“아직도 90살이 안 되고 뭐 했어요? 나이를 부지런히 먹어 90살이 되어야지 무대에 올라가 저렇게 축하도 받지요. (웃음)”

스님의 농담에 웃음이 이어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백 세 잔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오후 1시에는 정토회에 기부하고 싶다는 손님이 찾아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중국에 갈 일이 생겨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정토회를 견학 중인 베트남 청년들과 대화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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