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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울력을 하고, 거제도의 수해 현장과 애광원을 방문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6시 30분, 한 달 전에 스님이 만들었던 꽃밭 터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스님은 풀 뽑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모래를 뿌려놓아 잡초가 자라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잡초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지난 울력 때 수박을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을 트여 벌써 열매가 맺혀 있었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수박을 남겨두고 나머지 풀을 모두 뽑았습니다.
요 며칠 비가 내려 땅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풀을 뽑으면 뿌리에 흙이 잔뜩 묻어 나왔습니다. 뿌리에 묻은 흙을 잘 털어낸 뒤 뽑은 풀을 한쪽에 쌓아두었습니다.
“흙을 잘 털지 않으면 비가 왔을 때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으니, 흙을 잘 털어주세요.”

두 시간가량 일을 하고 나니 어느덧 풀이 모두 뽑혔습니다. 그새 온몸에 땀이 많이 났습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한 후 거제도로 출발했습니다.

며칠 전 거제도에는 800mm가 넘는 폭우가 내려 곳곳에서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스님은 피해 상황을 언론보도를 보며 계속 살펴보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나서 스님이 직접 현장을 답사하기로 하였습니다.


거제도에 도착하니 물은 이미 빠져 있었지만, 곳곳에서 큰비가 남긴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와 가까운 저지대를 지나자 상가 내부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복구 작업을 하며 나온 많은 쓰레기와 침수로 망가진 가구와 가전제품들이 길가에 쌓여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자영업자들의 상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JTS 사무국장으로부터 거제시청과 소통한 내용을 전해 들었습니다. 특히 은혜사라는 절의 피해가 크다는 소식을 듣고 은혜사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도 곳곳에서 수해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포장이 무너져 통행이 막힌 곳이 많았고, 산길에서는 빗물로 인해 산사태가 난 곳도 종종 보였습니다.


은혜사에 도착해 피해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법당보다 아래쪽에 있는 요사채와 마당의 피해가 컸습니다. 침수된 이불과 가재도구 등을 치우는 일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을 둘러본 스님은 복구 작업에 25~30명 정도의 봉사 인력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하고 JTS 사무국장과 소통했습니다. 은혜사에서는 시청에 지원을 문의했지만 종교시설이라는 이유로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이번 주말에 JTS에서 봉사 인력이 올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은혜사 앞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계곡에 설치된 다리에 나뭇가지가 걸려 물의 흐름을 막으면서 요사채까지 물이 들이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리 위에 있던 사자상은 물살에 휩쓸려 10m가량 떨어진 곳까지 밀려나 있었습니다.

은혜사의 피해 상황을 모두 살펴본 후 식당에서 국수로 점심 식사를 하고 애광원으로 향했습니다.
애광원과 스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3년 전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남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스님과 JTS가 애광원의 피해 복구를 도우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애광원에 도착하자 실무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지난 23년간이나 만나 온 사이이다 보니 이제는 오래된 벗 같습니다. 차를 잠시 세워두고 먼저 수해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산사태가 난 곳에서는 굴착기로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현장을 둘러본 후 애광원 안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올해 101세인 김임순 원장님도 스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채비를 하고 나오셨습니다. 원장님은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을 잊어 스님의 목소리를 잘 듣지는 못했지만, 스님을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스님은 원장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뒤 음료를 마시며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이번 수해로 피해를 입은 시설에 필요한 물품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필요한 물품의 종류와 수량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보내 달라고 실무 책임자에게 요청했습니다.


애광원 생활인들과 실무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스님은 두북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오후 5시 40분에는 조용식 울산광역시 교육감이 스님이 두북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북수련원에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교육감과 선생님들로부터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올해 중에 학부형과 선생님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스님은 미팅을 마친 후 저녁 식사를 하고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 새벽에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지난 6월에 있었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합니다.

“저는 올해 16살 된 강아지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요즘 마음이 무겁습니다. 강아지가 떠나면 남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강아지가 죽으면 존재가 아주 없어지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존재로 태어나 다시 저와 만날 수도 있을까요? 무엇보다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해서는 지금 어떻게 사랑하며, 훗날 반드시 찾아올 슬픔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제일 쉬운 길을 알려줄까요? 강아지보다 질문자가 먼저 죽으면 돼요. (웃음) 그러면 아무 고민도 없습니다. 본인이 먼저 죽고 나면 그 뒤에 강아지가 죽든지 살든지 누가 데려가든지 아무 관계가 없어져요. 죽은 뒤에 다시 만나는지 안 만나는지도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온갖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은 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강아지가 죽으면 극락이나 천당에 간다.’, 혹은 ‘다시 세상에 태어나 또 만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증명할 수가 없어요. 단지 그 사람의 생각이 그럴 뿐입니다. 질문자가 죽은 뒤에도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고민할까요? 아닙니다. 생각이 없어지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조금 어렵지만 다른 길도 있어요. 경유나 휘발유를 사용하는 일반 자동차가 있다고 합시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대략 몇 개쯤 될까요? 약 2만 개의 부품이 들어갑니다. 한쪽에는 자동차 부품 2만 개를 큰 바구니에 담아 두었어요. 다른 한쪽에는 그 부품 2만 개를 자동차 설계도대로 조립해서 자동차 한 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양쪽의 무게를 재면 같습니다. 양쪽 부품의 개수도 같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 2만 개를 그냥 바구니에 담았을 때는 자동차가 움직이거나 빛을 내거나 소리를 내는 작용이 생기지 않습니다. 설계도대로 조립했을 때는 비로소 움직이는 작용과 소리 작용과 빛 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조립한 자동차를 분해해서 다시 부품으로 놓아두면 빛도 나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을 거예요. 그러면 그 세 가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증발했을까요?”
“증발했다는 것은 어딘가로 갔다는 뜻입니다. 자동차를 분해하면 그 세 가지가 어딘가로 갔다가 다시 조립하면 되돌아오는 걸까요? 부품 2만 개를 바구니에 담아 놓은 것은 2만 개의 집합이에요. 그러나 2만 개를 조립해 놓으면 이것은 빛이 나고 소리도 나고 움직이기도 하는 새로운 1개가 됩니다. 2만 개를 쌓아 놓으면 그냥 2만 개의 집합인데, 2만 개를 어떤 설계도를 따라 조립하면 전체가 하나로서 작동하는 거예요. 하나로 작동할 때 기존에는 없던 제3의 성질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움직이는 작용, 빛 작용, 소리 작용이에요. 이건 다른 차원의 성질이에요. 해체하면 이 제3의 작용은 없어지는 것이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에요.
이 제3의 작용이 어딘가로 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부품처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부품은 해체해도 부품으로 남아 있듯이 이 세 가지 작용도 부품처럼 ‘여기에 없다면 저기에 있을 것이다’, ‘부품을 찾아서 끼우면 저기에서 여기로 되돌아올 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는 2만 개를 보는 사고방식으로 하나를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이것은 엄청난 철학적 문제이자 과학적 문제입니다. 그것을 스님이 쉽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데, 그런데도 좀 어렵나 보네요.

또 다른 예를 들면, 물이 한 바가지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 번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알갱이로 만들면 그것을 물 분자라고 불러요. 물을 아무리 쪼개도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이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물을 최소의 알갱이로 만들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화학에서는 물 분자도 쪼갤 수가 있습니다. 물을 화학식으로 쓰면 H2O가 돼요.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한 것이지요. 이것을 분해해 버리면, 산소와 수소가 나옵니다. 산소나 수소에 물의 성질이 있을까요? 없어요. 물을 분해하면 물이 아닌 다른 물질이 되어 버리고, 물의 성질이 전혀 없는 산소와 수소를 결합하면 물이라는 새로운 성질을 가진 물질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물의 성질은 산소와 수소 안에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결합해서 생겨난 걸까요? 결합해서 생긴 거예요. 결합해서 하나가 될 때 기존에 없던 제3의 성질이 새롭게 나타나는 거예요. 이것이 우주의 진화입니다.
산소나 수소, 물은 모두 물질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고도의 설계도에 따라 조립하면 생명 현상이 나타납니다. 생명 현상은 자동차의 소리와 같은 거예요. 조립하면 생명이 되고, 해체하면 그냥 물질인 거예요. 물질이 되면 생명의 성질은 없어집니다. 질문자는 생명이 물질처럼 따로 있어서 어딘가로 간다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엄밀하게 보면 생명이 죽는 것은 자동차를 분해하는 것과 같아요. 자동차는 죽은 것일까요, 분해된 것일까요? 분해된 것이에요. 하나의 자동차로 볼 때는 ‘조립해서 생겨났다’, ‘분해해서 사라졌다’ 하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기본 요소는 조립하나 분해하나 똑같아요. 마찬가지로 생명이 죽었다는 것은 DNA에 의해서 조립되었던 요소들이 해체되었다는 뜻이에요. 식물이든 동물이든 결합이 해체되면 하나로서의 작용은 사라지고 모두 원소로 돌아가는 거예요.
질문자는 자동차를 16년 동안 탔어요. 이제 차가 낡아서 곧 폐차할 때가 된 거예요. ‘폐차한 자동차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질문은 이와 같아요. 지금 차가 좋으면 계속 고쳐서 더 타고 다니면 돼요. 끝까지 타고 다니다 마침내 못 타게 되면 버리고 걸어 다니면 돼요. 그래도 자동차가 필요하면 다른 자동차를 타면 됩니다. 전에 타던 차에 애착이 너무 크다면 같은 종류의 자동차를 새로 사서 타면 돼요. 그러면 금방 또 익숙해집니다. 지금 스님이 굉장한 이야기를 한 거예요. 질문자는 생명이 해체되면 영혼이 있어서 아까 이야기한 2만 개의 부품처럼 어딘가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동차를 모르는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질문자는 지금 스님이 한 이야기를 듣고 의문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이제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의문이 좀 해소되었나요?
“해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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