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7.7. 병원 진료, 형님 인사
“해외 이주를 앞두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병원 진료를 받고, 요양원에 있는 형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을 마치고 원고를 수정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양산으로 출발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요양원에 입원해있는 형님을 모시고 스님의 고향마을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형님은 뇌종양으로 수술하셔서 말씀을 하시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스님은 어릴 적 함께 살던 집에 형님을 모시고 와서 집을 보여드렸습니다. 식사를 함께하고 스님은 형님의 휠체어를 밀며 마을 이곳 저곳을 보여드렸습니다.

“여긴 종태씨 집입니다.”

“여긴 택우네 집입니다.”

“여긴 고모 집입니다. 기억나세요?”

형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였습니다.

형님을 모시고 왔던 차가 좁은 마을 길을 지나다가 타이어가 벽에 부딪혀 펑크가 나 뙤약볕 밑에서 수리 차를 한참 기다리다가 처리를 한 후 형님을 병원에 다시 모셔다드렸습니다.

스님은 스리랑카에서 돌아온 후 계속 설사를 해서 병원에서 돌아온 후 휴식하였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와 통도사에서 인도에서 온 손님을 만날 예정입니다.

오늘은 스님의 법문이 없어 지난 5월에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해외 이주를 앞두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저는 올해 말쯤 가족과 함께 해외로 이주할 계획입니다.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이 아내의 오랜 꿈이었는데, 최근 아내가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저 역시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괜찮겠다고 판단해서 함께 나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미 10년 전에 동생이 일본으로 떠나 정착해 살고 있는데, 저마저 해외로 나가게 되면 한국에는 자식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요즘 부쩍 마음이 약해지셔서, 해외에 있는 동생도 한국에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해외 이주 이야기를 꺼내면 상심이 크실 것 같습니다. 제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는데,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어머니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마음이 덜 아프실지, 또 저는 어떤 마음으로 해외에서 살아가야 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해외에서 오래 지낼 계획인가요, 아니면 몇 년 살다가 돌아올 생각인가요?”

“아내는 계속 살 생각이고, 저는 2~3년 정도 살다가 돌아오고 싶습니다.”

“아내가 해외에 나갈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회사 파견인가요, 현지에 직장을 새로 구한 건가요?”

“아예 현지에 직장을 구했습니다.”

“평생 살겠다고 해외로 나가도 사정이 생기면 돌아와야 할 수도 있고, 2~3년만 살겠다고 해도 막상 살다 보면 더 오래 머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오래 살겠다든지 몇 년만 살겠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3일 만에 일이 잘못되어 돌아올 수도 있고, 30년을 살다가 돌아올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냥 ‘3년 정도 살다가 돌아오겠다.’ 하는 계획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자연의 생태를 한번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됩니다. 산에 사는 토끼나 다람쥐도 새끼를 낳으면 목숨을 걸고 보호하지만, 새끼가 자라 성체가 되면 각자 살아갑니다. 새끼가 계속 어미를 따라다니지도 않고, 어미가 평생 새끼를 돌보지도 않습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사람도 어릴 때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 살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자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또 그 아이를 정성껏 키워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야 하고, 다 자란 자식이 떠나면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부모가 나를 키웠으니 내가 반드시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의 원리라기보다는 인간 사회가 만들어 낸 문화적 관습에 가깝습니다. 가까이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물론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닙니다. 부모를 학대하거나 상처를 주는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떨어져 산다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제가 스님이 되었다고 부모에게 불효한 것이 아니며, 또 스님이 되었다가 속퇴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닙니다. 더 좋은 길을 가다가 중단했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도우면 좋은 일이지만, 돕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어린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질문자처럼 이미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입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식과 함께 살고 싶겠지만, 성인이 된 자녀는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며 살 수는 없어요. 부모님도 자식과 함께 살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전에는 대가족으로 함께 사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오래 살고 싶어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병들고 싶지 않아도 병이 드는 것처럼,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 없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자는 이제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내의 뜻이 부모님의 뜻보다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을 해놓고도 배우자보다 부모의 뜻을 더 우선한다면, 새로운 가정보다 과거의 가족관계에 더 집착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 곁에 살면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인생에서는 좋은 것만 다 선택하며 살 수는 없어요. 어머니께 ‘어머니 곁에서 모시고 살면 가장 좋겠지만, 저희 사정이 이러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해외에 나가서는 건강하게 자기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한국에 있는 부모님을 걱정한다고 해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의 건강만 해치고 삶의 집중력만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용돈을 조금 더 보내드리거나, 전화 한 통이라도 더 자주 해 드리고, 1년에 몇 차례 찾아뵈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근심과 걱정은 실제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기로 했다면 너무 무겁게 짊어지지 말고, 담담하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을 진심으로 전하면 됩니다. 부모님이 붙잡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제가 출가할 때도 부모님께서 울며 붙잡으셨어요.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 마음 때문에 출가를 포기해야 했을까요? 아니잖아요. 결국 자신의 길을 가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 조금씩 적응하게 됩니다. 대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1년에 한두 번은 찾아뵙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전화를 드리면 좋겠지요. 또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정성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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