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19. 북미순회강연(12) 뉴저지(New Jersey)
“조카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북미 순회강연 열두 번째 날입니다. 오늘은 샴페인에서 시카고 공항까지 육로로 이동한 뒤,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도착 후 오후에는 뉴저지에서 교민 강연을 열었고, 밤에는 불교대학 입학식을 함께했습니다.

오늘은 시카고 공항에서 오전 8시 비행기를 타야해서 스님은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여 2시간 30분가량 차를 타고 시카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어젯밤에 항공사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시카고에 비가 많이 와서 비행기가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님은 변동사항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움직였습니다.

오전 6시 시카고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샴페인 지역에서 숙소와 운전을 지원해준 이동우 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마치고 커피와 빵으로 아침공양을 한 후 탑승구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항공사 직원이 비행기 출발시간이 지연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행기가 취소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예정보다 한 시간 늦어진 오전 9시가 되어서야 뉴욕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 공항에 착륙하여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오후 1시가 되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정토행자 김명호 님이 스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김명호 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뉴욕 퀸즈에 있는 김명호·유정희 님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비행기가 한 시간이 연착되어 전체 일정을 시간에 맞추어 진행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했습니다. 스님은 점심 공양을 하고 곧장 강연장이 있는 뉴저지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뉴욕에 처음 오는 행자님에게 뉴욕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행자님은 뉴욕이 처음이지요? 뉴욕은, 뉴욕주(New York State)가 있고, 뉴욕주 안에 뉴욕시(New York City)가 있어요. 뉴욕시는 5대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맨해튼(Manhattan), 브루클린(Brooklyn), 퀸스(Queens), 브롱스(The Bronx), 스태튼 섬(Staten Island)이 있어요.”

웅장한 조지 워싱턴 다리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거대한 격자형 철골 주탑 아래에는 허드슨강(Hudson River)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곧, 강 건너 뉴저지에 닿았습니다.

오후 3시 40분, 뉴저지 강연장 코리안 커뮤니티 센터에 도착하였습니다. 강연장 입구에 들어서자 정토행자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접수도 받고 스님 책도 홍보하면서 강연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뉴저지 강연장의 봉사자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활기찼습니다.

스님이 강연장 입구에 들어서자 봉사자들이 환호하며 인사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스님.”

스님도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4시, 북미 순회 열두 번째 강연이 뉴욕·뉴저지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주말에 놀러 가야 할 텐데 강연장에 와서 괜찮아요? (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해서 이번 북미순회강연은 전부 대학을 중심으로 강의를 잡았습니다. 주말에만 교민 강연을 잡다 보니까 밴쿠버, 로스앤젤레스, 뉴욕 뉴저지, 토론토 이렇게 4곳에서만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올해 인도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많이 더웠습니다. 제일 더운 양산은 섭씨 42.5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 기후 변화가 이제는 체감될 정도로 점점 우리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어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해안에는 요즘 열대어가 많이 잡히고, 동해안에 있던 오징어나 명태는 없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해안에서 잡히던 고기가 동해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네요. 또 과거에 대구 특산물이던 사과가 몇십 년 만에 문경 특산물이 되더니 이제는 문경에서도 재배가 잘 안 되고 강원도, 철원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사과는 북한에서 생산되겠죠. 기후가 변하니까 이렇게 생태계와 식생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JTS 활동가들은 네팔에 가 있습니다. 네팔에 빙하가 녹으면서 산사태가 일어나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 알고 계시죠? 골짜기로부터 27m 높이에 도로가 있었는데, 이번에 피해지역을 가보니 도로가 평지가 돼 있다고 합니다. 산사태로 휩쓸려 내려온 돌과 흙이 27m 골짜기를 메워서 평지가 돼 있을 정도라는 거죠. 그러니까 원래 살던 사람들의 터전은 전부 묻혀서 흔적도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활동가들에게 가장 열악한 상류 쪽으로 가보라고 했더니, 그곳은 피해자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거의 다 죽고 남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요.

이렇게 자연재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80~90%가 동의하는 자연재해의 원인은 우리들의 지나친 에너지 소비, 소위 탄산가스의 양산이 결국은 기온을 상승시키고, 그 기온으로 인해 이렇게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고 합니다.

기후변화는 우리들의 삶에 시시각각 위험으로 다가오지만, 우리는 아무도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함에 동의를 했더라도 실행을 안 하고 있어요.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게 잘 사는 것’이라는 삶의 가치관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기후 변화를 막거나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우리부터라도 혼자 자동차 타는 것을 삼가고, 기분 전환한다고 드라이브 하지 말고, 옷이나 생필품을 필요 이상으로 사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개선해 간다면 그래도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쉽지 않죠 (웃음)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물건 안 사기, 오래 쓰기, 바꿔 쓰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절약이 미덕이었다면, 지금은 기후 위기를 막는 미덕이 됩니다. 자, 인사 겸 여러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즉문즉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인생의 다양한 고민들을 주제 제한 없이 편하게 꺼내놓고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제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대화를 통해 여러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할 뿐입니다. 오늘 미리 질문을 신청해 주신 분이 서너 분 계시네요. 이분들 이야기를 먼저 듣고, 이어서 자유롭게 손을 들어 질문하면 되겠습니다.

가족관계를 파탄 내버린 형이 밉고 원망스럽습니다

“형이 8년 정도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결혼을 반대하면서 형과 아버지 사이가 심하게 틀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제게 전화로 ’너 지금 미국에 있냐?‘라고 엉뚱한 질문을 하시는 겁니다. 3개월 전에 저를 보겠다고 미국에 다녀가셨는데 말이에요. 저는 그제야 아버지가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지셨음을 알고 이 일의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 상황에 강하게 개입했습니다. 부모님이 걱정되는 마음에 형을 강하게 비난했고 욕설을 하고 화도 냈습니다. 지금 형과 아버지는 연을 끊은 상태이며, 저와 어머니는 그 둘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걱정되는 동시에 형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많이 생겼습니다.

제가 앞으로 부모님과 형 사이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족이 다시 화목해졌으면 좋겠는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질문자의 말에 모순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형과 아버지 사이에 개입하고 아버지 편을 들어서 형과 싸웠는데 어떻게 화목해지겠어요? 아버지와 형이 갈등이 있는데 화목해지려면 개입을 안 해야 화목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 자기는 한쪽에 편들어 놓고 화목하기를 바란다? 모순입니다. 편들면 패싸움을 할 확률이 높죠.”

“제가 편을 드는 건 아니고요, 지금 아버지...”

“아버지 때문에 형을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편을 든 거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화목할 수가 없는 거예요. 편을 안 들어도 지금 상황은 화목하기가 어려운데, 편 들어 버리면 화목은 불가능하단 얘기예요. 중재자가 없잖아요. 편을 안 들어야 중재자가 있어서 화목해질 가능성이라도 있죠.”

“그러면 이렇게 연을 끊고 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가족이 뭉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형제는 원래 남남으로 사는 게 자연스러운 거에요. 만약에 모든 형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계속 형제로 살았다면, 지금쯤 전 인류가 한 형제가 되어있겠죠.

아버지의 관점에서는 형의 결혼을 반대할 수 있어요. 그런데 형의 입장에서는 자기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결혼하겠다는데, 거기에 누구 간섭을 안 받을 권리도 있어요. 형과 아버지의 견해가 다른 것이지, 형은 옳고 아버지가 틀렸다든지 아버지가 옳고 형이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두 사람의 관점이 다른 거예요.

두 사람의 입장이 다를 뿐인데 질문자가 중간에서 왜 편을 드느냐는 겁니다. 아버지가 ‘너 아직도 미국에 있니?’ 하시면 ‘예, 미국에 있습니다’ 하면 되잖아요. 왜 갑자기 아버지 건강을 걱정합니까? 석 달 전에 다녀가셨지만 지금 상황이 복잡하니까 질문자 생각이 나서 ‘너 아직도 미국에 있니? 한국에 들어왔니?’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고, 뭐 깜빡 잊어버리고 그럴 수도 있고, 치매 증상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질문자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잘못된 정보를 받아서 확인해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 미국에 있니?’ 하면 ‘네, 미국에 있습니다’ 이러면 되는거예요.

질문자가 생각이 단편적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형한테도 아버지한테도 다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형하고 아버지는 두 사람의 견해 차이로 갈등을 하는데, 자기가 그 사이에 끼어서 아버지 편을 들고 형을 비난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형을 뭐라고 그러면 "아,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것 때문에 힘드셨군요."하면 되지 아버지 앞에서 형을 비난해서는 안 돼요. 또 형이 아버지에 대해서 비난을 하면 "아, 형 그래서 힘들었군요" 해야지 형 앞에서 아버지를 비난해서도 안 됩니다.

즉, 형을 편들면서 아버지를 비난해서는 안 되고, 아버지를 편들면서 형을 비난해서도 안 돼요. 두 사람의 갈등에 왜 질문자가 한 편을 듭니까?

아버지와 형과 나 사이를 삼각 관계로 생각해보면, 형과 아버지가 갈등하고 나는 상관하지 않으면 세 변 중에 한 변만 갈등 관계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내가 끼어들면 세 축이 다 갈등 관계가 됩니다. 그럼 현실적으로 어느 게 더 낫습니까? 어차피 갈등할 바에야 온 가족이 다 갈등하는 게 낫습니까? (웃음)

그러니까 이 문제는 형의 문제도 아니고 아버지의 문제도 아닙니다. 자기의 어리석음이 문제입니다. 아버지하고 형하고는 갈등이 있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내가 거기에 껴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어요, 이렇게 자기반성을 해야합니다.

“예 스님,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카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66세이고, 조카를 어릴 때부터 키웠습니다. 조카의 부모가 5살 때 이혼했고, 조카가 12살 되던 때부터 제가 데려와서 6년을 키우고 대학도 보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방학 때는 저희 집에 오고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관계가 좋지 않아 끊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서른 살쯤에 다시 찾아와서 한 6개월을 다시 지냈지만 사실 그때도 사이가 별로 좋지는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인생에서 가장 할 줄 몰랐던 게 아이 키우는 일이었어요. 힘도 들었고요. 저는 남편도 없어서 조카랑 지독하게 많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나이가 들어서 조카한테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이게 도움이 될지 똑똑한 스님께 여쭤봅니다.”

“왜 도움이 되고 싶은가요?”

“요즘 젊은이들이 다들 살기가 힘들다고 해서요. 조카가 믿을 만하면 제가 바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그게 독이 되진 않을까 염려도 됩니다.”

“질문자의 돈을 언제, 누구에게 주든지 그건 질문자의 자유인데, 굳이 조카한테 줘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예전에는 다른 자선 단체에도 많이 기부해 봤는데 알뜰하게 안 쓰더라고요.”

“그런데 조카도 알뜰하게 안 쓰면 어떻게 하려고요.”

“급하면 알뜰하게 안 쓰겠지만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조카의 자립을 위해서 너무 많이 돕는 것도 안 좋을 것 같고요..”

“그렇게 괜히 남에게 줘 놓고 알뜰하게 쓰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 하지 말고, 그냥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유언으로 처리하면 되지,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만약 지금 재산을 나누고 싶은 곳이 있다면, 예를 들어 심장병을 치료하는 재단에 기부하고 싶다든지, 재난이 있는 곳에 기부하고 싶다든지 하면 그대로 기부하면 되고요. 그게 마땅치가 않아서 여기 주려고 하니 이게 걸리고 저기 주려고 하니 저게 걸린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내버려 두면 돼요. 지금 66세 이시니까 앞으로 20년 내지 30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거에요. (웃음) 시간이 아직 충분하니까 그냥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JTS도 비슷한 혜택을 받았어요.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서 한국 돈으로 몇십억이 되는 재산을 남겼는데 유언도 함께 남기신 거에요. 불교 전법을 하는 불교방송국에 몇 퍼센트, 불교 교육기관인 동국대학교에도 몇 퍼센트, 그리고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국제 구호 활동을 하는 JTS에도 얼마를 남기셨어요. 저희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인데, 본인이 볼 때 믿을 수 있거나 도움이 될 만한 곳에 재산을 남기도록 유언을 하신 거예요. 그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 대행을 맡은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분이 이렇게 재산을 기부하셨으니 오셔서 사인하고 받아 가라고요. 그때서야 누구신지 알게 되었죠.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처리해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30년 정도의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까 그 안에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면 집행하시면 되고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으면 유언장을 지금 작성해 두셔도 됩니다.”

“네, 그런데 스님 서른넷 정도의 젊은 사람들은 그때 뭐가 필요할까요?”

“돈이겠죠. 근데 그렇게 사이도 안 좋다면서 왜 그렇게 집착하나요?”

“사이는 안 좋지만 사랑은 많이 하죠. 애처롭고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부모가 있거나 없거나, 내가 돌봐줬던 것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었으니 내가 돌볼 일은 끝난 거예요. 그래서 조카를 돌보는 관계는 끝을 맺는 것이 좋습니다. 잘 돌봤든 못 돌봤든 그것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때 내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지금 지원해 주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나에게 재산이 조금 있는데, 이 돈이 어디에 쓰이는 것이 가장 유용할지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피붙이에게 주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서 조카에게 주겠다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면서 이 돈이 잘 쓰일지 못 쓰일지 생각을 하는 것은 나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에요. 그 돈으로 술을 마시든 탕진을 하든 조카에게 주는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내가 지원한 상대방이 그 후에 삶을 잘 꾸려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원한 것에 미련을 갖게 되면 나는 돈도 주고, 거기에 죄책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때 괜히 돈을 줘서 애를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좋은 뜻으로 한 지원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조카에게 지원을 했다면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조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고 그것이 천국에 가는 길이다’ 하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기준은 가장 작은 자, 즉 가장 고통에 처한 자를 돕는 것이 곧 하늘나라에 가는 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의 구조는 불교든 기독교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불교에서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다가 ‘그동안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큰 공덕을 쌓았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돌아가시면 우리는 그런 큰 공덕을 어떻게 지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염려하지 마라.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똑같은 것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 둘째, 병든 자에게 약을 주어 치료해 주는 일, 셋째, 가난한 사람을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일, 넷째, 청정한 수행자를 외호하는 일이니라.’ 불교와 기독교 양쪽의 표현 방법은 약간 다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의 똑같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나중에 여유가 생겨도 그 사람에게 직접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도움을 어디에 어떻게 돌려주어야 할까요? 현재와 같은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계층인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일대일 관계에서 그 사람들의 돈을 빼앗아 온 것은 아니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 전체의 구조를 수없이 따져본다면 결국 내가 가진 돈은, 저 가난한 사람이 가질 수도 있었던 돈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는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손실을 끼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빚을 진 것을 갚고자 한다면,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원리에 맞는 일입니다. 내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왔고 나에게 남은 돈도 좀 있다면 말이에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불교에서는 큰 공덕을 짓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자기 수입의 작은 부분이라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기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가 오면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이 좋다고 봅니다. 자녀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고 교육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이후에도 계속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가진 돈을 어디에 줄 것인지는 현재의 제도상 개인의 권리입니다. 누구에게 줬다고 해서 잘했다,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저에게 ‘남은 재산을 어떻게 하면 뜻깊게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세계 곳곳에서 재난이나 사고가 나면 언론에서 보도하고 많은 자선단체가 피해지역을 찾아갑니다. 이슈가 되는 지역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기부와 지원도 많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는 곳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어도 세상의 관심과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은 그만큼 지원에서 소외되기 쉽습니다.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도 다른 단체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아갑니다. 이런 곳은 돕는 사람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원이 더욱 어렵습니다. 정부에서도 위험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도록 하기 때문에 필리핀 민다나오 같은 곳은 한국인이 직접 들어가 지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고통받으면서도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지역을 찾아 돕는 것이 더 큰 공덕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자원이라도 도움이 더욱 절실한 곳을 찾아 나눌 때 더 많은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현장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여섯 살 막내 손자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펄쩍펄쩍 뛰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집안에서 가르친 적도 없는 말을 쉽게 뱉으며 툭하면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가족들이 달래도 보고 타일러도 도통 달라지지 않는데, 병원이나 전문가를 찾아가 검진을 받아봐야 할까요?

  • 뉴욕에서 대학 졸업과 귀국을 앞두고 진로 고민이 많습니다. 주변에선 학생 때를 최대한 즐기다 오라고 조언하지만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는 날이면 좋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자책감이 듭니다. 매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요.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우울해질 땐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스님, 만약 사후세계를 믿으신다면 육신을 벗고 저세상으로 가셨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그 세계에 머물거나 다른 차원으로 가거나 인간 세상으로 환생하는 길 중,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미국에 온 지 6년째인데 한국에서 자리 잡고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자꾸만 비교가 됩니다. 사람마다 때가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현실에서는 자꾸 뒤처진 것 같아 조급하고 불안해져요. 남과 비교하는 조급함을 어떻게 내려놓아야 할지, 또 나보다 못한 이와 비교해 위안을 삼다 안주하게 되진 않을지 고민입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책 사인회를 하였습니다. 홍보 부스에 준비했던 스님의 책을 많은 사람이 찾아주어 책이 완판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준 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먼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묘덕 법사님과 법해 법사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34명의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매번 해왔던 일이니까 쉽게 하겠지’ 했는데 갑자기 매뉴얼이 많이 바뀌어서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실전에서 직접 만나 함께하다 보니 어떻게든 해결됐습니다. 다들 애정을 가지고 활동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소중한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들어오실 때 피곤해 보이셔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법문하시면서 살아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정말 신이 나서 이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모자이크 붓다 여러분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지금 마음은 행복합니다.”

“많은 분이 정말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TV나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상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곳저곳이 아프고 머리와 다리도 아파서 걷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왔는데 지금은 다시 소녀가 된 것처럼 몸이 멀쩡해졌습니다. 함께해서 정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홍보팀과 도서판매팀의 호흡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눈치껏 손발을 맞춰 정말 잘했습니다. 무척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강연을 위해 각 지역에서 도반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모였습니다. 그 자체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를 챙기면 곁에서 둘을 챙겨주는 도반들 덕분에 호흡이 척척 맞아 일하는 내내 즐거웠고 무엇보다 마음의 결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강연을 일구어 간다는 사실이 오늘 하루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일이 아니라 마치 놀이를 하듯, 도반들과 한마음으로 뜻깊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스님은 저녁 공양을 하고 쉴 틈도 없이 저녁 9시부터 불교대학 입학식 생방송을 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해외 순회강연 중에 뉴욕에 있습니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대학에 강연이 없고 뉴욕·뉴저지주 교민들을 위해서 법회를 했습니다. 내일부터는 동부로 다니면서 주로 대학에서 대화를 할 예정입니다.

세상이 많이 발달하고 있는 가운데 기후 위기,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니, 개인적인 고뇌와 불안도 있지만 세상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꽤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이 남아 있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불교대학생들의 입학을 이렇게 먼 곳에서 인사를 하게 되었네요. 여러분의 입학을 축하드리면서도 약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괴로움 없는 상태’를 우리가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행복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즉,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괴롭지 않는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괴롭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이 늘 괴로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괴로움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누군가에 대한 미움, 원망, 증오, 화, 짜증, 초조, 불안, 근심, 걱정, 허전함, 슬픔. 즉 이런 부정적 심리 상태가 일어나는 것을 총괄해서 괴로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부정적 심리 상태가 없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 이것이 일상 속에서 늘 유지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았다, 편안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괴로움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원인을 규명하고, 제거함으로써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니르바나를 증득했다' 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대화나 명상을 통해서 다른 사람도 니르바나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첫 번째로 불교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바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인 ‘실천적 불교 사상’이라고 하는 과목입니다. 이 과목을 공부하면서 '내 상태가 지금 어떠한가' 를 먼저 진단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도 말한 대로 '저는 조금 초조함이 있습니다, 근심 걱정이 있습니다, 미움이 있습니다, 자주 화가 납니다', 내가 괴롭다는 진단을 했다면 '왜 괴로울까?' 이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괴로움의 원인이 제거된다면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이치에 따라서 스스로 수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괴로울 때마다 '왜 괴롭니?' 자기에게 물어보세요. 예를 든다면 '돈이 없어서 괴롭다' 그러면 필요한 돈을 구하면 됩니다. 이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은 '돈이 없는데 내가 왜 괴로울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뭔가 불편함이 있는 건 맞아요. 근데 불편하다고, 부족하다고 왜 괴로운가? 이것은 괴로움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게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깨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이 스스로 자기연구를 해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론’입니다. 실천을 하려면 방법이 치우치면 안 됩니다. 항상 진실에 접근하는 바른 길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도(中道)'이고, 중도의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할 때, 그 깨달음의 내용이 바로 '연기법(緣起法)'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불교의 가장 핵심 사상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치만 배운다고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치대로 체험을 해봐야 합니다. 실천을 해봐야 해요. 이치는 맞는 것 같은데 해보면 잘 안 돼요. 그렇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그것을 내가 직접 체험을 해야 된다는 뜻이에요.

이 모든 과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정토불교대학입니다.

불교대학 교육과정 중에는 여러분들이 이 법문을 듣고 '어떻게 느꼈는지' 자기 소감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나누기’라고 하는데 나누기에는 소감 나누기가 있고 마음 나누기가 있습니다.

‘소감 나누기’는 내가 이 법문을 듣고 내가 느낀 소감을 말하는 것이고, ‘마음 나누기’는 지금 내 마음 상태가 어떠냐는 거예요. '지금 법문을 들으니까 생소해서 저는 이해가 잘 안 됐습니다' 이거는 이제 소감이에요. '그래, 이해가 안 되니까 네 마음이 지금 어떠냐?'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되면 마음이 어때요? 답답하죠. 그러니까 '네 마음이 어떠냐?' 하면 '아, 지금 제 마음이 답답합니다' 이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반과 나누기를 하다보면 각자의 소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마음 나누기를 할 때도 각자 마음이 다르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답답했는데 저 사람은 시원하다고 하고, 나는 이해가 안 됐는데 저 사람은 이해가 된다고 합니다. '아, 사람이 이렇게 서로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누기가 끝난 뒤에는 일주일 동안 일상에서 실제 해 보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한테 화가 제일 많이 납니까?’
‘남편한테 많이 납니다’
그러면 그 상대에게 일주일간 화가 얼마나 나는지, 화가 날 때마다 '왜 화가 나지? 남편이 저렇게 말하는데 내가 왜 화가 나지?' 이렇게 한번 살펴보는 기간입니다. 이렇게 일주일간 체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자, 다시 설명하면 수업 영상을 받으면, 사전에 영상을 듣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단계입니다. 그 다음에 수업 중에서는 '나누기'입니다. 소감 나누기, 마음 나누기, 자기 상태를 ‘자기가 알아차리기’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걸 가지고 집에 가서 일주일간 '실천해 보기', '경험해 보기'. 요렇게 크게 세 가지로 나눠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수행 연습이라고 해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21배 해보기, 나중에는 108배 해보기 등 수행 맛보기도 해볼 수 있습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도반들과 같이 모여서 오프라인 활동을 하면서 '왜 사람들이 전쟁을 할까' 평화에 대해서 얘기해 본다든지,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우리가 마음만 나누는 게 아니라 물질적 나눔도 필요하다든지 이런 식으로 점점 경험을 해 나갑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나만 생각하던 상태에서 마음을 열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과정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 그동안 내가 굉장히 고민했던 게 별일 아니네? 별것도 아닌 거 갖고 나 혼자만 고민했구나' 하고 자각하면서 자기의 괴로움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이 끝나면 그 다음 과목은, 이 모든 것을 발견해 낸 사람 ‘고타마 싯다르타’, 즉 ‘고타마 붓다’에 대해 배웁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고, 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서 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했는가,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가 하는 부처님의 삶을 조명해보는 시간입니다.

그가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남녀를 차별하는 ‘성차별’ 문제를 그는 어떻게 바라봤는가, 계급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계급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전쟁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봤는가 하는 점들을 살펴보면서 불교의 평화, 불교의 평등사상을 배웁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은 그가 노력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가 자란 환경, 활동한 환경의 큰 영향을 받고 이루어진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고타마 붓다라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또 어떤 환경에서 활동을 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질 때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5일간 시간을 내서 깨달음을 직접 경험해보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 프로그램을 다녀올 수 있고, 졸업하고 난 뒤에는 인도성지순례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학습 과정을 마치고 나면, 불교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할 수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괴로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깁니다.

이번 불교대학은 아까 대표님 말씀하신 대로 2,000여 명이 입학을 했습니다. 7명씩 또는 6명씩 한 모둠이 돼서 수업을 진행하고, 모둠 6~7개가 모이면 한 개의 반이 되는데, 한 반에는 수업을 전체적으로 운영하는 반 담당이 있고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는 법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메일로 질문을 하면 답을 해 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굉장히 새로운 학습 방식일 것입니다.

진행 중에 법사님과의 소통을 통해서 이해를 돕지만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전체가 모여서, 학습 중에 궁금했던 사항을 저에게 질문하는 즉문즉설 시간도 갖습니다.

일반 학교 학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것은 내가 체험하는 것이 목표지 지식으로 아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여러분이 가장 어려워하는 프로그램이 '마음 나누기'입니다. 마음 나누기라는 건 내 마음 상태를 내가 알아차리고 내어놓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여기 핵심은 '내 마음 내가 알아차리기'입니다. 내 마음을 내가 알아차려야 어떻게 할지의 선택이 나한테 생깁니다.

우리는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내어놓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숨겨야 한다,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되고 괴로움이 됩니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내어놓기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설령 짜증이 나도 '짜증이 나는구나' 알아차리고, '어, 내 마음이 짜증이 나네?' '짜증이 나요' 이렇게 점점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됩니다.

자, 이렇게 공부를 하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들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가까이서 이렇게 직접 축하를 드려야 하는데 일정상 이렇게 먼 곳에서 온라인으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10월 즉문즉설 시간에 여러분들 다시 한번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현지 미국 동부 시간 새벽 1시에 경전대학 입학식이 있고 캐나다 토론토로 이동하여 외국인 대상의 영어 강연과 교민 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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