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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중국 역사기행을 마치고 심양공항으로 이동하여 한국으로 출국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역사기행단은 4시에 기상하여 4시 30분에 버스에 짐을 실었습니다.

역사기행단은 5시에 화룡 시장으로 이동하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심양까지 일곱 시간 이상을 이동해야해서 점심을 위한 도시락을 시장에서 준비했습니다. 스님도 원고 수정을 마치고 시장에서 사온 따뜻한 두부로 버스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기행단은 공항이 있는 심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심양에 가기 위해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기 전 청산리 전투가 벌어졌던 어랑촌과 천수평 일대를 지나며 당시 전투 상황에 대해 이승용 선생에게 듣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어젯밤에 6일간의 역사기행에 대한 소감문을 작성했습니다. 오늘은 차량 프로그램으로 그 소감문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작에 앞서 스님이 말했습니다.

“오늘 공항까지 7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이네요. 지금 백두산록을 지나고 있으니 백두산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시작해보겠습니다.”

이제 참가자들은 백두산을 다녀오고 나서는 이 노래만 부르면 기운이 납니다. 다 함께 백두산 노래를 힘차게 불러보았습니다.
이어 봉오동·청산리의 독립투사들을 생각하며 독립군가도 불러보고, 어제 본 두만강을 떠올리며 두만강 노래도 불러보았습니다. 역사기행을 마치는 지금은 이제 이 노래의 가사들이 단지 노랫 속의 이야기가 아닌 내 역사, 내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노래로 힘을 낸 후, 참가자들의 소감문 발표를 함께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조에서 2명씩 소감문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중 청년 참가자 한 명의 소감문을 소개합니다.
“무척 감개무량합니다.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울림이 참으로 깊습니다. 비로소 제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역사가 제 안에도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역사기행의 모든 과정이 참으로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중략)
이번 기행을 통해 ‘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발달된 문명을 이루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민족의 후손이구나.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만주 벌판을 거침없이 누비던 기상이 우리에게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났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문화와 언어,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에 빛나는 자긍심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더라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튼튼한 자존감을 갖고, 환단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우리 역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직접 찾아와 눈으로 보고, 법문을 통해 알아가고, 온몸으로 느끼면서 역사관이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감동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나는 통일의병이 되어 잊힌 역사를 알리고, 역사적 존재인 우리 자신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일을 해야겠다.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 그것을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모르면 없는 것이고, 알면 있는 것이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발해 상경용천부에서 본 무성한 잡초와 거미줄을 보며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망국의 허망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우리가 선조들을 잊고 관심을 두지 않고 찾아오지 않았기에 그렇게 잊힌 역사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저에게 동북아는 광활한 기상과 뜨거운 심장으로 남았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조상들의 얼이 살아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의 소감을 듣고 말했습니다.
“잘 들었지요? 스님이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그동안의 모든 피로가 싹 씻기네요.(웃음)”

이어서 참가자들이 스님에게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중 질문 하나와 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이번 역사기행은 저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과 질문거리를 많이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문물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돌아가면 역사의식을 가진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싶지만 먹고 살기 위해 바쁘게 일상을 살다 보면 이 마음을 잊을까 봐 염려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둘째로 스님의 역사 공부 방법도 궁금합니다. 저도 예전에 한국사 시험을 봤지만 주로 지식적으로만 학습해서인지 지금은 그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어떻게 기록도 보지 않고 이렇게 폭넓게 설명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신다면 저도 그런 관점으로 공부해 나가고 싶습니다.”
“돌아가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고 일상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냥 일상생활을 하면 됩니다. 이것은 각오하고 결심할 일은 아니에요. 눈앞에 시험이 닥쳤거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각오하고 결심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 작용을 감안하면, 일상생활에서 어떤 문제를 각오하고 결심해서 풀어간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 만 명 중 한 명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 기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 잊히는 것 같아도 그중 10~20퍼센트는 남아 있습니다. 100퍼센트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일정 부분 잠재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다 다시 역사 기행을 다른 곳에서 자극받거나 하면 그때의 경험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납니다. 여기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돌아가서 꼭 실천해야겠다는 것은 지금 일어나는 생각과 의지일 뿐이에요. 막상 돌아가서 다른 상황에 놓이면 전기가 방전되듯이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통일의병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통일의병이 되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소집을 받습니다. 미션을 주고, 이를 실천하고, 정기적으로 연수와 교육을 받게 돼요. 역사 기행을 통해서 관심이 한 번 확 올라간 뒤 다시 떨어지더라도 통일의병과 같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 관심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 관심이 한 번 더 도약하면, 이후 관심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전보다 높은 수준에서 유지돼요. 장기간의 관점에서 보면 관심이 점점 고양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다녀간 것만 해도 여러분들의 잠재의식 속에 소중한 밑거름을 쌓은 거예요.
두 번째 질문인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자발적인 공부’와 ‘어쩔 수 없이 한 공부’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게 많았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왜 그렇지?’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처녀가 애를 낳았다고 하면 ‘처녀가 애를 어떻게 낳았지?’ 하고 궁금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섰고 걸었다고 하면 ‘진짜 그렇게 되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못 믿겠다는 불신이 아니라 정말로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첫째, 어떤 현상이든 의문을 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그렇게 의문을 품다 보면 다른 책을 읽거나 다른 것을 보다가 그 의문에 대해 알 수 있어요. 다윈은 많은 화석을 구해서 진열해 놓고 보니까 생물이 진화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어요. 그러나 어떻게 진화했는지, 진화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화석의 순서상 객관적으로 생물이 진화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왜 진화하는지는 몰랐던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다가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아, 이게 적자생존의 원리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면 100퍼센트 맞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다윈은 그 당시에 나름의 원리를 발견한 후 그 관점에서 진화론을 전개했던 것입니다.

어떤 현상에 의문을 품으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계기가 생깁니다. 요즘 학문으로 소위 인류 문화사 같은 책을 읽어 보면 난생설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무엇을 상징하는 표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현상을 그 시대의 의식 수준에서 이해했어요. 용이 비를 내리게 한다고 생각해서 용을 ‘비의 신’이라고 부른 것이 그 예입니다. 이처럼 설화를 단순히 설화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구전이나 역사로 볼 수 있듯이, 불경의 구절도 단순히 사실적으로 맞느냐의 측면이 아니라 그 시대 상황에서 어떤 것을 상징한 표현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셋째, 통합적 관점이 필요합니다. 집합 x와 y가 있다고 할 때, ‘x가 1일 때 y는 2이다.’, ‘x가 2일 때 y는 4다.’하고 서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x 집합과 y 집합이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때, 두 배씩 대응한다든지 제곱으로 대응한다든지 이런 법칙이 있으면 함수 관계가 성립합니다. 이 함수를 잘게 잘라서 미분하기도 하고 쌓아서 적분할 수도 있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 현상도 이렇게 미분과 적분을 이용해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이든 인문·사회과학이든 각각 별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호 연관되어 있습니다. 서로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느냐, 어떤 방식과 법칙으로 관계되어 있느냐를 연구한 것이 하나의 학문이 된 것입니다. 관심을 두고 사회 현상을 보면, 정보의 축적이 일정한 양을 초과할 때 일종의 빅뱅이 일어납니다. 과학적으로는 특이점이라고 하고,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물리가 터진다’라고 하죠. 1에서 1000까지는 하나하나 익혀서 쌓다가, 1001이 되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자동화 현상이라 할 수 있어요.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많은 정보가 쌓이면 일어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이것이 연기법의 핵심이자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에요. 물질이 생명이 되고, 생명에서 정신 작용이 일어나는 현상도 이러한 법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조언을 드린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역사 기행 다녀온 것을 좋은 추억으로 삼고 일상으로 돌아가도 됩니다. 관심을 좀 더 지속시키고 싶다면 시간 나는 대로 다른 역사책을 살펴보든지, 통일의병이나 다른 역사 동호회에 참가해서 지식을 쌓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식이 쌓여야 물리가 터지지만, 지식만 쌓고, 그 지식이 연결이 되지 않으면 물리가 터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에 따라 시야를 넓히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어요. 단순히 연결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로 연관되어 있느냐에 따라 상호작용이 달라지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그 결과까지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연애를 예로 들어도, 서로가 어떤 이해관계와 관심에 따라 연관되어 있는지 알면, 저 두 사람이 지금 서로를 좋아하더라도 앞으로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기법을 수학으로 표현하면 우리의 삶도 일종의 함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 모든 학문을 분리하지 않고 연관해서 보는 자세가 여러분의 시야를 넓혀줄 것입니다.
스님이 청년인 여러분보다 나이가 2배나 많잖아요. 온갖 경험과 지식이 쌓여서 가능해진 것을 단박에 따라 하려는 건 조금 욕심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스님은 특별하니까 가능하고 우리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그만큼 많은 정보가 쌓이고, 그 정보가 일정한 법칙하에 연결되어야 예측의 폭이 넓어진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궁금한 내용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듣다 보니 어느새 심양 근교에 다다랐습니다. 스님은 역사기행을 마무리하며 참가자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첫째, ‘일주일간 잘 놀았다.’ 하는 마음입니다. 그간 잘 먹었지요? 호텔도 정토회 기준으로는 꽤 괜찮았습니다. 인도 성지순례에 비하면 초호화 숙소였어요. 잘 먹고 잘 쉬었고, 운동 삼아 많이 걷기도 했습니다. 날씨가 덥다고 해도 한국보다는 덜 더웠으니, 이만하면 피서로도 충분했습니다.
둘째, 놀면서 구경도 알차게 했습니다. 조금 힘든 일정이었지만 백두산 천지도 보고 압록강과 두만강, 고구려와 발해 유적지, 독립운동 유적지까지 알차게 둘러보았습니다. 게다가 매일 저녁 한 시간씩 스님의 역사 강의도 여섯 번이나 들었습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이 경험이 앞으로 여러분의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역사는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그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내릴 결정에 과거의 경험을 중요한 교훈과 참고 사항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일은 이미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와 함께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앞으로 얼마만큼의 역량을 투입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지나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살아있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엄마에게서 태어나 홀로 자란 것이 아닙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수많은 인연과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현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성'이고 '사회성'입니다. 이러한 눈을 가지게 되면 삶이 덜 조급해지고 한층 안정되며, 특별한 우월감이나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역사 속에서 겪은 실패나 고통의 경험이 반드시 손실로만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상처로 간직하고 있으면 현재와 미래의 장애가 되지만, 경험으로 삼으면 실패마저도 큰 교훈이자 자산이 됩니다. 과거 역사를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역사적 수치가 될 수도 있고, 역사적 교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우리나라를 보면 첫째, 국론 분열이 매우 심각합니다. 여야 간,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은 물론 노사 갈등도 심하고, 요즘은 특히 세대 갈등이 이념과 결합하면서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나와 다른 세대, 종교, 집단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나아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력하는 태도가 매우 필요합니다. 국민 화합과 통합의 관점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 같은 민족인 북한과는 지금까지 대립과 갈등, 경쟁만 해왔지만, 이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 것만 상대에게 강요하지 말고, 상대의 처지도 이해하며 협력의 길을 찾아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셋째,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과거 큰 피해를 겪었지만, 미·중 패권 시대라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미래를 개척하고 우리의 자주적 영역을 확보하려면 일본과의 협력이 매우 필요합니다. 미·중이라는 거대 국가에 비하면 한국이나 일본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이므로, 우리가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이 새로운 변화의 세계에서 우리의 선택권을 높이는 길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며 일본 또한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현재 일본의 정치 지도부는 무조건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자국의 미래에 낫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나 북한 문제로 인해 무조건 미국의 이해관계에만 맞출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 중국이나 북한을 고려하여 자율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면서도 상호 이해관계가 다른 면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맥락을 우리가 올바르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번 역사 기행이 이런 문제들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농사를 짓든, 직장을 다니든, 정치를 하든 '국가 공동체'라는 관점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기 젊은이 중 누군가가 미래에 한국의 정치 지도자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고사 부분이 바로 서야 합니다. 올바른 관점을 가진 역사학자가 많이 배출되어야 하고 고고학 연구, 중국 사료 연구, 그리고 몽골·여진 등 동북 지역에 존재했던 소수민족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통해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재정립할 때, 《환단고기》와 같은 책도 하나의 사료로서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까지 나온다면 더없이 큰 성과이겠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번 역사 기행이 여러분 개개인의 삶에 작은 보탬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박수)
4시 심양공항에 도착해서 서울에 가기 위해 짐을 부쳤습니다. 지난 7일 동안 물심양면으로 역사기행단을 지원해준 조신, 진신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비행기 보딩을 기다리며 스님은 팀장급 정토회원들과 잠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명 한 명 어떤 소임을 맡고 있는지 소개를 듣고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이번 역사기행 실무를 맡았던 류경자, 한수연님과도 잠시 인사를 했습니다.

“이번에 실무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스님과 기행단은 보딩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2시간 동안 비행을 한 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몸이 좋지 않아 바로 서초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 스님은 8.15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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