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9.9. 북미순회강연(2),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남자친구가 청혼을 하는데 결혼이 망설여집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미 순회강연 둘째 날입니다. 스님은 오렌지카운티 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이동해서 버클리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영어강연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후 김명례 님이 정성스레 준비해준 음식으로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오전 7시 10분이 되자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기 위해 숙소를 출발하여 오렌지 카운티 산타아나 시에 있는 존 웨인 공항(John Wayne Airport, IATA: SNA)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따라 도로에 차가 많아서 공항에 늦게 도착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캘리포니아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거친 산맥과 푸른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선명한 모습이 아름다워서 잠시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오전 11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샌프란시스코 정토행자 박일환 님이 스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 마중 온 박일환 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차에 짐을 실은 뒤 숙소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오후 12시경, 샌프란시스코 정토행자 김준자 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어서 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진 않으신지요.”

“네, 괜찮아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스님 샌프란시스코에 계시는 동안이라도 편하게 머무르세요.”

김준자 님과 정토행자들이 먼 길을 오신 스님을 위해 점심 공양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일행과 점심 공양을 한 후, 강연장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 스님은 오늘 강연 실무 총괄을 맡은 이예정 님의 차량으로 버클리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로 출발했습니다.

1시간 30분가량 이동하여 오후 3시경, 버클리 주립대학의 수타르자 다이 홀(Sutardja Dai Hall)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스님을 초청한 동아시아 연구소의 스티븐 리(Steven Lee) 교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만남의 장소에는 스티븐 리 교수님과 일행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만남의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저희 학교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크고 질문이 많은 시기라 스님의 방문이 저희에게는 큰 선물 같습니다. (웃음)”

“저는 버클리 주립대학 통계학과 교수입니다. 오늘 강연 시간에 저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참석이 어렵지만 스님을 꼭 한 번 뵙고 싶어서 사전 차담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버클리에서 불교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인데, 정토회 활동가이기도 합니다.(웃음)”

“초대해 줘서 고맙습니다.(웃음)”

“오늘 강연장은 150석 규모의 공간입니다. 아마 학생들도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리가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입니다.(웃음)”

대화는 자연스럽게 차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스님, 제가 요즘 고민하는 부분이 있는데 질문 드려도 될까요?”

“네”

“저는 제 아이들에게 느끼는 사랑이 매우 깊고 강렬합니다. 이 감정들이 아이들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를 불교수행으로 다스리기에는 서양의 불교 수행이 얕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하면 불교적 관점으로 아이들에 대한 애착을 다스리고 평정심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부모를 위해서 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이가 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그것은 아이를 애완동물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 현상을 관찰해보면 모든 생명은 스스로 살아가도록 돼 있습니다. 작은 벌레도, 다람쥐나 토끼도 무엇인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가 살아갑니다. 이것이 생명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어릴 때는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새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어미가 보살핍니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 즉, ‘개체 보존의 본능’이라면, 어린 생명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돌보는 본능은 ‘종족 보존의 본능’입니다. 모든 생명은 개체 보존의 본능이 더 강한데, 새끼를 가진 어미에게만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 더 강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미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퍼센트 도움을 줘야 하지만 아이가 한 살, 두 살 성장하면, 아이에게 주는 도움도 90퍼센트, 80퍼센트 서서히 줄여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지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릴 때는 따뜻하게 돌봐주는 것이 사랑이지만, 사춘기 때는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춘기는 자녀가 독립하기 위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부모의 보호가 지나쳐서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지 못하게 되면, 사춘기가 지나서 아이의 육체는 성인이 되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자립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모가 아이를 해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 과정에 맞게 나의 역할을 조절해야 합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내가 아이를 안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안 봐야 합니다. 내가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면 내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돌봐야 합니다.

‘아이가 없으면 내가 힘들어서 못 살겠다’, ‘아이가 보고 싶다’ 이것은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나의 입장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풍요롭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유의 대부분은 부모가 자기 만족을 위해 아이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불교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무지에서 벗어나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불교이며, 이러한 이치를 알고 이치에 맞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교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스님”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서서히 강연장으로 이동합시다.(웃음)”

1시간 정도의 차담을 마치고 다 함께 오늘 강연 장소인 수타르자 다이 홀(Sutardja Dai Hall)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4시, 북미 순회강연 두 번째, 샌프란시스코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00여명의 청중들이 강연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제이슨 님의 통역으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면서, 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의문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드러내 놓고 저와 함께 대화해 봅시다.

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던 문제가 ‘별일 아니네?’ 하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더 이상 그 문제로 고민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때는 ‘아, 알았다!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즉, 누군가 나의 괴로움을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이런 대화를 ‘담마 토크(Dharma Talk)’라고 합니다. 꼭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담마 토크는 아닙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대화, 이것이 ‘담마 토크’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담마 토크를 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여러분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아는 사람을 만날 때 마음이 긴장됩니까?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긴장됩니까?”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긴장됩니다.”

“여러분은 잘 아는 곳에 갔을 때 두려움이 생깁니까? 모르는 곳에 갔을 때 두려움이 생깁니까?”

“모르는 곳에 갔을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잘 아는 일을 할 때 긴장이 됩니까? 모르는 일을 할 때 긴장이 됩니까?”

“모르는 일을 할 때 긴장됩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낯선 사람, 낯선 장소, 낯선 일에서 비롯됩니다. 낯선 것, 즉 잘 모르는 것, ‘무지’에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근심 걱정, 화, 미움 등을 통틀어 ‘괴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괴로움은 어떤 사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지’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전혀 알 수 없는 무지의 영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죽음이 가장 큰 두려움이 됩니다. 죽음 자체가 두려움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어떻게 우리가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가’입니다. 그것은 곧 ‘어떻게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특별히 정해진 주제도 없고 이야기의 제한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의문이 있거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야기해 보세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알겠습니다. 별일 아니네요’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는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능하면 ‘지식’에 대한 질문은 삼가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은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알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여기에서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검색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질문한다면, 저는 ‘그것은 챗GPT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웃음)

어떤 사람들은 ‘무엇이든 다 물어보라고 하셔서 질문을 하는데, 스님이 혹시 모르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된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는 그럴 때가 가장 대답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모릅니다’라고 대답하면 되기 때문이에요.(웃음)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정답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대화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것뿐입니다. 자, 이제 누구든지 나와서 대화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가 현장에서 질문자를 파악하자 무려 13명이나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스님은 되도록 모든 질문자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질문자의 자리를 정렬했습니다.

오늘의 질문자들은 추상적인 철학보다, 개인의 일상과 삶에 깊이 맞닿아 있는 고민들을 용기 있게 꺼내어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55yrs old, 20yrs married but wife was not happy with the marriage. With her low self esteem, endurance and many regrets she left me.. I am waiting for her to come back but she's hesitating.. Should I wait until her mind opens up? Keep working.
    (저는 55세이고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아내는 저와의 결혼 생활을 행복해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자존감이 낮아서 많은 것을 참고 살았다고 후회하며 저를 떠났습니다. 저는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계속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요? 아니면 어떤 행동을하고 노력을 해야 아내의 마음이 열릴까요?)

  • I ask personal life questions to AI often. How would AI change the way of spiritual practice or community or religion?
    (저는 인공지능(AI)에게 개인적인 삶에 대한 질문을 자주 합니다. AI는 앞으로 수행이나 공동체, 혹은 종교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요?)

  • Frequent disputes with spouse. I followed your teachings online(don't expect things from the spouse, do what you can do, focus on yourself) and life got easier but the romantic relationship remains unresolved. Marriage counseling is not working. What if I also want romantic sparks from my spouse?
    (배우자와 잦은 다툼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스님의 가르침(배우자에게 기대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을 따르면서 삶은 한결 편해졌지만, 로맨틱한 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부부 상담도 효과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배우자에게서 설레는 로맨틱한 감정까지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Overwhelmed by my work, studies and life. There are accomplishments and good feelings but at the same time there are also worries and burdens. How to modulate? On what basis?
    (일과 학업, 일상생활에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성취감과 좋은 기분도 있지만, 동시에 걱정과 부담감도 큽니다. 이 균형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요? 어떤 기준을 두어야 할까요?

  • How do I explore my subconsciousness? I observed my subconsciousness is superior to my consciousness..
    (제 무의식은 의식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무의식을 어떻게 탐구해야 할까요?)

이어지던 질문 중 한 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남자친구가 청혼을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결혼이 망설여집니다

“Relationship problem. I am not sure about this man who proposed to me recently. He is emotional and has a habit of going back and forth and that brings me suffering. Should I marry him or not?”

(연애에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최근 저에게 청혼한 남자친구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는 감정적이고 오락가락하는 태도와 습관이 있어서 그 점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그와 결혼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질문자에게 이 남자 말고 다른 남자도 있습니까?” (웃음)

“No...”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질문자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그러니 다른 고민하지 말고 그냥 두세요. 상대가 결혼하자고 하면 ‘okay’ 하고, 다음 날 그만두자고 하면 또 ‘okay’ 하면 됩니다. 상대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정일 뿐입니다. 내가 거기에 끌려다니면서 같이 흔들릴 필요는 없어요. 만약 질문자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 때 ‘알았다’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질문자는 마치 자신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남자친구의 문제가 아니에요. 질문자가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 우선 편안하게 지켜보세요. 그러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됩니다. ‘결혼했다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옛날에는 한 번 결혼하면 다시 결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니 무엇이 걱정입니까?”

“I think I’m a little confuse- like confused with your ‘other option’ question, because I, firstly, don’t feel comfortable trying to find other options while I’m in this monogamous relationship, or like... Do you mean I should look for other options?”
(스님이 말씀하신 ‘다른 선택지’라는 말씀이 헷갈립니다. 저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게 마음이 편치 않거든요.. 아니면 혹시… 제가 지금 남자친구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질문자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고민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남자친구가 오면 오는 대로 맞이하고, 가면 가는 대로 보내주세요. 그런 마음을 내면 내 중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면 같이 살 수도 있고, 원하지 않으면 헤어져도 괜찮습니다. 질문자도 ‘꼭 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아니고 ‘이 사람은 절대로 안 되겠다’는 부정도 아니잖아요. 결국 질문자의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남자친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질문자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결정하려 애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둔 채 기다려 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아, 이 사람이다!’ 하고 확신이 생길 수도 있고, 반대로 ‘이 사람과는 도저히 안 되겠다’ 하고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매달릴 수도 있고, 어느 날 그가 떠나버릴 수도 있겠죠.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면, 결국 이 네 가지 방향 중 하나로 결정이 납니다. 그러니 지금 이럴까 저럴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질문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 스님,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잡했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습니다.

“불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로서의 불교입니다. 종교로서의 불교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철학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여기는 논리적 이해가 중요합니다. 즉, 학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수행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이것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교 철학을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의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아이에게 화를 냈다고 합시다. 불교 철학을 많이 안다고 해서 불교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해야 합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가 지금 괴로운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입니다. ‘전생이 있느냐, 없느냐’, ‘죽어서 극락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하는 문제는 수행으로서의 불교에서 주된 관심사가 아니에요. 이 말은 종교나 철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종교나 철학과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나눈 대화는 수행으로서의 불교의 관점에서 말한 것입니다.

저는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지금의 현대 문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물질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번뇌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시간을 가득 채워서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시간이 다 되어 미처 두 사람의 질문은 받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정토행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연에 스님을 초대한 스티븐 리 교수님에게는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제이슨 님과 내일 시애틀 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창밖을 바라보니 해가 잔잔하게 지고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사이로 은은한 노을빛이 스며 나와 바다 너머로 길게 이어지는 산맥의 실루엣과 어우러지니 고요한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7시 30분이 되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김준자 님이 준비해 준 음식으로 맛있게 저녁 공양을 하고 원고를 교정한 후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북미순회강연 셋째 날입니다.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이동하여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영어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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