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7.14. 두부 만들기, 근일 큰스님 조문
"승진도 연봉도 올랐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부를 만들고, 근일 큰스님이 열반하시어 의성 고운사에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새벽부터 스님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묘덕법사님이 오전 5시 기차로 서울에 가게 되어서 그편에 서울공동체를 위한 두부를 만들어서 보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오후에 두부를 만들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오늘 새벽 2시 40분 공양간에 모여 두부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과 같이 10kg의 메주콩이 알맞게 불려있었습니다. 오늘은 두부를 2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콩을 가는 기계에 불린 콩을 넣었습니다. 금방 콩이 다 갈아졌습니다. 지난번보다는 물을 적게 부어 되직하게 콩을 갈았습니다. 큰 대야 2개가 갈아진 콩으로 가득 찼습니다.

스님은 첫 번째 대야를 불 옆으로 옮겨 큰 솥에 갈아진 콩과 뜨거운 물을 함께 저어가며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젓다 보니 서서히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순간에 확 넘칠 수 있어 찬물을 세 번 부어가며 계속 젓다 보니 콩물이 잘 익어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두부 만들기를 할 때에는 익은 콩을 자루에 넣어서 손으로 짜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리 두부용 탈수기를 구입해두었습니다. 콩이 뜨거워서 손이 델 수 있어 스님은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에 익힌 뜨거운 콩을 넣어 나무 주걱으로 한번 짜내고, 어느 정도 물이 빠진 주머니를 탈수기에 넣어 돌렸습니다. 손으로 눌러 꽉 짜내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콩물이 잘 짜지고 비지가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콩물에 간수를 넣고 두부가 엉기길 기다렸으나 잘 엉기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말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간수가 너무 적어서 그런 걸까요? 물이 너무 뜨거워서 그런 걸까요?”

이번에도 간수 외에 식초를 조금 부어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한 켠에서는 두 번째 양재기도 같은 방법으로 갈아진 콩을 삶고 자루에 담아 콩물을 짜내었습니다. 탈수기를 돌리는데 갑자기 퍽 소리가 나서 보니 보자기가 탈수기 안에서 터져서 콩비지가 공양간 여기저기 튀어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일하던 법사님들이 다친 곳은 없었지만, 공양간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잘 치워야겠어요. 안 그러면 두북공동체에서 공양간을 다시 안 빌려줄 수도 있어요.”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엉겨진 두부 위에 삼베를 얹고 물을 떠냈습니다. 어느 정도 물을 떠내고 두부 판에 삼베를 얹고 엉겨진 두부를 부었습니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자, 천을 덮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 두부가 단단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열어보니 두부가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서울에 보낼 수 있게 두부를 잘라 통에 잘 넣었습니다. 묘덕법사님이 기차를 타러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스님이 땀으로 만든 두부예요. (웃음) 서울 공동체 대중에게 맛보아달라고 하세요.”

“네 스님 고맙습니다.”

두 번째 두부도 잘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 두부도 잘 잘라서 대중들이 먹을 두부와 선물로 나눠줄 두부를 잘 나누어 담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스님은 행자님들과 함께 뒷정리를 했습니다. 탈수기가 터져서 여기저기 튄 비지들을 걸레로 닦았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스님이 고무장갑을 벗자 두 시간 반 동안 스님의 손이 땀에 불어 퉁퉁 불어있었습니다.

스님은 오전에는 휴식을 하고, 원고를 수정하였습니다.

낮 12시에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에 영주 부석사 회주 근일 큰스님이 열반하시어 의성 고운사에 문상을 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경주에 들러 신라문화원장 진병길 님과 같이 고운사로 이동했습니다. 진병길 님과 두런두런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3시가 되어 고운사에 도착했습니다. 유수스님이 먼저 도착해서 스님을 마중했습니다.

분향소가 차려진 곳에 들어가 조의금을 내고, 큰스님 영정 앞에 헌화한 후 절을 올렸습니다. 상좌 스님들에게도 절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분향소를 찾으신 다른 스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문도 대표인 호성스님이 스님을 내빈실로 안내해 차를 대접했습니다. 내빈실로 이동하다 보니 작년 3월 산불로 고운사 주변의 나무들이 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문도 대표인 호성스님이 말했습니다.

“재앙도 그런 재앙이 없었습니다. 여러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다행히도 템플스테이 건물이 타지 않아 이렇게 큰스님을 위한 분향소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호성스님, 고운사 주지인 등운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스님은 큰스님을 회고하며 말했습니다.

“큰스님과는 인도 델리에서 세계 불교대회에 같이 참석해서 대화를 나눈 인연이 있습니다.”

“예 기억합니다.”

호성스님은 근일 큰스님을 기리며 말했습니다.

“우리 큰스님은 원력대로 사셨습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셨고, 법문을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셨습니다. 큰스님이 가셨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가 정진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고 잘했던 것보다 잘못했던 것만 생각나고 합니다.”

“효 상좌입니다. (웃음)”

연로하신 도문 큰스님과 이미 입적하신 서암 큰스님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눈 뒤, 차담을 마친 스님은 스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랐습니다.

차를 타고 나오며 고운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화재로 많은 전각들이 불에 타서 터만 남아 있었습니다. 종을 치는 범종각도 불에 타서 종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다행히 대웅전은 피해를 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차를 돌려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경주를 지나오니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면 저녁 울력을 안 해도 되겠네요. (웃음)”

하지만 두북수련원 근처에 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이곳에는 비 한 방울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은 비가 다 와도, 이렇게 두북수련원이 있는 곳만 비가 안 오네요. 큰 일이에요.”

두북수련원에 도착하니 5시 30분 정도가 되어있었습니다. 스님은 울력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꽃밭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용마루 기와로 터 입구에 꽃밭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줄을 쳐서 가지런히 기와를 이어 나갔습니다. 땅을 팔 필요가 없이 땅 위로 기와를 얹으니,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와와 기와 사이에는 모래를 퍼와서 뿌려주고 쇠스랑으로 평탄화를 했습니다. 날이 흐리고 그리 덥지 않아 일하기에 좋았습니다.

어제 심었던 돌 앞쪽에도 줄을 쳐서 기와를 놓았습니다. 모래를 먼저 부어놓고 기와를 놓으니 한결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곳 역시도 스님은 모래도 평탄화를 했습니다.

어느덧 꽃밭이 가지런하게 조성이 잘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땀을 흘렸던 보람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도구를 정리하며 울력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저녁 공양을 한 후, 업무를 보고 휴식하였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와 인도 쉬라바스티 천축선원의 대인스님을 만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에서 있었던 법문을 소개합니다.

목표를 이뤄도 행복하지 않은데,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요?

“저는 최근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덕분에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올랐습니다. 목표를 이룰 때마다 ‘이제는 행복하겠지’ 생각했지만,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등산하며 숲길을 걷거나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보낸 시간은 특별한 성취가 없어도 오래도록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저는 점점 성공보다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회는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저는 무엇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 하셨는데요. 삶의 기준은 결국 자기가 정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국제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무엇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지, 또 인생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조사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를 꼽았습니다. 그다음이 자신의 직업이고, 돈은 세 번째나 네 번째 정도였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는 경우가 많고, 가족관계는 네 번째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이 국제사회와 비교했을 때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캐나다나 미국에 이민한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주말에는 대부분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함께 나들이를 가거나 여가를 즐기는 것이 자연스럽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말이 되면 부인은 부인 친구를 만나고, 남편은 남편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보다 세대별로, 개인별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에서는 주말에 친구에게 전화를 하기도 쉽지 않아요. 주말이 되면 모두 가족 중심으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가족 단위로 만나고, 모임도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사회문화적인 가치의 차이라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는 죽기 살기로 돈을 벌고, 돈을 벌면 또 끼리끼리 모여서 쓰는 문화가 있습니다. 외국에 이민하더라도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는 남자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는 문화가 생기곤 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어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놉니다. 그래서 출세나 돈보다 레저나 여행 같은 삶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한국에서도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친구들과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조금 소외될 수는 있습니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 한다'라고 하거나, 조금 특별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어요. 호주나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주말을 가족과 같이 보내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직장에서도 정해진 근무 시간을 마치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에요. 한국에서도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주변과 다른 삶을 선택하면 아무래도 조금 소외될까 봐 망설이게 되는 것이죠.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정해진 답은 없다는 거예요. 삶의 기준은 결국 자기가 정하는 것입니다. 다만 한국 사회는 통계적으로 돈이나 출세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그런 가치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에요. 왕위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해서 결혼한다거나, 미국에서는 장관을 하다가도 배우자가 아프면 사표를 내고 간호에 전념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외신을 통해 종종 접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요.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도 꿋꿋이 현장에 근무한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죠. (웃음) 우리 문화가 그래요. 그런 삶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두고 세속적이라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살고 싶다는데 어떡하겠어요.

우리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을 해치는 행동입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사기를 치거나, 성추행하거나,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떤 삶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손해를 끼치지 않고,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숲속의 동물들도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데 사람이 왜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겠어요?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다만 남을 해치는 행동만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앞으로 출세를 지향하며 살 것인지, 여유롭고 행복을 중시하는 삶을 살 것인지는 조금 더 살아보면서 스스로 선택하면 됩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스님도 이 좋은 세상에서 이렇게 살잖아요.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두 저에게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쳤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제가 이 길이 좋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스스로 선택해서 가면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점검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우울증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만사에 의욕을 잃은 상태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돈을 벌어도 별로네. 직장을 다녀도 별로네. 승진해도 별로네’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가서 농사짓는 것이 나을까?’ 하는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병이 나으면 ‘아, 내가 좋은 직장을 버렸네. 내가 그때 미쳤구나’ 하며 후회할 수 있어요. 혹시 이런 일이 생길까 싶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질문자가 삶의 방향을 바꾸려고 한다면 먼저 정신건강부터 점검해 보세요. 이해하셨습니까?”

“네.”

“질문자에게 정신 질환이 없는 상태에서 ‘승진해도 별 의미가 없고, 돈을 벌어도 별 의미가 없다. 나는 남을 돕거나 산책하거나 등산할 때 훨씬 삶의 보람을 느낀다’라고 생각한다면 삶의 방향을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정신적인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를 저는 많이 봤어요.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그만둔 것을 후회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젊었을 때 돈을 더 벌 수 있었는데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후회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상담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먼저 정신건강을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맑은 정신에서 ‘나는 한국 사회의 출세 중심의 삶의 방식으로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겠다’라고 판단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우울증 같은 문제로 매사에 의욕을 잃어서 생긴 생각이라면 먼저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직업을 바꾸거나 학교를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커요. 그것만 점검된다면, 그다음에는 질문자가 직접 살아보면서 선택하면 됩니다.

제가 예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질문자 같은 사람을 이렇게 비유해 놓았어요.

애벌레가 산을 오릅니다. 서로 너도나도 산을 오르려고 해요. 남의 등을 밟으며 올라갑니다. 꼭대기에 가면 무엇인가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도 죽기 살기로 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곳에 도착하지 못해서 괴롭고, 어렵게 도착한 소수는 도착해 봐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도 이것을 비슷한 이야기로 비유하셨습니다.

숲속의 동물들이 모두 한쪽으로 줄달음을 칩니다. 옆에 있던 다른 동물들이 놀라서 ‘무슨 일이냐?’라고 물으니,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진다’라는 것입니다. 긴가민가했지만 모든 숲속의 동물이 달리니까 다른 동물들도 함께 달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가는 것이 사는 길인 것처럼 숲속의 모든 동물이 질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사자가 ‘어흥!’ 하고 고함을 치자 모두 놀라 멈춰 섰습니다. 사자가 ‘너희들 어디 가니?’ 하고 물었어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유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달리니?’라고 묻자, 사슴이 ‘소가 뛰어가길래 물어보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해서 저도 따라왔습니다’라고 답했어요. 사자가 소에게 물으니, 소는 돼지를 따라왔고, 돼지는 말을 따라왔다고 했어요.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보니 맨 처음 뛰기 시작한 것은 토끼였습니다. 토끼에게 이유를 물으니,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큰 소리를 듣고 놀라 뛰었다는 것입니다. 사자가 ‘우리 거기 한번 가보자’ 하고 함께 가서 확인해 보니, 도토리 하나가 잠자는 토끼 귀 옆에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툭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뛰기 시작한 것이 숲속 전체의 질주로 이어진 것이었어요.

이 세상도 모두 한쪽으로 질주하고 있지만 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튼 빨리 가면 좋은 줄만 알지, 왜 가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무조건 앞서가야 하는 줄만 알고 질주하는 모습을 옛날부터 이런 식으로 비유했습니다. 사자처럼 그 어리석은 질주를 멈추게 하고, 원인을 밝혀서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한 존재를 부처님에 비유한 것입니다.

오늘 마침 질문자가 이런 질문을 해서 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질문자가 맑은 정신에서 ‘지금까지는 이것을 이루면 행복할 줄 알고 살아왔는데, 살아보니 이루고 나서도 별것이 아니더라. 이제는 다른 길도 생각해 봐야겠다’라고 느꼈다면, 그것은 삶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이 어떤 정신적인 질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어른들이 질문자에게 말한 것처럼 ‘네가 미쳐서 그런 거다’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무언가에 미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가 나중에 후회하잖아요. 남들이 볼 때는 미쳤다고 해도, 스스로 분명한 이유와 방향을 가지고 선택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꾸준히 갈 수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생각이 일시적인 감정 때문인지부터 한번 점검해 보세요. 그것만 아니라면 이번 경험이 질문자의 삶을 바꾸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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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식

“우리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남을 해치는 행동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떤 삶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 손해를 끼치지 않고,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사람이 왜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겠어요?”
--
내가 행복하게 살기보다 남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26-07-17 06:42:36

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6-07-17 06:35:31

이수정

고맙습니다.

2026-07-17 06: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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