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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북미강연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LA로 출국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7시에는 국회의원 윤건영 님과 조찬을 하였습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북미정상회담, 북한내부의 정책방향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조찬이 끝난 후,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10시에 서초회관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11시에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한 후, 원고를 교정 하였습니다.

원고 교정을 마친 후, 출국 수속을 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후 1시에 출발한 비행기에서 스님은 10시간 동안 이동하며 그간 못다한 휴식을 하였습니다.

미국 서부시간 오전 8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부터 스님의 북미 강연 일정이 시작됩니다. 이번 북미 일정에서는 미국, 캐나다 총 18개 도시에서 외국인 대상 강연 17회와 한국인 대상 강연 4회. 총 21회의 강연이 예정되어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지난 6월에 있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저는 어릴 때 배우는 속도가 많이 느렸습니다. 이해도 더디고 행동도 느려서 남들보다 몇 배를 노력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늘 ‘나는 부족하구나’ 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구구단이나 한글, 수학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결국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서 공부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하는 일을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있고 일머리도 되려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신을 다그쳐서 불안함을 느껴야만 마음이 편합니다.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면 오히려 안 좋은 일들이 생깁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불안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 업식을 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처럼 느리게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할까요?”
“질문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르네요. 먼저 토끼와 거북이 우화 들어봤어요? 토끼와 거북이 중에 무엇이 더 뛰어나고 무엇이 더 열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둘은 그저 서로 다를 뿐일까요?”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왜 토끼는 좋고 거북이는 나쁘다고 생각하나요? 토끼를 기준으로 삼으면 거북이는 느립니다. 그러나 굼벵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거북이는 빨라요. 이처럼 빠르거나 느리다고 하는 것은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생기는 용어예요. 자연 세계에는 본래 빠른 것도 없고 느린 것도 없습니다. 본인보다 느린 사람을 기준으로 잡으면 질문자는 빠른 사람이 되지만 본인보다 빠른 사람을 기준으로 잡으면 느린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보면 질문자는 평균 밑에 있었어요. 그러나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전교 1등 졸업생만 모아서 중학교 한 반에 편성하면 그 반에 꼴찌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마찬가지로 중학교에서 1등 하는 학생만 모아서 고등학교 한 반에 편성하면 그중에서 꼴찌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왜 1등만 하던 아이가 꼴찌를 할까요? 그것은 소속된 집단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평균치가 올라갔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국민의 재산이나 소득 평균치를 기준으로 하위 10~2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극빈층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인도나 방글라데시에 가면 극빈층이 아니라 부자에 속합니다. 내가 1억 원을 가지고 천만 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다면 나는 부자에 속합니다. 그러나 내가 100억 원을 가지고 있는 재산가 사이에서 1억 원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가난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1억 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일까요, 부자일까요? 부자라고도 할 수 없고 가난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부자다 가난하다, 옳다 그르다, 빠르다 더디다, 크다 작다, 많다 적다 하는 것들은 모두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에요. 절대적인 입장에서는 어떤 것도 빠르지도 않고 더디지도 않아요. 그러나 상대적인 입장에서는 어느 집단에 속해도 항상 빠르거나 더디다는 말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질문자가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학교에서는 더딘 축에 들어갔고, 회사에서는 빠른 축에 들어갔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빠른 축에 들어갔다고 빠른 것도 아니고, 더딘 축에 들어갔다고 더딘 것도 아니에요.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있었고 토끼는 토끼대로 있었을 뿐이에요. 거북이처럼 꾸준히 가는 게 더 좋다고 할 수도 없고, 토끼처럼 빨리 가는 게 더 좋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토끼와 거북이 우화는 꾸준한 것이 좋다는 가치관 하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에요. 현실에서는 하루 종일 꾸준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 오전에 바짝 일해서 끝내고 오후에는 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일을 빨리 끝내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 일을 못 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서로 일하는 스타일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등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 돼요. 그저 서로 다를 뿐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더딘 것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쓰는 용어가 ‘빨리빨리’예요. 친구와 식당에 들어갈 때 앞선 사람이 ‘빨리 들어와’ 이러잖아요. 들어와서는 ‘빨리 앉아라’, ‘빨리 시켜라’, ‘(음식) 빨리 주세요’, ‘빨리 먹자’, ‘빨리 가자.’ 이렇게 모든 말 앞에 ‘빨리’를 붙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이 한국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예요. 빨리도 아니고 ‘빨리빨리’입니다. 이 말은 서두른다, 즉 성격이 약간 급하다는 말이잖아요. 성격이 급한 사람은 성격이 느린 사람보다 화나 짜증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은 빨리빨리 이루었는데 국민 행복도는 오히려 떨어졌어요. 우리가 외국 사람에게 ‘우리가 너희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 산다’, ‘그런데 우리는 너희보다 불행하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자랑스러운 일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너희보다 물질적으로는 좀 부족하지만, 훨씬 더 행복하게 산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그러므로 더딘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살면 돼요.
두 사람이 길을 갈 때 앞에 가는 사람은 뒤돌아보면서 뭐라고 해요? ‘빨리 안 오고 뭐 하나?’ 이렇게 말해요. 그러나 뒤에 가는 사람은 앞사람 보고 ‘뭐가 그리 급하나?’ 이렇게 말해요. 둘의 입장이 서로 다른 거예요. 부부가 외출할 때 남편은 대문간에 나와서 ‘빨리 안 나오고 뭐 해?’라고 말하고, 아내는 ‘저 인간은 어디 갈 때마다 저렇게 혼자 서두른다’라고 얘기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기준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본인 기준이 아니라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열등하다고 보고 있어요. 소위 내가 부족하다는 열등감 속 콤플렉스가 있는 겁니다. 이런 원리를 알면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가 없는데도 오랫동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나는 열등하다’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본인이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질문자의 아이들도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질문자가 떳떳하면 아이들도 영향을 덜 받아요.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았을 때 질문자는 잘 살았어요. 그러므로 본인을 닮은 아이들도 잘 살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별문제 아닙니다.
두 번째 질문도 해결은 간단합니다. ‘잘될 거다’ 하면 안 되고, ‘안 될 거다’ 하면 잘 된다면, 앞으로 뭐든지 ‘안 될 거다’라고 하세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게 뭐가 어려운가요?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거예요. 말하면 잘 안되고 말 안 하면 잘 된다면, 말을 안 하면 되잖아요.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생각해 볼 점은, 질문자가 왜 ‘내가 잘될 거라고 하면 안 되고, 안 될 거라고 하면 잘된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는가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내가 잘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결과가 잘 되는 것, 내가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결과가 안 되는 것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경험적으로 인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내가 잘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결과가 안 나온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니 기억에 별로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잘 된 것은 기억에 남아요. 마찬가지로 잘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잘 나온 것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고, 잘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안되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기억 작용 때문에 질문자는 경험적으로 지금처럼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러나 실제로 내 생각과 결과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자는 앞으로 늘 ‘일이 잘 안될 거다’라고 생각하면 되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잘 되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잘 안되면 행복도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수행 차원에서도 기대를 낮추는 것이 마음의 편안함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더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없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줬어요. 돈을 빌려줬든지 칭찬해 주었든지 도움을 줬다고 해봅시다. 도움을 줄 때 우리의 마음은 ‘쟤가 내 공덕을 알겠지’ 이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요.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겠지’ 일반적으로 이런 기대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러나 이런 기대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기대하는 것과 상대가 내 기대에 부응하는 것 사이에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때 ‘갚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든지, ‘안 갚겠지’ 하고 생각하든지 그 사람이 실제로 나에게 돈을 갚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그 사람은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저 그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내가 기대할 때 그 사람의 반응은 기대에 부응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기대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경우의 반응이 있어요. 이렇게 총 네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 나에게 더 기쁨을 줄까요, 안 하는 것이 더 줄까요?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그가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그가 고맙다고 하면 기뻐지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내가 기대할 때는 그가 고맙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만, 고맙다고 하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예요. 원리가 이런데도 여러분은 늘 기대하는 쪽이에요. 그래서 괴로운 겁니다.
금강경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하는 보시’라는 뜻이에요. 이는 기대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상이 없다는 말은 기대를 안 한다는 것이고, 상이 있다는 말은 기대한다는 뜻이에요. 상을 짓는 보시보다 상을 짓지 않는 보시의 공덕이 더 크다면서 무주상보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심리를 분석하면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에요. 이를 알면 여러분이 부부지간이든 형제지간이든 친구지간이든 기대하고 도와줄수록 실망이 커지기 때문에 기대를 좀 내려놓게 됩니다. 이렇게 기대하지 않고 자식을 키우면 모든 자녀가 효자, 효녀가 됩니다. 그런데 ‘너를 키우는데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전부 불효자식이 되는 거예요. 자녀가 아무리 잘해주어도 내 기대를 다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에게 잘하고 아내에게 잘한다고 해서 갈등이 없을까요? 연애할 때 잘하면 결혼은 쉬워요. 그러나 결혼한 뒤에는 상대의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에 힘들어집니다. ‘네가 잘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결혼했다’ 이렇게 되면 결혼 후 일상생활에서도 계속 잘해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다 스스로 자처한 것입니다. 상대를 잡기 위해서 잘해주고, 잘해주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잘해주지 않으면 고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잘하지 않으면 상대가 나에게 잡히지 않아요. 거기에 딜레마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억울하다거나 상대가 너무 불평이 많다고 고민할 때, 그 원리를 보면 돈 빌린 사람이 돈을 갚아야 하는 것과 똑같아요.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다 본인이 인연을 짓고 그 과보를 받는 거예요. 자업자득인 겁니다. 물론 인생에 사고는 있어요. 사고는 지은 인연과는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자동차 사고가 나서 다친다든지 하는 일도 인생에는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지은 인연에 따라 일어납니다. 마음공부는 이때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아는 것이에요. 여러분이 조금만 마음을 조절하면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괴로워하고 슬프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싱글벙글 웃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라 살면서 괴로워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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