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11. 북미순회강연(4), 밴쿠버(Vancouver)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안녕하세요. 북미 순회강연 넷째 날입니다. 오늘은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고, 시애틀에서 캐나다 밴쿠버(Vancouver)로 이동하여 외국인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밤새 업무를 보고 한국 시간 7시 30분에 진행하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기 위해 현지 시간 새벽 3시 30분에 수련실로 이동했습니다. 그동안 머물렀던 남쪽 지역과는 달리 벌써 새벽 공기가 쌀쌀했습니다.

4700여명이 유튜브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미국 시애틀에 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세 시 반입니다. 저는 이번 주 월요일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서 북미 서부 지역에 있는 각 대학을 방문하고 현지인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하고 있습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주립 대학교, 어제는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이 즉문즉설이 끝나면 저는 캐나다 밴쿠버로 이동해서 UBC 아시안 센터에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주말에만 교민 대상 즉문즉설을 진행하고, 나머지 시간은 대학에서 현지인들과 만나는 데 집중하여 총 17곳 정도를 순회하는 일정으로 계획했습니다.

즉문즉설이란 대화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주제라도 우리는 대화가 가능합니다. 이 대화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고민이 해결이 되면 그것은 ‘설법’이라고 말합니다. 정확하게는 ‘법담’입니다. 법담이란, 인간이 갖고 있는 고뇌나 의문이 사라지도록 하는 대화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담마 토크(Dhamma Talk)입니다.”

스님은 북미 순회강연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출가하신 행자님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평생 수행하면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심은 무엇인가요

“저는 현재 조계종단의 비구니 사찰에서 생활하고 있는 비구니 행자입니다. 이번 생에 제가 선택한 수행자의 길을 오랫동안 바르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혹시 내 욕심이나 아상을 수행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습니다. 선배 수행자이신 스님께서 보시기에 처음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제가 지금부터 가장 중요하게 가져가야 할 마음은 무엇이고, 평생 수행하면서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심은 무엇인지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비구니 스님이 질문하는 내내 스님은 옅은 미소를 띠며 질문을 경청했습니다.

“수행의 목표는 내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화, 슬픔, 근심걱정, 스트레스, 두려움 등 괴로움으로부터 내가 벗어난 상태, 즉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을 불교 용어로 '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되는 무지의 상태를 깨뜨려야 합니다. 즉 언제나 올바르게 아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이에요. 이것을 '깨달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소승불교에서는 이를 '알아차림'이라고 하고, 알아차림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중도의 행’을 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너무 조급해도 안 되고 너무 게을러도 안 돼요. 그러니까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절에 와서 너무 긴장하거나 빨리 공부하려고 애를 쓰면 지치게 됩니다. 지치면 힘이 드니까 중간에 공부를 그만두게 됩니다. 내가 지치고 힘들면 내가 모시는 은사 스님이나 절에 있는 대중이 내 눈에 안 좋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저런 사람 밑에서 내가 배울 게 뭐 있나’ 생각하고 공부를 그만둘 핑계를 만들게 되죠. 반대로 너무 게으르면 절에 사는 게 편하지만 아무것도 배우는 게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내가 절에 들어온 목적을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항상 마음은 편안하게 갖고 수행은 꾸준히 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처님 마지막 법문에서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불방일(不放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두 번째는 초심자일수록 자기 생각, 자기 견해, 자기 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주장, 견해, 취미를 붙들고 있으면 그게 안 맞을 때 자꾸 화가 나고, 걱정이 되고,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기도문을 '네, 하고 합니다’ 하고 기도를 해 보세요. 뭐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자 생활 1년 동안 ‘나’라고 하는 것, 즉 ‘자기애’를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거 하라고 하면 ‘네’ 하고 하고, 저거 하라고 하면 ‘네’ 하고 해보세요. 밥 하라고 하면 밥 하고, 청소하라면 청소하고, ‘너 왜 밥 하다가 청소하니?’ 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다시 밥 하러 가면 됩니다. 그러다가 ‘너 왜 청소 안 했니?’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다시 청소하면 됩니다. ‘내가 어떻게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한꺼번에 다 하나?’ 하고 불평을 하면 나에 대한 해탈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안 되면 나중에 승려가 된 뒤에 강원에 가거나 선방에서 생활할 때도 불평을 하게 됩니다. 항상 갈등은 생활 문제에서 생겨요.(웃음) 적어도 먹고 입고 자는 것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이 의식주로부터 먼저 해방이 되지 않으면 절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기본 생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네 하고 합니다.’를 기도문으로 가지고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 말씀 듣고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한번 해 보세요. (웃음) 수행을 어렵다 생각하지 말고, 쉽다 생각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느냐를 기준으로 하면 내 수행 생활이 굉장히 쉽고, 세상 사람들하고 비교하면 어렵습니다. ‘나는 부처님보다 더 잘 먹고 더 좋은 옷 입고 더 좋은 잠자리에서 자는데 뭐가 문제야’하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새벽 4시 50분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7시 30분에 짐을 챙겨 캐나다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육로로 이동하여 국경을 통과했습니다.

캐나다 국경을 통과한 후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대형 슈퍼마켓에 주차를 했습니다. 일행이 화장실에 간 사이, 스님은 슈퍼마켓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늘 집안 텃밭에 씨를 뿌려 키우는 상추와 고수를 상품 진열대에서 발견했습니다.

“상추와 고수가 여기에 있네요.(웃음)”

스님은 상추와 고수를 조금 구입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서 오전 10시 40분에 캐나다 밴쿠버 정토회원 김현미 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밴쿠버 지역 정토회원들이 다같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밴쿠버 정토회원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반갑습니다. 잘들 지내셨나요?”

인사를 마치고, 스님은 정토회원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맛있게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오후 1시 30분에는 오늘의 강연 장소인 밴쿠버 UBC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차로 50분 정도 이동해서 오후 2시 40분, 오늘 강연이 열리는 UBC 아시안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센터 내부에 있는 강의실로 들어가자, 불교 전문 온라인 저널 BDG(Buddhistdoor Global)의 운영 책임자인 어니스트 응 님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BDG를 통해 스님과 정토회의 활동이 여러 차례 소개되었지만, 어니스트 응 님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밴쿠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늘 BDG를 통해 스님의 지혜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영어로 서구 사회에 불교를 알리는 데 기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과 어니스트 응 님은 약 50분 동안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니스트 응 님은 BDG가 지역 봉사의 일환으로 호스피스 등 돌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점을 전하며, 한국인 불자들을 위한 법문과 상담 지원에서 정토회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아울러 세계의 다양한 불교 전통을 잇는 BDG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습니다.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에서 담마를 잘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 이렇게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담마를 잘 전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고뇌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가르침을 담마라고 하지 ‘이것이 담마다’라고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이 고뇌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이 어느 시대보다 담마가 필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괴로움에 놓여 있는지를 봐야 하고, 왜 괴로운지를 물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그 괴로움의 원인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문제였구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거기에 집착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밖을 향해 있던 눈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그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면 이런 대화를 ‘담마’라고 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고뇌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법을 전하는 것이고, 담마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됩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날이 어두울 때를 생각해 봅시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실제와 다르게 착각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 착각을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두려움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나 불을 밝히면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알게 되고 착각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두려움도 함께 사라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그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붓다 담마는 과거의 언어나 대화를 연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연구해서 학위를 딸 수도 있고, 학문적으로 발표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붓다를 믿고 복을 구한다면, 하느님을 믿고 복을 구하는 기독교인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붓다 담마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죠. 그렇다고 학문이나 종교로서의 불교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붓다 담마가 사람들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붓다의 지혜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스님은 어니스트 응 님에게 책을 선물하며 미팅을 마쳤습니다.

130석이 되는 강연장은 청중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좌석 신청이 조기에 마감되어 현장 강연을 놓친 분들은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오늘 강연이 유튜브로 생중계되어 온라인으로나마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 북미 순회 네 번째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청중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지역에 사는 사람이 ‘밴쿠버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하고 부처님에게 물었다고 합시다. 일본 도쿄에 사는 사람이 물었다면 붓다는 ‘동쪽으로 가거라’ 하고 말하겠죠. 그런데 토론토에 사는 사람이 물었다면 ‘서쪽으로 가거라’ 하고 말하겠죠. 앵커리지에 사는 사람이 물었다면 ‘남쪽으로 가거라’하고 말씀하셨을겁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질문과 붓다의 답변을 기록해 놓은 것을 ‘경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대화록을 보면서 “왜 한 번은 동쪽으로 가라고 하고, 한 번은 서쪽으로 가라고 하고, 한 번은 남쪽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어느 게 맞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틀린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의 위치에 따라 밴쿠버로 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붓다의 답변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불교를 연구하면서 주장할 때 “이것이 더 바르다, 이것이 더 높다”라는 주장은 경전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생겨난 겁니다.

8세기경에 한국 신라에는 ‘원효’라고 하는 유명한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은 당나라였는데, 당나라 불교에는 열 개가 넘는 종파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종파는 서로 자기가 더 우위에 있다든지, 쉽다든지 하는 주장을 했었고, 그러한 당나라 불교가 신라에 들어왔을 때 신라인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같은 불교인데 서로 맞다거나 틀렸다거나, 높다거나 낮다거나 주장을 하니까요. 그때 원효는 그 전체를 파악하고, ‘각각의 주장으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화쟁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쟁을 화합한다.’ 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요지를 파악하면 이것은 다 밴쿠버로 가자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열반을 증득하자. 깨달음을 얻자’는 이야기 라는 것이죠. 그런데 각 종파별로 처한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말씀 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자,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밴쿠버로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과거의 수트라를 찾아봤습니다. 어떤 데는 동쪽이라고 기록돼 있고, 어떤 곳에는 서쪽이라고 기록돼 있고, 어떤 곳은 남쪽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 셋 중에 어느 것이 맞을까요? 어떻게 접근해야 될까요? 그럴 때에는 도쿄 사람에게 동쪽으로 가라, 토론토 사람에게 서쪽으로 가라, 앵커리지 사람에게 남쪽으로 가라 하는 것의 요점을 봐야합니다. ‘아, 밴쿠버로 가라는 뜻이구나’, ‘로즈엔젤레스는 여기에 있으니 밴쿠버로 가려면 북쪽으로 가야겠구나’ 하고 아는 것입니다

즉, 바른길이라는 것은 목적지와 그가 선 위치를 완전하게 파악할 때 언제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경전을 뒤져서 ‘그 때는 이렇게 가라고 하셨네’ 하는 것이 담마 토크가 아닙니다. ‘지금 그가 어떤 고뇌를 갖고 있느냐, 그는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어떤 관점을 가져야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대화가 ‘담마 토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는 저와의 대화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종교가 다른 것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고뇌하는 바를 솔직하게 대화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질문을 위해서 준비할 필요도 없고, 저도 답을 하기 위해서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이라는 말이 붙은 겁니다.

우리가 찻집에 앉아서 친구 사이에 대화를 할 때 어떤 주제를 꺼내도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처럼 여러분이 말하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러면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I have been married for about 10 years, and I am currently going through a divorce in Canada at my husband's request, and I will soon return to Korea to get back to my work. I took a leave from my career in Korea and moved to Canada to continue our marriage. But my husband told me that recently he had been un happy for a long time and wanted a divorce. Looking back, I regret relying on him too much in Canada, even though I tried my best to settle down here, to graduate from UBC, and try to find a job here. And also I regret not expressing enough gratitude and love in the way he needed. At the same time, I also left my career and the planned life in Korea to build a life with him in Canada. So I feel very hurt and resentful that I am now losing both my marriage and the life I built here. Unfortunately, my husband has made his decision, but I am still struggling to let go. I do not know whether I am holding on to him, to the life we had, or to a future I thought we would have together. So my question is, how can I acknowledge my mistakes without excessively blaming myself, or resenting my husband, and peacefully let go of this marriage and relationship?"

(안녕하세요, 스님. 저는 결혼한 지 약 10년이 되었고, 현재 남편의 요구로 캐나다에서 이혼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원래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까지 휴직하고 밴쿠버로 와서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며 어떻게든 이곳에 정착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오랫동안 불행했다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남편이 필요로 했던 방식대로 감사와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커리어와 삶을 포기하고 왔는데 결혼과 이곳에서 일군 삶을 모두 잃게 되어 상처가 크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남편의 결정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내려놓기가 힘듭니다. 제가 너무 자책하지도 않고,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이 결혼과 관계를 평화롭게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제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좋아서 껴안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안아 봐도 될까요?’ 하고 상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싫다고 해요. 순간, ‘아니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는데 안아 보지도 못해? 이건 너에 대한 내 사랑 표현이야!’ 하면서 껴안아 버렸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나를 뿌리치고는 경찰에 성추행범으로 신고해 버린 겁니다. 나는 너무 억울해요. ‘내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내가 이분을 때렸습니까? 물건을 빼앗아 갔습니까? 나는 다만 이분을 좋아한 것뿐이에요’ 하면서 하소연합니다. 이것에 대해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I think it could be a crime because the other person didn't want it."
(그건 상대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지인과 함께 어떤 사업을 하고 싶어서 동업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 수익이 났어요. 그런데 그 지인이 자기는 손해라며 불평해요. ‘아니 당신도 이익을 보고 있잖아요? 왜 그래요?’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상대는 계속 자신은 손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동업 계약을 깨고 싶지 않아요. 나는 상대의 뜻대로 계약을 해지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어떻게든 유지해 볼까요?”

“It's hard for me to just go along with his request because his asking for a divorce hit me so hard. But if you look at it strictly as a contract, I can agree to that.”
(남편의 이혼 요구가 제겐 너무 충격이어서, 선뜻 그 사람의 요구를 따라주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계약 관계만 본다면 동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와 합의한 내용을 지키기 위해 계약이나 약속이라는 행위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약속도 해지할 수 있나요? 아니면 꼭 지켜야 할까요?”

“Yes, we can break it.”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저는 질문자에게 ‘결혼이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남편과 갈등하고 있고, 남편은 이혼을 원해요. 질문자와 결혼해서 살겠다는 약속을 해지하자고 나온 겁니다. 옛날에는 결혼한 배우자에 관해 ‘하늘이 맺어주신 배필’이라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이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우리는 ‘결혼’을 사람 사이의 어떤 계약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계약을 맺으면 그 내용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생기지만, 필요에 따라 해지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질문자의 남편은 지금 질문자와의 결혼 계약을 해지하자고 하는 겁니다. 계약 해지가 그렇게 힘들어할 일인가요? 질문자는 아니지만, 남편은 질문자와 사는 게 힘들다고 하잖아요. 누군가를 좋아할 자유도 있지만, 싫어할 자유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좋을지 몰라도 남편은 싫고 힘들다고 하는데, 결혼을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질문자에게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남편의 처지에서는 이 결혼이 손해가 되는 계약이니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이혼하셔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Logically, I agree with what you're saying, Sunim. But honestly, it's very hard for me to accept the divorce. And looking back, I really regret that I didn't give him enough love or express enough gratitude the way he needed. Because of that, I've started blaming myself, too.”
(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스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는 이혼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편이 원했던 만큼 사랑을 주지 못했고 감사 표현이 부족했던 과거를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 자신에 대한 자책도 시작되었고요.)

“이혼을 앞두었으니 그런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결혼을 좀 더 유지하더라도 달라질 일은 없어 보여요.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남편은 질문자와의 오랜 생활을 통해 ‘당신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또 똑같이 되돌아갈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서 단호한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 아마 이런 경험이 몇 번 되풀이 되면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이 질문자와 이혼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남편의 결정을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질문자와 이별하는 게 남편의 행복이라는데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요. 단지 질문자의 마음에 들어서, 아니면 질문자에게 이익이 되어서, 이런 이유로 남편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이 저를 걱정해 줍니다. 일정이 너무 빼곡하고 과로한다고요. 그런데 막상 저와 즉문즉설을 시작하면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함께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저에 대한 걱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책에다가 제가 서명을 해드릴 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이 정말 저를 걱정하신다면 신청하신 질문도 취소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책에 서명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들어가 쉬십시오’ 이렇게 건의하거나 살피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 설명하는 것은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이지, 여러분이 질문하고 사진 찍고 서명받는 것이 나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웃음) 상대를 걱정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질문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없는 일방적인 애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사랑한다기보다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상대가 나를 싫어해도, 나는 그 상대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괴롭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제가 요즘 청년들과 대화할 때도 부모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또 부모들과 대화해 보면 다 자식들 잘되라고 한 말이라고 해요. 다 사랑해서 해준 말이고 행동이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식을 괴롭히는 겁니다.

상대에게 너무 집착하는 남녀 간의 사랑도 옛날에는 ‘지극히 사랑한다’고 해서 좋은 시선으로 봤습니다. 옛말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내려오는 것도 이런 애착을 ‘지극한 사랑’이라며 좋게 보는 시선이 반영된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그렇게 하면 스토커라 불리거나 법원에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죠.

질문자 자신만 생각하면 안 돼요. 정말 남편을 사랑한다면 그의 처지도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을 따라 캐나다에 온 것도 특별히 무슨 손해 본 일입니까? 덕분에 캐나다 생활도 하고 캐나다 구경도 잘했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지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서 계속 살아도 되고, 고국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다른 남자를 만나도 되고 혼자 살아도 됩니다. 어떻게 선택하든 그건 질문자의 자유예요.”

"Thank you for the clarification. That means so much to me, and it was very helpful. I think it will really help me through any difficult times ahead."
(네, 명쾌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비슷한 어려움이 생겨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별일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Yes! It's really no big deal."
(네! 별일 아니네요.) (모두 웃음)

“저와 대화하면서 ‘별일 아니었구나!’하고 가벼워졌다면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히 깨우쳤을 때는 아무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무슨 방법을 찾았다면 그건 온전히 깨우쳤다고 말씀드릴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아직 할 일이 있는 거니까요. 부처님께서 당시 사람들을 일깨워 주신 것도 ‘어떻게 하면 된다’라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내가 문제 삼던 것들이 아무 문제도 아니었네’하고 스스로 깨닫도록 도움을 주셨을 뿐입니다. 아무 문제 아님을 깨달으면 아무 할 일이 없어집니다. ‘내가 문제 삼던 것이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구나!’하고 깨우치는 순간 괴로움은 즉시 사라집니다.”

  • My mother was a practitioner of shamanism. How can I honor my mother’s spiritual life and clarify what she wants done with her shrines?
    (저희 어머니는 무속인이셨습니다. 어머니의 영적인 삶을 어떻게 존중해 드릴 수 있을지, 그리고 어머니께서 신당(법당)이 어떻게 정리되기를 바라시는지 어떻게 명확히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 What matters most when choosing a husband, and how important is financial stability?
    (남편감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경제적 안정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 How can I find my passion? My friends seem to be more passionate than I am about their careers and lives.
    (제 열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제 친구들은 직업과 삶에 대해 저보다 더 열정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 I’m a professor. How should I respond to students who are struggling with mental health issues?
    (저는 교수입니다. 정신 건강 문제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 I’m afraid of dying. How can I overcome this fear?
    (저는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1시간 45분 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질문자들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질문들과 직설적이고 통찰력있는 스님의 답변, 관객들이 호응이 한데 어우러져 큰 감동을 느꼈는 참가자들의 소감나누기도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스님은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고, 숙소로 이동하였습니다.

7시 10분 숙소에 도착하여 스님은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저녁 공양 후에는 오늘 일정을 함께하고 있는 시애틀, 밴쿠버 정토회원들과 한 시간가량 차담 시간을 가지면서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북미 순회강연 다섯째 날입니다. 오전에 영어 불교대학 온라인 즉문즉설을 하고, 밴쿠버 한국 교민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다시 미국 국경을 넘어 시애틀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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