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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캔디 지역으로 이동하여 말와타 템플과 불치사를 방문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5시 30분 스님은 한국 종교인 방문단, 스리랑카 다르마샥티 종교인들과 함께 스리랑카 중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스리랑카 불교문화의 중심지인 캔디(Kandy)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이동 후, 스님 일행은 길가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버스에 올라 이동을 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 목적지인 캔디의 말와타(Malwatta) 템플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과 일행은 말와타 장로 회의의 최고 종정인 티보투와웨 스리 수망갈라 스님(Thibbotuwave Sri Sumangala)을 만나기 위해 접견실로 이동했습니다.
티보투와웨 스리 수망갈라 종정 스님은 스리랑카 불교계 최고 권위로 스리랑카 상좌부 3대 종단 중 가장 교세가 크고 유서가 깊은 ‘시암 종단’을 대표합니다. 단순한 불교 지도자를 넘어 스리랑카 국가 전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어 국가적 위기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때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지도자들이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등의 큰 영향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종정스님을 뵙기 전 아싸지 스님이 스리랑카 불교 종단과 종정스님에 대해서 잠시 설명해주었습니다.
“스리랑카 불교에는 크게 세 개의 주요 종단이 있는데 시암 니까야, 아마라푸라 니까야, 그리고 라마냐 니까야입니다. 시암 니까야는 태국에서 법맥을 이어왔고, 아마라푸라 니까야와 라마냐 니까야는 미얀마에서 법맥을 이어왔습니다. 스리랑카에서 한때 법맥이 끊어졌기 때문에 태국과 미얀마에서 다시 법맥을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만날 분은 시암 니까야의 종정 스님이십니다. 또 부처님 치아 사리, 즉 불치가 모셔져 있는 불치사를 책임지고 계신 분입니다. 오늘 일정을 마친 뒤에는 우리도 불치사에 참배하러 갈 예정입니다.”
스님은 종정스님께 절을 하며 인사를 드리고 준비해 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아싸지 스님은 종정스님에게 스님과 한국인 종교인 모임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또한 스님이 JTS 구호활동을 통해 작년 스리랑카의 사이클론 피해당시 많은 도움을 주었고 현재 스리랑카에서도 JTS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종정 스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사원도 이 지역의 타밀인과 무슬림 공동체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또 근처의 실버 템플에는 종교 간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과 조각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계신 종교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한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언제든 지원하겠습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기쁩니다."

이후 종정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스님 일행은 말와타 템플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불치사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캔디 호수가 있어 호수에서 잠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스님 일행은 부처님의 성치(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치사(Sri Dalada Maligawa)에 도착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성치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 화장 과정에서 남겨진 것으로 인도 칼링가 왕국에서 봉안되었습니다. 4세기경, 전쟁을 피해 헤마말라 공주(Hemamala)와 단타 왕자(Dantha)가 성치를 공주의 머리카락 속에 숨겨 스리랑카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후 성치는 역대 왕들이 보관하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고, 수도가 옮겨질 때마다 함께 이동하여, 16세기 말 캔디가 왕국의 수도가 된 이후 현재의 불치사가 건립되어 지금까지 성치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캔디 박물관을 지나 뒷 건물에 성치가 보관된 템플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성치를 친견하러 온 순례객들이 많았습니다. 순례객들은 줄지어 꽃을 올리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도 작지만 꽃을 구해 일행분들에게 꽃을 나눠드렸습니다.
“우리도 여기까지 왔으니 꽃을 올립시다.”
한 행자님이 박남수 교령님에게 교령님도 꽃을 올리시느냐 묻자, 교령님이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위해 깨달으신 분이기 때문에 종교를 초월해서 우리 모두 다 제자입니다.”
스님 일행은 부처님의 성치를 참배했습니다. 성치는 함에 들어 있어 실제로 치아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참배 후 산책 겸 점심을 먹기 위해 걸어서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아싸지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미 식사비는 지불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식당 주인이 다르마샥띠 회원이자 캔디 모스크 연합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캔디 모스크 연합회는 캔디주에 있는 무슬림 모스크 390개를 운영하고 있는 단체라고 했습니다.
스님이 아싸지 스님에게 말했습니다.
“부처님 성치를 보고 불교 교단을 방문했는데, 불교 쪽에서 공양을 받아야지, 왜 무슬림 쪽에서 공양을 받나요. (웃음) 농담입니다. 잘 먹었습니다.”

스님은 식당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선물을 전달하였습니다.

다음 장소에 가는 길에 이슬람 박물관이 있다기에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이어서 오후 1시 라지타 모스크(Rajitha mosque)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2019년에 건립된 하모니 빌딩(Harmony Building)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모니 빌딩은 스리랑카 최초의 종교 간 화해와 상호 이해를 돕기 위한 건물로,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고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습니다.

안내해 주시는 분이 말했습니다 .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때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곳의 목적은 다른 종교를 개종시키거나 특정 종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무슬림이 지켜야 하는 여섯 가지 믿음과 다섯 가지 의무, 무슬림이 스리랑카 사회에 전해온 문화와 사회적 기여,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Madrasa) 등에 대해서도 잘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김홍진 신부님이 물었습니다.
"크리스천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랑, 불교는 자비라고 할 수 있는데, 이슬람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평화(Peace)입니다."

센터의 홀에 자리가 마련되어 한국인 방문단을 환영하는 짧은 행사를 했습니다. 아랍학교 학생이 코란을 독송한 뒤 캔디 마울라비 연합회장이 환영사를 했습니다.
"이번 여러분들의 방문은 금빛으로 기록해 두어야 할 만큼 기쁜 날입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곳 캔디 지역은 4가지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화합하며 살아온 평화로운 장소입니다. 공존이라는 것은 캔디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캔디는 다양성과 공존이 있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박종화 목사님이 답사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스리랑카에 직접 와서 여기 계신 여러 종교인분을 친히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여기 와서 아주 깊이 깨닫고 확실하게 느낀 점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면, 물론 '종교' 자체도 참 중요하잖아요? 그렇지만 '종교인'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사회가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려면 우리 종교인들이 먼저 앞장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든 종교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화해와 평화를 만들어가는 '종교인들의 멋진 집합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방명록에 종교인 한 분 한 분이 각자 메시지를 적고 사인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스리랑카 무슬림들을 보니 젊고 용기 있고 친절합니다. 스리랑카의 평화, 한국의 평화,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라고 적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오후 2시가 다 되어 담불라의 동굴사원(Dambulla Cave Temple)을 가기 위해 차량에 탑승하여 이동했습니다.

오후 4시 45분 담불라 동굴사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5시에 담불라 사원의 티켓오피스가 문을 닫는다고 하여서 이동하며 긴장했었는데 방문단은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여 사원에 입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담불라 동굴 사원은 기원전 1세기 발라감바 왕이 창건한 스리랑카 최대 규모의 바위 동굴사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약 160m 높이의 거대한 바위산 중턱에 위치한 5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발라감바 왕이 인도의 침입을 피해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던 동굴에서 십여 년 동안 피난살이를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당시 동굴에서 수행 중이던 승려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왕을 숨겨주며 14년 동안 정성껏 보호해 이후 군사를 일으켜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왕위를 되찾은 왕은 승려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이 피난처로 삼았던 거대한 천연 동굴을 화려한 불교 사원으로 개조하여 승려들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동굴사원을 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부터 15분 이상 오르막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연세가 제일 많으신 박남수 교령님이 앞장서서 언덕을 올랐습니다. 그 뒤를 이어 모두 함께 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갔습니다.

동굴 안에 들어가니 거대한 부처님 와불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종교인분들에게 와불에 관해서 설명했습니다.

“이 와불은 열반상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에 누워있는 모습입니다. 오른쪽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머리는 북쪽으로 다리는 남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게 누우셔서 열반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불상과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동굴에서 나오니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다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 행자님이 말했습니다.
“어른들 일정이 너무 고되지 않게 날씨가 많이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보다 시원하네요.”
오후 6시 40분에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스님은 원고 교정을 하고 휴식하였습니다.
내일은 스리랑카 일정 3일째로 아누다라푸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어 지난 4월에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합니다.
“저는 요즘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입니다. 엄마는 항상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십니다. 단순한 용돈 수준이 아니라, 몇백만 원에서 많게는 몇천만 원까지 빌려달라고 하십니다. ‘다음 달까지 줄게.’ 하고는 몇 년 뒤에 돌려주시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제가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습니다.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계속 그런 말씀을 하시니, 부담이 커져 거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인정머리가 없다. 다른 집 딸들은 안 그런다.’라며 막말을 하십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고, 이런 일이 쌓이면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제는 ‘엄마와 관계를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너무 고민이 되어서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스무 살이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마흔 살입니다.”
“스무 살이 넘으면 성인이에요. 성인은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습니다. 결혼할 때도 부모의 허락이 필요 없고, 스님이 될 때도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돈을 주고 싶으면 주고, 안 주고 싶으면 안 주면 됩니다. 전화도 받고 싶으면 받고, 안 받고 싶으면 안 받으면 됩니다. 이것은 질문자의 권리예요. 스무 살 이전에는 부모가 보호자이고 자식은 피보호자입니다. 그때는 부모는 자식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자식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관계가 끝났어요. 이제는 성인과 성인의 관계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아까 아이가 무엇을 달라고 할 때 ‘야단치지도 말고, 그렇다고 하자는 대로 다 해주지도 말라’고 했지요?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말되 감정적으로 야단은 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전화가 오면 받을지 말지는 질문자의 자유이고, 돈을 달라고 할 때 줄지 말지도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전화하지 마세요.’, ‘돈 달라는 소리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부모의 삶에 간섭하는 일이 됩니다. 부모는 필요하면 전화할 자유가 있고, 돈을 부탁할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돈 좀 빌려주라’라고 하면, ‘네’ 하고 안 주면 됩니다.” (웃음)
엄마가 ‘보낸다고 해 놓고 왜 안 보냈니?’라고 하면 ‘보내려고 했는데 돈이 없네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엄마가 욕하더라도 그냥 들으면 돼요.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렵나요? 엄마의 성격상 돈을 빌려주면 돌려받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것에 맞게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이렇게 마음을 쓰는 것은 엄마 문제일까요, 내 문제일까요?”
“제 문제입니다.”
“내 문제니까 그건 돈으로 보상을 좀 해야 해요. 제일 좋은 건 엄마가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면, 며칠 있다가 ‘엄마, 아무리 알아봐도 천만 원은 구할 수가 없어요. 대신 백만 원을 보내 드릴게요.’ 하고 백만 원을 주는 거예요. 천만 원을 빌려주고 못 받는 게 나을까요, 백만 원을 주는 게 나을까요? 백만 원을 주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엄마와 갈등을 키울 필요 없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대응해 보세요. 엄마한테 ‘전화하지 마라.’, ‘돈 빌려달라고 하지 마라.’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엄마의 자유예요. 원래 전화라는 것은 자기가 필요할 때 하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필요할 때 연락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 사람은 꼭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라며 불평합니다.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뒷담화로 욕을 합니다. 법문 중에 손을 번쩍 들고 ‘법륜 스님, 그걸 법문이라고 합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집에 가면서 ‘스님이 애 키우는 얘기나 하는 게 무슨 법문이냐?’라고 말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스님에게 더 나을까요? 뒷담화가 나아요, 앞담화가 나아요?”
“뒷담화가 낫습니다.”
“뒷담화는 스님에 대해서 나름대로 예의를 갖춘 거예요. 그래서 뒷담화를 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에서 말 안 하고 뒤에서 말하는 것은 그 사람 나름의 예의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뒷담화를 안 하면 더 좋지요. 엄마도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자가 다 들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해주고, 못 해주는 것은 ‘엄마, 미안해요.’라고 하면 됩니다. 계속 전화가 오면 안 받아도 되고, 받았다면 ‘알아볼게요.’라고 한 뒤 나중에 ‘알아보니 어렵네요.’라고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대응해야지, ‘왜 나한테 이러세요?’ 하고 감정적으로 대하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계속 화를 내면 그 영향이 어디로 갈까요? 아이들에게 갑니다. 감정은 전이되기 때문이에요. 엄마에게서 받은 화가 풀리지 않으면, 내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성질을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이해하고, 그에 맞게 거리를 조절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불효가 아니에요.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모의 돈을 빼앗거나, 때리거나 욕하는 것이 불효입니다. 그러나 해줄 수 없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불효가 아니에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은 권하는 것이고, 악은 딱 멈추는 것입니다. 나쁜 짓은 딱 멈춰야 하지만, 좋은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좋은 일을 하면 착한 사람이지만, 좋은 일을 안 한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선행은 의무가 아니고 선택입니다.
반대로 악행은 멈추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지악(止惡)’이라 해서 악은 딱 멈추고, ‘수선(修善)’이라 해서 선은 닦고 꾸준히 연습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선행을 안 했다고 해서 불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를 잘 봉양하면 효자라고 하지만,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모의 돈을 빼앗는 것은 불효이고, 분명한 잘못입니다. 유교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키운 것처럼, 자식도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의무를 강조했기 때문에 불효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윤리적 관점일 뿐 자연의 이치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자연생태계를 보면, 어미가 새끼를 일정하게 보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새끼가 늙은 부모를 돌보는 동물을 본 적 있습니까? 성인이 되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식한테 무언가를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자식한테 바라는 게 있으면 그 자식은 불효자가 됩니다. 반대로 내가 자식한테 바라는 게 없으면 우리 자식은 다 효자가 됩니다. 이처럼 효자와 불효자는 내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예요. 내가 자식에게 자꾸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 자식이 불효자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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