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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북미 순회강연 아홉째 날입니다. 오늘 스님은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주 애틀랜타(Atlanta)로 이동하여 조지아공대(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영어강연을 했습니다.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스님은 오전 6시에 정용순, 서연희 님이 준비해준 음식으로 아침 공양을 한 후, 7시에 숙소를 출발하며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오스틴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탐 님과 이두라 님 부부가 스님 일행을 공항까지 운전 지원을 해 주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을 마치고도 출발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게이트 앞에서 잠시 쉬며 탑승을 기다렸습니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예매한 탓에 맨 뒷좌석을 배정받아 탑승 순서가 마지막으로 밀려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더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비행기 탑승 후, 2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도착했습니다.

애틀랜타는 조지아주의 주도(州都)이자 남부의 경제·문화·교통 중심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카콜라, CNN 등 글로벌 기업 본사가 위치한 상업 도시이며, 풍부한 녹지 덕분에 '숲속의 도시'라 불리기도 합니다. 애틀랜타의 날씨는 맑고 화창했습니다. 약간 덥기도 했지만 어제 머물렀던 텍사스주 오스틴보다는 기온이 낮았습니다. 어제보다 미국 동부로 이동한 탓에 한국과의 시차는 13시간입니다.
애틀랜타 공항에는 벤·손희숙 부부가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분은 미국의 한 자선단체를 이끌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복지단체를 중점적으로 지원해 왔고 JTS의 구호 사업에도 꾸준히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후 2시 30분, 벤·손희숙 부부의 집에 도착하여 점심 공양을 하고 오후 4시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입니다. 조지아 공과대학교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명문 공립대학교이며, MIT, 칼텍(Caltech)과 함께 미국 3대 공과대학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강연장 앞에 도착하자 권은숙 교수님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권은숙 교수님은 조지아 공대의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오늘 스님을 초청해 준 분입니다. 오늘 강연은 사전 신청제로 진행되었는데, 150석 좌석이 이틀 전에 모두 마감되었다고 합니다.


강연 시작 전 스님은 강연장을 한 번 둘러보며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초청자인 권은숙 교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5시, 강연을 시작하기 위해 스님이 무대 위로 올랐습니다. 북미 순회 아홉 번째 강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먼저 오늘 대화의 성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웃음)”
스님은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즉문즉설에 대한 설명과 대화 참여 방식에 대해 안내를 했습니다.

“여러분과 대화할 때 제가 어떤 관점에서 여러분과 대화하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누군가 뉴욕으로 가는 방향을 물었다고 합시다. 우리는 바로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물었다면, ‘동쪽으로 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가 토론토에서 물었다면 ‘남쪽으로 가라’고 해야 합니다. 만약 파리에서 물었다면 ‘서쪽으로 가라’ 하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우리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뉴욕 가는 길을 물으면, 뉴욕으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지금 당신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그 방향을 정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의 위치가 정해지면 그가 가야 할 방향도 바로 정해집니다.
여기서 ‘정해져 있지 않다’라는 것을 불교 철학 용어로 ‘공(空)’이라고 합니다. ‘공’은 어떤 인연을 만나면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쪽이다’ 또는 ‘서쪽이다’라고 정해진 길을 ‘색(色)’이라고 합니다.


색(色)과 공(空)은 둘이 아니라 본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정해져 있지 않음에 기반하여 정해진 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인연이 모여 쌓이면 이루어지고,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色卽是空)’고도 표현합니다. 말이 조금 어려운가요?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하든 저와 대화가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화의 주제를 잡으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위치가 정해지는 것과 같기 때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길’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어떤 답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화하다 보면 여러분 스스로 그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 이제 직접 한번 얘기를 나눠봅시다.”

"Hello, Sunim. With terrifying headlines that AI might wipe us out within a decade, many of us are gripped by deep existential dread about whether we even have a future. Between the rapid collapse of familiar realities and deep social divisions, it feels impossible to find trustworthy institutions or leadership to guide us through this. In such an uncertain world, how can young people find the confidence to put all their energy into building a viable life?“
(이번 주 가장 큰 뉴스가 '10년 안에 AI가 인류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과연 10년, 20년 뒤에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깊은 실존적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현실이 빠르게 무너지고 사회적 분열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우리를 이끌어 줄 신뢰할 만한 제도나 리더십을 찾기란 불가능하게만 느껴집니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위태롭게 느껴지는 요즘, 저희 같은 청년들이 어떻게 온 힘을 다해 삶의 기반을 다지고 살아갈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사물에는 언제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편리함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화약이 발명되면서 많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무기가 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을 살상했습니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해 보고 상상을 초월할 만큼 편리하다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위험한 요소도 함께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경험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철기 문명이 시작되었을 때, 철로 만든 농기구는 석기보다 월등하게 유용하여 생산량을 급격히 늘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철기가 무기로 쓰였을 때,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작은 나라들이 무력에 의해 강제로 통합되어 거대한 제국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전까지 인류는 주로 사람이나 동물 같은 유기체의 동력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증기기관이라는 무기체의 동력을 발명하면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력을 앞세운 식민지 제국주의가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에 따라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는 일이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었습니다. 지금도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권력의 집중 현상도 뒤따를 것입니다. 특히 바이오산업의 발달로 인하여 건강과 미용은 물론, 수명과 성(性)의 편중까지 나타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공지능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어느 나라도 이 기술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원자력 기술이 발전하면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졌듯이,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성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인류의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그 제어가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많은 희생과 혼란이 따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서구 문명과의 충돌로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희생되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8천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가 멸망하거나 인류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인류는 그런 뼈아픈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국제연합(UN)을 만들고 상호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의 가장 밑바탕에는 기술 발전에 따른 ‘부의 편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뒤이어 ‘권력의 집중’ 현상 또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많은 불행이 초래될 것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까지 결합한다면, 전쟁과 살상의 파괴력은 가공할 수준이 될 것입니다. 이미 전쟁의 양상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힘 있는 강대국들이 패권을 걸고 경쟁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를 제어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질문자께서 가장 염려하시는 부분은 아마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손을 떠나 스스로 발달하며 인간의 통제력을 잃게 되는,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일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 변곡점이 가까워졌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작정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떻게 지혜롭게 편리함을 누리면서 그 위험을 막아낼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핵무기는 인류를 종말에 이르게 할 만큼 가공할 무기입니다. 비록 핵무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인류는 스스로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사용을 어느 정도 자제해 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가져올 피해가 극심하고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면, 인류는 그것을 극복할 새로운 길을 또 찾을 수도 있습니다. 희생을 치르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겠지만, 인간은 그렇게까지 현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인류 전체가 공멸할 때까지 방치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다만, 우리가 예의 주시하면서 인공지능의 피해를 어떻게 막고 제어할 것인지 끊임없이 사회적 여론을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과거 핵무기를 개발했던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핵의 위험성을 경고했듯이, 지금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전문가들 스스로가 그 위험을 예측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인류의 지혜를 모아 안전하고 평화로운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My younger brother has big dreams of becoming a data scientist, but he barely studies and his GPA is quite low. I used to push him hard and teach him everything step by step, but I started worrying that I was just forcing my own standards onto him. On the other hand, whenever I try to step back and focus on my own life, I feel guilty like I'm giving up on him and letting him fail. Now that I'm studying abroad in the US, being physically away makes me wonder if I'm just making excuses to avoid helping him. In this situation, should I keep mentoring him through regular Zoom calls, or is it wiser to just let go and stop trying to control his life?"
(저에게는 어린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은 국제적인 과학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GPA 성적이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을 가르쳐 보려고 MIT 강의 영상을 보여주거나 노트 필기법을 알려주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제가 보라고 한 영상을 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저는 제 공부 방식을 동생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동생이 인생에서 실패할까 봐 걱정됩니다.
제가 정말 동생을 위해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제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이러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고, 동생은 한국에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제가 동생에게 억지로 공부를 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저 역시 제 공부와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주 동생과 화상 통화나 대화로 계속 지도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동생을 믿고 스스로 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안 하면 되지, 모르는 것을 왜 자꾸 하려고 해요?” (웃음)
"I don't know how to even teach him. And, he says he wants to be a..."
(제 동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가르칠지 모르겠으면 안 가르치면 되잖아요.” (웃음)
"But then, if he ends up graduating as a 2.5 GPA, and then, he is sad, do I just look at him and say, 'I told you, whatever.' Is that okay? Because I didn't know how to..."
(학점이 2.5 정도면 성적이 좋지 않은 편인데요. 동생이 성적이 안 좋아서 고민할 때, 제가 어떤 조언을 해줘야 할까요?)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인생에서 반드시 좋은 일이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한국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공부를 잘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성적이라는 가치관으로 동생을 너무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실패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성적을 기준으로 좋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나눈다고 가정하면, 평균적으로 성적이 더 좋은 대학의 졸업생들이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삶을 놓고 보면 정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성적이란 지식과 기술을 양적으로 측정한 것인데,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 그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조선 말엽에 과거시험을 볼 때는 글씨를 얼마나 잘 쓰는지, 시를 얼마나 잘 짓는지, 유교 경전의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등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평가 기준은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은 영어, 수학 같은 개별 과목을 중심으로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시대에도 평가 기준이 지금과 같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애플사(Apple Inc.)에 다니는 분에게 들었는데, 올 연말쯤에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제가 한국말로 이야기하면 영어로 듣고 싶은 사람은 영어로 듣고, 태국어로 듣고 싶은 사람은 태국어로 들을 수 있는 제품이 나온다고 합니다. 또 상대방이 태국어로 말하면 저는 그것을 한국어로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통역이라는 분야도 많이 사라지겠지요. (웃음)

어제는 제가 안경 하나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 안경을 쓰고 있으면 상대방이 영어로 말할 때 제 안경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표시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 불편한 것 같아요. 서로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눈을 봐야 하는데, 저는 안경에 나타나는 상대의 말을 읽어야 하니까 상대의 얼굴을 집중해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웃음) 두 사람이 대화하는데 상대방의 눈은 쳐다보지 않고 글을 읽고 있는 셈이지요. 이런 기술들이 점점 발전하면 앞으로는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의미의 재능이나 기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중요한 교육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할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동생을 너무 질문자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여 평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형제간의 우애를 돈이나 학습 같은 것과 연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동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돈이 많든 적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이런 것들은 개인의 자유 영역이기 때문에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냥 형제로서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저의 형님이 제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늘 제 결혼 문제에 신경을 쓴다면, 그것이 진정한 형제간의 우애일까요?”

"I don't think so."
(아닌 것 같습니다.) (웃음)
“그렇다면 만약 저의 어머니께서 오직 저의 결혼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신다면, 그것이 자식에 대한 진정한 사랑일까요?”
“No.”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의 생각을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요구에 내가 반드시 부응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동생에게는 동생의 인생이 있습니다. 동생이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면, 질문자가 보기에는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결국 동생 본인이 지게 됩니다. 물론 가끔은 질문자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또 동생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도와주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 동생을 규정하고, 내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질문자는 본인 공부만 잘하면 됩니다.” (웃음)
“Yes, I understand”
(네, 잘 알겠습니다. 스님.) (웃음)

그 외에도 여러질문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제 기준에 맞지 않는 일도 그냥 친구들 뜻에 맞춰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좋은 선택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제 직관과 원칙대로 행동하려고 노력 중인데,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어색해지거나 다투게 됩니다. 어느 정도 스트레스는 각오하고 감당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상처도 크고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런 감정과 스트레스를 제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뤄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제 핵심 원칙은 지구와 환경을 가장 최우선에 두고 일하는 것인데요. 막상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다 보니 이 업계에는 비윤리적이고 환경을 파괴하는 관행이 너무 많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며 성과도 내고 성공하면서, 동시에 환경과 기업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제 원칙을 지켜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스님은 여섯 명의 질문자들과 대화를 마친 후 오늘 봉사해준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의에는 자선 재단의 벤 이사장과 JTS 기금 관계자들도 참석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자선 재단의 관계자들은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스님, 오늘 강연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선 재단이 JTS 사업을 든든히 뒷받침해 주신 덕분에, 현지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원조가 축소되면서, 동남아시아 현지의 사회개발 사업들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금까지 국제개발 사업은 주로 외부 후원금으로 자원 뿐 아니라 NGO의 인건비와 현지 사무실 운영비를 충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원조가 끊기자 단체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사회 개발사업 자체를 이어가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국제구호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현지 주민들이 ‘우리 마을 일은 우리가 직접 하겠다‘며 주도적으로 나서고, 지원 단체는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자재와 물자를 지원해주는 ‘주민 자립형 모델’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비교적 건전한 정부를 가진 부탄과 같은 국가는 정부기구와 직접 손을 잡고 일할 수 있고, 행정이 취약한 국가에서는 신뢰할 만한 NGO나 지방정부를 협력 파트너로 해서 이 주민 자립형 사회 개발 방식을 확산해 나가고자 합니다.”

스님은 재단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JTS가 현지를 지원해 나가는 방향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어 스님의 영문 책을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법해법사님은 봉사자들과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해외지부 봉사자들과 조지아공대 대학생 봉사자들이 함께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즉문즉설을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스님의 강연을 볼 수 있지만, 직접 들으니 더 좋았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지금, 여기, 나 자신’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이곳에 와서 정말 기쁩니다.”

“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는 4학년 학생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으며 우리가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히려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통찰력 있는 말씀 덕분에 어려움에 대한 제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산업디자인과 졸업생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서 참석했습니다. 특히 앞에서 말씀하신 형제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두는 것에 관한 말씀이 무척 사려 깊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을 처음 직접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내용을 직접 들으니 오늘따라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손희숙 님 집으로 이동하여 간단하게 저녁 공양을 한 후, 벤, 손희숙 부부에게 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중인 JTS의 사업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만난 김에 재단에서 지원해 주신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필리핀에서 진행하고 있는 원주민, 장애인 학교 건립 사업 현황을 설명드리면 현지의 적극적인 참여로 올해 목표 10개를 초과해 학교 20개를 짓고 있으며, 앞으로는 특수교사 양성과 학용품 지원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인도에서는 유치원부터 초·중학교까지 운영하며 약 2천 명의 취약계층 아이들을 교육하고, 상급 학교 진학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교육 외에도 병원 운영, 마을 개발 사업으로 식수용 핸드펌프 설치, 빈곤층 주택 신축, 식량 지원 등 기초 생활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부탄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의 현황은,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로 5년 계획을 3년으로 단축하여 본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내년까지 사업을 이어가며 현장 속도에 맞춰 예산을 운용할 계획입니다. 첫해 사업을 해 보면서 다시 5년으로 늘려 원래 계획대로 하기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주민 참여형이다 보니 농한기에 해야하므로 빨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현장을 다녀보고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현장에서는 모든 일을 사람의 힘으로 하니까 작업 진행 속도도 느리고 현지 주민들이 너무 힘들어 보였습니다. 덤프트럭 한 대와 소형 굴착기 한 대를 세트로 해서, 현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두 개 주에 한 세트씩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장비는 사유화되지 않도록 주정부에 기증하여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첫해에 받은 예산의 잔액이 있으니 그 돈으로 장비를 지원하면 어떨지 제안드립니다.”
벤 님이 물었습니다.
“그 장비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제대로 관리될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요?”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시골에는 그런 장비가 없기 때문에 지원하려는 것입니다. 우선 저희 사업에 사용하도록 하고, 다른 일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열어두고 관리하면 됩니다.”
그러자 벤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장비를 받아 카지노를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웃음)

스님이 현장에서 장비가 필요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산길 중에는 경사가 너무 가파르거나 물이 흘러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은 10미터나 30미터 정도만 포장해도 나머지 비포장도로를 계속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의 힘으로 하려면 일이 너무 많습니다. 현장에 가 보니 주민들이 모래와 돌을 등에 지고 와서 일일이 돌을 망치로 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비가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벤 님은 JTS의 사업 방식을 신뢰한다며 장비 지원에 동의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현장에 가시고 저희는 가지 않으니 스님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들은 후원금을 받으면 남김없이 다 쓰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께서 오히려 돈이 남았다고 말씀하시니 더욱 신뢰가 갑니다. 제가 신뢰하는 비영리단체 중 하나가 JTS입니다. JTS는 적은 비용으로 열심히 일해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신뢰합니다. 장비를 지원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지원금을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은 ‘내 돈을 쓸 때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예산보다 돈이 더 들더라도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사용 해야 하고, 예산이 있더라도 필요하지 않으면 쓰지 말아야 합니다. JTS는 예산은 정확하게 세우지만 반드시 전액을 쓰지는 않습니다.”
벤 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공사 일이 힘들다고 주민들이 불평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불평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높은 산에 있는 마을까지 직접 찾아갑니다. 맨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든 곳에 가서 ‘여러분은 시멘트를 메고 올라오느라 정말 힘들었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확인한 후에 지원 물자를 줄일 때도 있지만, 꼭 필요하면 더 늘려주기도 합니다.
현장을 둘러보고 도로에서 집까지 시멘트 길을 내야겠다고 판단되면 시멘트 열 포대를 추가로 지원하기도 합니다. 집 주위에 배수로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재료를 더 줄 테니 물이 잘 빠지도록 수로를 만들라고 합니다. 주민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면 농담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이게 스님 집을 짓는 일입니까, 당신 집 짓는 일입니까?’ 원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면 주민들도 수긍하고 감사해합니다.(웃음)”

벤, 손희숙 부부는 시종일관 옅은 미소와 함께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스님의 사업 보고 내용은 매우 진솔하고 따뜻했습니다. 사업 보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대화를 마치며 벤, 손희숙 부부에게 스님의 책을 선물했고, 다 함께 늦은 저녁 공양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북미순회강연 열째 날입니다. 스님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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